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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버려야 할 관행, 지켜야 할 원칙 - 제21대 총선 여론조사 보도
기획연재 | 등록일 : 2020-04-29

온 나라가 코로나19 방역 비상에 긴장하는 가운데,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무사히 마무리됐다. 총선은 언론 매체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넘쳐난 여론조사와 여론조사 보도 역시 선거라는 주요 정치 이벤트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한자리를 차지했다. 과연 선거 여론조사 보도는 민주 선거 제도의 구성 요소로서 제대로 그 역할을 수행했을까.

        

253개에 달하는 지역구마다 관심사와 이슈, 민심의 추세가 동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어찌된 일인지 253개의 다른 지역구를 다루는 선거 여론조사 기사가 하나 같이 비슷하다 못해 판박이처럼 서로 닮았을까. 똑같은 조사 항목에 보고서식 수치 나열, 심지어 따분하고 재미없는 기사 전개까지 닮았다. 그저 지역구 명후보 이름, 조사 수치만 다르다. 오차 범위 내에서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는 관심 지역의 경쟁 추이 정도가 흥미를 끌 뿐이다. 지역구 여론조사 기사만 놓고 보면, 유권자는 선거 국면, 지역과 후보, 매체에 관계없이 닮은꼴 기사를 마주하다 선거가 끝난 형국이다. 이른바 선거 여론조사(보도)의 외주화가 낳은 불편한 진실이다.

 

전형적인 경마보도의 틀 못 벗어나

 

공식 선거일이 시작된 지난 42()부터 여론조사 공표가 허용된 9()까지 보도된 지역구 여론조사 기사 가운데 무작위로 35건을 추출해 몇 가지 특성과 패턴을 살펴봤다. 조사 표본 수가 작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때마다 매번 지적됐던 문제가 어김없이 드러났다. 기사 제목은 한 건도 예외 없이 해당 선거구의 후보 간 경쟁 대결에 초점을 맞춰 판세 분석에 주력했다. 피하라는 권고가 무색하게, 주요 후보의 지지율 수치를 제목으로 내세운 기사가 24(68.6%)으로, 전체의 3분의 2 넘었다. 좋은 선거 보도라면 반드시 알려야 할 유익한 선거 정보(후보의 자질과 능력, 공약과 정책, 지역 이슈에 대한 입장 비교 등)를 제목으로 올리는 기사는 단 한 건(2.9%)에 불과했다.

   

물론 항상 문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28(80%)은 주요 후보를 빠짐없이 취급했고, 그나마 후보 자질 정보를 제공하는 기사도 12(34.3%)이었다. 경마 보도 경향은 피할 수 없었지만, 조사 수치의 해석에서 오류를 드러낸 왜곡·과장 보도(2, 5.7%)나 지역·연고주의나 계파 갈등을 편파적으로 강조하는 불공정·갈등 보도(1, 2.9%)의 비율은 현저히 낮아진 긍정적인 측면도 관찰됐다. 다만 기사 본문에서 후보 공약 정보를 제공하거나 정책과 지역 이슈에 대한 후보의 입장을 소개하는 기사가 각각 2건씩(5.7%)에 불과한 것은 아쉬웠다.

 

