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강형원 기자는 1975년 한국을 떠나 30년 넘게 미국 주류 언론사 기자, 편집자로 활약하며 퓰리처상을 2회 수상했다. 은퇴 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강 기자를 만나 우리 언론에 전하고 싶은 말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강형원 기자를 상징하는 이력은 ‘한국계 최초 퓰리처상 수상자’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받았다. 기자 경력 대부분을 LA타임스, AP통신, 로이터통신 같은 유명 매체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하며 쌓았다. 그래서 한국 기자들에게는 귀에 익은 이름일 수도 있다. 어쩌면 어떤 야심 찬 기자에게는 막연한 선망의 대상이었을 수도 있다. 몇 해 전에는 <유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해 언론계뿐 아니라 온 국민에게 이름을 알렸다. 한국 나이 64세. 은퇴했지만 여전히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한국과 미국을 오간다. 이제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가 공식 직함이다. 마침 재외동포청 한인 언론인 초청 행사로 한국을 찾은 강형원 기자를 만났다. 베테랑 기자는 왜 한국을 찾았고, 지금 우리 언론에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을까?
두 번의 퓰리처상이 증명한 ‘진실의 목격자’
Q. 현업을 떠났음에도 여전히 바쁘신 것 같다. 이제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
A. 평생을 기자로 살았으니, 기자라고 불리면 가장 좋겠다. 프리랜서 기자다. 실제로 은퇴 후 더 바빠졌다. 언론사에서 일할 때는 퇴근하면 개인 생활이 있었다. 지금은 일주일에 7일 언제든지 취재할 게 있으면 움직인다. 내가 알아서 일을 찾아야 하니 오히려 더 바쁘다.
주기적으로 들어오던 봉급이 없어 한계는 있다. 최근 외부 강연을 많이 한다. 강연료가 취재비가 된다. 모자라면 자비를 들여 계속 취재한다. 기업이나 정부에서 지원을 받으면 독립성을 지키기 어렵다. 계속 자비로 취재할 것이다.
강 기자는 일간지였던 UCLA 학보사를 시작으로 LA타임스, AP통신, 그리고 로이터통신을 거쳐 43년을 사진기자로 일했다. 이때 LA타임스에서는 LA 폭동 당시 한인타운 총격전 사진(1993년)으로 AP통신에 있을 때는 백악관을 출입하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스캔들 사진(1999년)으로 퓰리처상을 두 번 받았다. 더불어 한국계 최초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당연히 보도사진, 포토 저널리즘에 대해 들어볼 말이 많을 것이다.
Q. 미국에서 사진기자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한국과 미국 언론이 사진을 쓰는 방법이 다른가?
A. 한국 언론은 포토 저널리즘을 모른다. 모르니까 활용하지 못한다. 현실에서 보도사진은 뉴스의 얼굴이자 화두다. 보조자료가 아니다. 나중에 뉴스 내용은 생각 안 나도, 한번 보고 잊어버릴 수 없는 장면, 순간의 시각적인 정보를 남기는 것이 포토 저널리즘이다. 한국 언론에서는 보도사진이 가진 이 강력한 힘을 써먹지 못하고 있다. 그냥 헤드라인이나 기사 내용을 뒷받침하려고 사진을 쓴다.
미국에서는 달랐다. LA타임스에서 1면 사진부장을 했을 때의 이야기다. 거기서는 1면 사진이 정해져야 편집이 시작됐다. 기자들이 기사에 대해 보고하면 편집국장은 “어떤 사진이 있느냐?”부터 묻는다. 만약 마땅한 사진이 없다면 편집국장은 “사진이 준비된 후 얘기하자”라고 기자를 돌려보낸다. 사진이 없으면 뉴스도 없었다. 기사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임팩트 있는 사진이 없다면 기사는 나가지 못했다. 사진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신문을 만들었던 것이다.

Q. 그럼 어떤 사진이 좋은 사진인가?
A. 명확하다. 첫 번째는 ‘새로운 것(Something New)’이어야 하고, 두 번째는 ‘그래서 무엇이 변했는가(What Changed?)’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는 사진은 텍스트의 도움 없이도 독자의 시선을 강력하게 붙잡는다. 오직 사진 한 장으로 시대의 변화를 증명해 내는 것, 그것이 포토 저널리즘이 가진 본질적인 힘이다.
2024년 개인적으로 DMZ를 방문했다. 판문점 너머 개성공단 인근 시설물이 대거 철거되고 있었다. 그때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건물만은 멀쩡했다. 나는 남북 관계 개선을 기대하며 남겨둔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오늘 판문점에서 이 종합지원센터가 철거되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 자리에 뭔가 새로운 게 들어가겠구나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공사 현장이겠지만, 내 눈에는 명백한 ‘뉴스’로 읽혔다. 어제까지 존재하던 건물이 사라진다는 것은 지금 남북 관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실증적 증거다. 종합지원센터가 허물어진 빈자리에 무엇이 들어설 준비를 하는지, 그 변화의 찰나를 포착하는 것이 바로 사진기자의 숙명이다.
인터뷰가 진행된 날, 그는 재외동포청이 초청한 동포 언론인들과 함께 판문점을 방문했다. 공식 취재 일정이 아니었음에도 강 기자는 대포만 한 카메라를 메고 가 기어이 철조망 너머 북녘 땅의 변화를 프레임에 담아냈다. 결국 좋은 사진이란 관찰자가 현장에서 발견한 ‘새로움’에 ‘변화의 의미’라는 숨을 불어넣어, 독자를 시각적으로 설득해 내는 치열한 고민의 산물인 셈이다.
