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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라면 언론의 자유가 결코 침해받을 리 없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은밀하고도 교묘하게 언론을 탄압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통제하려는 권력와 이에 맞서는 언론의 지난한 줄다리기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어느 권력이든 언론을 자신의 도구로 삼고 싶은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 욕망을 한층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있는 멕시코만(Gulf of Mexico)의 명칭을 아메리카만(Gulf of America)으로 변경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AP통신은 400년 이상 불러온 지명을 하루아침에 바꾸면 독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며 기존 명칭을 고수했다. 이에 백악관은 AP통신의 백악관 출입을 금지하는 등 취재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AP통신 기자들은 하루아침에 대통령 집무실 오벌오피스(Oval Office)와 전용기 에어포스원(Air Force One) 출입이 금지됐을 뿐만 아니라, 외교 관련 행사에서도 배제되며 사실상 강제 퇴출당했다. AP통신의 줄리 페이스(Julie Pace) 편집장은 “백악관이 언론의 취재 활동을 제한하는 건 경악할 만한 일이며 자유 언론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조치”라며 즉각 항의했고, 백악관 출입기자 회장인 유진 대니얼스(Eugene Daniels) 역시 “언론의 취재를 제한하는 행위는 명백한 수정헌법 1조 위반”이라고 반발했으나, 이에 대해 캐롤라인 레빗(Karoline Leavitt) 백악관 대변인은 “백악관 취재는 특권이기에 누가 취재할지 결정하는 건 백악관의 권리”라고 받아쳤다.
이 사건은 트럼프 행정부가 언론 환경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려는 큰 흐름의 일부에 불과했다. 전통적으로 (WHCA, White House Correspondents’ Association) 백악관기자단협회가 백악관 브리핑룸 좌석 배치 등 기자 관리를 책임지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심지어는 대통령과 동행하며 취재·질문할 수 있는 풀단(공동 취재단) 명단도 백악관이 직접 꾸리겠다고 했다. 새로 마련된 ‘뉴미디어(new media)’ 석에는 전통적인 언론사가 아닌 우파 논객, 유튜버, 혹은 인플루언서 기자들이 이 자리를 속속들이 메웠다. 브레이트바트(Breitbart)의 맷 보일(Matt Boyle), 보수 성향 팟캐스터 세이지 스틸(Sage Steele), 럼블(Rumble)의 CEO 크리스 파블로브스키(Chris
Pavlovski), 악시오스(Axios)의 마이크 앨런(Mike Allen) 등이다.
미국의 언론 비평지 컬럼비아저널리즘리뷰(CJR, Columbia Journalism Review)는 보수 성향의 언론인을 주류 언론과 동등한 위치에 배치한 백악관의 결정은 백악관이 어떤 질문을 받고 싶어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Lahut, 2025). 브리핑룸을 차지한 ‘새로운 이들(The New kids in the room)’은 대변인에게 질문 대신 “뉴미디어에 목소리를 주셔서 감사하다”며 찬사를 보냈고, 극우 성향 브레이트바트(Breitbart) 맷 보일(Matt Boyle) 기자 역시 과거 행정부의 성평등 교육법(Title IX)에 관해 대통령의 결의를 묻는 등 그야말로 대답하기 쉬운 질문(softball questions)만 오갔다.
사실, 백악관 기자실이 원래 폐쇄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기자실은 임시 출입증을 신청하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즉, 트럼프 행정부가 개방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언론들 맞춤형으로 브리핑룸을 재단장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조치는 사실 처음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와 언쟁을 벌인 CNN의 짐 아코스타(Jim Acosta)의 하드패스(출입증)를 취소했고, 백악관 보좌관과 언쟁을 벌인 또 다른 CNN 기자 브라이언 카렘(Brian Karem)의 하드패스도 박탈했다. 이에 두 기자가 낸 소송에서 법원은 백악관이 아코스타의 출입증을 박탈하기 전 명확한 기준과 사전 통보를 하지 않았으며, 백악관이 아코스타에게 공정한 대응 기회를 주지 않아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기자 접근 금지를 정당화할 충분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수정헌법 위반 가능성을 들어 아코스타와 카렘의 손을 들어주었다.
은밀하게, 노골적으로: 백악관 기자들 수난사
트럼프 대통령처럼 백악관 출입 기자를 금지한 전직 대통령이 있었을까? 방식만 달랐을 뿐 다른 대통령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사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탄압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당시 재무부의 핵심 인물인 케네스 파인버그(Kenneth Feinberg)를 풀단 기자들과 인터뷰하도록 조율하면서, 폭스뉴스(Fox News)만 제외하려 했다가 언론 탄압이라는 뭇매를 맞았다. 특정 언론사만 배제하는 것은 네트워크 풀의 규칙을 위반하는 행위라며 풀에 속한 다른 방송사들의 워싱턴 지국장들(ABC, CBS, CNN, NBC)은 폭스뉴스가 제외된다면 자신들도 인터뷰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일단락됐다.
보다 은밀하거나 행정적인 절차를 통해 언론을 압박하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2013년, 오바마 법무부는 내부 정보 유출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AP통신 기자들의 전화 기록을 무단 수집해 기자들의 취재원 보호 원칙을 위반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한,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제임스 로젠(James Rosen) 폭스뉴스 기자의 국무부 출입 동선뿐만 아니라 그의 전화와 개인 이메일까지 압수해 철저히 감시하는 것을 승인하기도 했다. 해당 기자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이상 이메일 등 개인 자료에 대한 수색영장을 발부할 수 없음에도 이뤄진 강경 조치였다.
