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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K-콘텐츠의 날개가 된 넷플릭스
커버스토리 | 등록일 : 2026-03-27

과거 한국의 영상 콘텐츠는 세계의 벽을 넘기 어려웠다. 그러나 넷플릭스의 등장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K-콘텐츠가 전 세계에 유통되며 한국 문화를 알리는 동시에 우리의 제작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넷플릭스가 K-콘텐츠 확산에 미친 성과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넷플릭스는 K-콘텐츠를 통해 한국을 PPL 하는 셈이다.”

 

2016년 1월, 넷플릭스 코리아 시작 후 9년하고도 3개월이 지난 2025년 4월 21일. 넷플릭스 코리아가 주최한 한 행사에서 강동한 콘텐츠 부문 총괄 부사장이 던진 말이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확산을 돕는 ‘동반자’이자 ‘글로벌 윈도우(global window)’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는 넷플릭스가 한국 창작 생태계에 자본을 수혈하는 단계를 넘어, 한국의 서사가 전 세계 190여 개국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조우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일관되게 역설했다.

 

자사의 성장과 수익을 위해 한 일이 마치 K-콘텐츠를 위해 헌신한 것처럼 비칠 수 있는 발언이긴 하지만, 이를 부인하기도 어렵다. 넷플릭스 이전과 이후로 한국 영상물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평가가 달라진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자체 조사이긴 하지만,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역시 넷플릭스가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를 세계 주류 문화의 반열에 올린 결정적 계기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2달 뒤인, 6월 20일.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스트리밍됐다. 영상 시장의 ‘싸이 모먼트(Psy moment)’1)다. K-POP이 유튜브라는 시각적 창구를 통해 세상과 조우했듯, 이제 한국의 영상 콘텐츠가 전 세계 안방극장에 집단적이고 규모 있게, 그리고 일제히 쏟아지는 인프라를 만난 셈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한국 영상물이 대중적으로 이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적은 없었다.

 

그리고 2026년 3월 21일. 완전체 BTS의 공연이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생중계됐다. 그렇게 넷플릭스는 명실상부 세상 사람들이 한국을 접하는 세상의 창이 된 것이다.

 

K-드라마, 전 세계가 동시에 소비하다

 

과거 K-콘텐츠의 유통은 그야말로 ‘보부상’의 고군분투에 가까웠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제작사와 방송사 관계자들은 직접 드라마 테이프와 DVD를 가방에 실어 나르며 해외 미디어 마켓의 문을 두드렸다. 국가별로 방송사와 판권을 일일이 협상하고 물리적인 매체를 전달하던 이 방식은 지극히 산발적이었으며, 현지 편성 계획이나 심의에 따라 방영 시점도 제각각이었다. 유통의 주도권은 온전히 현지 바이어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어쩌다 뉴스를 통해 MBC 드라마 <주몽>이 중동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판권이란 이름의 유통 권리가 이리 쪼개지고 저리 쪼개지면서 이 나라 저 나라에 팔렸을 뿐, 그것이 동시대의 현상이 되지는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드라마에 대해 자신하지 못했다. 일본,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소위 ‘한류’라는 이름을 가지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 영상물은 대한민국이란 국경 틀 속에서 고민하고 만들어지는 것이었고, 어쩌다 운이 좋아 흥행을 하기도 하는 그런 상품이었을 뿐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잘 만드는지도 몰랐고, 우리의 유통이 얼마나 궁색한지도 몰랐다.

 

K-콘텐츠는 어쩌면 가난 속에 생을 마감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이나 수십 년 창고에 방치됐던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의 사진 같았는지도 모른다. 당대에 이들의 가치를 제대로 읽어내고 유통할 채널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유통을 만나면 세상은 달라진다. 1960년대 중남미 문학의 전성기인 ‘라틴 붐(Latin Boom)’이 대표적이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출판 네트워크는 ‘스페인어권 도서의 수도’라 불릴 만큼 이미 강력한 유통 권력이었지만, 주로 유럽 내부의 문학을 순환시키는 데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카르멘 발셀스(Carmen Balcells) 같은 선구적인 큐레이터들이 중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작품을 발견해 세상에 알리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변방의 마르케스(Gabriel Márquez)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Mario Vargas Llosa)의 걸작들이 바르셀로나를 통해 세계의 상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우리에게 넷플릭스도 그런 존재였다. 넷플릭스란 단일 서비스를 통해 190여 개국 가입자에게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유통 채널이었다.

