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The Artist is Present)’는 세르비아 출신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가 2010년 3월 14일부터 5월 31일까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진행한 퍼포먼스다. 미술관 중앙에 탁자와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한쪽엔 작가가 앉고 맞은편엔 관람객이 앉는다. 둘은 침묵 속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예술가와 마주한 관람객의 반응 자체가 곧 작품이 되는 이 퍼포먼스는 하루 7~10시간씩 총 736시간 30분 동안 이뤄졌으며, 1,500명 넘는 관람객이 아브라모비치와 마주 앉았다.
기자가 범죄 피해자가 됐을 때
《탁월한 피해자》의 부제는 ‘스토킹과 사법 정의에 대한 어느 기자의 기록’이다. 2019년부터 일면식도 없는 50대 남성으로부터 스토킹 및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 있는 여성 기자(필자)가 2021년 6월부터 2026년 4월까지 6년간 형사 여섯 번, 민사 한 번, 총 일곱 번의 소송을 치르며 깨달은 한국 형사사법 시스템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르포르타주다.
형사사법 시스템에서 피해자는 최약자다. 무력하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자가 피해자가 됐을 때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최약자인 피해자의 시선으로 시스템을 감시하면서 부조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언론’이 그 사건의 모든 과정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피해자는 과연 최약자인가? 피해자이자 기자라는 이중적 지위가 사건의 기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범죄 피해자로서 내 사건을 책으로 쓰기로 결심한 뒤 이 문장을 항상 생각했다. ‘여기, 저널리스트가 있다.’ 경찰에 고소장을 내면서, 검찰에 수사를 빨리 진행해 달라고 탄원서를 내면서, 법원에 재판을 지연시키지 말고 가해자에 엄벌을 내려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일들을 수차례 겪었다. 그 모든 과정을 감내할 수 있었던 것은 잠입 취재 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찰이 고소장조차 받아주지 않고 이 부서, 저 부서 뺑뺑이를 돌릴 때, 검찰이 피고인 이감을 핑계로 이 검찰청, 저 검찰청으로 사건을 ‘핑퐁’할 때, 법원이 피해자는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라며 담당 판사가 누구인지조차 알려주지 않을 때 눈물을 훔치며 생각했다. 언젠가 모든 것을 글로 쓸 것이고, 그 글쓰기는 단순한 ‘쓰기’를 넘어 ‘보도’가 될 것이라고.
기자라서 당했지만, 기자라서 견뎌
기자라서 스토커의 표적이 됐지만, 기자라서 이 고난을 견딜 수 있었다. 2003년 기자 생활을 시작한 나는 이른바 ‘야만의 시기’에 혹독하게 훈련받았다. 수습기자 시절 경찰서 쪽방에서 6개월을 먹고 자며 첫 보고 오전 일곱 시, 마지막 보고 새벽 두 시의 루틴을 지켰다. ‘하면 된다’ 정신을 철저하게 교육받은 세대다. 수습기자의 인권 같은 건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당시의 교육 방식이 그다지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게 세뇌 당한 덕에 이후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기자가 취재하다 보면 이런 일도 겪고, 저런 일도 겪는 거지’라며 정신 승리할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나에게 수년간 스토킹과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겪고, 가해자가 수감 중에도 편지에 음란물을 넣어 보내며 영치금을 달라는 등 스토킹을 지속하고, 회사 사람들에게까지 명예훼손성 편지를 보내는 일을 겪는 와중에 어떻게 책까지 쓸 수 있었냐고 묻는다.
그냥 ‘책’이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글쓰기가 저널리즘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건을 취재한다고 마음먹었기에 사건과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 덕에 고통에 마냥 매몰되지 않고 온건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쓰는 것이 나의 업무이고, 보도는 나의 소명이므로 일한다고 생각하고 관찰자 관점에서 사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감이 있었다. 일단 취재를 시작했으니 마감해야 한다는 관성이 이 책을 출간할 수 있게 했다.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말
이 책을 쓰게 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공론화를 통해 안전해지고 싶었다. 지난해 가을, 올 10월이면 검찰청이 폐지될 거라는 언론 보도를 접한 후 패닉 상태에 이르렀다. 그간의 경험으로 경찰 수사만으로 사건이 종결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달았기 때문에 이제는 자력구제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간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범죄 피해 사실을 공공연하게 알리지 않았지만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부모님 역시 딸이 가장 안전해지는 방안을 택하길 원하실 터였다. 책을 써서 공론화하면 적어도 독자들은 나를 응원해 줄 것 같았고, 내 사건이 암장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둘째로 당사자성을 회복하고 싶었다. 법조인들은 다 알지만 일반인은 경악하는 사실을 하나 말하자면, 피해자는 형사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다. 피해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선한 의도가 있었으리라 생각하지만, 현장은 애초의 의도와 다르게 돌아간다.
구형 결과를 알고 싶어서, 판결문을 빨리 받고 싶어서, 담당 판사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법원과 검찰에 전화할 때마다 그들은 “피해자는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라서요”라며 거절했다. 피해자는 절차와 정보에서 소외되고 배제된다. 애초에 내가 고소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존재하지 않았을 텐데 나의 당사자성이 부정당하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시스템은 나의 당사자성을 부인했지만 나는 분명히 당사자였고, 그렇다면 당사자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셋째로는 다른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형사사법 시스템에서 피해자는 약자이지만 개인으로서의 나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주류 언론사 기자이고, 이른바 ‘좋은 학교’를 나왔으며, 인맥도 두터운 ‘상위 1%의 피해자’다. 나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다른 피해자들은 대체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
자신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이 말했듯, 인간이 고통을 견디려면 고통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왜 하필 나인지 여러 번 신에게 물었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다른 피해자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바탕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라는 뜻이라고. 드물게 ‘자기 언어’를 가진 피해자로서 형사사법 시스템의 부조리를 낱낱이 보도하는 것, 그것이 저널리스트로서 나의 소명이라 여겼다.
