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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데믹 이후 세계 곳곳에서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마을형 관광지 주민들도 큰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11개 관광지 거주민이 겪는 고통을 입체적으로 보여준 한국일보의 심층 취재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취재하다 보면 눈과 귀를 의심하게 되는 때가 더러 있습니다. 상식을 벗어난 일이 벌어져야 뉴스가 된다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면 ‘내가 잘못 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예컨대 국내 프로야구 투수가 던진 공의 속도가 스피드건에 170km/h로 찍힌다면? 장비 이상부터 의심해 보는 게 당연할 겁니다(현재까지 한국 투수 최고구속은 160km 정도입니다).
폭염특보가 내려졌던 7월 28일 밤 11시 55분, 저는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취재 현장에 서 있었습니다. 요즘 전국에서 가장 핫하다는 ‘양리단길(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주변 주민의 소음 피해를 알아보던 차였죠. 최동숙(86) 할머니의 집 앞마당에서 전문가용 소음계로 소음을 측정해 보니 88데시벨(㏈)이 찍힌 겁니다. 지하철 내부나 철로 변에서 들리는 소음 크기(80㏈)와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집은 야외에 테이블을 깔고 장사하는 포차형 주점 사이에 있었습니다. 대형 앰프는 쉴 새 없이 저음 비트를 뿜어냈죠. 할머니는 “금요일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푸념했습니다. 추정컨대 소음이 가장 심한 토요일 밤에는 90㏈을 넘을 듯했습니다. 이 정도면 시끄러운 공장 속 소음과 비슷한 수준이죠. 아파트 층간 소음 기준치가 34㏈(야간 기준) 이상인 것과 비교하면 할머니가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여름밤을 버티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먼 나라 얘기 아닌 오버투어리즘 피해
최 할머니는 저희 팀(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이 우연히 발견한 ‘오버투어리즘(너무 많은 관광객이 마을에 몰려와 주민 삶을 침범하는 것)’의 피해자였습니다. 어쩌다 핫플레이스(뜨는 지역)가 된 유명 마을형 관광지 주민들은 소음, 쓰레기 투기, 사생활 침해 등의 피해를 일상적으로 겪게 되죠. 엔데믹(코로나19의 풍토병화) 이후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일본 교토, 이탈리아 베니스 등 해외 유명 관광지 주민들이 오버투어리즘 피해를 본다는 외신 보도가 많았는데 우리 곁에도 피해자들이 있었던 겁니다.
사실 저희 취재는 사소한 제보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 사는 한 주민은 지난 7월 초 한국일보 기자들을 만나 “지난봄부터 마을에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와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시끄럽다”며 하소연했습니다. 사실 북촌은 코로나19 팬데믹 전에도 오버투어리즘 탓에 홍역을 앓았던 곳이죠. 제보자는 팬데믹 때인 2021년 마을의 고즈넉함에 반해 북촌으로 이사 왔다고 했는데요. 엔데믹 이후 완전히 다른 동네가 됐다는 겁니다.
사연을 들은 저희 팀의 첫 번째 고민은 ‘이 문제가 과연 심층 기획 아이템이 될 수 있을까’였습니다. 오버투어리즘이 생소한 개념인 데다 얼마나 많은 시민이 이 문제를 겪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관광이라는 주제는 주로 레저 기사로 다뤄져 왔기에 고발성 심층 보도의 아이템으로 삼기에는 덜 딱딱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했습니다. 엑설런스랩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심층기획부 구성 이후 첫 작품인데 다소 한가한 주제로 비칠까 걱정됐던 겁니다.