 

대한민국의 역량을 확인한 각성의 순간

 

넷플릭스는 우리를 세상에 알렸고,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수준과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넷플릭스가 190여 개 나라에 서비스하고 있지만, 실제로 콘텐츠를 수급하고 제작하는 나라는 50여 개국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도 대부분은 해당 국가의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콘텐츠고, 특정 권역이나 글로벌 시장의 유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거나 수급하는 국가는 미국, 영국, 스페인, 그리고 최근에는 우리나라 등에 불과하다. 비록 1,2위권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넷플릭스 가입자들이 가장 많이 시청하는 콘텐츠 순위로 보면 3위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스스로 자랑스러워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넷플릭스라는 강력한 유통 권력은 전 세계 모든 창작자에게 균일하게 제공되고 있지만, 그런 기회를 잡은 국가는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전 처음 들떴다. 저 콧대 높은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반드시 봐야 할 비영어권 콘텐츠의 하나로 한국 콘텐츠를 꼽았다. 우리가 드라마란 이름의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우리는 썩 괜찮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나라였던 셈이다.

 

제품이 좋지 못하면서 유통 권력만으로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세계 최대의 유통 권력인 아마존이 내놓았던 스마트폰 ‘파이어폰(Fire Phone)’ 사태를 보라. 아마존은 전 세계 수억 명의 고객이 접속하는 자사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파이어폰을 노출하며 압도적인 유통 화력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제품 자체의 매력과 경쟁력이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그 막강한 유통망은 오히려 파이어폰의 실패를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폭로하는 창구가 됐고 결국 수천억 원의 손실을 기록하며 퇴장했다. 제대로 상품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라면 유통은 오히려 독이 될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출처 - 넷플릭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감은 없었어도, 넷플릭스를 통해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중국과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글로벌의 힘은 우리의 상상 이상이었다. 국내 시장이라면 감당하지 못했을 유형의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었다. 국내 방송 시장은 한정된 채널과 광고 수익 구조 탓에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작비 회수를 위해 로맨틱 코미디나 가족극에 매달려야 했던 창작자들에게 글로벌 유통망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실험의 기회를 제공했다. 우리에겐 생전 만들어보지 못했던 ‘다양성’이 선물처럼 왔다.

 

조선판 좀비물인 <킹덤>이나 10년 넘게 ‘기괴하다’는 이유로 외면받던 <오징어 게임>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글로벌 플랫폼이 가진 유통의 화력 덕분이었다. 국내 방송사들이 거부했던 이 기획들은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고속도로 위에서 전 세계적인 ‘하이 콘셉트’로 재해석됐다. 동시에 영화와 방송의 문법적 경계도 무너졌다. 매체의 구분이 무너진 융합의 장에서 한국 콘텐츠는 형식의 제약을 벗어던지고 오직 서사와 완성도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피지컬: 100>과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은 서구 중심의 서바이벌 문법을 ‘몸’과 ‘계급’이라는 원초적 테마로 재해석하며 한국적 디테일이 어떻게 글로벌 표준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상품이 좋았기에, 넷플릭스라는 유통의 날개를 달자마자 산업 전체가 한 단계 높은 고도로 비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창의력이 있는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넷플릭스의 산수 덕분이다. 대한민국 내 소수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라도 글로벌 시장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있다는 그들의 셈법 때문이다.

 

이제는 또 하나의 경계도 무너졌다. 우리의 콘텐츠를 넘어서, 대한민국 그 자체가 하나의 상품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바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통해서다. 소니가 제작한 이 작품은 한국의 K-POP IP와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감성이 글로벌 시장의 ‘하이엔드’ 콘텐츠를 구성하는 엔진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콘텐츠 속에 노출된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이 푸드, 패션, 뷰티 등 연관 산업의 수출을 자극하는 현상은, 이제 한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하나의 독보적인 ‘글로벌 문화 브랜드’로 소비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또한 넷플릭스 덕분이다.

 

드러난 한계, 단거리에서 중장거리로

 

이렇게 넷플릭스 덕분에 세상은 변방의 우리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 갈 길은 멀다. K-POP은 유튜브란 글로벌 유통을 통해 얻은 인기를 글로벌 팬덤 사업과 공연 수익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면서 괄목할 만한 시장 성과를 가져왔다. 유튜브 초기 겨우 500억 내외의 기업 가치를 지녔던 SM 등과 같은 회사들이 이제는 모두 조 단위의 기업 가치를 달성한 이유다.

 

그러나 영상 시장은 글로벌 판권 판매와 제작 외에는 새로운 수익원이 없는 상태다. 세상을 만났고, 세상도 우리를 인정해 주고 있지만, 딱 여기까지다. 그 인기를 환전하지 못하는 중이다. 인기만큼 가격이 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주는 사람이 제한적이니 알맹이가 없다. 그래서 넷플릭스 속의 우리는 컸지만, 넷플릭스 밖의 우리는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마냥 즐거워만 할 수 없는 이유다. 

 

 

 

 

1) 어떤 아티스트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폭발적인 순간.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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