여론조사 보도의 기본 목적은 유권자가 올바른 판단과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유익한 선거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아는 문제는 여론조사 기사가 전형적인 경마 보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누가 선두를 달리고, 주요 후보들의 지지율 격차가 얼마인지, 누가 당선 가능성이 더 높은지, 어느 비례정당이 더 득표할 것인지, 마치 치열한 레이스 현장을 중계하듯 경쟁과 대결을 부추기는 기사 일색이라는 것이다. 그 대가는 좀 우울하다. 총선 국면의 지역 다양성과 고유성을 판단할 수 있는 살아있는 선거 정보는 어둠 속에 묻혔기 때문이다. 253개에 달하는 지역구마다 주된 관심사와 민원, 지역 이슈와 형편이 같을 수 없다. 지역구 유권자가 올바른 선택을 하는데 필요한 선거 정보도 결코 동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지역구별 후보자의 자질과 공약에 대한 지역주민의 이해와 평판도, 지역구 기반의 고유 관심사와 이슈에 대한 유권자 집단별 의견 분포 같은 현장 밀착형 조사 정보, 지역구 민심의 저변을 들춰내는 살아있는 판세 정보는 한 대목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인지도 높은 인물과 특정 지역구 중심으로 여론조사가 편중되는 보도 관행은 전국 단위 매체일수록 더 심했다. 정작 유용한 심층 정보는 빠진 채 대권 연계성, 직업 대결, 공천 반발과 무소속 출마, 지지율 분산, 선후·턴매치, 특이 이력, 이른바 아빠 찬스같이 흥미 요소를 양념처럼 가미하는 구태도 여전했다. 한마디로, 지역구 여론조사 보도를 통해 언론 미디어가 상업적 가치를 벗어나 다원주의 사회의 어떤 가치를 다양하게 담고자 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수준이라면 조사회사가 넘긴 수치 정보를 활용해 로봇 기자가 여론조사 기사를 작성해도 그리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인다. 이미 스포츠 중계, 기상예보, 주식시황 등 수치를 사용하는 여러 분야에서 로봇 기사를 접하는 현실 아닌가. 대부분의 지역구 여론조사 기사는 조사결과 수치를 기계적으로 대입해 판에 찍어내듯 제출한 한두 장짜리 메모 수준이다. 냉정하게 말해, 게으르기 그지없다. 여전히 기사 제목에서 수치를 제시하면서 유권자의 주목을 끌려 한다. 판세 분석 수치 정보 외의 다양한 선거 정보는 품을 팔아 다른 기사와 사이트에서 찾아야 한다. 눈에 띄는 몇 편의 추세 분석 기사는 민감하게 다뤄야 할 방법론적 문제를 걸러내지 않았다. 정밀한 해석은 아직도 부족하다. 여론조사 기사 쪼개기 관행도 여전하다.

 

수치와 현장이 따로 노는 기사들

 

비록 기사 35건의 약식 분석이지만, 이번 선거의 지역구 여론조사 보도는 관습에 매몰된 기사 작성을 되풀이했을 뿐 유용한 선거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평가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 선거 기사가 다 엉망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유용한 선거 정보를 담은 좋은 기사와 기계적 여론조사 기사가 따로 논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후보의 공약이나 정책 입장 소개, 지역의 현안과 특수 이슈들은 다른 포맷의 선거 기사에서 다룬다. 현장성이 강하고 내용도 다채로워 충분히 관심과 흥미를 이끈다. 하지만 여론조사 기사는 객관성과 공정성의 형식에 갇힌 채 수치 더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저 무미건조하게 수치를 나열하는 진부한 포맷으로 일관한다. 경마 프레임에만 집착할 뿐 스타일이나 양식에 변화를 주는 기사 실험은 적어도 선거 여론조사 보도에선 발견할 수 없다.

  

