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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제작기]JTBC <딥 크리미널> 제작기
취재기 제작기 | 등록일 : 2024-07-26

단 한 편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본 적 없는 기자들이 일을 냈다. JTBC <딥 크리미널>은 경험 없는 제작진이 고작 2,000만 원의 제작비로 완성했지만 세계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생성형 AI가 불러올 어두운 미래를 다룬 <딥 크리미널>의 시작과 성과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선배 이거 혹시 미국 대형 방송사 <트루먼쇼> 같은 거 아닐까요?”

 

믿기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저희가 만든 다큐멘터리 <딥 크리미널>이 북미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제57회 휴스턴 국제영화제 TV 부문 대상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2024 뉴욕페스티벌 TV&필름 어워즈 다큐 부문 동상, 제45회 텔리상 TV 부문 동상도 수상했습니다. 앞서 지난해 말 국내에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생애 처음 만들어 본 실험적 다큐멘터리로 거둔 너무나도 큰 성과였습니다. 

 

 

파란색과 붉은색의 대립을 통해 생성형 AI의 양면성을 강조한 <딥 크리미널> 포스터 ⓒJTBC

 

 

<딥 크리미널>은 제목 그대로 생성형 AI가 불러올 어두운 미래를 담았습니다. 지난해 모바일팀 근무 당시 업무 특성상 생성형 AI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당시 챗GPT를 필두로 AI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뛰어난 기능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범죄자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AI를 사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면 쓸수록 우려는 커져만 갔습니다. 때마침 저희 팀에선 ‘저예산 다큐 콘텐츠 비즈니스’를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로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딱 맞는 아이템이었습니다. 

 

“유튜브 콘텐츠 만드는 기자들이 다큐를 만들겠다고?”


다큐를 만들겠다고 하자 다들 코웃음쳤습니다. 다큐 한 번 만들어 본 적 없는 기자들이 다큐를 만들겠다고 하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당시 예상했던 제작비는 최대 2,000만 원. 아무리 적게 써도 1억 원은 필요하다며 만류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대형 다큐 예고편 제작비 수준으로 어떻게 만드냐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회삿돈 절대 안 쓰고 외부에서 지원금 받아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지만, 뛰어난 후배들이 있었기에, 성공할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다큐 기획안을 작성할 때만 해도 생성형 AI로 인한 범죄는 드물었습니다. 후배들은 이 부분을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 속도면 반드시 세계 곳곳에서 문제가 나타나게 될 테니 미리 준비하자”고 설득했습니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준비했던 기획안은 다행히 한국언론진흥재단 취재 지원사업에 선정됐습니다. 본격적인 제작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실제 범죄 사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AI 기술의 중심지가 미국인 만큼 범죄 피해 역시 미국에 집중됐습니다. 보이스피싱이나 유명 작품 복제품 판매 등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때마침 미국 할리우드에서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이 AI 저작권 침해 등을 문제 삼으며 시위에 돌입했습니다.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선 범죄 피해자와 전문가들은 물론 시위 현장까지 단 한 번의 출장에 모두 촬영해야 했습니다. 인터뷰 일정을 맞추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제작진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진행 중인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의 시위현장을 직접 취재했다. 그들은 생성형 AI가 만들어 낸 것들의 이면에 인간의 창의성이 만들어 낸 작품들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JTBC

 

 

이선화·유요한 두 기자와 김동건 PD는 불과 일주일 정도의 미국 출장에 모든 걸 해냈습니다. 해외 출장에 필수로 여겨지는 코디(전문적으로 인터뷰 섭외를 도와주거나 운전 등 가이드 역할)나 통역사도 없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오직 범죄를 위해 만들어진 생성형 AI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챗GPT에게 악성코드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불가능하다면서 거부하지만, 이 툴은 순식간에 범죄 목적 악성코드를 만들어 줬습니다. 전문가들은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이면 누구나 쉽게 첨단 범죄를 저지를 수 있게 됐다”고 우려했습니다.


