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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7~18일, 롯데호텔 서울에서 중앙일보 창간 60주년을 기념한 글로벌 미디어 컨퍼런스가 열렸다. 글로벌 미디어와 콘텐츠 기업 리더들이 모여 변화의 시대 속 언론의 길을 모색한 이번 행사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Day 1.
뉴스의 미래, 미래의 뉴스: 지정생존자의 요건
중앙일보 글로벌 미디어 컨퍼런스 첫날, ‘뉴스의 미래, 미래의 뉴스: 지정생존자의 요건’ 이라는 주제를 관통한 단어는 단연 ‘생존’이었다. AI와 플랫폼 변화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언론이 어떻게 길을 찾고, 또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 ‘전략’, ‘혁신’, ‘기술’, ‘실전’을 키워드로 4시간 동안 여섯 개의 발표가 쉼 없이 이어졌다.
AI 시대, 어떻게 독자를 사로잡을까
전략 세션은 한마디로 ‘AI,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그리고 독자와의 직접 관계’로 요약할 수 있었다. 첫 발표자인 그레고시 피에호타(Grzegorz Piechota) INMA 수석연구원은 변화의 본질이 기술 자체가 아니라 독자 행동의 전환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검색을 통한 뉴스 접근이 줄고, 답변이나 행동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제로 클릭’ 현상이 보편화됐다는 것이다. 뉴스 유통의 가치사슬이 플랫폼 안에서 조각나고 있다는 진단도 인상적이었다. 그의 해법은 세 가지였다. 무단 사용에 맞서는 콘텐츠 보호, AI가 대체할 수 없는 브랜드 차별화, 그리고 앱이나 뉴스레터 같은 직접 유통 채널 강화. 그는 여기에 구독과 라이선싱을 병행해 “도달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소유해야 한다”라고 했다. 특히, 디지털 구독은 여전히 성장세에 있고, 젊은 세대도 지불 의향이 있다는 분석은 흔히 제기되는 뉴스 무관심, 뉴스 회피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혁신 세션에서는 후안 세뇨르(Juan Señor) 이노베이션 미디어 컨설팅 대표와 얼 윌킨슨(Earl Wilkinson) INMA 대표의 연설이 이어졌다. 후안 세뇨르 대표는 “뉴스를 정보가 아닌 경험으로 재설계하라”라며, AI가 광고와 검색 기반 모델을 흔든 만큼, 검색 유입이 전혀 없는 상황까지 가정해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기회도 강조했다. AI 답변의 상당 부분이 결국 뉴스에 의존하기 때문에, 언론이 메타데이터와 구조화된 정보를 제공한다면 라이선스 협상력과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핵심 키워드는 직접 유입, 습관화, 그리고 HUMAI-NE으로, 시작과 끝은 사람이지만, 중간 과정은 AI가 돕는 구조였다. 속보보다 정확성과 맥락을 중시하는 ‘느린 뉴스’, 그리고 ‘기자가 곧 브랜드’라는 말은 국내 언론에서도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었다.
얼 윌킨슨 대표는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거대 플랫폼에 의존하는 구조 속에서 언론의 브랜드가 얼마나 쉽게 희석되는지 환기시키며 해답은 결국 독자와 직접 관계를 맺고 브랜드 정체성을 일관되게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디지털 전환은 아직 ‘청소년기 단계’라며, 기술 자체보다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한국은 포털, 검색, SNS가 강력한 유통의 문지기였고, 이제 답 자체가 플랫폼 안에서 소비되고 있는 상황이기 떄문에, 로그인 기반의 혜택 설계, 뉴스레터 팟캐스트 정례화, 앱에서의 일상적 습관 형성 트리거가 필수라고 제언했다.
변화하는 시대에도, 뉴욕타임스의 해법은 ‘신뢰’
기술, 실전 세션에서는 변화하는 저널리즘 환경에 응전하면서 성과를 내 온 뉴욕타임스, 닛케이, 중앙일보의 구체적인 사례가 발표됐다.
