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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리뷰] 북리뷰 《저널리즘/리얼리즘》
미디어 리뷰 | 등록일 : 2025-10-31

《저널리즘/리얼리즘》 ⓒ광문각출판

 

《저널리즘/리얼리즘》 출간 두어 달 전에 먼저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저자인 김정훈 CBS 기자의 서평 작성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침 윤석민 서울대 교수님과 공동으로 저술한 《저널리즘 연구》 출간 직후였는데, 우리 책과 유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저서라는 점에 호기심 반, 반가운 마음 반으로 서평 요청을 수락했다. 저널리즘을 연구하며 늘 접해 왔던 일반적인 이론서와 달리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문체로 쉽고 다정하게 다가오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20여 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자 생활에서 겪은 모든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고 싶은 저자의 마음이 문장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편집국 한편에 마주 앉아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널리즘 현실에 대한 진지하고 솔직한 고백

 

이 책은 저자가 처음 언론에 발을 들여놓게 된 출발점에서 시작해,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단상, 저널리즘 원칙의 실천과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갈등, 좋은 글쓰기의 조건, 언론 독자에게 건네는 제언, 그리고 저널리즘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까지 차분히 훑는다. 저자의 문장은 설명에 앞서 장면을 먼저 불러온다. 언뜻 저널리즘과 무관해 보이는 풍경, 일화, 역사적 에피소드로 시작해 독자의 호기심을 연 뒤, 현저성·사실과 진실·편향·동조·공명 등 저널리즘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저서 전반의 글쓰기에서 가벼운 수필과 묵직한 가치와 규범이 담긴 이론서를 넘나드는 자유분방함을 보여준다. 기자를 꿈꾸는 학생, 매일 뉴스를 통해 세계를 읽는 시민, 그리고 저널리즘을 연구하는 학자까지 다양한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 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따뜻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저자가 저널리즘 현실을 마주하고 이를 서술하는 자세가 한없이 진지하고 솔직하기 때문이다. 취재와 게이트키핑, 데스킹, 그리고 편집 과정을 거쳐 뉴스가 생산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묘사하는 것은 물론, 그 안에서 기자 개인의 마음이 흔들리는 지점을 숨기지 않는다. 이처럼 정직한 화법은 저널리즘 규범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라 짐작한다. 규범과 윤리는 거창한 선언보다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균열을 먼저 감지하는 섬세함에서 시작되는 것이므로. 이런 지점에서 이 책은 저자의 진솔한 고백인 동시에 저널리즘 현장의 실천을 견인하는 규범의 언어이기도 하다.

 

팩트와 진실 사이의 거리

 

학술적 언어로 저널리즘을 이야기하다 보면, ‘개념’이 현실을 앞지르는 순간을 종종 만나게 된다. 현저성, 객관성, 진실, 편향 등의 단어들은 저널리즘 연구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개념들이다. 하지만 그 단어들이 현장의 결을 덮어버리면, 이론은 쉽게 경구가 되고, 경구는 공허한 구호가 된다. 《저널리즘/리얼리즘》은 그 순서를 뒤집어서 보여준다. 가치와 규범, 개념으로 저널리즘을 정의하고 논하기에 앞서, 세상이 어떻게 기자의 손끝에서 하나의 뉴스로 변하는지부터 보여준다. 

 

취재원에게 전화를 걸어 첫 문장을 꺼내는 순간의 망설임, 두 번째 통화에서 미묘하게 달라지는 톤, 기사의 맥락을 바꾸어 놓는 부제 한 줄의 무게. 이 작은 장면들이 모여 ‘팩트’와 ‘진실’ 사이의 거리를 조율한다. 그리고 그 거리야말로 우리가 ‘책임’이라고 부르는 것의 실제 길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킨다.

 

이론과 현장의 접점에 절묘히 놓여 있어

 

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저널리즘 교육에서 다루는 이론적 틀과 저널리즘 현장의 실천이 만나는 접점에 놓여 있다. 학계에서는 ‘제도–규범–실천’의 상호작용으로 저널리즘을 설명하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설명이 현장의 작은 습관들로 얼마나 설득력 있게 뒷받침될 수 있는지, 동시에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다시 확인했다. 이 책은 현장에서 당장 쓸 수 있는 언어로 저널리즘의 규범을 번역한다.