Q. 좋은 사진은 어떻게 찍을 수 있나?
A. 글 잘 쓰는 기자들은 짧게 써도 할 얘기 다 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사진 한 장 가지고 핵심을 전달해야 한다. 그것이 사진기자의 능력이다. 초년생들은 여러 장으로 보여주려 하지만, 완숙한 경지에 이른 기자들은 사진 한 장으로 할 얘기를 다 한다. 덧붙여, 보도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가올 미래를 찍는 것’이다. 포토 저널리즘은 멈춰 있는 상황을 촬영하는 게 아니다. 멈춰 있는 상황을 봤을 때는 이미 그 상황이 끝난 시점이 된다. 항상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촬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겠구나’를 논리적으로 예측해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아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한 번 배워서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다. 운동선수가 며칠 운동해서 올림픽 못 나가듯, 포토 저널리즘은 매일매일 훈련해야 한다. 눈도 훈련하고, 논리도 훈련하고, 지식도 훈련해야 한다. 이걸 꾸준히 오래 해야 한다. 훈련 없이는 안 된다.
강 기자가 현역일 때와는 미디어 환경이 많이 변했다. 특히, 지금 AI가 언론에 미치는 영향력은 가히 파괴적이다. 뉴스 생산 단계에서부터 AI의 힘을 빌리고 있다. 이런 새로운 방식은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경영상 어려움에 직면한 매체들은 좋은 사진을 어렵게 찍으려 하기보다 AI로 쉽게 만들려고 한다.
AI가 만든 것은 사진이 아니다
Q. 요즘 한국에서는 AI가 만든 ‘사진’을 기사에 많이 사용한다.
A. 그건 사진이 아니다. 그냥 그래픽 자료라고 해야 한다. 절대 사진이라고 하면 안 된다. AI 시대일수록 언론이 이런 조류에 편승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기사와 사진은 현실의 증거다. 고품질 자료다. 언론은 기자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직적 검토를 통해 역사적인 가치를 꾸준히 만들어 내는 시스템이다. AI는 기본적으로 온라인에서 유사한 자료를 찾아 답한다. 오리지널 콘텐츠가 부실하면 답도 부실할 것이다. 후세에 도움이 되려면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드는 언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언론이 만드는 정확한 기사가 줄어들면, AI는 쓰레기에서 쓰레기를 건져 올 것이다.
독자의 시선을 잠시 끌기 위해 AI로 만드는 그래픽은 그래서 위험하다. 언론의 신뢰도와 연결된다. 여전히 이미지의 힘은 강력하다. 독자들은 이미지를 보고 기사를 클릭한다. 그런데 그 이미지가 진실성이 없다면? 낚시였다면? 독자들은 배신감을 느낀다. 찾아간 식당이 불친절하면 다음에 또 안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독자의 발길을 끊게 만드는 행위다. 공들인 사진으로 독자들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또 기사를 읽는다. 그래야 멀어진 독자가 다시 돌아온다.
강 기자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났다. 그의 진단은 매서웠지만, 그 이면에는 평생을 미국 주류 언론인으로 살면서도 고국을 잊지 않았던 애정이 깔려 있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고, 그곳에서 저널리스트로서 정점에 올랐던 그가 왜 은퇴 후 다시 한국을 찾는 것일까?
영어권 지식 세계 중심에 한국을 심다
Q. 프리랜서 기자로서 요즘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 것 같다. 이유가 있나?
A. 영어로 한국을 ‘스토리파이(storify)’하는 것을 은퇴 이후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기자로서 미국에서 하고 싶은 걸 다 해봤다. 저널리스트로서 얻은 경험과 능력으로 한국을 영어 지식 세계의 중심으로 가져가는 일을 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포토 저널리즘 방식으로 한국 문화와 역사가 담긴 사진을 찍어 영어로 스토리를 덧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영어로 이야기가 붙여진 사진을 통해 전 세계인이 한국 문화와 역사를 만나는 것이다.
AI 시대다. AI가 질문에 답할 때 가장 많이 유통되는 언어인 영어, 그리고 현상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을 근거로 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관련한 사진과 영어로 된 스토리는 한국과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 중요한 자료다.
그동안 이런 자료가 부족했던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그래서 이런 작업에 몰두하고 있고, 얼마 전에 《한국은 선비의 나라(Seonbi Country Korea)》를 펴냈다. 1987년과 1988년 한국에 머물며 취재한 순간들을 모은 사진 다큐멘터리 책 《민주화의 현장: 6월 항쟁에서 올림픽까지》,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과 맥을 같이하는 새 책이다.
K-컬처가 화려하게 세상으로 펼쳐나가는 때다. 그래서인지 평생 보도사진을 찍어온 사진기자가 공들여 찍은 우리 문화의 생생한 모습들과 영어로 정성스럽게 달린 설명이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지금 K-컬처에 대한 세계적인 사랑은 우리 것을 세상에 제대로 뿌리내리게 하려 했던 누군가의 노력 없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 강 기자가 끝으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언로개색 흥망소계(言路開塞 興亡所係)’. 율곡 이이가 상소문에 썼던 문장이다. 우리 언론이 자유와 책임을 얼마나 잘 지켜내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는 당부다. 이 말을 왜 그렇게 꼭 전하고 싶었을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AI와 가짜뉴스의 범람 속에서 그의 쓴소리가 오늘날 더욱 뼈아프게 들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