한나 포펄(Hannah Poferl) 뉴욕타임스 CDO(Chief Data Officer)의 발표는 첫 문장부터 방향이 분명했다. 그는 독자를 비즈니스 수단으로 보지 않으며, 데이터 분석의 목적도 클릭이나 트래픽 확대가 아니라 저널리즘의 힘을 극대화하고 독자와의 신뢰를 강화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데이터는 기회를 가리키는 나침반일 뿐이며, 그 기회를 실제 독자 경험으로 전환하는 일은 결국 편집자와 기자의 창의성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또한 그는 흔히 말하는 ‘뉴스 소비 감소’가 절반만 맞는 말이라며, 이용자 수 자체가 급락한 것이 아니라 접근 경로가 달라진 것이라 지적했다. 웹사이트 방문은 줄고, 틱톡·인스타그램·유튜브 같은 비디오 플랫폼에서 뉴스 소비가 크게 늘었지만 수익으로 연결되지는 않고, 검색 대신 챗GPT 같은 생성형 AI로 답을 얻으면서 언론사 웹사이트 접속이 줄어드는 현실에서 뉴욕타임스는 독자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네 갈래로 전략을 재설계했다.
첫째는 틱톡·유튜브·인스타그램에서의 인지도 확대다. 과거에는 추천 트래픽이 수익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셜미디어 활용에 소극적이었지만, 데이터를 다시 보니 플랫폼 접점은 단순 노출이 아니라 관계의 출발점이었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에서 뉴욕타임스를 처음 접한 사람이 앱과 웹사이트를 거쳐 구독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이에 뉴욕타임스는 기자의 목소리를 살려 스마트폰과 간단한 장비로 부담 없이 영상을 제작하며 비디오 중심 환경으로 자연스럽게 확장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영상 덕분에 웹사이트에서 심층 기사를 읽는다”는 20대 독자의 응답은 이를 잘 보여준다.
둘째는 무료와 유료의 균형 재설계다. 과거 월 10개까지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한 것은 구독 전환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데이터는 충분한 무료 경험을 제공할수록 전환율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뉴욕타임스는 무료 기사를 관계의 시작점으로 보고, ‘뉴욕타임스에 오면 최소한 무언가를 볼 수 있어야 한다’라는 원칙을 세웠다.
셋째는 방문 습관 형성이다. 구독하지 않는 사람도 매일 앱을 여는 루틴을 만들면 플랫폼 변화에 덜 흔들린다. 이를 위해 십자말풀이, 퍼즐, 퀴즈 같은 무료 서비스와 정해진 시간대의 뉴스레터로 반복 방문을 유도했다. 이렇게 쌓인 패턴은 직접 방문과 장기적 관계로 이어졌다.
넷째는 충성 구독자의 바이럴 강화다. 추천 트래픽이 줄어든 환경에서 SNS 공유는 핵심 통로가 됐다. 뉴욕타임스는 기획 단계부터 공유 친화적 포맷과 인센티브를 설계했고, ‘올해의 책 리스트’ 같은 콘텐츠에서 높은 공유율과 신규 유입을 확인했다. 결국 ‘가장 강력한 추천자는 기존 독자’라는 진실을 소셜 설계와 결합해 다시 살아나게 한 것이다.
그는 이 네 가지 전략의 공통분모가 “더 많이 보여주기가 아니라 언제, 무엇을, 어떤 품질로 보여주느냐의 문제”라고 정리했다. 그리고 그 모든 접점을 이어주는 것은 결국 저널리즘 품질이었다. 빠르고 깊이 있는 속보, 창의적인 문화 보도, 국제 뉴스 확장은 플랫폼 밖 도달력을 높이고, 무료 경험의 매력을 키우며, 습관 형성과 공유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낸다.

