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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트렌드]AI가 가져올 미디어 생태계 변화
미디어 트렌드 | 등록일 : 2024-04-26

챗GPT를 만든 오픈AI가 지난 2월 15일 사람들을 또 한번 놀라게 했다. 한 여성이 도쿄의 밤거리를 걷는 영상은 사람이 직접 촬영한 것이 아닌 AI가 만든 것이었지만, 완성도가 매우 높았다. 문장을 입력하면 그에 맞는 영상을 만들어 주는 소라. 이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과 소라가 가져올 미디어 생태계 변화를 전망해 본다. 편집자 주

 

지난 2월, 영상 하나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한 여성이 비에 젖은 밤거리를 걷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이 영상이 화제가 된 이유는 내용이 아닌 제작 과정 때문이다. 실제 현실 풍경을 카메라로 담은 게 아니라, 사람이 입력한 텍스트에 맞춰 AI가 생성해 낸 것이다. 챗GPT로 유명한 오픈AI가 개발한 소라(Sora) 이야기다.

 

 

오픈AI가 소라와 함께 공개한 영상 ⓒ오픈AI

 

 

소라는 텍스트를 입력하면 그에 맞춰 영상을 생성해 주는 텍스트 투 비디오(TTV, Text-to-Video) 모델이다. 유사한 영상 생성 AI 자체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소라가 놀라운 건 완성도가 눈에 띄게 높다는 점이다.

 

오픈AI는 소라가 프롬프트를 이해하는 걸 넘어 물리적 세계에서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이해한다고 말한다. 오픈AI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이 설명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가령 지하철 객차 창문 밖으로 비친 풍경을 보여주는 영상에서는 어렴풋이 반사되던 객차 내부 풍경이 어두운 구간을 지나는 순간에는 선명해진다. 빛이 유리를 통과하고, 반사되는 물리적 법칙이 영상 속에 위화감 없이 재현된 것이다. 

 

 

소라가 제작한 영상. 지하철 창문이 건물의 그늘진 부분을 통과하자 반사된 객실 내부가 선명히 비친다. ⓒ오픈AI

 

 

물론 소라가 완벽한 건 아니다. 공개된 영상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근법에 맞지 않는 장면, 물리적으로 인과관계가 맞지 않는 장면 등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오픈AI도 이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기존 기술과의 완성도 격차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소라가 앞으로 영상 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해 보인다.


소라의 등장으로 출렁이는 영상업계

 

영상 업계 종사자들 또한 긴장과 흥분, 공포가 뒤섞인 감정으로 소라를 바라보고 있다. 가장 극적인 반응을 보인 인물은 미국의 배우 겸 영화 제작자인 타일러 페리(Tyler Perry)다. 타일러 페리는 8억 달러(약 1조 1,000억 원)를 투자해 스튜디오를 확장하려던 계획을 오픈AI의 소라 발표를 본 직후 보류했다. 촬영을 위해 다른 장소로 이동할 필요도, 세트를 지을 필요도 없이 그저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로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투자 의지를 잃은 것이다.

 

타일러 페리는 미국 영화 전문 매체 할리우드리포터(The Hollywood Reporter)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소라가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시연을 보기 전까지는 이게 무얼 할 수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부터 현장 스태프까지 모든 업계 사람이 소라와 같은 AI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한다.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들이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기꺼이 AI를 활용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일자리도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 테크 전문 매체 기즈모도(Gizmodo)는 “소라는 챗GPT와 AI 이미지 생성기가 편집 및 디자인 세계에 충격을 준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 산업에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며 “영상 제작자의 직업 안정성 측면에서 놀라우면서도 두려운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당장은 소라가 영화나 드라마 제작 과정에 도입되더라도 그 영역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여러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직 소라로는 대사에 맞는 입 모양 묘사가 필요한 대화 장면을 만들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자 묘사도 부정확해 엉터리 문자나 철자가 틀린 표현이 배경 속 간판에 등장하기도 한다. 소라를 일부 인서트 샷이나 사전 작업, 후반 작업에서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 상업 영화의 푸티지(footage, 장면) 전체를 소라로 만드는 건 아직은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단편 영화 독립 영화·뮤직비디오·스톡 영상·광고 업계는 연내로 예정된 소라 공식 출시 직후부터 큰 파도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오픈AI로부터 소라 사용권을 미리 받은 영상 제작자, 예술가, 단편 영화감독 등은 이미 인상적인 작품과 활용 방안을 내놓고 있다. 소라로 단편 영화나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것은 물론, 아이디어나 콘셉트를 미리 시각화하는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다.


업계 탑만 살아남는다…

AI가 가져올 일자리 양극화

 

브랜드 홍보 콘텐츠를 만드는 오라르 스튜디오(Orarr Studio)는 수중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키는 옷을 입고 있는 남녀의 모습을 영상으로 구현했다. 오라르 스튜디오 창립자 조세핀 밀러(Josephine Miller)는 “소라는 수년 동안 가지고 있었지만, 이전에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던 아이디어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고 말했다.

 

독립 영화 제작자, 소규모 제작사 등은 소라 덕분에 이전에는 예산 한계로 엄두도 못 냈던 장면들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 소라로 <황금 레코드(Gold Record)>라는 단편을 제작한 영화감독 폴 트릴로(Paul Trillo)는 “소라와 함께 일하면서 영상 제작자로서 처음으로 해방감을 느꼈다”면서 “시간, 돈, 다른 사람의 허락에 구애받지 않고 대담하면서도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실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향후 업계에서 소라를 활용하려는 시도는 점차 늘어나고, 그에 따라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일자리도 있겠지만, 그게 인간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라를 사용해 본 밴드 겸 영상 제작 집단인 샤이 키즈(Shy Kids)의 멤버 월터 우드먼(Walter Woodman)은 MIT 테크놀로지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소라는 어디까지나 강력한 도구일 뿐, 그걸 다루는 건 여전히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수용자의 선호도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산업화 후 기계로 만든 값싸고 질 좋은 공산품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수제품에 대한 선호가 남아있다. 비슷한 현상은 지금의 AI 혁명 시대에도 관찰된다. 이미지 생성 AI의 파도가 이미 들이닥친 웹툰 업계가 대표적이다.

 

웹툰 플랫폼과 작가들은 웹툰 제작에 AI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정작 독자들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AI 활용 사실이 드러나거나 그런 정황이 발견되기만 해도 작품에 별점 테러를 가하는 현상을 볼 수 있을 정도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영상 업계에서도 디지털 촬영 시대에 여전히 필름 촬영을 고집하고, CG 사용을 최소화하는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같은 감독은 여전히 대중과 평단의 지지를 받는다.

 

분명한 건 AI 활용이 보편화할수록 AI와의 차별성이나 작가성을 인정받을 정도로 이름을 알린 일부를 제외하면 업계에서 살아남기는 점차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AI에 의한 양극화 현상의 일면이다. 이미지 생성 AI가 침투한 일러스트 업계나, 기계 번역의 비중이 날로 높아지는 번역 업계에서는 이미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숙련·저숙련 일감을 AI가 쓸어가면서 소위 ‘업계 탑급’만 살아남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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