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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AI 트렌드] 천만 영화 시대에 대한 물음
미디어&AI 트렌드 | 등록일 : 2025-09-26

국내 영화 산업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24년에는 천만 관객 영화가 두 편이나 나왔지만 오히려 전년에 비해 후퇴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른바 영화 ‘천만 관객 시대’는 저무는 것일까? 영화와 달리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OTT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와 <귀멸의 칼날: 무한성>(이하 <귀칼>)의 흥행은 ‘어린이 장르’로 간주되던 애니메이션의 특별한 성과여서 눈길을 끈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나라에서 5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겨울왕국2>(2019), <겨울왕국>(2014), <인사이드 아웃2>(2024), <엘리멘탈>(2023), <스즈메의 문단속>(2023), <쿵푸팬더2>(2011) 등은 모두 ‘어린이적 상상력’의 서사였다.

 

<케데헌>은 2025년 9월 10일 현재 누적 시청수(시청 시간을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가 2억 9,150만에 도달해 넷플릭스 역대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케데헌>이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 세대도 열광케 한다고 보도했다. 음악과 안무가 기성세대에 익숙할 뿐 아니라 K-POP 문화를 가족이 함께 즐긴다는 의미가 컸다. 극 중 헌트릭스가 부른 ‘골든’은 빌보드와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멜론 등에서 1위를 차지했다. <케데헌>의 시청층은 해외에서 국내로, 젊은 세대에서 기성세대로 넓어지며 역주행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1)


극장판 <귀칼>은 같은 날 기준 401만 명의 관객과 네티즌 평점 9.19의 높은 성적으로 개봉 18일 차 현재까지 관객 동원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연령별 예매 분포를 보면 20대가 41%로 가장 높지만 30대(25%)와 40대(17%)를 합치면 20대를 상회한다. <귀칼>은 식인귀인 ‘혈귀’의 모습과 전투 장면에서 이미 어린이적 상상력과는 거리가 있다. 게임적 요소 역시 30~40대에게 매력적이다.

 

이 두 작품은 모두 ‘OTT 효과(사실상 넷플릭스 효과)’의 실증적 사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케데헌>이 표현하는 한국적 소재는 아직도 세계인에게 낯설겠지만, 짧은 기간 동안 대중문화 기호로 부상했다. 2019년의 <킹덤>에서 처음 선보인 갓은 이제 대중문화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콘이 됐다. 거기에 K-POP이 큰 힘을 보탰다. <귀칼>의 경우, 넷플릭스에서 공개했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2021)를 비롯해 다양한 버전의 사전 시청이 이번 극장판을 밀어올린 힘이라 할 수 있다. 일본문화 또는 애니메이션 마니아층에서나 열광했던 <귀칼>이 널리 알려지는 데 OTT가 교두보가 된 것이다.

 

팬데믹이 만든 영화관 캐즘2)


OTT 효과는 코로나19가 가져온 성벽 쳐진 세계(walled world)를 계기로 대중문화 지형에 역치(threshold)의 순간을 만들어 냈다. 2022~2023년 다소 회복세를 보이던 영화 관객 수는 지난해 다시 꺾이면서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2019년 전 세계 영화 관객 수는 약 73억 명에 425억 달러(약 59조 2,700억 원) 규모였지만, 2023년 332억 달러(약 46조 3,000억 원)를 찍고 오히려 후퇴하는 양상이다.3)

 

유럽시청각연구소(European Audiovisual Observatory)가 올해 5월 칸 영화제에서 발표한 보고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영화 티켓 판매량은 약 48억 장으로, 2023년보다 5억 장 정도 감소했다. 이는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연간 관객 수가 감소한 것이다. 2024년의 관객 수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교했을 때 약 68%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가 시작되던 2020년 상반기는 2005년 이후 최악의 관객 수를 보였다. 영화진흥위원회 보도자료에 따르면, 전년 동기간과 비교해 7,690만 명이 줄어든 3,241만 명(전년 대비 70.3%)을 기록했다. 매출액으로 보면 2,738억 원으로 70.6%가 줄어든 수치다. 코로나19 이후에도 2019년 대비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2024년 국내 영화관 총 관객수는 1억 2,313만 명으로 2017~2019년 평균 관객 수 대비 55.7% 수준이다. 2023년에 비해서도 관객 수는 1.6%, 매출액은 5.3% 감소했다.

 

[표]는 최근 5년간 한국 영화시장 극장 매출 및 관객 수 추이를 보여준다. 2022년부터 회복되고 있지만, 분야별로 코로나19 이전 대비 적게는 25%에서 많게는 52% 정도 부족한 실적을 보인다. 2024년은 천만 영화가 두 편이나 나왔음에도 오히려 전년에 비해 후퇴하는 양상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회복률이 특히 더디다. 2024년은 2019년 대비 미국은 73.3%, 일본이 90.6%, 프랑스가 95.2%, 영국이 79.3%, 독일이 93.4% 회복했으나, 한국은 62.4% 회복하는 데 그쳤다. 디지털과 OTT, AI 혁신이 거셀수록 기성 미디어는 힘을 쓰지 못한다.

 

‘OTT 천만 관객’의 시대

 

그래서인지 이른바 영화관 ‘천만 관객 시대’가 저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는 2003년 개봉한 <실미도>다. “32년을 숨겨온 진실”이라는 카피에서 보듯,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상처를 자산으로 하는 서사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 <왕의 남자>(2005), <괴물>(2006) 등도 <실미도>의 여세를 이어받은 천만 작품이다. 억눌려 있던 한국적 서사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합작한 시장 규모다.