뉴욕타임스의 발표는 AI가 바꿔 놓은 경로 위에서 독자와의 관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비교적 담담하지만 단단한 해법을 제시했다. 플랫폼 밖의 인지도를 통해 독자를 웹사이트로 끌어와 구독으로 전환하고, 무료 경험을 관계의 관문으로 재정의하며, 루틴 장치로 습관을 만들고, 충성 구독자의 기사 공유를 성장의 기반으로 삼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변하지 않는 상수로서 저널리즘의 품질을 놓는 것. 기술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뉴스가 독자를 이끈다는 상식이 AI시대 뉴스 전략으로 다시 강조됐다.
중앙일보, 매출 8배 올린 특급 콘텐츠는?
이번 컨퍼런스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세션은 중앙일보 김영훈 모바일서비스 총괄의 발표였다. 중앙일보는 국내 언론사 중 디지털 전환에 가장 앞서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더중앙플러스에서 다루는 주제와 글쓰기 방식 등 콘텐츠 차별화를 위한 다양한 실험을 이어왔지만, 그 성과가 구체적으로 공개된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한 경험 공유를 넘어 한국 언론이 처한 현실과 생존 전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했다.
중앙일보는 2017년 디지털 전환을 본격화하면서 아이24, 에코 같은 조직과 독자개발팀을 신설해 데이터 기반 분석·실험 문화를 도입했고, 이후 데이터팀과 마케팅팀으로 세분화했다. 중앙 애널리틱스(JA)와 중앙 어셋 매니지먼트(JAM) 같은 시스템을 구축해 기사 도달, 반응, 구독 전환 데이터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얻은 중요한 발견 중 하나는 8주 차 성과만 봐도 기사의 장기 수명을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를 근거로 성과 없는 콘텐츠는 과감히 중단하고, 가능성이 있는 콘텐츠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으로 효율을 높였다. 그러나 단순히 데이터를 쌓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었다. 김영훈 총괄은 “데이터를 잘 정제하고 메타 정보를 붙여야만 AI 시대에 쓸 수 있다”라는 점을 강조하며, 제대로 라벨링되지 않은 데이터는 아무리 많아도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2022년 10월 출범한 더중앙플러스는 이용자와의 직접 채널 복원을 핵심 전략으로 삼았다. 로그인, 앱, 뉴스레터, 팟캐스트 등 직접 접점을 강화하고, 기사를 묶음·연재·워크북·커뮤니티 같은 제품 경험으로 재구성했다. 그 결과 3년 동안 205개 시리즈와 7,200개의 콘텐츠를 생산했고, 누적 방문자는 4,300만 명에 달했다.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220만 명을 기록했고, 주 2회 이상 방문 비중은 38%, 재결제율은 86%로 나타나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줬다. 해외 주요 언론과 비교했을 때 전환율(해외 상위 25% 언론사 2%, 중앙일보 1.5%)과 유지율(해외 상위 25% 언론사 94%, 중앙일보 73%)은 낮았지만, 한 달에 10개 이상의 기사를 읽는 액티브 유저 유지 비중(해외 상위 25% 언론사 6%, 중앙일보 14%)은 오히려 더 높았다.
유료 구독 모델의 무기도 구체적으로 소개됐다. 전환 단계에서는 다른 매체에 없는 콘텐츠, 유명 인물 인터뷰, 특정 사건 이후의 집중 리포트가 평균 대비 기사당 구매 건수를 6~10배, 매출을 8배까지 끌어올리는 효과를 보였다. 유지 단계에서는 타깃팅과 브랜딩이 핵심이었다. 미취학~초등 저학년 부모를 겨냥한 ‘헬로 페어런츠’ 시리즈는 구독 유지율이 평균 대비 두 배에 달했는데, 이는 기사뿐만 아니라 부모 글쓰기 프로그램, 온라인 컨퍼런스, PDF 자료 등 종합 경험을 패키지로 설계한 결과였다. 여기에 기자 브랜딩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정 기자가 한 분야에서 신뢰와 영향력을 얻으면 독자 전환과 유지 모두에 효과가 있었다.
기술적 실험도 이어졌다. 최근에는 AI 기반 요약 서비스를 도입해 긴 기사를 1분 안에 훑어볼 수 있게 했다. 이는 젊은 독자의 첫 진입 장벽을 낮추는 장치로 설계됐고, “AI가 길을 열어주고 해석과 책임은 사람이 맡는다”라는 원칙을 유지했다.
