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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트렌드]AI 활용한 영화 제작, 어디까지 왔나
미디어 트렌드 | 등록일 : 2024-09-27

AI의 활용 영역이 영화를 비롯한 창작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AI 영상 생성·편집 프로그램으로 만든 AI 영화가 근시일 내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열린 워크숍을 통해 AI 활용 영화의 미래를 전망해 본다. 편집자 주

 

“제가 인공지능(AI) 프로그램으로 만든 영상으로 피칭을 하면 10년 전에는 영화사들이 못 미더워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AI로 만든 영상 수준이 워낙 높아 이런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당신들이 손해라고 제가 당당하게 말합니다.”

 

지난 7월 3일 오후 경기 부천시 웹툰융합센터에서 만난 미국 감독 데이브 클라크(Dave Clark)의 목소리는 확신에 가득 찼다. AI 영화감독으로는 유일하게 미국영화감독조합(DGA) 회원인 클라크는 10여 년 전부터 여러 AI 영상물을 선보여 온 ‘AI 영화 전도사’다. 그는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마련한 ‘BIFAN+AI 필름 메이킹 워크숍’에 강사로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BIFAN+AI 필름 메이킹 워크숍’은 2박 3일 일정(7월 2~4일)으로 참가자들이 AI 영화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AI 단편 영화를 제작하는 ‘작은 영화학교’다. 


48시간 만에 영화 한 편이 ‘뚝딱’

 

‘BIFAN+AI 필름 메이킹 워크숍’에는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주최측 예상을 뛰어넘는 600명가량이 지원했다. 워크숍은 애초 정원 30명을 두 배 늘린 60명으로 ‘개강’했다. 20~30대 영화학도가 대부분이었으나 40~50대 중견 영화인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정지영 감독 역시 AI 영화 만들기에 도전했다. 지원자들 면면만으로도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AI 열풍이 영화계에서도 뜨겁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BIFAN+AI 필름 메이킹 워크숍’은 16개 팀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제작과 연출, 시나리오, 촬영 등 전문성이 각기 다른 이들로 팀이 만들어졌다. AI 영화는 오로지 컴퓨터에 의존해 만든다고 하나 실제 영화 작업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 분야가 다른 이들이 협업해야 양질의 영화가 나온다는 건 AI 영화라고 다르지 않다.

 

 

AI 필름 메이킹 워크숍 폐회식 ⓒBIFAN 2024

 

 

첫째 날은 생성형 AI 영상 제작 프로그램 사용법에 대한 간단한 교육으로 시작했다. 전날 막 출시된 ‘런웨이 젠3(Gen-3)’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팀별로 ‘환경과 SF’를 주제로 간단한 시나리오 회의를 거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캐스팅’까지 이뤄졌다. 생성형 AI 이미지 프로그램 ‘미드저니(Midjourney)’로 시나리오 속 주인공에 맞는 가상 배우를 만들었다. 첫날은 촬영 전 준비(Preproduction)에 해당하는 셈이었다. 

 

둘째 날은 본격적인 제작(Production)이 이루어졌다. 컴퓨터로 ‘촬영’이 이어졌다. 각 팀은 시나리오에 맞는 배경 이미지들을 형성해 ‘배우’들이 그 안에 들어가도록 프로그램에 명령어를 입력했다. 카메라 각도를 어떻게 할지, 줌 인과 줌 아웃이 들어가는지, 들어간다면 어떤 형식으로 쓰이는지, 조명은 어떻게 배치되는지 등 ‘명령어란(Prompt)’에 세세하게 쓸수록 원하는 영상이 만들어질 확률이 높았다. 영화 촬영과 연출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많을수록 ‘영화다운 AI 영화’가 만들어지게 되는 셈이다. AI가 만능 도깨비방망이 같지만 인간의 몫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셋째 날은 후반작업(Postproduction)이 있었다. 전날 AI로 만든 영상들을 다듬고 편집하며 영화를 완성했다. 첫날 촬영 전 준비부터 이날 영화가 다 만들어지기까지 각 팀에 주어진 시간은 딱 48시간이었다. AI 없이도 영화 한 편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시간이긴 하다. 하지만 AI 영화 제작은 이전 작업 방식과 크게 다른 게 있다.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나가지 않아도 됐고, 배우를 따로 기용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제작비는 사실상 0원.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들어간 전기료와 프로그램 사용료 정도가 제작비로 잡힐 만하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별다른 돈을 들이지 않고 48시간 만에 그럴듯한 영상미를 갖춘 단편영화 한 편을 뚝딱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100% AI로 만든 영화도 개봉 준비중

 

‘BIFAN+AI 필름 메이킹 워크숍’은 AI 영화가 영화 산업, 아니 영상 산업 전체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암시했다. 생성형 AI 영상 제작 프로그램이 좀 더 정교해진다면 기존 영화 제작과 유통, 관람 방식은 통째로 바뀔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줬다.

