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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방송》은 관련 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도 자주 활용되곤 한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가르치는 애독자의 수기를 통해 《신문과방송》이 학계에 끼치는 영향은 어떤지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애독자 수기 작성 요청을 메일과 전화로 받았습니다. “네, 그러죠. 뭐!”라고 대답하는 데 불과 10초도 걸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객관적으로 모은 데이터가 있어야 쓸 수 있는 논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복잡한 이슈에 대해 나만의 시각을 꼭 담아야 하는 딱딱한 칼럼도 아니라는 생각에, 쉽게 대답해 버렸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하루 이틀 지나며 얼마나 후회가 되었던지요. 마감을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며 이젠 좀 써봐야지 몇 번을 앉았다 섰다 반복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문과방송》을 처음 접한 것이 아마 대학 졸업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걸 보니 족히 이 관계가 20년은 훌쩍 넘는데, 글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질문인 거죠. ‘나에게 《신문과방송》은?’이란 꽤 오글거리는 주제를 고민하고 그걸 또 글로 적어내려니, 도대체 쉽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노력해서 특별한 감상을 ‘어떻게든’ 만들기보다, 그저 솔직하게 써보자는 판단과 함께 실제 《신문과방송》 몇 권을 놓고 잠시 노려보며 과연 어떤 형용사들이 떠오르는지 집중했습니다. 잠시 후 마치 마법같이 떠오른 몇 개의 형용사와 뜬금없는 은유들은 ‘고마움’과 ‘푸근함’ 그리고 그 두 형용사에 딱이다 싶은 ‘백반’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아래는 그것들이 생각난 나름의 이유입니다.
전통을 지키고 오래 보듬는 마음
먼저, 제가 《신문과방송》에 대해 느낀 고마움은 편집부가 우직하게 갖고 계신 고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꽤 오랜 시간 보듬고 있는 그 정감 어린 타이틀 말입니다. 물론 고집스럽다고 말씀드리면 “고집이 아니라 그냥 어쩌다 보니 딴 이름으로 바꿀 기회가 없었어요!”라며 웃으실 수도 있겠다 싶긴 합니다. “고민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덧붙이시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신문을 읽고 방송도 보고 그렇게 살아가지만, 사실 예전 그 오래된 방식 그대로 종이 신문과 전파 방송을 소비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예전 그 타이틀을 쓰던 여기저기에선 더 이상 그 고전적인 용어의 사용을 멈췄고 말입니다. 하지만 왠지 빈티지에 자연스레 끌리기도 하고, 변화도 좋지만 전통이 약간은 더 매력적인 저 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신문과방송》이란 이름에 많은 애정이 갑니다. 뭐랄까, 옷장에 있는 바지들 가운데 약간 색이 바랬지만 여전히 짱짱한 그 ‘최애’ 청바지 같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저는 여러분의 그런 ‘변하지 않음’이 참 고맙고 또 고마울 뿐입니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사실 저도 여러분과 비슷한 고민을 꽤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그 고민은 여전히 진행형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현재 몸담은 소중한 직장은 정확하게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입니다. 짐작은 하시겠지만, 특히나 훨훨 나는 우리 MZ들이 선택해야 하는 학과에서 신문방송은 밋밋함을 넘어 비현실적 측면까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여타 쟁쟁한 학과나 전공들과 격렬한 승부를 가려야 하는 입장에서 신문방송이란 타이틀은 상당히 올드해 보이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저를 포함해 얼마나 많은 주변인이 “제발 좀 바꿉시다!” 외치고, 또 외쳤겠습니까. 하지만 저도 그런 갈등의 순간마다 마지막엔 또 ‘색 바랜 청바지’를 다시 입곤 했습니다. 물론 아주 좋아하면서 말입니다.