전략·혁신·기술·실전으로 나눠 살펴본 뉴스 산업에서의 지정생존자 요건은 명확했다. 저널리즘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 행동은 변했고, AI는 그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언론이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저널리즘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GEO(생성형 엔진 최적화)와 직접 채널을 통해 독자와의 관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결국 살아남는 곳은, 사람과 데이터, AI를 균형 있게 엮어내는 조직일 것이라는 점이었다.
Day 2.
혼돈의 시대, 경계를 넘는 혼종
2일 차 프로그램은 사뭇 달랐다. 언론이 맞닥뜨린 어려움을 해결할 해답을 전 세계적으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K-콘텐츠에서 찾아보려는 시도가 더해졌다. 디지털이 가져온 격변을 언론만이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회 삼아 약진하는 분야도 분명 있다. 그렇다면 언론은 무엇을 놓친 것일까? 2일 차의 논의는 이종(異種)의 성공 사례에 답을 묻는 시도였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누구에라도 배워야 한다는 비장함이 엿보였다.
AI vs 인간, 저널리즘 전쟁은 시작됐다
홍정도 중앙그룹 부회장과 마크 톰슨(Mark Thompson) CNN CEO와의 대담으로 행사 둘째 날이 열렸다. 홍 부회장은 지금 언론이 맞이한 혼돈의 상황에서 “빨리 시작해 해법을 찾고, 내일의 성장을 실현하겠다”라며 다급한 속내를 밝혔다. 대담의 첫 번째 화두는 역시 AI였다. “저널리스트들이 어떤 능력을 갖춰야 AI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가 홍 부회장의 첫 질문이었다. 마크 톰슨은 “잘 숙련된 인간이 이벤트 현장에 직접 나가, 독자와 시청자 대신 생생하게 경험하는 능력이 핵심”이라고 답했다. 기계가 하지 못하는 것을 인간이 제공해야 AI와의 대결에서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어 홍 회장은 제로 클릭 시대 언론의 하락세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마크 톰슨의 대답은 낙관적이었다. 그는 “우리의 현실은 한 라운드를 깨면 다음 라운드가 이어지는 게임과 같다”라고 운을 띄운 뒤 “게임의 난도가 계속 올라가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뉴스를 많이 본다”라고 덧붙였다. 동시에 AI에 대한 의견도 내비쳤다. “구글 검색이 나왔을 때 언론이 검색 최적화를 통해 살아남았듯이 이제는 AI와 어떻게 공존할지 고민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AI를 적절히 활용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메시지였다.
뉴스 회피 현상과 줄어드는 젊은 독자에 대한 우려도 중요한 화두였다. 마크 톰슨은 여전히 낙관적이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뉴스에 관심이 더 많아진다”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을 찾는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미디어의 브랜드 구축과 관련해 다른 신생 미디어보다 레거시 미디어가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영향력만을 좇는 인플루언서들과 다르게 오히려 언론은 신뢰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플루언서들에게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며 “독자가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다고 비난하지 말고, 언론이 먼저 다가가 독자 팬덤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홍 부회장이 연단에서 내려가고, 이어 마크 톰슨과 봉준호 감독의 대담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마크 톰슨이 묻고 봉준호 감독이 답했다. 신문, 방송처럼 영화 역시 오래된 미디어다. 그럼에도 한국 영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커지고 있다. 봉 감독과의 대담은 언론이 영화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지 탐색해 보는 시간이었다. 이 시대의 영화와 언론은 모두 AI를 몹시 의식하고 있었다. 봉 감독은 영화 <미키 17>(2025)도 AI를 사용해 제작한 부분이 있다며 “이것이 지금 영화계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영화인들도 AI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두려움도 크다고 한다. 단지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만이 아니다. “우리가 믿고 매혹됐던 영상의 아름다움 자체를 AI가 뒤흔들 수 있다는 보다 근본적인 걱정”이라고 봉 감독은 부연했다.
