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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BC 기상 캐스터 고(故) 오요안나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으로 방송사 비정규직 고용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위계적인 조직 문화 속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비정규직의 고용 실태와 개선 방안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방송사 비정규직 처우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안이 터질 때마다 자성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지만, 종국에는 별다른 진전 없이 유야무야 넘어가곤 했다. 방송사 경영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경쟁은 치열해지고 제작 비용은 끝도 없이 치솟고 있다. 미디어 환경은 방송계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방송사 자체의 생존을 압박하고 있다.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의 역사는 1991년 외주 제작 프로그램 편성 의무화 조치, 1997년 이후 방송 관련 시장의 위축과 외주 제작 활성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송업 자체가 대표적인 노동 집약형 업종이며 OTT의 활성화로 레거시 미디어가 위축되면서 고용 유연화는 방송사업자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부상했다. 특히 지역방송사의 경우 중앙사에 비해 절대적으로 경영 사정이 악화하면서 비정규직을 확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최근 이와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비정규직 고용 문제가 극단적인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MBC 기상 캐스터였던 고(故) 오요안나는 직장 내 비정규직 간 갈등으로 인한 괴롭힘으로, 2016년 tvN의 고(故) 이한빛 PD는 과도한 업무, 2020년 청주방송의 고(故) 이재학 PD는 노동자성의 불인정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사망 사유가 다르고 사안이 축소돼 다뤄져 쟁점이 흐려졌지만 이들 사건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위계적인 조직 문화 속에 제 목소리를 못 내던 비정규직의 구조적 문제가 작동된 것이 주요 원인으로 파악된다.
방송사 비정규직 고용 실태
<2024년 방송산업 실태조사 보고서>(2024.12)에 의하면, 2023년 12월 현재 방송 사업 전체에서 비정규직 분포는 10.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수치로는 얼핏 비정규직의 수가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방송사들이 부서별로 채용·운용하는 모든 비정규직들의 규모를 반영한 수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즉 방송사들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실제 비정규직 실태를 반영하지 않은 지극히 형식적인 통계치를 제출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조차 마련되지 않아 이를 축소·제출하는 행위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관리 감독이 이뤄지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해당 지표를 통해 비정규직 분포의 직종을 살펴보면, 아나운서(21.2%), 제작(21.3%, 카메라, 영상, 조명, 음향, 미술, 편집 등) 분야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성우, 작가, 리포터, 제작 지원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기타(34.7%) 분야는 방송업계에서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고용 실태는 직종뿐만 아니라 성별에도 특정한 경향성을 보이는데, 정규직은 여성 비율(36.8%)보다 남성 비율(63.2%)이 높은 데 반해, 비정규직은 남성 비율(38.8%)보다 여성 비율(61.2%)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계의 고용구조에서 여전히 여성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임을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다. 물론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이유는 이들이 아나운서, 작가, 리포터 직종에 많이 종사하기 때문이지만 해당 분야 외에도 임원과 기자, 기술직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비정규직 분포에 여성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고용의 쟁점과 현안
1. 프리랜서 고용 형태의 증가와 노동자성