 

저자는 개념의 정밀함을 요구하면서도, 사람과 조직이 수용할 수 있는 속도로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개념적 원칙을 편집국의 일상에 맞물려 이해할 때 비로소 규범이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원칙은 지식이 아니라 실천이 되고, 학문과 현장은 서로를 바로 세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앞서 언급한 책, 《저널리즘 연구》가 전하려는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무엇보다 반가운 점은, 언론의 실패담을 자극적으로 나열해 독자의 피로감을 키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기자 개인과 조직, 제도와 산업, 기술의 접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현실적인 눈높이에서 제시한다. 자극적 트래픽을 밀어내고 고유한 분석의 시간을 확보하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포털·플랫폼·뉴스 조직 간 책임과 권한을 어떻게 재배분할 것인지, AI와 자동화가 ‘속도’가 아니라 ‘정확한 맥락’을 돕게 하려면 어떤 안전장치가 필요할지 등, 해법의 구조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해답이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라는 최소한의 출발점을 독자에게 제시하는 태도가 이 책을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한다.

 

목차를 따라가 보면, 언론사 취업 준비의 현실(‘채용 경험자가 전하는 언론사 입사 꿀팁’), 뉴스 판단의 기준(‘현저성부터 높여라’), 민감한 사건을 다루는 취재 윤리(‘세월호, 80년 광주’), 인지 편향과 알고리즘 환경에서의 보도 기준(‘확신을 의심하라’, ‘알고리즘 세상 언론의 새 기능’), 출입처 운영과 취재원과의 관계, 수익 모델과 기술 협업까지, 기자들이 매일 부딪히는 문제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다. 마지막 장들은 독자 관계의 재설계, 수익 모델, 기술과의 상생을 ‘지금 당장 바꿔볼 수 있는’ 실무 문항으로 묶어, 원칙을 실행으로 연결하는 길을 보여준다. 책의 구조 자체가 저자의 지난 고민과 현재의 실험, 앞으로의 과제를 한자리에 놓은 지도처럼 보인다.

 

이 책은 ‘직접 현장에 가는 일’이 기자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원칙임을 다시 상기시킨다. 또한 사회가 진짜로 궁금해하는 것과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을 끝까지 묻는 태도, 즉 질문할 수 있는 역량이야말로 기자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확인한 사실로 공론장을 밝히고,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회복할 때, 기자라는 직업의 가치와 매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메시지는 위축된 기자들에게 보내는 응원에 가깝게 느껴진다.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질문하는 용기와 확인된 사실의 힘을 믿는 한, 우리는 더 나은 사회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저자의 확신이 느껴진다.

 

저널리즘의 힘은 수사가 아닌 현장에서 나와

 

《저널리즘/리얼리즘》의 마지막 키워드는 ‘마키나 문디(machina mundi, 세계 기계)’이다. 자판기같이 자명한 원칙에 의해 움직이는 마키나 문디는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와 세상, 우주를 관통하는 법칙도 발견하기 힘들다. 인간다운 세상을 위해서는 여전히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들고, 비합리적이고, 때로 부조리한 세상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사회는 단일한 원리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 서로 얽히고 변하는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권리 배분과 책임 추궁의 틀에 머무는 정의를 넘어, 신뢰를 회복하고 공동의 삶을 작동하게 하는 ‘공의(公義)’로 나아가자고 제안한다. 공의는 절차의 공정성과 약자의 참여, 맥락을 세심히 살피는 배려,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감당하는 책임의 윤리를 포함한다. 이 전환은 언론에도 동일하게 요구된다. 결론을 먼저 정해놓고 사실을 끼워 맞추는 대신, 현장에서 확인한 사실과 정직한 질문으로 공론장을 열고, 갈등을 ‘승패’가 아니라 ‘회복과 개선’의 방향으로 이끄는 저널리즘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이 책은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결국 《저널리즘/리얼리즘》은 이상적 규범으로서의 저널리즘과 현장에서 마주치는 리얼리티의 경계를 슬래시(/) 하나로 잇는 책이다. 이 책은 거창한 선언을 반복하지 않는다. 대신 좋은 글쓰기, 오보를 막기 위한 기자와 데스크의 밀당, 취재원과의 소통, 출입처와의 불가근불가원의 긴장감 유지 등의 구체적 실천을 제안한다. 현장의 실천을 통해 원칙이 절차가 되고, 절차가 습관이 돼 조직의 일상이 되는 길을 보여준다. 저서 곳곳에 배치된 현실적 제안들은 이상을 공허한 구호로 놓아두기보다 ‘지금 여기’의 작업으로 바꾸는 장치가 되고, 독자는 이를 따라가며 취재와 편집, 조직의 규범을 숙고해 볼 수 있다. 책을 덮으면서, 저널리즘이 다시 움직이는 힘은 거창한 기술이나 격한 수사가 아니라 현장의 실천에서 나온다는 (《저널리즘 연구》를 통해서도 강조한 바 있는) 단순한 진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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