언론 보도의 압박 속에서 결국 사임에 이른 닉슨 대통령의 사례는 더욱 극적이다. 닉슨 행정부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지속적으로 폭로한 워싱턴메리고라운드(Washington Merry-Go-Round)의 잭 앤더슨(Jack Anderson)과 CBS 뉴스의 댄 래더(Dan Rather) 같은 기자들은 탄압 대상 1호였다. 닉슨은 이들을 향해 “저 기자를 쳐라(Get someone to hit him)”, “해고하라(Fire him)”, “접근을 차단하라(Freeze him out)”고 지시하기도 했다(Karpowitz, 2009). 래더 기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닉슨 행정부의 베트남 정책과 워터게이트 스캔들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이어갔으며, 닉슨과의 기자회견에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주목을 받았다. 닉슨 행정부는 이 두 기자를 언론계에서 완전히 배제하려 했으며, 심지어 암살까지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언론 다루기의 진정한 귀재로 불리는 대통령은 따로 있다. 개혁 시대를 연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은 언론을 활용해 대중의 인식을 형성하고 정책을 홍보하는 데 가장 적극적이었던 대통령으로 꼽힌다. 1901년,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대통령이 암살된 후 대통령직을 승계하자마자 루스벨트는 주요 언론인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그는 AP, 뉴욕선(New York Sun), 라판 에이전시(Laffan Agency), 스크립스-맥레이프레스에이전시(Scripps-McRae Press Association, 훗날 United Press) 등의 대표들과 만나, “나는 여러분에게 완전히 개방적일 것이다. 하지만 신뢰를 깨뜨린다면 다시는 정보 접근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대통령이 직접 언론과의 관계를 조율하며 보도를 통제하는 방식의 시초로 봐도 무방하다.
루스벨트는 기자들을 신뢰할 수 있는 ‘내부자’와 비판적인 ‘외부자’로 구분하고, 자신에게 우호적인 기자들에게는 자신의 오후 면도 시간 동안 구상 중인 정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호의적인 기사를 기대했다. 반면,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신뢰를 저버린 기자들은 애너나이아스 클럽(Ananias Club)이라는 블랙리스트에 올려 백악관 출입을 금지했다. 이 명칭은 신약성경에서 거짓말을 한 후 즉사한 애너나이아스(Ananias)에서 따온 것으로, 자신을 배신한 언론인들에게 가차 없이 보복한 것이다.
권력과 미디어의 재편 속 저널리즘의 미래
이처럼 미국에서도 권력의 언론 탄압 역사는 길다. 다만, 현 상황이 우려스러운 것은 급격하게 변화한 미디어 환경이다. 미국 정치학계에서는 오바마 이후를 대통령과 언론 관계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본다(Mercieca, 2018).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기까지는 대통령이 의회를 거치지 않고 미디어를 통해 대중을 설득하는 ‘수사적 대통령제(Rhetorical Presidency)’ 속 언론과 대통령의 관계가 상호 호혜적이고 안정적이었다면, 오바마 대통령 이후는 포스트 수사적 대통령제(post rhetorical presidency)로, 즉 소셜미디어를 가진 대통령과 언론이 서로 독립적인 개체로서 경쟁하며 불안정한 관계를 형성한다는 의미다.
대통령이 콘텐츠 제공자로서 뉴스 미디어와 함께 경쟁하는 상황에서, 전통 미디어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제도권 훈련을 받지 않은 유튜버 논객과 인플루언서들이 언론을 자처하며 브리핑룸을 차지하게 되면, 정작 감시견 역할을 해야 할 제도권 언론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소셜미디어 시대에도 언론은 고유한 역할을 맡아야 하며, 이를 위해 대통령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권한과 충분한 질문 시간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Smith, 2017).
이러한 연유로, 현 백악관 브리핑룸 사태에 대해 언론사들이 보이콧해야 하는가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고 말한다(Farhi, 2025). 비록 한계가 있지만, 백악관 브리핑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보이콧을 실행할 경우, 친 트럼프 매체가 브리핑룸을 독점하는 상황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브리핑룸에는 중요한 질문을 던질 사람들이 필요하다며, 기자들은 단순히 일방적인 홍보를 받아쓰는 것이 아니라, 이를 견제하고, 현재와 역사적 맥락을 제시하며, 편파적인 정보에 사실을 더해 가치를 부여하는 저널리즘의 본질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폴 파히(Paul Farhi)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컬럼비아저널리즘리뷰 기고에서 2017년, 워싱턴포스트가 트럼프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았을 때, 당시 편집장이었던 마틴 배런(Martin Baron)이 했던 “우리는 행정부와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상기시키며 보이콧에 반대하기도 했다.
이러한 권력과의 줄다리기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언론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조항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비키 잭슨(Vicki Jackson) 예일대 교수는 언론은 단순 정보를 전달하는 ‘미디어’로 보기보다는 ‘지식 기관(knowledge institution)’으로 봐야 한다며, 권력이 ‘도청 방지법(wiretap statutes)’을 적용해 기자들이 정부 내부자의 정보를 기록하거나 유출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간주하려는 시도나, 편집 과정에 대한 정부의 개입, 취재 방해나 출입 금지, 또는 기자들에게 소송을 제기하거나 법적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언론을 위축시키려는 시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수정헌법 제1조의 언론 조항을 보다 독립적인 보호 장치로 해석하고, 기자들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Jackson, 2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