수년 전까지만 해도 비정규직은 방송사 파견 전문업체에서 파견되는 추세였으나, 최근에는 프리랜서 고용 형태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방송사 프리랜서의 절대다수는 방송작가가 차지하고 있는데, 프리랜서 규모가 정규직을 넘어서면서 방송사 전 직종에 프리랜서 고용 형태가 과도하게 만연하고 있다. 방송사의 입장에선 파견·도급 업체 소속의 노동자는 용역업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나머지는 용역·도급·프리랜서로 계약을 체결해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들이 이와 같은 계약 형태를 선호하는 이유는 프리랜서가 근로기준법상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들은 기간제나 파견직과 달리 민법상 도급 또는 위임 계약을 맺어 겉으로 보면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사실 프리랜서라고 해도 일하는 방식을 따져보면 대부분 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고용노동부와 노동위원회, 법원 등은 방송계 ‘프리랜서’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추세다. 고용노동부가 2018년 9월 드라마 제작 현장 특별 근로감독에서 다수 스태프에 대한 근로자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후, 2021년 3월 MBC 보도국 <뉴스투데이> 작가 2인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최초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는 사건이 있었고, 같은 해 고용노동부는 고(故) 이재학 PD 사건을 계기로 청주방송에 특별 근로감독을 파견했다. 지상파 3사 ‘보도 및 시사교양 작가’ 대상 최초 동시 근로감독 등을 진행한 결과 다수의 제작 현장 종사자들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이어 중앙노동위원회는 2022년 KBS 전주총국에서 7년간 일한 방송작가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하며, KBS가 해당 노동자를 부당 해고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법원 역시 최근 프리랜서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추세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2021년 말 YTN에서 3~9년간 프리랜서 형식으로 계약을 갱신하며 일한 그래픽 디자이너 10명과 프리랜서 PD의 근무 형태를 따진 결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소송과 관련 부처의 판단에 따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자성의 인정은 방송 제작 현장에서 프리랜서로 치부돼 온 다수 직종의 스태프들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의 조건에 부합한다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법률 대응을 하고 있으며,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이들에게 법률 다툼 이전의 기간은 근속 기간에서 제외하거나 일감 줄이기와 보복성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청 역시 종래의 대법원 판례에서 도출된 부수적 요소들에 주목해 형식적인 조서를 작성하고 간단하게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법원 소송의 문턱을 넘기 힘든 노동자들은 가장 먼저 노동청을 찾기 마련이지만 오히려 노동부의 소극적 태도 앞에서 또 한 번 좌절할 수밖에 없다.1)
이와 같은 문제에 대처하고자 노동부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이 인정된 방송작가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라는 내용의 시정 지시서를 각 방송사에 전달했지만 방송사들은 ‘방송 지원직’이라는 무기 계약직을 만들어 임금인상 없는 연봉제, 각종 상여금 제외, 승진 기회를 제외하는 방법으로 여전히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2. 불공정 계약
방송사들이 표준계약서 중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하도급 계약서’, ‘업무위탁계약서’를 채택해 일방적인 조건을 명시하고 비정규직들에게 서명을 강요하는 사례가 다수 발견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근로계약서 미작성, 구두 계약, 갑질 계약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관례상의 계약서’를 통해 완성된다. 방송 현장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도록 정부가 제시하는 표준계약서가 존재하지만 이는 권고 수준에 불과하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 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가 대표적인 예다. 미디어미래연구소가 방통위의 제안으로 수행한 2022년에 조사에 따르면 “(정부에서 권고하고 있는 표준계약서의) 핵심 조항 일부가 포함되어 있으나 표준근로계약서의 핵심 조항 전부를 준용하고 있는 방송사는 없었으며 대부분의 방송사가 핵심 조항을 누락하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와 같은 불공정 계약도 그나마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 더 문제다. 매일 야근하지만 시간 외 수당은 꿈같은 일이고, 일과 시간의 업무도 인정받지 못하는 저임금 구조 속에 내몰리지만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일할 생각에 대부분의 스태프가 노동청 신고도 못 하는 실정이다.
불공정 계약은 표준근로계약서의 불이행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드라마 현장에는 여전히 ‘턴키 계약’ 악습이 성행하고 있는데, 이는 제작사가 스태프들과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감독급(팀장)이 팀원과 계약한 뒤 팀원에게 용역비를 나눠주는 형식이다. 이 경우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계약서를 한 번도 쓰지 않은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현실이다.
