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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트렌드]사라져 가는 탐사보도
미디어 트렌드 | 등록일 : 2024-03-29

언론사 탐사보도부가 사라져 가고 있다. 소수 인원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거나 부서가 아예 없어진 경우도 많다. 경영진 입장에서 탐사보도부는 고비용 저효율 부서로 꼽힌다. 국내 언론사 탐사보도 조직의 현황과 한계, 존재 의미를 탐사보도 기자의 실제 경험담을 통해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사라져가는 탐사보도’를 주제로 글을 써달란 요청을 받고 잠깐 망설였다. ‘과연 내가 글을 쓸 자격이 있나?’하는 생각에서였다. 탐사보도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몇몇 기자들의 얼굴이 스쳤다. 그들과 비교해 내가 쓴 기사는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써볼게요’ 했던 건 일종의 책임감 때문이었다.

 

이 책임감은 내가 ‘KBS’ 기자란 사실에 기인한다. 외람될 수 있지만, KBS 탐사보도부는 한국 탐사보도의 현재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생각한다. 실력이 가장 뛰어나서가 아니다. 수신료 덕분에 ‘돈 걱정’을 가장 덜 할 수 있는 언론사이기 때문이다. KBS와 그 구성원이 탐사보도를 어떻게 여기는지를 보면, 돈 걱정을 더 할 수밖에 없는 일반 언론사에서의 탐사보도 위상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탐사보도에 가장 중요한 것, 시간

 

나는 KBS 탐사보도부원으로, 2021부터 2023년까지 2년간 일했다. [표]는 그 결과물이다. 능력 부족 등으로 중간에 취재를 접은 적도 있었는데, 그 경우는 뺐다. 

 

2021년 6월에는 네이버와 다음카카오의 검색 제휴 언론사 문제를 다뤘다. 심사위원별 채점표를 최초로 공개해, 검색 제휴 시스템의 문제를 고발했다. <코스닥 개미귀신> 1·2편은 코스닥을 무대로 주가조작과 횡령·배임을 일삼는 무자본 M&A 업자들에 대한 보도다. 코스닥 상장사 1,500여 곳을 6개 기준(잦은 최대 주주 변경, 전환사채 발행,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등)으로 일일이 분류해 무자본 M&A가 강력하게 의심되는 회사 104곳을 가려냈다. 또 이 문제 기업의 과거 10년 임원을 전수조사해, 이른바 ‘세력’이라는 이들의 명단을 추렸다. 이 보도는 이른바 JTBC가 최초 보도했던 ‘라덕연 사태’와 함께 주가조작 세력에 대한 엄단 및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여론 조성에 기여했다. 

 

빌라왕 보도의 경우 전체 언론사 중 유일하게 KBS가 빌라왕 배후 세력을 단독 인터뷰해, 수익원, 운영 원리 등 실체를 규명했고, SNA(Social Network Analysis) 분석 기법을 통해 ‘미래(잠재적) 빌라왕’의 명단을 뽑아낼 수 있었다. 명단은 경찰 수사 기초 자료로 활용돼 수사에 큰 도움을 줬다. 이 보도들로 이달의 기자상, 이달의 방송기자상, 방송기자클럽상 등 사내외에서 적지 않은 상을 받았다.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표에서 독자의 시선을 강탈한 포인트는 따로 있을 것이다. 바로, ‘취재 기간’이다. 

 

보도 중 가장 긴 기간인 6개월이 걸린 <코스닥 개미귀신> 1편은 KBS 시사 다큐 플랫폼인 <시사기획 창>(이하 <창>2))으로 방송됐는데, <창>팀 기자에게 기본적으로 3개월의 제작 기간이 주어진다는 점을 감안해도, 3개월이 더 ‘용납’됐던 건 내가 탐사보도부원이었기 때문이다. 기자 독자라면, 이런 말을 했을 법하다. ‘그 기간이면 나도 하겠다!’ 맞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많은 기자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원 줄고 조직 사라지는 탐사보도부  

 

시간. 탐사보도 2년의 결론은, 탐사보도의 핵심은 시간이란 사실이다. 탐사보도는 일반 기사보다 취재 범위가 더 넓고, 더 어렵다. 그래서 찾아내야 하는 팩트의양이 많다. 그 팩트들 가운데 ‘진실’로 불리는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려면, 데일리 보도의 수십 배가 넘는 팩트를 하나하나 검증해야만 한다. 그래서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것만 남겨야 한다. 그 남은 것들을 잘 이어 붙인 뒤, 보도 이후 초래될 다양한 경우의 수까지 미리 따져보고 보도 수위를 조정하는 등의 전략적 판단을 할 시간도 필요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공부도 해야 하고, 사람도 많이 만나야 한다. 시간이 없으면 제대로 해낼 수 없다. 

