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 상세
[커버스토리] 넷플릭스와 국내 미디어 정책
커버스토리 | 등록일 : 2026-03-27

넷플릭스·유튜브 등 글로벌 OTT는 사실상 국내 규제 체계의 밖에 있는 반면, 국내 레거시 미디어는 여전히 강한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이 같은 규제의 비대칭성은 국내 미디어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법·제도가 이를 어떻게 해소하고, 산업 경쟁력과 공적 가치를 함께 확보할 수 있을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필자를 포함한 여러 미디어 연구자가 국내 미디어 산업의 위기를 우려하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미디어 강국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가 꾸준히 생산되고, 견고한 네트워크 인프라 덕분에 그 어느 국가보다도 편리하게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미디어 관련 제반 요소 중 가장 뒤처진 것은 법·제도다. 산업의 발전 수준과 큰 격차로 괴리된 정책 환경은 국내 레거시 미디어들에게 오랜 기간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

 

어느 분야에서나 법·제도는 환경 변화에 뒤처질 수밖에 없지만, 미디어 분야는 산업 발전 속도에 비해 환경 변화에 대한 제도적 대응이 특히 부족한 영역이었다. 이 때문에 미디어 통합 법제 마련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고, 국회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등 정부에서도 관련된 준비를 지속해 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미디어 통합 법제가 언제 어떤 방향으로 추진될지를 가늠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미디어는 대한민국에서 특수한 위상을 가진 분야다. 어느 국가에서나 미디어는 중요하지만, 우리나라가 그들과 다른 부분은 산업으로서 미디어를 중요한 대상으로 본다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미디어 혹은 문화 산업의 진흥은 어느 정부에서나 중요한 국정과제로 여겨져 왔고, 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K-컬처 진흥과 미래지향적 미디어 생태계 구축 등이 현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된 이유는 그만큼 미디어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대한민국에서 미디어가 갖는 위상을 고려할 때 미디어 산업의 진흥은 미디어 통합 법제 마련 등 디지털 대전환과, 인공지능 환경에 대응한 법제 개편 시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국내에서 미디어 산업의 진흥이 중요한 국정과제로 채택돼 온 이유는 미디어가 다른 분야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산업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고 이 때문에 소프트파워가 중요한데, 미디어는 국가의 소프트파워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디어는 여론 형성과 공론장을 좌우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공적 규율의 대상이 돼 왔다. 이 때문에 방송과 같은 미디어는 인허가를 통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가능했고, 국내에서는 지상파, 일부 PP, 유료방송이 일정 기간마다 재허가 또는 재승인 절차를 거친다.

 

미디어의 공적인 가치는 앞으로도 중요하다. 새로운 환경에 부합하는 미디어 법제화 시에도 미디어의 공적 책무와 사회적 가치는 중요한 의제가 돼야 한다. 다만, 사회적 가치 구현의 방식은 달라질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국내에서 사회적 영향력이 강한 사업자들을 규율하는 방식은 인허가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다양한 매체가 이용자의 관심을 두고 경쟁하는 시대에 이와 같은 통제 중심 방식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사업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공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정책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공생 가능한 정책 조성하고 자율성 부여돼야

 

대한민국은 산업 내 다양한 플레이어가 함께 진화하면서 상징자본을 확보해 왔다. 레거시 방송 채널 사업자들은 오랜 기간 수많은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국내 제작 기반을 마련하는 역할을 해왔다.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들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방송에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 왔다. 넷플릭스, 유튜브와 같은 글로벌 사업자들은 국내 콘텐츠를 글로벌 시장에 유통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 넷플릭스는 국내 콘텐츠에 직접 투자하고 자사 플랫폼으로 유통하며 글로벌 인지도를 제고했다. 유튜브는 K-POP을 글로벌 시장에 유통하는 역할을 했다. 각 주체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행해 온 노력이지만, 그 결과의 총합은 대한민국을 콘텐츠 강국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특정 주체를 규제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법제화를 시도하기보다는 전반적인 시장의 자율성을 높이고, 사업자들이 서로 공생할 수 있는 정책 환경을 조성하는 방식으로의 법제화가 필요하다. 각 사업자가 가지고 있는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정책 환경을 만들어 나가되,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국내 미디어 법체계의 주요한 약점 중 하나는 공적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사업자와 그렇지 않은 사업자 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미디어 법제화 시 공적인 역할을 맡아야 할 사업자를 명확히 해 그에 대한 공적 책무를 부과하고 그렇지 않은 사업자들에 대해서는 자율성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국내의 경우 「방송법」상 공영방송에 대한 정의가 부재하고, 실질적으로 공영방송의 역할을 맡는 사업자들에 대한 공적 책무도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또한, KBS, MBC, EBS 등 공영방송으로 분류되는 사업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공적 재원도 제한적이다. 공·민영 체계를 분류할 때 공영에 포함될 사업자를 범주화하는 것도 큰 일이 되겠지만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공적 지원이 수반될 필요가 있다.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법제화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 얘기해 왔지만, 통합 미디어 법제를 준비하면서 각론 차원의 규제 개선도 필요하다. 특히, 국내 레거시 미디어들에 적용되고 있는 낡은 규제는 조속히 개선될 필요가 있다. 환경 변화에 부합하는 법제 마련은 당연히 이뤄져야 하지만 통합 법제 마련이 단기간 내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에 현행 규제로 혁신에 제약을 받고 있는 레거시 미디어 사업자들이 변화를 모색할 수 있도록 정책적 기반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다양한 요구 조율하는 국가적 숙의 필요

 

모두에 미디어 산업의 위기를 언급하면서 대한민국이 여전히 미디어 강국이라고 얘기했지만 위기를 보여주는 징후들은 예사롭지 않다. 방송 산업 재원의 양대 축인 방송광고와 유료방송 수신료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이는 다른 재원들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원인이 되고 있고, 이 때문에 사업자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레거시 미디어의 급격한 쇠락은 국내 미디어 산업 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반전의 모멘텀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양적인 성장은 어렵다고 하더라도 질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경로를 열어줘야 한다.

 

미디어 산업의 진흥 필요성을 강조해 왔지만,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고민도 병행돼야 한다. 대한민국은 어느 국가보다도 시청자들의 자국 콘텐츠 선호도가 높고 그만큼 콘텐츠 및 서비스에 대한 의견 개진도 활발하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콘텐츠와 서비스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국가라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정부에서 규제를 통해 부작용을 억누르기보다는 자율 규제를 통해 사업자가 이용자 기대에 부합하는 가치를 제공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합 미디어 법제 마련의 이해관계자는 국민, 사업자, 국회, 정부 등 다양하다. 이처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숙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국회와 정부에서 통합 미디어 법제 마련을 준비하고 있지만 다양한 주체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미디어 관련 법제화 논의 시에 공론의 방식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질 필요가 있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새로운 법제 마련 시 진흥과 사회적 가치는 모두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대한민국적 맥락을 고려해 미디어 진흥을 위한 법제화가 필요하지만 공적 가치 또한 미디어가 담보해야 할 중요한 가치다. 새로운 환경에 부응하는 공적 가치 구현 방식이 입법을 통해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 결국 핵심은 진흥과 공적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있다. 

저자의 다른 미디어
  • 필자 : 노창희
  • 소속 :
  • 직함 :
  • 발행 : 2026-03-27
  • 조회수 : 20
  • 키워드 :
블로그 공유 트위터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