 

인구 규모로 환산해 볼 때, 우리의 천만 관객은 미국에서 7,000만 관객에 버금가는 영화를 뜻한다. 1억 3,500만 명으로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타이타닉>(1997)에서 7,170만 명의 <슈렉 2>(2004)까지의 규모다. 그 사이에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 <아바타>(2009),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스타워즈1: 보이지 않는 위험>(1999), <어벤져스>(2012), <쥬라기월드>(2015), <블랙팬서>(2018), <다크나이트>(2008) 등이 포진해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 천만 관객 시대의 몰락을 예측하지는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형 역사물에 반응한다. 하지만 영화관으로 가는 발길이 전반적으로 줄어들었음은 분명하다. 이유가 중요하다. 전문가들의 진단을 모아보면, △티켓 가격의 대폭 상승(코로나19 이후 몇 년 사이에 영화 티켓 가격이 많게는 50% 인상됐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불투명한 노동의 미래, △극장 외 영화 관람 증가(대표적으로 OTT), △유튜브, 틱톡, 웹툰, 웹소설 등의 약진과 숏폼 콘텐츠의 소비 등이 꼽힌다.

 

필자는 ‘OTT 천만 관객(글로벌 1억 관객)’을 그 원인으로 꼽고자 한다. 2019년 <킹덤> 이후 해마다 OTT 천만 작품이라 할 시리즈물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급스러운 양질의 TV(quality TV) 또는 영화적 TV(cinematic TV) 시리즈의 소비는 가장 부각되는 대중문화 현상이다. 영화평론가들조차 영화와 시리즈를 혼동할 정도로 드라마 문법으로 만들어진 OTT 시리즈물이 빠르게 영화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OTT 시리즈는 시청자의 영화적 갈증을 해소하는 강력한 대체물이다.

 

OTT 다큐멘터리와 예능 장르도 시청자들을 매혹하고 있다. 이들 장르는 허구적 서사가 아님에도 영화적 고급스러움으로 유사한 효과를 낸다. 미디어 수용 연구4)에 따르면, 영화나 드라마 같은 허구적 서사뿐만 아니라 사실성을 추구하는 서사 역시 수용자의 감정적 인지적 반응을 일으키는 도취(transportation)가 발생한다고 보고한다.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2023)와 그 후속작인 <나는 생존자다>(2025), <피지컬: 100>(2023),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2024) 등은 사회적 의제와 유행, 소비 등으로 이어지면서 문화 향유의 새로운 일상을 만들고 있다.

 

OTT가 만든 21세기 ‘합의된 서사’ 형식

 

2010년을 경계로 미디어 산업계는 지상파나 유료방송을 레거시 미디어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원격으로(tele) 동영상을 수신하는(vision) 서비스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TV 이후(after TV)의 텔레비전’, ‘영화 이후(after cinema)의 영화’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전자는 일명 포스트 TV를 거쳐 글로벌 스트리밍으로5), 후자는 서사적 줄거리보다 정신분산적인 이미지 생산6)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둘을 자극하고 또 한 곳으로 수렴하게 만든 것이 OTT다. OTT는 이 시대의 합의된 서사(consensus narrative)를 담는 대표적인 미디어 형식이다. 합의된 서사란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받아들이는 지배적인 이야기 또는 그 해석을 말한다.7) 당대의 합의된 서사는 당대의 지배적인 미디어 형식으로 그 이야기를 담아왔다. 호머(Homer) 시대의 구전, 소포클레스(Sophokles)와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시대의 연극,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시대의 소설, 20세기 무성영화와 유성영화, 그리고 텔레비전 네트워크에서의 TV 드라마, 그리고 마침내 오늘날의 OTT 서사극이 있다.

 

오랫동안 불륜의 이야기를 써 온 TV 드라마는 OTT에 이르러 전래의 서사(epic)와 극 형식을 합친 서사극(epic drama)에 합의의 자리를 내주고 있다. <킹덤>, <오징어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D.P.>, <카지노>, <더 글로리>, <무빙>, <파친코> 등 성공적인 OTT 시리즈는 선악의 모호성, 생존, 음모와 복수, 공동체의 구원 등을 그리는 영화적 TV의 서사극이다. 역사·문화적 배경이 다른 전 세계인들도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적 TV 시리즈다.

 

20세기 미디어는 OTT로 인해 새롭게 재매개(remediation)된다. 과거 가족 매체였던 라디오가 TV의 등장으로 개인 매체가 된 것처럼, 이제 TV는 기성세대의 미디어로, 영화는 특수한 시청각적 쾌락의 미디어로 재매김된다. OTT 효과는 서사의 내용과 형식 모두에 작동해 미디어와 대중문화 지형을 근원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1) 김경윤, <더 단단해진 ‘혼문’…넷플릭스 1위 ‘케데헌’ 누적 3억뷰 눈앞>, 연합뉴스, 2025.9.10, https://www.yna.co.kr/view/AKR20250910034400005

2) 캐즘(chasm)이란 새롭게 개발된 제품이나 기술이 시장 진입 초기 성공한 뒤 대중화되기까지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되는 현상을 말한다. 편집자 주

3) 김성희, <불확실성과 가능성의 공존: 2024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 요약 분석>, 《한국영화》, 2025.2, https://magazine.kofic.or.kr/webzine/web/2611/pdsView.do

4) Green, M., Chatham, C., & Sestir, M.(2012), <Emotion and transportation into fact and fiction>, Scientific Study of Literature, 2(1), pp.37-59

5) Spigel, L. & Olsson, J.(2004), 《Television after TV: Essay on a medium in transition》, Duke University Press

6) Pedullà, G.(2012), 《In broad daylight: Movies and spectators after cinema》, Veso

7) Thorburn, D.(1987), <Television as an aesthetic medium>, Critical Studies in Mass Communication, 4(2), pp.161-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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