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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의존과 자극적 보도 관행 속에서 한국 언론의 전쟁 보도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세계 10위 경제 규모에 걸맞게 국제 이슈가 곧 우리의 국익과 직결되는 시대. 우리 시각에 바탕을 둔 전쟁 보도를 위해 한국 언론의 나아갈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전쟁 보도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각 나라의 국제 여론을 형성한다. 또한 전쟁이 끝나거나 계속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베트남전이나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등에서 미국 정부의 전선을 움직인 것은 여론이다. 그 여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전쟁 보도다.
한국 언론의 전쟁 보도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본격적으로 한국 언론이 전쟁의 한복판으로 파견된 것은 1990년대 걸프전 이후다. 그 후 전쟁 보도는 경제적 판단에 따라 현장 파견이 이뤄지지 않아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매체 대부분이 외신에 의존하거나 심지어 기자가 현장에 있는 경우에도 외신 보도에 리포트만 입혀 보도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 언론의 전쟁 보도는 관습적인 외신 인용과 자극적인 보도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우리 시각의 전쟁 보도는 너무도 중요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 이슈에 우리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한국이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에 들어서며 국제 이슈가 곧 우리의 국익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언론의 전쟁 보도 문제점과 진정한 ‘사회의 거울’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리해 본다.
전쟁 보도의 주요 문제점
△외신 받아쓰기
우리 언론의 현지 특파원 파견은 과거에 비해 많이 부족해졌다. 자본주의 논리로 비용 대비 뉴스의 ‘클릭 수’를 생각한다면 특파원과 지국을 유지하기 힘들다. 특파원 지국 운영 비용보다 외신을 이용하는 편이 훨씬 싸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AP, 로이터 등 영미권 대형 통신사의 시각을 여과 없이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언론의 시각이 아닌 외국의 시각으로 현상을 보도하면 이를 국민이 이해하기 힘들다. 또한 분쟁의 본질을 다각도에서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미국인이나 영국인의 시각이 한국의 시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외신들과 협업 혹은 경쟁하는 입장에서 국가마다 얼마나 시각이 다른지를 현장에서 많이 느낀다. 그런 면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알 권리’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전쟁 보도의 ‘게임화’
온라인 뉴스가 나오고 나서부터 매체는 독자의 클릭 수를 유도하는 것이 늘 관건이다. 그래서 전쟁의 참혹한 이미지를 자극적으로 노출하기도 한다. 폭격이 밤하늘의 폭죽처럼 보이게 해 덜 위험한 이미지로 전달하거나, 특정 무기나 전술을 보여주며 흥미를 유도한다.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을 예로 들면, 양국에서 사용하는 미사일을 내세우며 그 성능을 마치 게임 아이템처럼 소개한다. 그 미사일 하나하나에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의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고 집과 마을이 불타 없어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이러한 보도는 전쟁의 참혹함을 희석시키고, 독자들에게 전쟁을 마치 ‘미사일 박람회’처럼 인식하게 해 거부감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전쟁은 상상 속 게임과는 달리, 총탄에 쓰러지는 사람들의 고통과 피비린내가 뒤섞인 현실이다.
△종군기자 인력의 부족
전쟁 시에는 미확인된 여러 ‘카더라’가 많이 떠돈다. 그리고 전쟁 당사자 간의 프로파간다(선전전)로 양쪽에서 상반된 뉴스가 쏟아진다. 이라크전을 예로 들면, 2003년 미군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로 진격했음에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부는 이를 부정하며 문화부 장관이 직접 방송에 나와 “바그다드에는 단 한 명의 미군도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시각 이미 사담 후세인 궁까지 미군이 진입한 상황이었다. 이런 프로파간다에도 팩트를 찾는 것이 종군기자들이다. 특히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양국의 프로파간다와 심리전이 그 어느 전쟁보다 심하다. 그래서 전황이나 현상을 제대로 알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 언론의 종군기자는 매우 극소수이므로 이를 증명해 내는 것이 쉽지 않다.
△가짜뉴스 식별의 어려움
전쟁터에는 프로파간다와는 결이 다른 ‘가짜뉴스’도 난무한다. 현장에서 들어도 진짜 같은 가짜뉴스가 많다. 외신을 인용하다 보면 이런 가짜뉴스를 매체의 교차 검증 없이 보도하기도 한다. 오보로 밝혀진다 한들 외신이 그렇게 말해서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외신도 오보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리비아 취재를 할 때 영국의 유력 신문은 “북한군이 용병으로 리비아에서 활동한다”라는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현장을 아무리 뒤져도 북한군은 단 한 명도 찾지 못했다. 오보라는 확신이 들어 그 매체에 연락했고 그 후 기사는 사라졌다. 또한 딥페이크 등 AI 기술로 만들어진 가짜 영상이 마치 진짜인 것처럼 나오기도 한다. 진위를 구별하기 힘들 만큼 매우 정교한 영상인 경우도 있다. 현장에 특파원이 상주한다면 이를 검증해 내기가 쉽지만 그렇지 않다면 가짜뉴스 여과가 쉽지 않다.
