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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돌려차기 사건’으로 알려진 묻지마 폭행 사건은 온 국민을 분노하게 했다. 그러나 정작 이 사건의 피해자는 본인이 겪은 사건 내용을 보도 이후 알게 됐다. 제3자로 취급받던 피해자가 사건의 중심에 서기까지 1년의 고군분투를 그린 취재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저도 모르는 이야기가 어디서 새어나간 거죠?”
날카로운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 왔다. 지난해 5월 서면에서 일어난 무차별 폭행 사건을 보도한 직후였다. 사건의 피해자가 보도 경위를 물었다. 그는 폭행으로 사건 당시 모든 기억을 잃었다고 했다. 사건을 확인한 과정을 설명했다. 목소리가 곧 누그러졌다.
“저한테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던데요.”
그는 다만 본인이 겪은 사건이 왜, 어떻게 이뤄진 일인지 알고 싶다고 했다. 피해자는 아는 것이 없었다. 항의로 시작한 통화는 호소로 끝났다. 평소처럼 외출한 뒤 집에 돌아오던 길이었고 눈 떠보니 머리가 찢어진 채 병원에 있었다고 했다. 그는 사건에 대한 어떤 단서라도 얻고 싶어 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 박민지(가명·28) 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돌려차기 사건’의 시작
2022년 5월 22일. 부산 서면 한복판에서 귀가 중이던 여성을 일면식 없던 한 남성이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새벽 늦게까지 불 밝은 도심 한복판에서 이뤄진 무차별 폭행이었다. 남성은 길 가는 여성을 뒤따라갔다. 집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피해자를 뒤에서 발로 돌려차고 머리 부위를 여러 차례 밟았다. 이 폭행으로 민지 씨는 두피가 찢어졌고 뇌에 손상을 입었다. 오른쪽 다리가 마비됐고 기억을 잃었다.
사건 다음 날, 사건이 발생한 오피스텔 입주민을 중심으로 사건 소식이 퍼져나갔다. 오피스텔 입주민이 모여있는 채팅방에서 피해자의 지인이 피해 사진을 올리며 조심하라 일렀다. 입주민 지인의 지인을 거쳐, 회사에 ‘지난밤 서면에서 폭행 사건이 벌어진 것 같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확인이 필요했다. 피해자와 접촉할 수 있을까 싶어 오픈채팅방이었던 오피스텔 입주민 단톡방을 찾아서 들어갔다. 채팅방에서는 사건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밤중에 경찰차 소리를 들었다, 무서워서 못 다니겠다, 지난밤 오피스텔의 자동문이 고장나 열려있었다” 등
의 대화. 피해 사진을 올렸다던 피해자 지인이 다시 들어오길 기다렸지만 그는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직접 사건이 발생했다는 오피스텔로 향했다. 오피스텔 앞에서 만난 입주민들에게 사건 이야기를 확인했다. 입주민 대부분 사건 전말은 알지 못했지만, 사건이 해당 오피스텔에서 일어난 것은 확인됐다. 경찰에 사실 확인을 거쳐 사건의 조각을 맞췄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첫 보도를 냈다.

‘무차별 폭행’이 ‘돌려차기 사건’이 되기까지
‘돌려차기 사건’의 첫 이름은 ‘서면 무차별 폭행 사건’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지는 폭행 사건 속에서, 이 사건도 곧 묻혔다. ‘돌려차기 사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이다. 용의자 검거와 검찰 송치까지 보도한 뒤 여러 달이 지났다. 첫 재판. 검사는 사건 당시의 영상을 법정에서 틀었다. 가해 남성이 오피스텔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민지 씨의 뒤통수를 온 힘을 다해 발로 가격하는 순간이 법정의 양쪽 벽 가득 재생됐다. 검사가 무미건조하게 읽던 공소장의 ‘돌려차기’ 단어가 민지 씨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가해자의 돌려차기 영상으로 재현되자, 법정 안의 모든 사람이 숨을 죽였다.
민지 씨는 그 법정에 있었다. 모든 장면을 똑똑히 보았다. 본인이 무방비로 폭행당하는 영상을 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사건 당사자인 민지 씨도 처음 보는 영상이었다. 돌이켜보니 이때 민지 씨는 결심했던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본인 사건이 숱한 ‘무차별 폭행’ 사건 중 하나로 묻힐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민지 씨도 경찰과 검찰에게 말로만 들었던 ‘폭행’이 이런 모양인 줄은 몰랐다.
이후 민지 씨는 전사가 됐다. 전면에 나섰다. 민사소송을 걸어 본인 사건의 자료를 받아냈다. 그 자료를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언론에 내보냈다. 당사자인 본인도 모르던 사건 전말이 전국에 알려졌다. 서면 무차별 폭행 사건은 ‘돌려차기 사건’이 됐다.
제3자가 된 피해자
무지한 피해자에서 소외된 피해자 처지를 성토하는 전사가 되기까지, 민지 씨의 1년을 함께 했다. 사건 발굴은 경찰팀이 했지만 이후 열린 민지 씨의 모든 재판에 법조팀 기자가 참석했다. 서면에서 일어난 무차별 폭행 사건이 전국적 공분을 사는 돌려차기 사건이 되기까지, 민지 씨의 고군분투를 취재팀이 목격했다.