논픽션이 르포르타주가 되기까지
처음엔 다른 피해자들과 피해자 변호사, 피해자 지원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전형적인 논픽션 형식으로 쓰려고 했다. 그런데 집필을 시작하면서 그 계획을 바꿨다. 그렇게 쓴다면 지금까지 형사사법 시스템의 피해자 보호 문제를 지적한 다른 기사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피해자로서 겪은 ‘고유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논픽션이 아니라 르포르타주 형식을 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건과 거리를 두고 담담하게 쓰려던 처음의 계획은 버리고 감정을 배제하지 않고 솔직하게 쓰기로 했다.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제3자의 의견이 필요할 땐 책이나 보고서를 인용하기로 했다.
제목의 아이디어는 피해자 지원 기관에서 일하는 어느 분이 내가 일곱 차례나 고소를 반복하는 걸 보고 “워낙 탁월하시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데서 시작됐다. 그 ‘탁월하다’라는 말이 내겐 아이러니하게 들렸다. 피해자가 탁월하다는 게 대체 뭐지? 그리고 그 ‘탁월함’은 나의 ‘피해자다움’에 어떤 도움이 되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피해자다움과 탁월함은 상충되는 가치가 아닌가? 그 역설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에, ‘탁월한 피해자’가 좋은 제목이라고 여겼다. 집필을 마치고 출판사와 제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여러 안이 있었지만, 결국 모두가 ‘탁월한 피해자’가 가장 좋은 제목이라는 데 동의했다.
기자가 쓴 책은 무엇이 다른가
신문 기사는 중학교 2학년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글이다. 책을 쓰면서 가장 고심했던 점이 독자들이 어려운 법률용어를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였다. 책의 부록으로 ‘이 책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형사사건 법률용어’를 첨부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일곱 번 소송을 진행하면서 사건이 워낙 복잡해졌기 때문에 1~6차 형사 고소 건과 민사사건을 따로 분류한 사건일지도 책 뒷부분에 실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형사사법 시스템이 차곡차곡 무너져간 과정을 내 사건 기록을 통해 입증하고 싶었다.
나는 2021년 11월 처음 고소했고, 2025년 여섯 번째 고소를 했다. 현재까지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2021년 1월부터 시작됐으므로 내가 겪은 사건들이 곧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이후 어떻게 시스템이 무너져갔는지에 대한 방증이라 생각한다. 검수완박 초기에 이뤄진 첫 고소와 재판은 내가 사건을 잊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매끄럽게 진행됐다. 그런데 시일이 지나면 지날수록 검찰과 경찰이 함께 맞물려 망가지면서 피해자가 사건을 신경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고, 수사와 재판이 함께 지연되며 피해자로서의 고통이 가중되는 상태에 이르게 됐다. 시스템이 망가진 현장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저널리스트로서의 의무라 생각했다. 책이 나오고 나서 몇몇 언론과 인터뷰했는데 기자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사건일지와 법률용어 풀이 부록을 보고 역시 기자가 쓴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피해자들의 마지막 희망, ‘취재의 시작’
저널리즘은 이른바 ‘전문가’들의 목소리보다 기자의 경험을 중시한다. ‘현장에 있는 기자를 이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라는 것이 취재와 보도의 제1원칙이다. 지난해 우리 회사에 새로 부임한 편집국장이 취임사에서 AI 시대의 언론을 이야기하며 “AI는 현장에 갈 수 없습니다”라고 할 때 나는 기사가 아니라 이 책을 생각했다. 나는 이 책을 누구보다도 잘 쓸 자신이 있었다. 내가 곧 현장이니까.
책을 쓰겠다 마음먹으면서 피해자로서 겪을 수 있는 제도의 모든 측면을 몸소 경험해 보자고 결심했다. 나중에는 내가 그저 피해자인지 아니면 취재 중인 기자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기자가 현장을 떠나면 안 된다는 원칙에 충실했던 것이 책의 완성도에 가장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취재가 시작되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라는 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취재야 매일 하는 건데 그게 뭐 특별하다고 밈까지 되나’ 생각했다. 그런데 내 사건에서 검찰이 공소장 누범 가중 조항을 누락하면서 내가 취재의 주체가 아니라 취재의 대상이 됐을 때, ‘취재가 시작되자’라는 말의 혜택을 누리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피해자들에게는 그 말이 마지막 희망,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마법의 주문, 피맺힌 염원이 서린 한마디라는 것을.
제도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어 절망에 빠진 이들이 마지막 희망을 안고 찾는 것이 언론이라는 것도 비로소 깨닫게 됐다. 세상은 우리를 ‘기레기’라 멸시하고 ‘레거시 언론’이라며 구시대 유물 취급하지만, 기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보도하는 일, 우리만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되기도 했다.
피해자는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법정에는 피해자를 위해 마련된 의자가 없다. 그러나 나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처럼 나 자신을 위한 의자를 스스로 마련하고 테이블 너머 빈 의자에 변호사와 검사, 판사와 경찰관 등을 차례로 앉혔다. 아브라모비치의 작품에서 관람객들의 반응이 곧 작품이 되듯 나의 서사에서도 수사기관과 법원의 반응이 곧 기사가 됐다. 그리고 ‘취재가 시작되자’, 정말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책을 읽고 연대해 주신 언론계 동료들께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