 

영화는 태생부터 아무나 진입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고가의 카메라와 영사기가 필요했고, 제작을 위해 대규모 인력이 동원돼야 했다. 영화가 만들어진 이후 관객과 만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어야 했다. 제작자든, 상영 업자든 일정한 자본이 있어야 산업에 뛰어들 수 있었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영화 제작과 전달 방식에 변화가 생기며 진입장벽은 많이 낮아졌다. 필름 시대에는 극소수에게만 ‘감독님’이라는 호칭이 붙었으나 디지털 기술 발달로 누구나 감독이 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상업영화, 블록버스터는 여전히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다. 상업영화는 제작 노하우와 기술력, 자본력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 대변되는 특수효과는 특히 아무나 넘을 수 없는 장벽 역할을 해왔다. 극장 개봉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억대의 비용이 든다. 영화를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하나 상업영화는 예외이고, 극장 개봉 역시 제한적이다.

 

AI 영화 시대는 어떨까. AI 영상 제작 프로그램이 진화할수록 특수효과의 장벽은 허물어지게 된다. 돈을 들여 배우를 기용할 이유가 없고 스태프가 여럿 필요하지도 않다. AI 영상 제작 프로그램이 비약적으로 진화하면 블록버스터급 영상을 개인이 큰돈 들이지 않고 만들어낼 수도 있다. AI 영화는 극장보다 온라인 영상 유통망을 통해 소비될 가능성이 더 크다. 제작부터 상영까지 비용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AI 국제 콘퍼런스 패널 토론 ⓒBIFAN 2024

 

 

클라크 감독에 따르면 AI 영화는 미래가 아닌 현재다. 그는 “생성형 AI 영상 프로그램은 지난 1년간 예전 10~20년 치에 달하는 발전을 이뤘다”라며 “발전 속도와 업계에 미칠 충격 면에서 보면 전례 없는 영상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클라크는 “1년 내 (미국에서) 100% AI로 만든 장편 영화가 개봉할 것”이라며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AI 시대 영화 산업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어떻게 유지할지 고민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영화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 등으로 유명한 강제규 감독은 부천판타스틱영화제의 한 행사에서 “AI가 5년 내 제작과 유통 등 모든 면에서 영화계를 크게 바꿀 것”이라며 “엄청난 기회이자 위기가 될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AI가 아니라 인간이 문제… 남은 숙제들

 

AI 영상 제작 프로그램은 아직 완벽하지 않다.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이미지가 사람을 많이 닮았으면서도 사람과 달라 느끼게 되는 불쾌감)’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일관성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똑같은 명령어를 입력해도 약간씩 다른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BIFAN+AI 필름 메이킹 워크숍’에 참가한 안영진 영화사진 대표는 “AI가 매번 다른 결과를 내놓기에 원하는 영상이 나올 때까지 여러 번 반복 실행했다”며 “학습 부족 때문인지 인간이 내리는 명령을 아직 세세하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지영 감독은 “작업 중 오류가 종종 생겨 아직은 AI에 온전히 기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추가 촬영이 필요한 장면을 AI가 생성한 영상으로 대신하는 등 보조적인 장치로 쓰일 수는 있다”라고 밝혔다.

 

기능적인 측면보다 법적, 윤리적 문제가 더 크다. 초상권과 목소리권, 지식재산권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논의가 아직 진행 중이다.

 

AI 분야 선두 기업인 오픈AI가 지난 5월 일으킨 논란은 AI 영화가 지닌 법적, 윤리적 문제를 환기시킨다. 오픈AI는 사람과 음성으로 소통하는 프로그램 GPT-4o(GPT-4 omni)를 공개했는데, AI 목소리가 배우 스칼릿 조핸슨과 너무 유사했다. 조핸슨이 법적 대응 의사를 밝히자 오픈AI는 GPT-4o에서 목소리를 삭제하고 다른 성우의 음성이라고 해명했다. 조핸슨은 영화 <그녀>에서 AI 목소리를 연기했다. 오픈AI가 조핸슨 목소리를 직접 활용하지 않았다 해도 조핸슨의 이미지에 기대 자사 제품의 상품성을 높이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했다. AI 영상의 경우 이미지와 음성이 한데 어우러지기 때문에 법적, 윤리적 문제는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 기간 열린 ‘BIFAN+AI 국제 콘퍼런스’는 AI 영화를 둘러싼 법적 다툼과 윤리적 문제를 진단했다. 7월 6일 열린 토론 행사에 참가한 우크라이나 회사 리스피처(AI 음성합성 소프트웨어 개발)의 안나 블라흐(Anna Bulakh) 윤리 책임자는 “AI를 다룰 때는 신뢰(trust)와 통제(control), 창의성(creativity)이라는 세 단어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초상권과 지식재산권 등을 지킬 수 있게 AI를 통제하면서도 창의적인 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야 한다”라는 것이다. 국내 AI 웹툰 제작 플랫폼 드리머스의 오상준 대표는 “데이터를 훔치거나 목소리를 허락받지 않고 쓰는 건 AI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어쩌면 세상에 나쁜 AI는 없을지 모른다. 늘 그렇지만 인간의 탐욕과 불찰이 과학기술로 하여금 문제를 일으키게 한다. AI 영화가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해악을 끼칠지는 결국 우리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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