첨단을 달리는 유익한 자료가 되어주다
또 하나의 고마움도 있습니다. 타이틀이 《신문과방송》이라는, 다소 트렌드에 역행하는 이름이라 해서 그 잡지가 품고 있는 콘텐츠들이 마치 고인 물처럼 멈춰 있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달 애독하고, 매일의 수업에도 이용하며, 언제나 손닿는 곳에 가까이 놓아두는 편입니다. 언뜻 봐도, 참으로 쓸데가 많은 트렌디한 콘텐츠들이 계속해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 신뢰받는 뉴스는 결국 ‘인간’이 만든다>도 있었고요. <소송과 협력 사이의 고민, 생성형 AI의 비즈니스 모델로 해결해야>도 있었습니다. <AI 검색 서비스 ‘큐:(Cue:)’, 챗GPT 대항마 될 수 있을까?>도 쏠쏠했습니다. 잡지의 제목인 《신문과방송》을 무색하게 만드는 트렌디 콘텐츠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필자들의 면면을 봐도 미디어 분야의 최첨단, 즉 끄트머리에서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분들로 가득합니다. 저도 쑥스럽지만, 객원 필자로 <유튜브 시대 언론사의 생존 전략>이란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타이틀은 클래식, 알맹이는 쌩쌩한 언밸런스 콘텐츠인 《신문과방송》, 참으로 지나치기 어려운 잡지입니다.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푸근함도 간단하게 말해보고 싶습니다. 《신문과방송》이 제게 주고 있는, 꽤 오랜 기간 느껴온 감정입니다. 사실 요즘 미디어 관련 콘텐츠들은 때로 과도하게 화려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온라인으로 접하는 형태든, 아니면 인쇄해서 접하는 형태든 최첨단의 비주얼 요소들과 현란한 텍스트로 가득한 경우가 많아 가끔 ‘투 머치’로 느낄 때도 많기 때문입니다. 내용보다 겉멋이 꽉 들었다고나 할까요. 물론 그런 콘텐츠들이 무조건 싫다는 뜻은 아닙니다만, 형식이 내용을 압도해 피곤한 경우도 꽤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겉모습도 적당히 트렌디하고 무엇보다 개별 기사가 상당히 웰메이드인 《신문과방송》은 저의 다양한 필요를 채워주는 참으로 푸근하고 믿음직한 참고문헌입니다. 수업이나 연구, 학회 발표를 위해 자료를 준비하다 막힐 때 《신문과방송》 블로그를 열면 수준급의 레퍼런스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실패한 적이 없어, 그동안 단단한 믿음도 생겼고 말입니다.

과함 없이 믿음직스러운 백반처럼
독자 곁에 머무는 잡지가 되길
고마움에 푸근함에 든든함에 믿음직함까지. 《신문과방송》을 떠올리며 생각난 형용사들을 늘어놓다가, 결국 하나로 귀결되는 이미지는 뭘까 궁금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신문과방송》은 ○○○다!” 이런 답처럼 말입니다. 적절한 메타포를 고민하다 ‘백반’이 딱 맞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고맙고, 푸근하고, 든든하고, 실패 없고, 비용도 크게 안 드는 그 소중한 음식 백반 말입니다. 파스타도 좋고 코스요리도 신나겠지만, 백반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도 상당한 것이 우리 마음이라 믿습니다.
얼마 전 저는 제가 속한 신문방송학과의 학과장을 담당하며 소중한 우리 학과에 어울리는 슬로건을 공들여서 만들어 봤습니다. ‘전통, 그리고 정통! 서강대 신문방송’입니다. 교수님 모두에게 허락받고 사용하는 공식 슬로건은 아니라 홈페이지 등에 적지는 못했지만, 저라도 여기저기서 열심히 사용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 강의의 학업 계획서에도 쓰고, 수업 자료에도 엠블럼으로 만들어 열심히 밀고 있습니다. 학생들도 은근 좋아하는 눈치입니다. 저 슬로건, 아예 드릴 수는 없지만 가끔 빌려드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신문과방송》 6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예전엔 환갑으로 불리던 긴 세월이었지만 요즘엔 그저 30년을 두 번 산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 30년이 두세 번 더 돌아올 때까지 여전히 고맙고 푸근한 그래서 백반 같은 존재로 우리 곁에 있어 주길 바랍니다. 그동안의 노고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