이처럼 조사 회사로부터 조사 결과를 넘겨받아 기계로 찍어내듯 만든 여론조사 기사에선 죽은 수치만 발견된다. 살아 숨 쉬는 선거 현장은 만나기 힘들다. 지역 선거구의 구석구석을 발로 뛰며 현안 관련 의견 분포의 원인을 현장에서 찾아내고, 지역 민심이 조사 수치와 상동하거나 어긋나는 지점은 없는지, 추세 변화가 있다면 지역 구성원별로 어떤 사유가 있는 것인지, 조사 결과와 현장을 연결해 수치의 의미를 분석하고 풍부하게 해설하는 기사는 보기 어렵다. 통계 수치와 현장이 따로 노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을 찾아 발로 뛰며 수집한 정보를 여론조사 기사에 접목하지 말한 법은 없다. 선거철 대목을 맞은 여론조사회사만 배불린다는 오해 아닌 오해를 가뜩이나 재정도 어려운 언론 매체가 뒤집어쓸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판에 박힌 질 낮은 여론조사 기사를 양산할 이유가 없다.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과 선택에 유용한 선거 정보와 여론조사 결과를 결합해 얼마든지 좋은 기사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번 선거 동안 KBS제주방송총국은 후보의 지지율 대신 공약과 정책, 지역 현안과 주민 관심사를 중심으로 지역 민심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여론 분포를 조사한 결과를 이어 보도했다. 선거 여론조사 보도의 모범을 지역 차원에서 구현하고자 애쓴 사례로 꼽을 만하다. 짧은 분량의 기계적인 여론조사 기사 포맷을 언제까지 고수할 일이 아니다. 몇몇 언론 매체는 학계 연구자와 협업해 새로운 질문 방식과 항목을 개발하고 훨씬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여론분석 결과를 기사화하는 변화를 선보였다.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시점과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여러 매체는 지역구 차원을 넘어 전체 선거 구도의 거시 판세를 분석하는 추세 조사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정당 지지율 변화를 추적하는 기사라고 해서 지역구 여론조사 기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권 심판 대 야당 심판’, ‘좌우 진영대결같은 전략 프레임부터 바탕에 깔고 정치공학 셈법으로 결과 수치의 추세를 해석하기에 바빴다. 정파 대립, 정권 중간 평가, 이념 갈등의 대결 구도 부각은 오직 세력 결집과 이탈의 판도에 주목하는 조사 수치의 범주화를 유도한다. 지역구에 관계없이, 더 나은 후보 투표가 아니라 과도할 정도로 정당 투표를 유인한다.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의 여론조사 생태계, 특히 언론의 여론조사 보도도 거대 양당 체제와 지역주의 강화라는 정치 현실의 재구성에 일조하는 역할을 했다는 비판적 평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선거의 본질에 집중해 민주적 가치와 한국 정치 발전의 지향점이라는 의미를 선거 여론조사 보도의 형식에선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숙고해 봤는지 의심스런 것이다.

 

선거를 통한 정치 현실 재구성 과정에서 선거 여론조사 보도의 부정적 영향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과제다. 그렇다면, 과학적 조사 결과로서 선거 국면의 다양한 측면과 지역구별 고유 특색을 객관적인 판세 정보로 전달하는 대신 누가 이기고 지는지, 누가 당선 가능성이 더 높은지 예측하는 경마 보도는 어떤 부작용을 낳을까. 당연히 종합적인 정밀 분석이 뒤따라야 하겠지만, 우선 지역구 선거 여론조사 기사에 붙은 댓글 반응을 살펴봤다.

  

한마디로, 섬뜩하다. 댓글 작성자 대부분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정당에 대해선 막무가내의 지지와 선호를 표출하지만 반대하는 후보와 정당에 대해선 막말과 혐오 그리고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비하와 폄훼,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특정 지역(주민)에 대한 배타성과 세대 간 비방, 특정 후보에 대한 성차별적 언사나 인격 멸시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사실과 어긋난 허위 정보와 근거 없는 주장도 눈에 띈다. 댓글 품질을 살필 수 있는 지표인 문장 유형에 주목해보자. 의견과 주장의 논거가 분명한 논증 문장은 거의 없다. 일방적인 지지 아니면 이유 없는 비판과 무조건 반대만 드러내는 유인가 문장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기사마다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의심하고, 여론조사 보도에 대한 불신과 여론조사(보도) 무용론을 주장하는 반응이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유달리 가슴 아픈 지점이다.

 

 

 

과학적인 조사 결과의 객관적 수치 정보에 유권자들은 왜 이렇게 격하고 감정적인 반응을 보일까. 왜 자신의 이성을 접어두고 형편없는 수준의 댓글 품질을 보일까. 물론 여론조사 기사에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유권자 집단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유의해서 새겨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댓글 반응은 한국 정치의 저급성이 초래하는 여러 단층의 갈등과 반목만큼이나 한국 언론의 저()품질이 초래하는 정치 불신과 냉소주의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선거 여론조사 보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언론계의 자성과 대안 모색을 촉구하는 속내의 일단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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