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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앞두고 있는데 마음이 복잡합니다. 기자로서의 열정은 여전하지만, 그 사이 조직은 많이 바뀌었고 내 자리가 여전히 남아 있을지 걱정됩니다. 돌아가면 어느 팀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 잘 버텨낼 수 있을지도 막막하고요.
익명의 기자
안녕하세요? 덜컥 원고 수락을 해놓고 막상 답변을 쓰려니 걱정이 됩니다. 일과 육아는 제게도 여전히 고민인데 후배님의 고민에 섣부른 조언을 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저는 올해 18년 차 기자입니다. 두 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습니다. 큰 아이가 중1이 됐으니 육아도 어느새 14년 차입니다. 두 번의 육아휴직을 했고 사회부, 경제부, 문화부, 정책사회부, 뉴콘텐츠팀 등 다양한 부서를 거쳤습니다.
두 달 전 정치부 데스크로 이동했는데 문득 깨달았습니다. 만 17년간 일하면서 이제 안 해 본 부서가 국제부, 스포츠부만 남았더라고요. 다양한 호기심이 있어서는 아니고요. 육아휴직 후 복직 때마다 ‘빈자리’로 복귀하면서 다양한 부서를 경험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복직 때마다 제가 원하는 부서에 갈 수가 없었거든요.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회사 내에서 지망하는 부서는 다들 비슷비슷했고 저는 다른 조건도 살펴야 했습니다. 아이가 있으니 적어도 퇴근 후 육아가 가능한 곳이어야 했던 거죠. 또 아이는 인사철에 맞춰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에 원했던 부서에 자리가 남아 있지 않다면 복직 때는 빈자리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죠.
그래서 고민을 남겨준 후배님의 막막함이 와 닿았습니다. 복직을 앞두고 있으면 정말 마음이 복잡하죠. ‘회사에 내 자리는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돌아가서 아이가 없던 시절처럼 일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요.
13년 전,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냈던 날이 생생합니다. 아이는 낯선 선생님들에게 잘 갔는데 오히려 아이를 떼놓은 제가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어린이집을 뒤로 하고 울면서 집에 돌아가던 길 ‘과연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을까’ 생각했죠. 그 질문은 아이를 키우는 내내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계속 일할 수 있을까. 일도, 육아도 잘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일을 유지하는 것이 맞을까. 나는 왜 일을 하는가.
힘들 때마다 ‘멀리 보세요’
여전히 또렷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많이 편해졌습니다. 어린이집에 갔던 작은 아이는 이제 혼자 지하철을 타고 다닐 수 있는 중1 학생이 됐어요. 두 달 전 정치부로 이동한 것도 아이가 많이 커서 가능했을 겁니다. 육아와 돌봄 환경은 가정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아이가 크니 확실히 손이 가는 육아는 줄어들더라고요.
가끔 아이를 키우는 후배들에게 ‘멀리 보라’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육아는 아이가 클수록 수월해지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아서요.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아이가 36개월을 지날 때, 여섯 살이 됐을 때, 지옥의 초등 1학년을 지나 2학년이 됐을 때 훨씬 수월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지난해 둘째가 초등 2학년이 되면서 ‘이제는 정말 아이 없던 시절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고요.
육아도 인생의 여러 일들처럼 계단형 같아요. 터널 속에 있는 것 같지만 문득 뒤돌아보면 한 단계 오르듯 아이도 크고 저도 수월해졌더라고요. 그러니까 멀리 보세요. 쉽게 지치지 마시길. 아이들은 계속 자라고 육아는 계속 수월해집니다. 요즘은 돈 버는 것도 육아였구나 싶기도 해요. 아이들이 본격 교육기로 들어가니 만약 중간에 일을 그만뒀다면 한편 답답했겠구나 싶거든요. 100세 시대라는데 그중 30대의 10여 년은 어쩌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일 수도 있고요.
물론 터널 속에 있는 것 같을 때는 일을 그만둘까 고민했어요. 2010년대에는 지금보다 제도 정비도 덜 됐었고 사회의 인식도 그랬죠.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다쳤다는 전화가 와도 부장에게 급히 가봐야 한다고 말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유난스러운 ‘엄마 기자’로 인식되는 게 싫어서 더 고집을 부렸는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는 엄마가 보는 것이 제일 좋다’라는 말을 들을 때는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가 고민하기도 했고요. 사실 칼퇴근이 어려운 직업, 어느 정도 자기 시간을 쏟아야 하는 직업을 선택해 놓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려는 건 욕심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처럼 ‘경력 단절 여성’이 되는 것이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은 아닐까 고민하기도 했죠.