취재팀은 민지 씨의 이야기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사건의 자극적인 영상에 전국적으로 주목이 쏠렸지만, 취재팀은 민지 씨의 1년간의 고군분투를 담아내려 했다. 민지 씨가 겪은 지난 1년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제2의 민지 씨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기획 논의를 하던 중, 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또 다른 무차별 폭행 사건이 벌어졌다. 동구의 한 노래주점에서 점주에게 가해진 이유 없는 폭행이었다. 사회부 경찰팀 기자가 투입됐다. 즉시 피해자의 가족과 접촉했다. 역시 이번 사건의 피해자도 민지 씨와 같은 절차를 밟고 있었다. 피해자 김연정(가명·66) 씨는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피해자 가족은 가해자 측 전화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이번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쪽은 피해자였고, 보복 범죄를 두려워하는 것도 피해자였다.
동구 초량동 무차별 폭행까지 더해지면서 기획의 방향은 확고해졌다. 법조팀과 경찰팀 기자, 기획취재부 기자 셋이 모여 취재팀을 꾸렸다. 기획 제목은 <제3자가 된 피해자>. 자극적인 피해 사건 내용에 집중하던 그간 관행을 넘어, 그 속에서 정작 밀려나 있던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피해자, 제3자에서 ‘당사자’로 나아가기
기사의 구현 방식도 피해자를 중점에 두었다. 제3자가 된 피해자 이야기를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로 표현하고자 했다. 지난 1년, 민지 씨가 사건 직후 겪은 일을 연대기로 정리했다. 사건, 방치, 배제, 노출, 불안. 크게 5가지 키워드로 지난 1년을 분류했다.
동구 초량동 폭행 사건의 피해자 연정 씨도 민지 씨가 거쳐온 절차를 밟아가고 있었다. 사건, 위협, 방치. 취재팀은 피해자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가장 잘 드러낼 방법을 머리 맞대 고민했다. 통상 사건 기사는 가해 사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건을 말하는 목소리는 자주 가해자로 변질된다. <제3자가 된 피해자> 기획에서 취재팀은 기사의 화자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기사의 중심이 어디에 와있는지 자주 확인했다.
2023년 5월 3일 부산일보 1면과 3면, 2개 면을 시작으로 3일에 걸쳐 <제3자가 된 피해자> 상·중·하편이 보도됐다. 보도 이후 반응이 뒤따랐다. 김도읍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형사소송법 제259조의 문제점을 짚고 이를 해결하는 법률 개정안 발의에 나섰다. 현행법은 피해자가 직접 수사기관에 신청할 때만 제한적인 사항을 통지한다. 이마저도 경찰이 아닌 검사가 공판의 일시와 장소, 재판 결과 등을 통지하는 것으로 사건의 실체와는 거리가 멀다. 민지 씨가 사건 이후, 사건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이유다.
개정된 법안에 따르면 검사는 물론 경찰도 범죄 피해자에게 수사 진행 상황과 사건 처분 결과, 형 집행에 관한 사실 등 사건 관련 핵심 사안을 의무적으로 통지하도록 한다. 민지 씨는 사건 정보를 알기 위해 민사소송을 감수했다. 더는 피해자가 애쓰지 않아도 본인 사건 관련 정보를 알 수 있도록 피해자의 알 권리를 법안이 보장해 주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도 나서 신상 공개 범위를 아동 성범죄자, 여성 상대 묻지마 폭력 가해자 등으로 넓히는 특별법을 발의했다. ‘피의자’로 한정된 신상정보 공개 대상을 ‘기소 이후 피고인’으로 확대하고, 수사기관이 범죄자의 현재 얼굴을 촬영할 수 있도록 이른바 ‘머그샷’에 대한 근거 규정도 마련하기로 했다.
대검찰청 역시 자체적으로 피해자의 재판 절차 진술권을 보장하기 위한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제3자’가 아니라 ‘주인공’으로서 적극적으로 형사 절차에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부산시도 조례 개정에 나섰다. ‘부산시 범죄피해자 보호 및 지원 조례 개정안’은 범죄 이후 무너진 피해자의 일상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확대하고 이를 조례에 명시했다.
사건 1년 만에 돌려차기 사건의 공소장은 변경됐다. 검찰은 살인미수에서 강간살인미수로 혐의를 변경했다. 지난달 가해자는 항소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주목받지 못한 피해자들을 위하여
보도 이후 범죄 피해자들의 제보가 이어졌다. 그중 한 피해자가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교제했던 남성이 흉기로 피해자를 위협한 사건이었다. 사건의 피해자는 약속을 잡았다가 미뤘고, 다시 약속을 잡았다가 결국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그도 민지 씨와 연정 씨처럼 사건 당사자임에도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보복 범죄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증언에는 실패했다. 가해자와 일면식이 있는 만큼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컸고, 사건이 발생한 그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돌려차기 사건은 이례적이다. 피해자가 전면에 나섰고, 재판부는 언론의 주목이 쏠린 이후 사건 1년 만에 DNA 재감정을 진행했다. 공소장이 바뀌었다. 1심에서 가해자에게 선고된 양형 12년은 항소심에서 20년으로 늘어났다.
돌려차기 사건으로 피해자의 소외된 처지가 주목받고 개정법안이 발의됐지만, 범죄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여전히 제3자다. 돌려차기 사건은 이례적으로 피해자의 처지가 주목받은 사건일 뿐이다. 공소장이 바뀐 항소심 법정에서 민지 씨는 사건 이후 처음으로 오열했다. “피해자가 전면에 나서야만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거냐”고 그는 물었다.
아직 피해자가 당사자로 법정에 서기까지 갈 길이 멀다. ‘돌려차기 사건’과 같은 이름이 붙지 못한 수많은 ‘무차별 폭행’ 사건의 피해자들도 당사자로 법정에 설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주목받지 못한 범죄 피해자들이 세간의 주목 없이도 사건이 일어나기 전 있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 계기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후속 보도로 피해자의 ‘지금’을 계속 추적해 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