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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신문은 창간 35주년을 맞아 거제 조선 산업의 명과 암을 재조명하는 기획 기사를 내보냈다. 지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영광만을 조명하지 않고, 조선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노동자의 희생을 다뤘다. 조선 산업의 역사를 재조명한 취재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거제는 조선(造船)의 섬이다. 고대에는 삼한과 일본의 주요 교역로로,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외침에 대비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수군이 주둔하면서 병선(兵船)을 만들었던 곳이다. 지금은 세계 조선업계 2위와 3위 기업을 보유한 조선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거제신문은 창간 35주년을 기념해 지역의 뿌리 산업인 조선업을 재조명하는 10부작 기획 <거제 조선 산업 50년 빛과 그림자>를 연재했다. 특히 이번 기획에서 조선 산업의 어두운 면을 조명한 ‘지역 산재 사망 사고와 안전 문제’는 그동안 지역신문에서 다루지 않았던 조선 산업의 영광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최근 50년 동안 거제를 비롯한 우리나라 조선 산업이 세계 조선 산업의 발전과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 수많은 산업재해와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거제의 거대 조선업이 지역경제를 떠받치다 보니, 그동안 지역 언론은 조선 산업의 영광만 조명하고 조선업의 발전과 함께한 산재 사망 사고 등 노동자들의 희생에 대한 보도에는 소홀했다. 이는 지역신문뿐만 아니라 전국 규모의 일간지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는 조선소에서 발생한 사건·사고 기사를 보도하고 있지만 1980년대에는 해당 사건·사고에 대한 보도는 축소되거나 싣지 않는 일이 많았다.
기획에서 소개한 1970년대부터 2024년 6월까지 발생한 조선소 관련된 주요 사고 기록 중 1990년대 이전 사건·사고 기록이 없었던 것은 지역의 사건·사고를 다룰 지역신문이 부재해서다. 반면 1990년대 이후 거제지역 조선소에서 발생한 사건·사고에 대한 기록이 늘어난 것은 1989년 태동한 거제신문을 시작으로 다양한 언론사가 만들어졌고 지역신문의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미래를 위해 과거를 더듬어 보는 시간
기획 아이디어는 지난해 11월 KT 대전인재개발원에서 열린 ‘2023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얻었다. 다양한 사례 발표 중 경남도민일보 <창원공단의 기억>이 눈에 띄었다. 이 기획은 1974년부터 시작된 창원기계공업공단(현 창원국가산업단지)의 역사와 창원지역 원주민들의 공단 용지 수용 배경, 이주민의 도시를 만든 기능공들의 삶 등을 기록했다. 창원공단이 태동한 1974년은 거제지역에 조선소가 생기기 시작한 시점이다. 특히 공단의 설립 과정에서 발생한 이주민, 산재사고, 노동자의 처우 등 각종 사회 문제는 거제 지역 조선소의 설립 및 발전 과정과 너무 닮아 있었다.
기획을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각종 조선소 자료와 과거 기사, 조선소 관련 논문을 수집했다. 아이디어는 경남도민일보의 <창원공단의 기억>에서 얻었지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차이가 있었다. <창원공단의 기억>이 창원공단 설립으로 인해 지역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잊힌 ‘희생’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면 거제신문은 조선소의 영광과 그림자 모두를 소개하고 지역 미래 발전을 위한 조선소의 역할을 재조명해 보고 싶었다.
기획의 첫 단추는 지난 50년 동안 양대 조선소가 거제지역에 끼친 영향과 역사에 대해 간략히 정리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이는 세계 및 국내 경제 위기를 극복하며 성장한 거제 지역 조선소의 주역이 거제시민과 독자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세계 조선업의 중심지로서 지역과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길 기대한다는 의미에서다. 처음부터 거제 지역 조선 산업의 역사 속에 반복되는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했지만, 편집회의를 통해 조선 산업으로 인한 어두운 점만 부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첫 기획은 조선소의 전체적인 흐름을 독자들에게 소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따라 목차를 구성했다.
