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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은 지역사회의 맥락과 이슈를 가장 가까이에서 담는다는 점에서 사회에 꼭 필요하다. 그러나 지역신문은 여전히 중앙 중심의 시각에서 평가되고 수치화된다. 지역신문에 맞는 제도가 필요한 이유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지역’은 본래 일정 범위의 토지나 구역을 뜻하는 중립적 개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지역은 서울과 수도권이 아닌 곳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이때 ‘지역 언론’은 전국 단위 중앙 언론과 구분되는 하위 범주가 된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그저 ‘신문’이지만, 부산이나 광주에서 발행되면 규모와 영향력과 무관하게 ‘지역신문’이 된다. 이 명명은 단순한 분류가 아니다. 중앙과 주변이라는 위계를 전제하는 언어적 구조다. 그리고 이 위계는 정보의 위계, 가치의 위계, 나아가 민주주의의 위계로 확장된다.
역설은 여기서 시작된다. 디지털 전환과 AI 확산으로 정보 유통이 탈중앙화되는 지금, 오히려 로컬리티(locality)의 가치가 재부상하고 있다. 범용 정보의 검색·요약·재가공은 알고리즘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수행한다. 남는 것은 맥락, 깊이, 구체적 삶의 특수성이다. 바로 여기에서 ‘지역 천착(穿鑿)’의 진가가 드러난다.
천착이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깊이 파고들어 캐내는 행위다. 지역신문이 지역에 ‘있는’ 신문이 아니라 지역에 ‘천착하는’ 저널리즘으로 재정의될 때, 비로소 그 존재 이유가 분명해진다. 문제는 현재의 지원 정책과 평가 체계가 여전히 도달률과 효율성이라는 중앙 중심의 척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읽히지 않지만 필요한 매체
2024년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지역 종이신문 이용률은 32.7%였으나, 지역신문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39.2%였다.1) 실제 이용보다 필요 인식이 더 높다. 더 주목할 점은 응답자들이 지역신문의 핵심 역할로 ‘차별화된 지역 정보 전달’과 ‘지방자치에 대한 견제·감시’를 꼽았으며, 이 기능에 대해서는 중앙 언론보다 지역신문을 더 신뢰한다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역신문이 단순 소비재가 아니라 공공재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의 ‘뉴스 사막(news desert)’ 연구들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지역신문이 사라진 지역에서는 지방정부 부채 증가, 공공기관 비리 확대, 시민 참여 감소가 나타난다는 분석이 축적되고 있다. 따라서 지역신문은 정보 공급자에서 나아가 지역 거버넌스를 작동시키는 인프라에 가깝다.
그러나 국내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23년 한 해에만 24개의 신문 사업자가 문을 닫았고, 지역일간지의 42.9%, 지역주간지의 99.3%가 매출 10억 원 미만이다.2) 평균 열독률은 2010년 52%에서 2024년 9.6%로 급락했다. 일부 지역은 신문이 전무한 뉴스 사막 상태이며, 다른 지역은 과밀 경쟁으로 오히려 이용률이 낮아지는 구조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신문은 시장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읽히지 않지만 필요하다고 인식되는 매체. 바로 그 역설이 정책 개입의 근거다.
2025년 기준 지역신문발전기금은 80억 원 규모에 그쳤지만, 2026년 118억 원으로 증액됐다. 우선 지원 대상사의 수도 74개 사로 전년 대비 7개 사 증가했다. 그러나 북유럽이나 캐나다 사례와 비교하면 절대 규모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국내 우선 지원 대상사의 평균 지원액은 1억 원 남짓이고, 지원 대상도 일부에 그친다.
현장의 목소리는 더 구체적이다. “기금 지원이 보탬은 되지만, 지역신문의 혁신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되기에는 부족한 것이 현실(지역일간지 편집국장)”이라는 진단이나, “인건비나 직접 비용 지원이 불가하고 자부담과 추가 업무 부담이 크다(지역주간지 대표)”는 지적은 지원 체계의 실질적 한계를 보여준다.
핵심적인 문제는 예산 규모가 아니라 지원 철학이다. 지역 언론 지원의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무엇을 기준으로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합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경영 성과, 도달률, 재무 안정성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지표가 된다. 그러나 지역신문은 시장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논리만으로는 유지되기 어렵지만 민주주의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지원하는 것이다.