△맥락 없는 전쟁 보도
전쟁은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전쟁에는 역사적 맥락, 사회적 구조, 지정학적 이해관계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그래서 전쟁의 맥락을 파악하는 것도 전쟁 보도의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당일의 교전 상황이나 피해 규모 등 단발적인 정보에 치중하면 전쟁이 왜 일어나고 무엇이 갈등 구조인지 이해를 돕는 보도를 할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 이런 이해가 부족하다면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으며 국익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지구 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기에, 이런 맥락 없는 단발적인 전쟁 보도는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쟁 보도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평화 저널리즘(Peace Journalism)으로의 전환
전쟁 보도는 단순히 게임처럼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가’를 중계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의 원인과 갈등 구조를 알아냄으로써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전쟁은 한번 일어나면 그 영향이 100년간 이어진다고 한다. 우리도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그 영향권 안에 있다. 아직도 남북 분단 문제와 사회 갈등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최선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각 전쟁의 교훈을 알아야 하고 평화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제 전쟁 보도는 전쟁 저널리즘에서 벗어나, 갈등의 해결과 평화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평화 저널리즘의 관점을 찾아가야 한다.
△현상보다 원인을 전달하는 보도
전쟁 보도는 거대 폭력이 발생한 ‘현상’을 넘어, 그 이면에 숨겨진 갈등의 ‘원인’을 심층 분석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현장에 취재진이 직접 가야 알 수 있는 내용이 많다. 아무리 인터넷을 뒤진다 한들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서는 전쟁의 원인을 심층 분석하기 쉽지 않다. 또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이 아니라, 전쟁 보도는 전쟁 안에 소외된 민간인들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 제아무리 이념이나 목적이 정당한 전쟁이라도 민간인들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민간인의 피해와 경험은 전쟁의 비극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전쟁의 본질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독자적인 취재 역량 구축
외신을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하며, 한국 언론만의 독자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더 많은 현장에 파견할 특파원과 전문 종군기자 양성이 시급하다. 필자를 포함해 정말 극소수인 현재의 종군기자 인프라는 미약하다. 전쟁 보도는 그 어느 보도보다 장기간 쌓은 노하우가 필요한 분야다. 전쟁 지역의 소스나 인적 네트워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기간 현장에서 취재해야 하므로 취재 시간은 종군기자 개인의 역량에 영향을 미친다. 위험하고 힘든 취재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한국은 외교부가 위험 지역을 여행 금지국으로 통제한다. 이는 종군 취재 인프라를 더욱 빈약하게 만든다. 현재 전쟁 국가 대부분이 여행 금지국이다. 외교부의 ‘제한적 여권 허가’를 받지 않고 여행 금지국을 취재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취재 기간도 우크라이나의 경우 14일로, 한정적이다. 이란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외교부는 신속하게 이란 전역을 여행 금지 국가로 지정했다. 이 경우 허가를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취재 내용도 기입해야 하는 등 취재의 자유는 보장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전쟁을 보도할 수 있는 종군기자 인프라는 기대하기 힘들다.
전쟁 보도의 인도주의적 관점 유지를 위해
전쟁 보도는 수치로 환산되는 피해 규모보다 전쟁으로 파괴된 인간의 삶과 인권에 주목해야한다. 전쟁의 비인격화를 경계하고, 평화를 바라는 민간인들의 목소리와 얼굴을 보도에 담아야 한다. 우리가 전쟁 보도를 하는 목적은 남의 집 불난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불 속에서 피해입을 수 있는 사람을 조명하는 것이다. 언론의 임무는 사회의 거울이 되는 것이며, 전쟁 보도에서 그 거울은 평화라는 목적지를 비춰야 한다.
전쟁 보도는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는 행위가 아니라, ‘인류가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같이 살아갈까’라는 방향을 묻는 인류학적 작업이다. 그래서 경제적·정파적 이해뿐만 아니라 인류가 이 위기에서 얼마나 휴머니즘을 회복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 길만이 전쟁의 종식과 평화에 이바지하는 언론 본연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