이어 거제 지역 조선소 설립 이후 발생한 주요 산재 사망 사고와 안전 문제, 설립 과정에서 이주민의 희생, 조선소 이주촌 건설과 생활, 조선소 노동자의 노동운동, 조선 산업 호황기 거제 지역의 상황, 시기별 조선소 입사자의 이야기를 통한 시대상 등을 소개했다. 그중 산재 사망 사고에 대한 역사는 꼭 한번 정리하고 싶었다. 지역신문 기자로 조선소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와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항상 마음에 남았지만, 모든 내용을 지면에 담지는 못했다. 특히 거제는 물론 전국에 충격을 준 2017년 삼성중공업의 크레인 사고 외에도 우리나라 조선업 현장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잦다는 것을 알리고 안전 문제에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쉽지 않았던 자료 확보
노조·지역신문이 도움 줘
취재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사건의 정확한 기록을 찾는 것이었다. 1990년대 이전 산업재해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특히,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사고는 대형 사고가 아니면 기록되거나 보도되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당시 일간지 신문기사와 관련 기관의 보고서를 통해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 지역 산재 사망 사고와 안전 문제에 대한 기획 기사가 보도된 이후 80년대 조선소 근무 노동자의 경험담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내용이지만 당시 산재 처리는 유명무실한 제도였다. 이들에 따르면 80년대 조선소 현장에서 다치면 산재는커녕 오히려 벌금을 내거나 치료를 마칠 때까지 아무런 보상 없이 쉬어야 하는 상황도 다반사였다.
당시엔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현장 이송 후 병원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산재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하루에 여러 번 구급차가 조선소 현장을 들락거려도 기사 한 줄 내보내는 언론조차 없었다. 기획에서 소개된 산재사고는 거제지역 조선소가 완공될 무렵인 1978년 삼성중공업 건설 현장 추락 사고와 1979년 대우조선해양 건설 현장 붕괴 사고 등이 전부였다. 기획 기사는 사망 사고만 정리하기에도 지면이 모자라 부상자 발생에 대한 사고는 소개하지 않았지만 지난 2007년 태안 원유 유출 사고만큼은 빠뜨리지 않았다. 이 사고로 인해 전국적인 방재 봉사활동이 이어졌고 지난 2022년 11월 26일 태안 유류 피해 극복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으로 최종 등재되는 등 의미가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1990년대 이후 조선소의 산재 사고가 기록된 것은 거제에도 지역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지역신문이 창간된 것도 있지만 1987년 대우조선의 노동운동이 큰 역할을 했다. 노동운동으로 노동조합이 생겼고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조선소에 감춰진 소식들이 지역신문 기자에게 전달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번 기획에선 1987년 대우조선 노동자 故 이석규 씨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을 비중 있게 다뤘다. 당시의 상황과 노동자들의 투쟁, 지역의 분위기와 시민들의 반응을 전달하고 싶어서다. 1980년대 말 조선소에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1990년 이후 조선소의 사건·사고 자료를 구하는 일은 비교적 쉬웠다. 1990년대 이전 거제 지역 산재 사고는 일간지 신문기사와 관련 기관의 보고서를 통해 정보를 수집해야 했지만 이후 자료는 조선소의 노동조합과 거제신문에서 수집할 수 있었다.
사고 현장의 모습을 생생히 전달할 수 있는 사진 자료는 2000년대 이후에나 가능했다. 2000년대 이전에는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조선소 현장의 특성상 사진 자료를 구하지 못해 지면에 조선소 전경이나 이미지 자료로 대체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휴대전화기를 이용한 사진이 대중화됐고 조선소 노동자들의 제보까지 더해지며 사진 자료를 확보하기가 더 수월해졌다.
조선업계 긍정적 변화의 밀알 되길
이번 기획에서 지역 산재 사망 사고와 안전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며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하다. 조선업의 발전 뒤에는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이 있었고, 그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과제며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더 나은 노동 환경과 철저한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특히 조선소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절실히 필요하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조선소 직영 노동자에 비해 위험한 작업 현장에 투입돼 사고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보도된 조선소 사건 사고 희생자 대부분은 조선소 협력사 노동자들이었으며 조선소 현장 상황은 지난 50년 동안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거제 지역 조선 산업의 50년 역사는 지역민의 희생으로 시작해 화려한 성장을 뒷받침한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이 함께한 역사다. 이는 문전옥답을 기꺼이 내주고 반강제적으로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주민들의 희생과 삶의 굴곡,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역민과 노동자 희생 위에 세워진 거제 지역 조선 산업의 역사를 오롯이 기억하는 방법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해 더 나은 작업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획의 마지막 부분에는 거제시 관계자, 조선소 관계자, 협력사 관계자 등과 함께 조선업의 발전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계획했다. 지역사회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조선업의 미래를 위한 대안을 찾기 위해서다.
이번 기획이 지역사회와 조선업계의 긍정적인 변화에 대한 밀알이 됐으면 한다. 덧붙여 거제의 뿌리산업이자 우리나라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조선 산업이 과거의 영광을 넘어 더욱 공고히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