스웨덴·노르웨이 등은 인구 저밀도 지역, 소수 언어 발행 매체 등에 차등 지원을 적용한다. 영국의 지역 민주주의 보도 서비스(LDRS, Local Democracy Reporting Service)는 공영 재원을 활용해 지역 언론 기자 인건비를 지원하는 협업 모델을 운영한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효율성’이 아니라 ‘공공성’을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즉, 해외의 지역신문 정책은 경제정책이 아니라 민주주의 인프라 정책에 가깝다. 이 인식 전환이 출발점이다.
클릭 수나 도달률 아닌 다른 기준 필요해
인공지능과 뉴미디어는 지역신문의 강력한 경쟁자다. 특히 인공지능은 범용 정보 처리 영역에서 신문산업 전반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검색과 요약, 통계 정리, 데이터 시각화 등에서 효율성을 제공하는 동반자이기도 하다. 이에 AI의 확산은 지역신문에도 위협이자 기회다.
인공지능은 패턴을 분석하고 데이터를 처리한다. 그러나 지역사회의 역사적 맥락, 미묘한 갈등 구조, 생활 세계의 언어와 정서까지 온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지역의 역사적 맥락과 이해관계의 결은 데이터로 요약되기보다, 오랜 취재의 축적 속에서 드러난다. 바로 이 지점이 ‘천착’의 영역이다. AI가 일상적인 업무를 담당할수록 기자는 더 깊은 현장 취재와 탐사 보도에 시간을 투입할 수 있다. AI는 효율성을 담당하고, 저널리즘은 의미를 발굴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재배치할 수 있다.
지역의 의제를 심층적으로 조명하는 칼럼, 지역사나 지역문화, 산업과 관련한 연재, 장기 탐사 프로젝트는 단기 클릭 수와 무관하게 지역 정체성의 기록이 된다. 기록이 반복되면, 지역신문은 한 지역의 아카이브로 부상한다. 이 기능은 디지털 플랫폼이 대체하기 어렵다.
최근 정부 역시 수도권 집중 구조의 한계를 지적하며 지방 주도 성장의 필요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지역 경제 성장을 뒷받침할 다각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도 확산하고 있다. 이는 균형발전을 선언적 구호가 아니라 생활경제 차원에서 재설계하겠다는 접근으로 읽힌다. 이러한 흐름은 지역 언론의 역할 또한 재조명하게 만든다. 지역 경제와 생활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기록하는 매체가 바로 지역신문이기 때문이다.
이에 우선적으로 지역신문 지원 정책 평가의 기준을 재설계해야 한다. 첫째, ‘도달률’ 중심 평가에서 ‘지역 밀착성’ 중심 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친근성이 아니라, 지역 의제에 대한 지속적 추적과 기록의 깊이를 의미한다. 탐사보도, 지역 의제 발굴, 장기 기획, 지역 역사·문화 기록 등을 질적 지표로 반영해야 한다. “지역신문의 수요에 맞게 단계적인 지원을 확대하고, 지원 대상을 차등화해서 사업자별로 운영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안(지역신문발전포럼 위원 A)”도 이러한 맥락에서 검토할 수 있다.
둘째, 재원 구조를 다각화해야 한다. “발전기금만으로는 예산의 한계가 분명하다. 지자체 예산 확충과 함께 지역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사업을 자체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지역신문발전포럼 위원 B)”라는 제안처럼, 미디어 바우처, 교육 연계 모델, 지역 공공기관과의 협업 프로그램 등 수요 기반·공공 기반 모델을 병행할 수 있다.
셋째, 협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지역신문 간 공동 취재, 공영방송과의 연계, 데이터 공유 체계 등을 통해 단일 매체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칙의 명확화다. 지역신문은 효율적이어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지원하는 것이다.
탈중앙화와 AI 시대에 범용 정보는 더 이상 희소하지 않다. 희소한 것은 깊이와 맥락이다. 지역신문이 지역에 천착할 때, 그것은 단순한 지역 매체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현장 기록자가 된다.
‘지역’이라는 위계적 명명을 넘어, 각 지역이 고유한 저널리즘을 구축할 때 한국 저널리즘 전체의 다양성과 품격도 확장된다. 도달률이 아니라 지역 천착을, 효율성이 아니라 탐사와 기록의 지속성을 추구하는 것. 지역의 문제를 끝까지 따라가는 저널리즘만이 탈중앙화 시대의 경쟁력이 된다.
1) <지역신문 발전 지원 계획 수립 연구>, 한국언론진흥재단, 2025
2) <지역신문 발전 지원 계획 수립 연구>, 한국언론진흥재단,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