 

이 때문에 KBS 탐사보도부의 경우 위에서 내려오는 이른바 ‘오더(order)성 아이템’으로부터 부서원들을 잘 지켜내는 게 부장과 팀장의 역할로 받아들여졌다. 취재기자들이 고민할 시간, 끝까지 취재할 시간을 제대로 확보해 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탐사보도만큼 고비용 저효율의 취재 방식이 또 있을까? 6개월에 <코스닥 개미귀신> 1편 vs. 6개월에 당장 조회 수 ‘떡상’하는(그래서 고수익으로 직결되는) 포털 기사나 유튜브 영상 100개. 경영진에게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경영진의 답은 비교적 명확하다. 또 기자의 일이란 게 그 성과를 지표화하기 난망한 지점이 있지만, 난망하기로 치자면 탐사보도부가 최고다. 탐사보도는 ‘누군가가 감추고자 하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직접 조사해 폭로하고 이를 통해 사회 개혁을 추진하는 저널리즘 행위’로 주로 정의되지만, 언론사 경영진 입장에선 ‘돈은 드는데 성과는 안 나오는 저널리즘 행위’쯤으로 요약된다. 

 

조직 논리 앞에서도 탐사보도부는 불리하다. 탐사보도부의 장기 취재는 꼭 필요하단 말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선 탐사보도에 대한 보도국 수뇌부의 강한 지향이나 의지가 있어야만 한다. ‘탐사보도 강화’를 단지 취임 일성으로 쓰고 버리지 않는, 실천적인 의지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한 명이 충원되지 않으면 출입처가 빈다’라는 데일리 취재 부서의 말에 흔들리기 일쑤다. 이런 이유로, 기존에 KBS 탐사보도부는 부장, 팀장, 데이터 분석가를 포함해 총인원이 12~13명을 헤아렸지만, 2021년 상반기엔 평기자 6명 규모로 줄었고 지금은 평기자 4명에 불과한 초미니 부서가 됐다.

 

 다른 방송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YTN 기획탐사취재팀의 경우 평기자가 많을 땐 4명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두 개 팀으로 쪼개져 두 달에 한 번씩 시사다큐 <탐사보고서 기록>을 제작하고 있다. 1·2팀 두 팀이 있고, 팀당 5~6명이 있지만, 각 팀당 기자는 촬영기자 단 한 명에 불과하다. 기획탐사취재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YTN 기자는 “그래도 장기 취재가 가능한 부서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MBC는 탐사보도를 할 수 있는 부서가 없어졌다. 원래 2018년 무렵 생긴 평기자 4명 규모의 기획탐사취재팀이 있었는데, 1년 전쯤 없어졌다. 한두 곳 정도의 탐사보도 전문 매체를 빼면, 다른 언론사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176 빌라왕 네트워크> 디지털 기사 중 ⓒKBS

 

 

기피 부서에서 살아남기

 

앞으론 어떻게 될까? 탐사보도에 대한 기자들의 지향 자체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반복되는 데일리 취재의 한계에 이미 많은 기자가 공감하고 있고, 또 누구나 한 번쯤은 데일리에서 벗어난 취재, 진짜 취재 같은 취재를 꿈꾸는데 이런 이상적 취재는 현재로선 탐사보도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나올 때까지 파고, 동료들과 손잡고 파고, 우리 사회가 바뀔 때까지 계속 파는, 근성 있는 취재!  물론, 지향과 행동이 늘 같을 순 없고,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 사실이 현재 탐사보도부를 지금의 처지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탐사보도를 많은 기자가 원하고 꿈꾸는 게 사실이라면, 내가 탐사보도부로 발령받았던 2021년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당시 경제부나 산업부, 정치부의 경쟁률은 2대1, 3대1을 헤아렸던 반면, 탐사보도부는 미달이었다. 내게도 탐사보도부는 2지망이었다. 그때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내가 가기 전에도, 떠난 후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KBS에서 탐사보도부는 기피 부서다. 선거로 치면 낮은 득표율과 높은 패배 가능성의 ‘험지’. 따로 팀이 구성되지 않는 이상, 혼자 아이템을 발굴해야 하고, 온갖 난관도 주로 혼자 돌파해야 한다. 책임이 크다. 팀장, 부장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힘이 되어주기는 하지만, 아이템을 계속 끌고 갈지 말지 등을 포함해 크고 작은 결정은 내 몫이다. 마치 ‘단독자’ 같다. ‘우리는 매일 고생하는데 너는 왜 노는 것 같지?’라고 물어보는 듯한 동료들의 시선은 덤이다.  

