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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으로 시도 때도 없이 치매 실종 경보 문자가 날아든다. 하루 평균 40명에 가까운 치매 노인이 거리를 헤매고 있지만, 이에 관심 두는 이는 드물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기자들은 치매 환자 실종 문제를 다양한 방식의 콘텐츠로 제작했다. 언젠가 내 부모 그리고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치매 실종 문제에 다가가 본다. 편집자 주
“서대문구에서 실종된 이○○씨(여, 91세)를 찾습니다. 147㎝, 40㎏, 회색 계열 긴 팔 외투, 꽃무늬 바지, 분홍색 단화”
지난 7월 11일 기획 아이템을 고민 중이던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기자들 휴대폰에 실종 경보 문자가 일제히 울렸습니다. 폭우에 대비하라는 재난 문자도 곧바로 이어졌습니다. 이날 서울 강수량은 58.3㎜. 일부 지역에는 극한호우 긴급재난문자가 처음 발송됐을 만큼 비가 많이 쏟아진 날입니다. 작은 체구의 91세 어르신은 세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길거리를 배회했습니다. 한여름 더위를 식히는 폭우가 무색하게, 어르신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마음은 타들어 갔을 겁니다.
오늘도 당신의 휴대폰에선 치매 노인을 찾는 실종 경보 문자가 울렸을지 모릅니다. 이토록 많은 어르신들은 어쩌다 길을 잃게 된 걸까. 가족 품으로 무사히 돌아갔을까. 대한민국 치매 실종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한국일보의 <미씽, 사라진 당신을 찾아서> 기획1)은, 평소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실종 문자에서 시작됐습니다.
괜한 걱정은 아녔습니다. 치매 노인 실종 신고는 2013년 7,983건에서 지난해 1만 4,527건으로 10년 만에 두 배나 증가했습니다. 하루 평균 39.8명의 치매 노인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지난 7년간 길거리를 배회하다 숨진 치매 노인도 761명에 달합니다. 그날 실종 경보 문자로 애타게 찾았던 분홍색 단화 차림의 어르신은 다행히 가족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길을 잃고 헤매는 실종 치매 노인이 안전하게 가족 품으로 돌아가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내년이면 치매 인구 100만 명. 현재의 고령화 속도를 고려하면 치매 실종 문제는 더는 남의 얘기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치매 실종 정책은 사각지대였습니다. 소관 업무가 경찰과 보건복지부에 걸쳐 있는 탓에 치매 실종에 대해 심도 있게 들여다보는 노력은 미흡했습니다. 언젠가 나의 부모, 나의 문제로 닥칠 수 있는 이슈지만 사회적 인식과 관심은 뒤따르지 못한 상황.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치매 실종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내러티브와 데이터, 영상, 인터랙티브 등 다양한 방식의 콘텐츠 제작을 시도했습니다.
다시 쓰는 실종 보고서
전국 4,461km를 누비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치매로 사랑하는 가족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애타는 마음을 텍스트와 영상으로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 심정에 공감한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은 치매 실종 이슈에 관심을 기울일 거라 확신했습니다.
그렇게 장기 실종된 치매 환자들의 가족을 찾아 나섰습니다. 우선 경찰청 안전드림 사이트에 올라온 정보를 토대로 실종된 치매 노인 54명(7월 22일 기준) 전수를 추렸습니다. 이곳에는 2005년부터 현재까지 장기 실종된 치매 환자들의 이름, 나이, 실종 장소, 인상착의 등의 정보가 기록돼 있습니다.
단서는 그게 전부였습니다. 남은 건 ‘맨땅에 헤딩’을 하는 일뿐이었습니다. 엑설런스랩 취재 기자 세 명은 지역별로 실종자들을 구분해 가족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실종자 가족의 인터뷰 의사를 17개 지방경찰청에 요청해 타진하는 방법과 실종 발생지(자택 추정)에 찾아가 가족을 만나는 방법입니다. 경찰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 후자를 택했습니다.
