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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AI를 활용한 이른바 ‘지브리풍’ SNS 프로필 사진 열풍이 불었다. 이러한 이미지가 널리 확산하며 자연스레 저작권 문제에 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향후 논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AI 창작물 저작권의 영역과 한계, 개선 방안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스튜디오 지브리(Studio Ghibli)는 오랜 시간 수많은 이들의 감성과 기억을 차지해 온 이름이다.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같은 작품들은 단지 애니메이션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정서와 미학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인공지능(AI)이 이 ‘지브리 스타일’을 학습하고 재현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질문 앞에 서게 됐다.
“지브리풍 그림을 그린 AI는 법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저작권 침해인가?”생성형 AI의 시대, 즉 인간이 직접 붓을 들지 않고도 정교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기술 환경에서, 화풍(style)을 둘러싼 법적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AI는 지브리 그림의 색감, 선의 질감, 몽환적 구도 등 방대한 시각적 데이터를 분석해 ‘지브리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종종 감탄을 자아내지만, 동시에 원작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는다.
화풍은 전통적으로 작가의 개성과 미적 취향이 드러나는 영역으로 간주돼 왔다. 그러나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러한 화풍을 통계적으로 재현하거나, 독창적으로 변형·출력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생성된 결과물의 기존 창작자 권리 침해 여부는 향후 창작 환경의 윤리적·법적 기준 설정에 핵심이 되는 쟁점이다.
아이디어·표현 이분법과 저작권 보호의 경계
저작권법은 전통적으로 표현(expression)을 보호하되, 아이디어(idea) 자체는 보호하지 않는다는 아이디어·표현 이분법(idea-expression dichotomy)을 원칙으로 한다. 이는 창작자의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문화와 지식의 공유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하고 있으며, 이때 ‘사상 또는 감정’은 아이디어에, ‘표현한’은 구체적 형식에 해당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화풍은 작가의 창작 세계를 이루는 독특한 시각적 경향성과 표현 방식이지만, 일반적으로는 보호되지 않는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한다. 화풍은 일정한 미적 기법, 색채 조화, 선의 구성, 장면 연출의 방식 등을 포함하지만, 이는 반복 가능하고 추상적인 방식으로 분류된다.
구체적인 저작물의 특정 표현을 직접 복제하지 않는 이상, 단순한 스타일의 모방은 원칙적으로 저작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창작 방식이나 분위기의 유사성은 법적 보호의 범주 밖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합체이론과 ‘화풍’의 저작권적 한계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을 보완하는 원칙으로 합체이론(merger doctrine)이 있다. 이 이론은 특정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방법이 오직 하나이거나 극히 제한적인 경우, 그 표현까지 보호하면 아이디어 자체를 독점하는 결과가 되므로, 해당 표현은 저작권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즉, 표현의 창작성과는 별개로, 표현이 아이디어의 필수적 수단일 경우 보호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영웅 서사를 담은 소설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인물 유형, 배경 설정, 사건 구조 등은 보호 대상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화풍 역시 특정 분위기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한 제한된 시각적 수단으로 구성돼 있다면, 이 또한 보호받기 어렵다. 고흐의 붓 터치나 지브리의 몽환적 색채감이 개별 저작물로 구체화되지 않고, 전체적인 양식으로만 사용될 경우에는 표현 보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합체이론은 저작권의 남용을 방지하고, 창작 수단의 독점을 방지하는 데 핵심적인 기준이 된다.
‘지브리풍’이나 ‘고흐풍’을 따르는 AI 이미지 생성은 기존 저작권법상 침해로 보기 어렵다. 이는 스타일이나 정서의 차용에 불과하며, 개별 저작물의 실질적 요소(캐릭터, 특정 배경, 고유한 구도 등)를 복제하지 않는다면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 AI 모델을 활용한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생성 열풍은, 기존 표현의 변형이 아니라 화풍이라는 아이디어적 요소의 재구성에 가까우며, 현행 저작권 체계가 허용하는 범위에 포함된다.
이러한 판단은 단순히 법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창작 활동의 경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에 대한 문화적·사회적 판단을 포함한다. 특히 AI는 인간과 달리 창작 의도를 갖지 않기 때문에, 스타일을 모방한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도 불명확하다. 현재로서는 저작권 침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기술이 더욱 정교해질수록 새로운 분쟁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AI 시대 저작권 법제, 재설계가 필요한 이유
현행 저작권법은 인간 창작자를 전제로 구성돼 있어, 생성형 AI에 의해 생산된 이미지나 콘텐츠는 보호 기준이 불분명하다.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 개입 없이도 창작을 수행할 수 있는 기술로 진화하고 있으며, 사용자는 단지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수준에 그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창작물의 법적 보호 여부, 권리 귀속, 책임 주체 모두가 불명확해진다.
이에 따라 기존 법리를 그대로 확장하기보다는, AI 창작 환경에 특화된 새로운 입법이 절실히 요구된다. 특히 다음 세 가지 방향은 국제적 흐름과의 정합성을 고려할 때도 시급한 과제다. 첫째, AI 학습 단계에서 저작물을 정당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텍스트 및 데이터 마이닝(TDM)에 대한 명확한 예외 조항과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법적 지위와 그에 따른 권리 귀속·책임 분담 기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기존 공정이용(fair use) 원칙을 AI 시대에 적합한 기준으로 재구성해, 창작의 자유와 기술의 책임이 조화를 이루게 해야 한다.
일본은 이미 AI 학습을 위한 저작물 이용을 포괄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으로 저작권법을 개정했으며, 미국 역시 인간의 창작성 개입을 중심으로 저작물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아직 AI 생성물에 대한 입법적 기반이 부재한 상태로,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의 입법 공백이 장기적인 법적 불안정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AI 시대의 저작권법은 단순히 기존 법제를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창작자의 권리 보호와 AI 기술 혁신이라는 두 축 사이의 새로운 균형점을 설계하는 작업이 돼야 한다. ‘저작자’의 개념 자체를 다시 정의하고, 인간과 기계의 공동 창작 현실에 대응하는 법적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특정 작가의 화풍을 모방한 결과물이 기존 저작물의 구체적 표현을 실질적으로 복제하지 않았다면, 이는 저작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 화풍은 창작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보호되는 표현은 아니다. 예술은 늘 선행 표현의 영향을 받으며, 새로운 창작은 기존 스타일의 재해석을 통해 발전한다.
지금 우리는 기계의 창작이라는 전례 없는 현상 앞에 서 있다. 생성형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창작의 주체성과 표현의 정체성을 다시 묻는 도전이 되고 있다. 이 변화는 저작권 제도의 틀에 대한 재구성을 요구한다. 저작권은 결코 과거의 유산을 고정하는 규범이 아니라, 미래의 창작을 열어주는 유연한 질서여야 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보호냐, 침해냐’라는 이분법적 접근이 아니라, 인간과 AI의 창작이 공존하는 새로운 생태계에 적합한 법적 조정이다. 표현의 자유는 기술 앞에서 흔들려서는 안 되며, 창작자의 권리는 혁신 앞에서 방해 받아서는 안 된다. 이 두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법은 심판자가 아닌 조율자(conductor)가 돼야 한다.
AI 시대의 저작권법은 더 이상 전통적 틀을 반복하는 수동적 규범이 아니라, 인간과 기계가 함께 창출할 새로운 창작 질서의 헌법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내리는 해석과 입법적 선택 하나하나가, 다음 세대 창작자들이 누릴 자유의 폭과 깊이를 결정하게 된다. 그렇기에 법은 변화에 뒤처져서는 안 되며, 오히려 창작의 미래를 선도하는 역동적 기획자가 돼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