일단 현장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북촌 한옥마을을 일주일 동안 매일 찾아 낮과 밤을 관찰했습니다. 제보 내용 그대로였습니다. 관광객들은 이른 아침부터 북촌 골목을 찾았고, 들뜬 듯 떠들며 주민이 사는 집의 초인종을 누르는 포즈 등을 취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현장에서 마을 주민 다수를 인터뷰해 보니 이미 북촌 한옥의 상당수는 빈집 상태였습니다. 관광지가 되면서 정주 여건이 크게 악화돼 많은 주민이 이미 ‘탈출’한 것입니다. 현장에 오기 전 반신반의했던 취재팀의 마음은 확신으로 변했습니다. 때마침 유커(游客, 중국 단체관광객)가 6년여 만에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팬데믹 이후 한국 관광이 새판 짜기에 들어간 터라 과잉 관광에 따른 부작용을 지적하는 보도가 더 필요해 보였습니다.

취재 범위를 전국으로 넓히기로 했습니다. 마을형 관광지 주민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관광학자 등을 인터뷰해 보니 “오버투어리즘은 북촌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취재 지역 11곳을 정했습니다. 강원도 양양 양리단길, 전주 한옥마을, 부산 흰여울문화마을·감천문화마을, 인천 동화마을, 서울 북촌 한옥마을·서촌 세종마을·익선동 한옥거리·이화동 벽화마을, 경남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제주 우도 등이었습니다. 모두 관광지가 된 지 10년 이상 됐고, 한국관광공사 등이 ‘가볼 만한 관광지’로 소개하는 마을들이었습니다.
독자에게 직접 들려준 소음
주민 고통을 어떻게 독자들에게 전달할 것인가. 취재와 기사 작성 내내 가장 고민했던 대목입니다. 피해 주민들은 오버투어리즘의 피해를 두고 “직접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괴로움”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텍스트 기반 매체의 특성상 이를 온전히 보여주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방송 매체에 더 어울리는 아이템이었던 셈이죠. 그럼에도 독자에게 ‘힘들긴 하겠는데 견디기 어려울 정도일까’라는 의구심을 남기면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저희가 찾은 해법은 ‘다양한 방식의 보여주기’였습니다. 우선 텍스트 기사에는 전문가와 협업해 주민 피해를 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예컨대 북촌, 양리단길 주민들의 소음 피해는 소음 전문가인 류훈재 서울시립대 도시빅데이터융합학과 연구교수와 한 달간 협업해 분석했습니다. 전문가용 소음계(클래스1)를 활용해 소음을 측정한 뒤 이를 데시벨(㏈) A값으로 변환해 독자들에게 보여줬습니다. ㏈ A는 주변 사람이 소음을 실제 얼마나 크게 느끼는지 고려해 보정한 수치입니다. 체감 기온과 비슷한 개념이죠. 주민들이 체감하는 소음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 정확히 알리려는 노력이었습니다.
또 취재 내용을 텍스트 기사의 틀 안에만 가두지 않았습니다. 인터랙티브와 영상 등 독자가 최대한 몰입할 수 있는 다양한 형식으로 콘텐츠를 제작했습니다. 특히 인터랙티브 콘텐츠 <관광의 역습, 참을 수 없는 고통, 소음>1)은 대표적 관광 공해인 소음에 초점을 맞춰 제작했습니다. 독자(시청자)가 양리단길과 북촌 한옥마을 등 관광지의 소음을 직접 듣고 그 심각함을 체감할 수 있도록 구성했죠.

영상도 공들여 제작했습니다. 양양의 오버투어리즘 현상과 이에 따른 소음 등 관광 공해 문제를 다룬 <나는 양리단길에 삽니다―오버투어리즘: 당신이 망가뜨린 일상>2) 영상입니다. 15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콘텐츠를 인스타그램 숏폼 영상으로도 제작했는데, 200만 뷰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댓글 등을 통해 양양을 자주 찾는 젊은층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가장 반가운 반응이었습니다. 취재기자·사진기자·영상 PD·인터랙티브 기획자·데이터 분석가 등 모두 14명의 사내 인력이 협업한 결과였습니다.