이를 위해 전국 팔도 어디든 다녔습니다. 총 이동 거리만 4,461km에 달합니다. 짧게는 2박 3일, 길게는 5박 6일 일정으로 △대구·경북 △부산·경남 △광주·전북·전남 △대전(충청권) △강원 △경기·인천·서울(수도권)로 권역을 나눠 해당 지역의 장기 실종자 가족을 접촉하고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인터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렵사리 만난 이들은 사라진 가족을 누구보다 찾고 싶어 하고, 기억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 간절함을 알기에 취재팀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경찰 담당자를 직접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가족들이 인터뷰에 응해줄 때까지 설득하고 기다리고 직접 찾아 나서는 데 상당 시간 공을 들였습니다.
허탕을 치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일례로 지난 3월 전남 완도에서 실종된 이정산(78) 어르신의 사연을 듣기 위해 본보 기자가 전남 완도까지 찾아 나섰지만, 아버지 실종 이후 아들 성윤(58) 씨는 아픔을 잊고자 고향을 떠나 서울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긴 설득 끝에 인터뷰는 결국 6일 뒤 서울에서 진행됐습니다.
최종적으로 실종자 가족과 지인 11명의 대면 인터뷰가 성사됐습니다. 엑설런스랩은 11명의 어르신이 안전하게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다시 쓰는 실종 보고서> 형식을 빌려 이들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현재 시점의 모습을 담은 실종 전단지를 만들어 치매 실종 어르신들을 찾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국내 최고 얼굴인식 전문가로 꼽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AI·로봇연구소 김익재 소장의 도움을 받아 과거에 머물러 있는 전단지 속 얼굴 사진을 3D 나이 변환 기술을 적용해 현재 시점으로 구현했습니다.
치매 노인 GPS 동선 최초 분석, 데이터의 힘
취재팀은 치매 어르신의 배회 특성 또한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일정한 배회 패턴이 있다면 치매 환자들이 실종됐을 때 수색 가이드라인의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취재팀이 주목한 건 SK하이닉스 사회공헌사업인 ‘행복 GPS’ 배회 감지기 사업이었습니다.
다만 개인정보보호법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경찰청도 행복 GPS 사업의 배회 감지기 이용자의 GPS 동선 분석을 시도하려 했지만, 개인정보보호법의 벽을 넘어서지는 못했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공법을 택해야 했습니다.
취재팀은 행복 GPS 사업관리 기관인 한국취약노인지원재단과 함께 배회 감지기 이용자 설문조사(452명)를 통해 위치 정보 제공 동의(324명)를 받았고, 그 가운데 GPS 데이터 보관 기간인 6개월 내 생활 발견(실종 후 배회 감지기로 이용자를 찾음) 사례가 있는 경우(77명)를 추려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배회 감지기 데이터를 관리하는 SK텔레콤 법무팀의 요청에 따라 이용자 77명을 대상으로 개인정보 제공 동의 의사를 재차 확인했고, SK텔레콤에서 제공하는 개인정보 동의 양식에 맞춰 다시 한 번 서면 동의를 얻었습니다.
이렇게 데이터 이용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만 8월 한 달이 소요됐고, 최종적으로 32명의 6개월치 GPS 동선(위도·경도값)을 확보했습니다. 치매 환자의 GPS 동선 분석은 국내·외 학계에서도 해보지 않았던 최초의 시도입니다. 선행 연구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분석은 류호경 한양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와 최호진 한양대 의과대학 신경과 교수(대한치매학회 정책이사)가 맡아줬습니다.
분석 결과는 흥미로우면서 한편으론 씁쓸했습니다. 치매 노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 부족이 이들의 배회에 결정적 영향을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녀와 함께 사는 치매 환자일수록 배회 확률은 낮았고 교차로가 많을수록 배회 확률은 커졌습니다. 외출이 잦을수록 배회할 확률이 낮아지는 역설적 결과도 확인했습니다. 억압된 환경보단 외출 욕구를 해소하는 게 배회를 줄일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취재팀은 배회 특성이 심한 초로기 치매(65세 이전에 발생한 치매) 환자인 아내를 돌보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식사와 수면 시간을 빼면 매일 15km씩 동네를 산책하는 미아동 부부의 사연도 전했습니다. 이를 통해 치매 환자 돌봄의 책임과 부담이 개인과 가정에 국한돼서는 안 되고, 사회적 돌봄 안전망 속에서 풀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했습니다.