 

많은 결정과 시선이 무겁게 느껴질수록, 뭔가 엄청난 걸 취재해야 한단 강박도 커진다. 내가 딱 그랬다. 부담이 너무 컸다. 선배들이 흔히 얘기하듯, “힘센 누군가 내가 쓴 기사를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쥐고 있던 숟가락을 놓을 정도”의 기사를 발굴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발령 후 한 달이 지나서도 찾지 못했다. 내가 바보 같았다. 타사 선배와 부서 얘기를 하던 중 갑자기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불안정했다.

 

 

KBS 탐사보도부 사무실 ⓒKBS

 

 

당장의 비효율보다는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선택

 

늪 같던 상황은 ‘나’와 ‘탐사보도’의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하면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처음부터 뭔가 대단한 걸 하려는 욕심을 버렸다. 탐사보도를 완성형이라기보다 진행형으로 보기 시작했다. ‘탐사보도를 탐사한단 맘으로 뭐라도 하다 보면 뭔가는 하겠지!’란 마음으로 취재 현장에 우선 던져놨다. 그랬더니 중압감이나 다른 기자들의 시선보단 ‘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 잘 헤쳐 나가면,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수 있겠단 기대도 생겼다.  

 

탐사보도부 2년 후…. 나는 ‘새로운 국면’에서 일하고 있을까? 좀 달라진 게 있다. 우선 <코스닥 개미귀신> 시리즈와 <176 빌라왕 네트워크> 보도를 통해 자본시장 및 부동산 분야에서 탐사보도 수요가 크단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사회 전체 판을 흔들진 못했더라도, 내가 취재했던 분야에서는 분명 울림이 컸다. 이 대목은 기존 정치 분야로 다소 국한돼 온 탐사보도의 서사를 더 다양한 분야에 걸쳐 풍성하게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는 점과 맥이 닿는다. 또 어떤 취재든, 시간만 있다면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내 몫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뭣보다, 기자로서 내겐 어떤 꿈이 생겼다. 요약하자면 탐사보도부에서의 생활은 기자로서 일종의 재교육의 시간, 다시 꿈꿀 수 있게 한 시간이었다. 

 

탐사보도도, 훌륭한 탐사보도 기자가 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실패담으로 보여도 시간만 있다면 성공담의 일부로 바꿀 수 있고, 탐사보도가 딱 그렇다. 회사 경영진에겐 ‘당장의 비효율’로 보일지 몰라도, 한 조직의 역량은 곧 구성원들의 꿈의 크기와 비례한단 점을 놓고 생각해 보자면, 탐사보도부에서의 시간은 회사 전체의 맨파워를 키우고 축적해 가는 과정 중 일부라고 할 수 있다. 탐사보도 부서 경험이 있는 타사 동료들의 생각도 비슷할 것 같다. 당장의 효율 vs.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 언론사들은 뭘 선택할까? 누군가 내게 “그래서 당신은 탐사보도를 했나요?”라고 묻는다면, “그 과정에 있습니다.”라고 답하고 싶다. 이 답이 맞을지도, 또 언론사의 선택이 무엇이 될지도 결국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1) KBS 1TV에서 매주 화요일 밤 10시 방송되는 시사다큐 플랫폼 

2) KBS <시사기획 창>은 보도본부 시사제작2부 기자들이 만든다. 시사제작2부와 탐사보도부는 다른 부서이며, 탐사보도부 기자들은 아이템 취재 내용 및 결과에 따라 <뉴스9>나 <시사기획 창>을 통해 취재 결과를 방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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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송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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