가수와 방송기자의 실험으로 시청자 눈길 사로잡아

 

다큐엔 실험이 핵심 장치로 등장합니다. 새로운 기술인 만큼 시청자에게 다가가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실험이 필요했습니다. 실험 대상은 가수와 방송국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목소리에 민감한 사람들이기에 이만한 실험 대상이 없었습니다. 가수들에게도 AI는 심각한 위협이기에 섭외가 걱정이었는데, 호기심 많은 가수 민경훈 씨가 흔쾌히 응해줬습니다. 제작진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민씨의 목소리를 학습시킨 ‘AI 민경훈’을 만든 다음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부르게 만들었습니다. 민씨는 “이거 제가 부른 노래 같은데요?”라며 놀라워했습니다. 

 

방송기자 등 방송국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난도를 높였습니다. 기자의 목소리를 AI로 만든 다음 기사를 읽게 했습니다. AI 오디오 2문장과 실제 기자 오디오 1문장을 들려주고, 실제 기자를 찾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참가자 9명 가운데 단 1명을 제외하고 모두 틀렸습니다. 한 방송기자는 “리포트 오디오가 아닌 일상생활 문장 찾기는 쉬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작진은 미리 준비한 평범한 일상의 AI 오디오도 들려줬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라면서 직업적 위기를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마블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칼라오티즈(KarlaOrtiz)가 자신이 그린 그림과 AI가 만들어낸 그림의 유사성을 설명하고 있다. 인터넷에선 AI가 만들어낸 그림들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다. ⓒJTBC

 

 

 

제작진이 만든 ‘AI 민경훈’이 부른 다른 가수의 노래를 듣고 놀라워 한 가수 민경훈씨 ⓒJTBC

 

 

마지막 관문은 다큐 후반 작업이었습니다. 편집, 디자인, 색 보정 등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드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때 김동건 PD와 천세원 디자이너가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김 PD는 모바일팀에서 사용하던 미러리스 카메라(시네마 카메라가 아닌 소니 A7S3 모델)만으로 로그 촬영에 이어 편집은 물론 세밀한 시네마톤 색 보정까지 혼자 해냈습니다. 천 디자이너는 디자인 영역 전체를 감각적인 동시에 직관적으로 풀어냈습니다. 특히 파란색과 붉은색의 대립을 통해 AI 미래의 양면성을 강조했습니다. 디자인 자체가 다큐의 핵심 메시지였던 셈입니다.

 

다큐가 방송된 지 어느덧 1년 가까이 됐습니다. 그사이 AI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전문가들은 AI가 인간을 초월하는 ‘특이점(singularity)’이 예상보다 더 빨리 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기자로서 고민이 커집니다. 기자는 모든 걸 의심합니다. 증거자료를 토대로 하나하나 검증합니다. 그 과정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과거엔 서류를 조작하고 가짜 도장을 찍는 수준이었다면, 이젠 모든 걸 실제보다 더 실제

처럼 조작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겁니다. 이미 해외에선 언론사에 AI 조작물을 악의적으로 보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디어 업계가 AI에 더 민감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딥 크리미널> 마지막 장면. 챗GPT에게 누군가 범죄를 목적으로 AI를 사용할 경우 AI가 자체적으로 막을 수 있는지 질문했다. 챗GPT는 “스스로 판단하거나 신고할 능력이 없다”며 “독자적인 도덕적 판단을 갖지 않는다”고 답했다. ⓒJTBC

 


취재력·추진력·판단력 갖춘 기자들의 무대 커질 것

 

여러 OTT에서 다큐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웬만한 드라마나 영화 제작비가 수십 억에서 수백 억 원인 상황에서 다큐는 구독자 이탈을 방지할 가성비 좋은 콘텐츠로 꼽힙니다. 하루하루 뉴스 리포트를 만드는 기자들은 그 누구보다 빠른 취재력, 추진력, 판단력을 갖고 있습니다. 미디어 업계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렇기에 기자들의 무대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모해 보였을 프로젝트를 흔쾌히 허락해 준 회사와 다큐 제작 경험이 없는 저희에게 선뜻 제작비를 내준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아가 기자들의 무모한 도전이 계속 이어질 수 있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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