치매여도 괜찮아! 치매 인식 개선
치매 노인이 왜 길을 자주 헤매고 자꾸 넘어지는지 그들이 마주하는 세상을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인터랙티브도 제작했습니다. 선진국에선 치매 환자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담은 영상이 치매 인식 개선 교육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영국 알츠하이머 협회 영상을 모티브 삼아 실제 치매 환자의 산책 코스를 따라가며 치매 환자 눈높이에서 영상을 촬영했고, 의료진 자문을 거쳐 치매 환자들이 겪는 시각적 장애 요인(갑자기 빛이 번쩍이거나, 길이 사라지거나, 주변이 흐려지는 등)을 효과로 넣었습니다. 독자들이 치매 환자 간접 체험을 통해 치매 환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도해 본 아이템이었습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이 치매 실종 문제를 해결할 궁극적 대안으로 제시한 건, ‘치매 친화 사회’ 구축이었습니다. 치매 환자라도 무조건 나가지 못하게 가두고 통제하는 방식은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치매 선진국(덴마크, 일본)의 돌봄 원칙에 공감한 결과입니다. 치매에 걸렸다 하더라도 일상을 포기하거나 멈출 필요가 없으며 치매 발병 이전·이후의 삶이 달라져야 할 이유가 없다는 치매 선진국의 철학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무엇보다 치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금기를 깨트리는 것이야말로 치매 실종 문제 해결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이에 취재팀은 치매에 걸렸지만 치매에 걸리기 전의 삶을 계속 이어가며 분투하고 있는 치매 환자 당사자들의 목소리도 ‘치매 커밍아웃’ 인터뷰 형식으로 직접 전했습니다.
특히 치매 실종 노인들의 안전한 귀가를 바라는 마음에서 치매 인식 개선 캠페인 #기억해챌린지를 시작했습니다. 치매 환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확산되려면 시민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엑설런스랩이 고안해 낸 챌린지의 핵심 동작인 무한대(∞)는 ‘당신의 기억은 사라질지 모르지만, 우리는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따뜻한 손길로 치매 노인을 돕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기억해챌린지에는 한덕수 국무총리,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기석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고임석 중앙치매센터장, 서경석 한국취약노인지원재단 이사장, 김현미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장, 김미경 은평구청장 등 정부 고위층과 정치인, 보건 당국 인사들을 비롯해 가수 김조한, 밴드 소란 보컬 고영배, 배우 허준호·전무송·전현아·윤종훈, 개그맨 서경석·김준호·김대희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동참하며 사회 캠페인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보도 이후 보건복지부는 치매 환자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고착해 온 치매라는 용어를 내년부터 바꾸겠다는 입장도 밝혔습니다. 정부가 치매 용어 변경 시기를 구체적으로 못 박은 건 처음입니다.
당신도 ‘꽃 같은 치매’에 걸릴 수 있다
기획 취재 전반에 걸쳐 자문과 도움을 주신 장기중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는 ‘꽃 같은 치매’에 걸렸다고 말하는 환자를 만난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욕을 하는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고 합니다. ‘치매도 꽃 같다’고 말할 만큼, 고통을 품어내는 삶의 방식, 주변을 유쾌하게 만들었던 삶의 여유가 녹아든 표현이었습니다. 병만 바라봤다면 지나치고 묻혔을 말. ‘질병 너머 사람을 바라보자’는 치매 선진국의 철학은 어쩌면 이런 작은 관심에서 시작됐을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습니다.
우리 모두 늙습니다. 치매는 누가 아니라 언제 걸리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치매 환자를 어떻게 대할지, 우리 사회가 더 열린 마음으로 고민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꽃 같은 치매는 당신도 걸릴 수 있으니까요.
<미씽, 사라진 당신을 찾아서>는 치매 실종이라는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존엄한 노후와 돌봄은 무엇인지를 묻는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치매 환자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따뜻한 시선을 회복하는 데 이 기획이 작은 디딤돌이 됐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