마크 톰슨도 AI로 만들어지는 뉴스에 대해 말을 꺼냈다. “AI가 없던 시절 모든 영상 뉴스는 진짜였지만, 이제 영상이니까 진짜라고 믿는 시대는 끝났다”라고 토로했다. 세계적인 감독이 AI를 접하고 영상미의 근본에 대해 고민하게 됐듯, AI는 기자들이 저널리즘의 근본이 무엇인지 새로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마크 톰슨은 “이제 AI 덕분에 언론은 저널리즘의 의미를 더욱 깊이 파고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쩌면 저널리즘 공간에서도 인간과 기계 사이의 전쟁이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말이다.
AI는 언론의 적인가 동지인가?
신문사가 주최한 행사답게 ‘신문 산업’을 주제로 한 토론이 이어졌다.1) 토론의 진행을 맡은 박장희 중앙일보 대표는 얼 윌킨슨 INMA CEO와 후안 세뇨르 이노베이션 미디어 컨설팅 대표를 “이 시대 신문 산업 최고의 구루(guru)”라고 소개했다. 후안 세뇨르는 “뉴스 사업은 언제나 위기였다”라며 “사람들은 기사를 읽지만 기자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무너지지 않는다면 저널리즘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암흑기를 견디면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현재 언론이 처한 상황을 정의했다.
박 대표는 “저널리즘만이 저널리즘을 구할 수 있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두 초청자 역시 이 말에 공감을 표했다. 후안 세뇨르는 혁신은 모방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그동안 언론은 SNS 등을 따라하며 저널리즘의 핵심에서 벗어난 일탈을 실험해왔다”라고 질타했다. “트렌드는 바뀌지만 음악, 영화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건재한 것처럼, 언론의 핵심인 저널리즘을 버리면 혁신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박 대표는 이어 포털 중심의 한국 미디어 특성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얼 윌킨슨은 “10년 전에도 한국에 왔다. 이때 받았던 거의 모든 질문이 ‘네이버’에 대한 것들이었다”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한국의 미디어 환경도 많이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이제는 “포털을 배척하는 전략보다는 포털과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후안 세뇨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AI의 등장을 언급하며 “네이버도 앞으로 5년 남았다”라고 예측했다. 그만큼 AI의 파급력이 크다는 것이다. 반대로 “언론에게는 AI 등장이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혼돈의 시대, 이종(異種)에서 답을 찾아라
이후 본격적으로 다른 분야 성공 사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위기에 빠진 언론에 해답을 주기 위한 첫 연사로 이수만 A2O 엔터테인먼트 키 프로듀서가 나섰다. 일흔을 이미 넘긴 한류 1세대의 주역은 ‘문화 테크놀로지(culture technology)’를 강조했다. 과거 고려와 조선의 도공들을 예로 들며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개발하고 전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최근 그는 음악 프로듀싱을 훌쩍 넘어 최신 기술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행보를 보였다. 홀로그램을 이용한 V-콘서트(virtual concert)를 시작으로, 코로나 시국에는 ‘비욘드 라이브(Beyond Live)’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팬들이 온라인에서 한국 아이돌을 만날 수 있게 했다. 최근에는 AI 기술도 실험하고 있다. AI 기반 콘텐츠 제작툴 P2C 인피니트 스튜디오를 개발 중이다. 이수만 프로듀서 역시 AI와의 협력을 강조한다. 하지만 “AI는 미래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AI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과거뿐이다. 오직 인간이 프롬프트(prompt)로 미래를 만든다”라며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의 상상력을 강조했다.