그런데 여러 번의 위기를 넘어 여전히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취재하는 이 일을 놓지 못해서라고 생각해요. 기자라는 직업에도 여러 가지 업무가 있잖아요. 사람을 사귀고 취재를 하고 스트레이트 기사를 작성하고 또 기획 기사를 구상하는 등등. 저는 취재하는 일이 좋습니다. 새로운 사안을 알아가며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요. 저연차 때는 기자라는 직업이 나에게 맞는 건지 불안해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 업의 근본 속성을 몹시 좋아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만두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키우는 중간중간 이게 최선인가 싶을 때마다 따져봤어요. 만약 일을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후회하게 되면 아이를, 가족들을 원망할 것 같았어요. ‘후회는 하지 않고 싶다’라는 생각이 일을 유지하는 원동력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편 아이 엄마가 된 이후에도 저는 하루의 3분의 1은 저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했어요. 하루 8시간 노동을 통해 자신의 이름으로 사는 삶이 쉽지 않은 세상에서 제 이름을 지켜내고 싶었습니다. 남편이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도 행복하지 않다’라고 힘을 불어넣어준 것에도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은 저 자신으로 살아가는 시간을 놓지 않은 것이 매우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커리어를 쌓아가야 할까
입사 이후 제가 커리어를 잘 쌓아왔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자주 헤맸고 또 망설이고 고민하던 시기도 길었어요. 다만 어떤 부서를 가든 그 부서에서 써야 할 좋은 기사가 무엇인지 열심히 고민했다고 자부합니다. 돌아보니 오히려 그렇게 일해온 것이 제게는 주효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기자는 기본적으로 ‘제너럴리스트’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는 전문가와 다르죠. 전문가를 취재해, 스트레이트 현안을 순발력 있고 능동적으로 판단해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소식을 빠르게 전하는 직업입니다. 저는 그에 잘 맞는 편입니다. 다양한 현안에 관심이 있고 순발력이 좋은 면이 일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지금도 현안을 능동적으로 취재하는 기자가 되고 싶어요. 좋아하지 않거나 유난히 어려워하는 분야를 맡았을 때도 이런 태도는 견지하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원하지 않았던 부서였지만 막상 가서 일하다보니 배우는 점이 많은 것은 어느 부서나 같았어요. 둘째를 낳고 저는 산업부로 배치받았는데요. 산업 이슈에 관심이 적어서 산업부에서 전자, 통신, IT 담당으로 일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그러나 산업부에서 일해보지 않았다면 과연 반도체, 전자, 통신, IT 산업의 중요성을 스스로 공부했을까 가끔 생각합니다. 정책사회부에서 노동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도 산업부 경험이 중요했구나 생각한 적이 많았어요. 산업의 논리를 모르고 노동계의 논리만 고민하다보면 한쪽으로 치우치기 쉽고 또 산업의 논리를 알아야 정말 중요한 노동 현실을 발라낼 수 있구나 깨닫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다양한 부서를 해본 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교과서 같은 말이지만 사실 어느 부서든 자기가 열심히만 한다면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이죠. 지난해 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청소부인 주인공은 아무도 살펴볼 것 같지 않은 공원 화장실의 세면대 아래까지 꼼꼼하게 닦아냅니다. 그 일상을 반복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업’이란 무엇인가 생각했어요. 아무도 보지 않는 곳까지 닦아내는 것이야말로 일의 본질 아닐까. 여전히 덤벙덤벙하는 저는 그런 태도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90%만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제 스스로를 위해 120%를 목표로 하는 삶요. 누구에게 보여주거나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120%요.
물론 아이를 키우면서는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했어요. 아이들이 한참 어릴 때는 밤늦게까지 스트레이트 상황이 벌어지는 곳에서 일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으니까요. 그 시절엔 늘 동동거리며 일해, 그때의 제가 대견했다는 생각도 가끔 합니다. 그렇지만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어요.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저는 한편 세상을 깊게 보게 된 것도 같거든요.
너무 뻔한 답을 드리는지 모르겠어요. 일을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회사마다 조직 문화가 다르기에 일률적으로 결론을 내릴 순 없지만 자신의 답은 어차피 자신밖에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기자가 되고 싶은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자주 질문을 던져보시길 바랍니다. 조직의 답도 중요하지만 결국 자신의 답으로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40대가 되어 여유로워진 저는 이제 좀 더 제가 잘하는 방향으로 일을 해 나가자 생각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많이 큰 만큼 저도 여유가 생겼고 일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도 늘었으니까요. 그래서 지난 10여 년의 시간이 저를 많이 키웠구나 생각도 합니다.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육아처럼, 일에 대해서도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하고요.
마지막으로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혼자 감당하지 말라’는 겁니다. 육아는 부부 공동의 몫입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체계를 능동적으로 짜야 엄마가 지치지 않을 수 있어요. 사회에서 설정한 기본값이 여성에게 쏠려 있기에 항상 능동적으로 체계를 짜야 합니다. 저는 사실 그 부분이 늘 너무 빡쳤(?)는데요. 머리를 긁적거리며 ‘그래도 늘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있어’라는 표정을 보였던 남편 덕분에 힘을 냈습니다. 이제는 명실상부 제가 가정의 ‘부장’(?)이 됐습니다. 제가 가정의 일을 계획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니 ‘부원’인 남편에게 실무를 더 많이 넘겼어요. 어느 정도 균형을 찾은듯합니다.
함께 돌보고 함께 일하는 사회가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모습이라는 걸 아이를 키우면서 더 많이 체감하실 거예요. 어떤 면에서는 계속 일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여성이 싸워나가는 전선이라는 생각도 해요. 여성의 고용률 지표, 성별 임금 격차 지표 등에서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할지 모르지만요.
무엇보다 육아를 이유로 일을 그만두지 않은 건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그만둔다고 해도 그건 적어도 스스로 선택한 결과였으면 하거든요. 떠밀려서 그만두고 후회하는 삶은 다들 원치 않잖아요. 어떤 때는 버틴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일을 하며 뿌듯한 순간들 덕분에 하루하루 지나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마운 선배들의 응원, 소중한 동료들의 지지, 그리고 좋은 기사를 봤다는 취재원과 독자들의 칭찬들이 모인 순간들이 지금의 저를 이끌어왔을지도요. 후배님의 복직 이후도 그런 순간들이 많이 채워지길 응원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