발품 팔이 저널리즘으로 다양한 견해 담아
취재팀이 또 하나 신경 썼던 건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너무 단순화해 ‘납작하게’ 보여주지 말자는 점이었습니다.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 편향된 기사를 쓰지 않으려고 현장 등에서 121명의 취재원을 만나 현상과 대안에 대한 다각적인 견해를 들었습니다. 표피적 취재에 그치지 않기 위해 한 마을당 최소 사흘은 머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죠. 그렇게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 관광객 증가 탓에 삶이 불편해져 주민들이 마을 밖으로 내몰리는 현상)과 관광 공해 등을 꼼꼼히 기록했고, 마을 주민이나 상인 등과 라포(신뢰 관계)를 쌓아 속마음을 들었습니다.
양양을 취재할 때 한 지역 활동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강원도는 그동안 개발에서 소외됐다는 정서가 강하다. 중앙 정치인들이 경관 보호, 자연 보전을 얘기했을 뿐 강원도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는 인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개발 속도전 속에서 생각이 복잡했을 지역 주민들의 마음이 한편으로 이해됐습니다.
정책의 공백이나 공무원들의 무관심이 오버투어리즘을 부추기는 측면이 없는지도 살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건어물 한 봉지 6배 폭리 “관광객엔 그렇게 팔지 않나요”> 기사에 잘 담겼습니다. 송주용 기자가 북촌에서 만난 베트남 단체 관광객 30명을 4박 5일간 추적한 내용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취재 결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라졌다고 믿는 ‘저가 덤핑 관광’이 여전히 판치고 있었습니다. 일부 여행사들은 이윤이 남지 않는 싼값에 관광 상품을 팔고는 일단 관광객이 한국 땅을 밟으면 관광지의 문화·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는 등 내실을 기하는 대신 물건 팔기에만 골몰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사전 설명을 듣지 못해 본의 아니게 마을형 관광지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들도 피해자였던 셈이죠.
외국인 여행객들은 한국의 마을형 관광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저희는 데이터를 이용해 그들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세계 최대 여행 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에 2015년 이후 외국인이 국내 마을형 관광지 6곳에 대해 올린 불만 후기(평점 3점 이하) 997개를 분석했죠. 박서영 데이터 분석가가 프로그래밍 언어인 파이썬으로 댓글을 크롤링(긁어모으기)한 뒤 이를 분석해 빈출 단어를 파악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예컨대 후기에는 ‘사진’이라는 단어가 367회나 등장했는데 부정적인 맥락으로도 많이 쓰였습니다. 국내 마을형 관광지는 이른바 인스타 감성의 사진을 찍기엔 좋지만 기대했던 ‘로컬 감성’을 느끼기는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일부 외국인들은 소음 피해를 겪는 주민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저희는 단순히 현상을 보여준 것에서 보도를 끝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관광의 종말을 선언한 덴마크 코펜하겐과 심각한 오버투어리즘 피해를 겪는 일본 교토 등을 현장 취재한 것도 대안을 찾기 위해서였죠. 코펜하겐에서는 관광객 수를 늘리는 데 신경 쓰기보다는 한 번 방문한 여행객이 이 도시를 사랑하게 만들어 또 찾게 하는 전략을 쓰고 있었는데요. 여전히 관광객 수 늘리기에 골몰하는 우리 당국에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정책 중심엔 숫자 대신 사람이 있어야
보도 이후 현실이 바뀔 가능성이 감지됐습니다. 서울 종로구와 부산 사하구 등의 지방자치단체장이 주민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을 약속했기 때문이죠. 서울시도 덤핑 관광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호응한 것은 아닙니다. 저희 기사에서 다뤘던 한 지역의 군수는 “자본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군수가 (오버투어리즘에 따른 여러 문제에)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위법하면 대처는 할 것”이라면서 “이런 문제의 대안을 군수가 어떻게 얘기할 수 있겠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모든 정책의 중심에는 사람이 서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관광 정책의 중심에는 여전히 숫자가 서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지역을 찾았는지 등을 내세워 지방자치단체장은 본인 홍보를 하죠. 그사이 적지 않은 주민이 견디기 어려운 피해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서는 “지자체장이 이 동네(마을형 관광지)에 와서 살아보라”는 아우성이 나오기도 하죠. 시리즈 연재는 끝났지만, 취재팀이 계속 이 문제를 취재해야 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