다음 연사가 이날의 하이라이트였을 것이다. 매기 강(Maggie Kang)이 호명된 순간 장내가 술렁였다. 청중들은 너도나도 휴대전화를 들어 카메라를 켰다. 메기 강이 무대에 등장하자 환호가 터졌다. 대단한 환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까지 대중 행사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세션을 보기 위해 참석한 관중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전 세계적인 성공은 또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신문과방송》 9월호 커버스토리 참조). 그리고 아직 진행 중이라 섣불리 정리하기도 어렵다. 성공 스토리는 화려하고 달콤하다. 그러나 이날 강연에서는 첫 기획을 시작으로 약 9년간 이어졌던 무대 뒤 험난한 제작 과정이 세세하게 공개됐다. 감독이 직접 이야기하는 제작 과정은 자못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화려함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땀과 눈물이 무대 위로 끌어올려졌다.
한국계 이민자였던 그녀에게 무당은 그 시대의 화려한 아이돌이었고, 굿은 콘서트의 원형이었다. 여기에 K-POP을 더했다. 항상 가슴에 품어왔던 한국 전통 문화의 아름다움이 K-POP이라는 현대적 무기를 얻은 것이다. 서울 곳곳을 관찰하고, 한국의 자연풍경을 담았다. 이를 3D로 다시 그렸다. “애니메이션 감독은 화면 구석에 나오는 반찬 그릇 하나, 식당 벽 낙서 하나까지 모두 직접 결정해야 한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한국문화, 한국의 모습을 다른 세상에 새로 한 벌 창조해내는 것과 다름없는 작업이었다.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한국의 아름다움이 저널리즘이라면, 메기 강의 장인정신은 진실을 향한 기자의 열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장인정신을 알아봐 준 팬들은 금세 팬덤을 이뤘다.
웹툰은 알지만 신문은 모르는 비밀
다음으로 나선 언론의 선생님은 웹툰이었다. 앞서 소개한 후안 세뇨르의 ‘네이버도 앞으로 5년 남았다’던 도발적인 발언은 실제로 이 행사를 소개한 몇몇 기사의 헤드라인이 됐다. 하지만 연단에 선 권미경 스튜디오N 대표의 이날 첫 마디는 “우리는 10년 전의 네이버도 아니고, 계속 변화하고 있다”였다. 맞는 말이다. ‘변해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네이버 웹툰은 2004년 담당자 한 명으로 시작한 실험적 서비스였다. 하지만 2023년 자료만 보더라도 2017년 대비 567% 성장했다. 지금도 계속 성장세다. 웹툰 IP를 기반으로 드라마, 영상 등 또 다른 부가가치를 만들고 있는 스튜디오N 역시 성장세다. 권 대표는 해를 거듭할수록 아래로 향하는 신문 구독률과는 반대로 위로 뛰어오르고 있는 웹툰의 인기 비결을 살짝 공개했다. 웹툰은 사용자 데이터를 세부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 비법이었다. 웹툰은 주로 모바일 기기로 소비된다. 성별, 나이, 조회수, 평점은 물론 심지어 지금 독자가 웹툰을 어디서 보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디지털 세상이 된 지 꽤 오래지만, 아직 언론은 잘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게다가 웹툰의 주요 소비자는 젊은 세대다. 시간이 흐를수록 젊은 독자를 잃어가는 언론이 웹툰에게 배울 점은 분명 많았다.
이후 이어진 세션에서는 K-예능과 K-POP에 언론의 갈 길을 물었다. 최근 흑백요리사로 전 세계에 K-푸드를 알린 윤현준 PD(스튜디오 슬램)와 아이돌 그룹 아이들(i-dle)의 리더 전소연 씨가 연단에 섰다. 둘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만들어가는 콘텐츠의 핵심 가치를 믿고, 열정을 가지고 준비해, 더 많은 팬을 만나기 위해 도전했다. 모든 성공 신화에 나올 법한 클리세로 들릴지 모른다. 비법은 없는데 불안이 갈증만 더 일으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K-예능과 K-POP, 아니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K-웹툰까지, 모든 이종(hybrid)들의 성공 공식들이 결국 우리 언론에 이렇게 등치될 수 있지 않을까. 저널리즘의 가치를 믿고, 열정을 다해 취재해, 더 많은 독자를 만나라.
1) 실제 컨퍼런스 진행 순서와 다르게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글의 순서를 재구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