미디어미래연구소 조사에서는 근로자가 방송사에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청해도 방송사는 대부분 방송업계 관례상 근로계약서는 작성하지 않는다며 거절하거나, 양식이 없으니 작성할 수 없고, 결국 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해 적절한 노동에 따른 대가를 요구할 수 없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계약서를 작성하더라도 근로계약이 아닌 ‘프리랜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서상 “어떠한 경우에도 노동법에 따른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해당 계약은 근로계약이 아니므로 을은 노동관계법에 따른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등의 문구를 포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방송사 노동자들의 민원 창구인 엔딩크레딧의 조사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을은 갑에 대해 고용관계를 주장할 수 없다”, “본인은 계약과 관련된 일체의 민형사상 소송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확약합니다”, “본인 요청으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배제하고 자발적으로 프리랜서 지위를 선택함을 확인합니다” 등의 문구가 보편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가 노동자에게 노동권과 법적 권리를 모두 포기하게 하는 갑질 조항이지만 이런 계약서를 받은 다수의 비정규직은 서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개선을 위한 대안은
1. 재허가 조건에 ‘비정규직 처우 개선 방안’ 포함
2020년 12월 18일 방통위는 지상파 방송 재허가를 의결하면서 공통 조건으로 ‘비정규직 처우개선 방안 마련’을 강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비정규직 인력 현황 및 근로 실태 파악 △비정규직 처우 개선 방안을 재허가 이후 6개월 이내에 제출하고 이행 실적을 매년 4월 말까지 제출할 것을 조건으로 부여했다. 그러나 2024년 1월 31일 방통위는 34개 지상파방송사(141개 방송사) 재허가를 의결하면서 비정규직 현황 파악만 하도록 했다. 처우 개선 방안이나 이행 실적 제출은 원안대로 실행되지 못했고, 비정규직 개선에 대한 방송사의 실행 여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한계를 노출했다.
이와 관련해 2020년에 마련했던 ‘비정규직 처우 개선 방안’을 재허가 조건에 부과하는 방안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개선 방안과 이행 실적 제출의 재검토를 통해 방송사의 비정규직 인력 운용의 실태를 보다 면밀히 파악할 수 있고, 이에 대한 개선 방안을 도출하는 데 의의가 있다.
2. 보다 엄밀한 실태조사 필요
방송사들이 실제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형식적인 통계치를 제출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매년 발간되는 <방송산업 실태조사 보고서>는 비정규직을 포함한 방송계 종사자 규모를 담고 있지만, 방송사들이 부서별로 채용하여 운용하는 모든 비정규직의 규모를 반영한 수치라고 보기 어렵다.
비정규직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방송사별 고용 행태를 보다 구체적으로 조사해 실질적인 자료의 축적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고용 행태에 대한 방송사의 자체적인 평가와 함께 관리의 책임이 있는 방통위의 면밀한 조사가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3. 표준근로계약서 수시 점검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노동관계 법령의 직접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형식적으로 꾸민 위탁계약서가 아니라 실제 일하는 노동관계의 실질을 담은 조항이 포함됐는지 수시 점검이 요구된다.
4. 관련법 개정
방송 노동자를 방송법에 명시하는 법 개정 추진이 요구된다. 방송법 정의 규정 등을 통해 ‘근로자’임을 명시하는 것이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2조 정의 규정의 21호에서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자’로 영화 근로자임을 명시하고, 시행령상에 이를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방송법상 정의 규정에 ‘방송 근로자’ 개념을 신설하는 방식이다. 해당 규정을 통해 방송 제작 현장 스태프들의 근로계약서 작성 및 노동조건 개선 등을 구체화하고 공식화하는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방송 산업 핵심 인력, 합당한 처우 필요
방송 제작 현장에서 비정규직이 담당하는 업무는 최일선의 현장부터 영상을 구현하는 일까지 매우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다. 이들은 방송 산업의 핵심 인력으로서 방송 제작 기반과 전반을 책임지지만 그만한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의 저렴한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손쉬운 대체 가능성으로 방송 산업을 지탱하는 한 방송 산업의 미래는 악순환을 거듭할 뿐이다.
1) 김유경(2021.2.2), <방송현장 비정규직-프리랜서 고용형태 문제점과 개선 방향>, CJB청주방송 이재학PD 1주기 토론회 ‘방송-미디어산업 무늬만 프리랜서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까’ 발제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