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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강력 범죄나 권력형 정치 비리는 물론, 신종 경제사범의 등장, 디지털 지능형 범죄의 만연 등 범죄가 날로 심각해지고 고도화하고 있다. 사회적 해악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사회 안정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범죄 보도(법조 보도)는 언론 미디어로선 결코 소홀할 수 없는 주제 영역이다. 환경 감시의 일환으로 저널리즘의 공공성과 공익성에 부합하고 공중의 관심과 주목도 높아 상업적 가치도 크다.
범죄 보도는 검·경찰의 수사에서 법원의 재판에 이르는 전 과정을 다룬다. 경찰의 내사부터 강제 수사, 검찰의 공소 제기와 유지, 그리고 법정 공방과 법원 판결까지 범죄 관련 사안 전반이 법조 뉴스의 보도 대상이다(박성호·윤영민, 2016). 때로 범죄와 비리 혐의를 먼저 포착한 언론의 탐사보도로 범죄 수사가 본격화하기도 한다. 정치적 외압이나 뒷거래 등으로 비리를 제대로 밝히지 못할 상황이라면 권력 감시와 여론 조성을 통해 민주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예방하는 데 앞장서는 일은 언론의 공적 책무다. 하지만 수사기관과 법원은 국가 형벌권을 관장한다는 의미에서 범죄 뉴스의 핵심 취재원이며, 언론은 근본적으로 이들과 극심한 정보 비대칭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사법부 독립 신화에 기댄 사법체계의 권위주의와 기밀주의도 여기에 한몫한다(심석태, 2014). 이런 처지에서 언론계가 범죄 뉴스의 안정적인 생산과 공급을 위해 선택한 조직적 대처는 범죄를 다루는 권력기관, 이른바 법조 출입처를 중심으로 시공간적 뉴스망(spatio-temporal news net)을 펼치는 일이다. 뉴스 가치가 높은 범죄관련 사건과 이슈를 단독(특종) 보도하려는 매체 경쟁 속에서 인력과 자원을 고정 배치함으로써 법조 출입처 특유의 취재 보도 관행과 기사 스타일이 자리 잡은 것이다(박영흠, 2020).
‘검찰 보도의 과다와 법원 보도의 과소’라는 양적 불균형
출입처 위주의 기자단 운영이 주류 언론의 독특한 뉴스 생산 방식이라는 점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범죄 뉴스의 제작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징적인 것은 범죄 뉴스의 생산을 둘러싼 법조 출입처 취재원과 기자의 상호작용, 그리고 이와 결부된 취재 보도 관행이 사회의 사법체계(또는 ‘정치의 사법화’)라는 거시·구조적 맥락의 영향권 아래서 작동한다는 점이다. 범죄 뉴스의 품질을 감안하면, 적어도 검찰 수사와 범죄 보도의 긴장과 담합, 수사기관 형벌권과 범죄 혐의자 인격권의 갈등, 범죄 보도와 범죄 혐의자 인격권의 침해, 언론 매체 간의 과열 경쟁과 정파 갈등이라는 각 국면에서 취재 보도 관행이 작용하는 방식과 결과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취재 보도 관행의 측면에서 볼 때 범죄 보도에서 드러나는 품질의 수준을 냉철하게 주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련 연구를 정리하며, 이승선과 김연식(2009)은 한국 언론의 범죄 보도 특성을 네 가지로 요약했다. △범죄혐의 중심 △폭로 중심 △선정성 △심각한 인격권 침해 동반. 아마도 권력형 비리나 당파적 정쟁과 무관하지 않은 ‘정치의 사법화’ 추세, 사건·사고 보도 틀에 친숙한 사회부 기사 스타일의 온존과 탐사형 기획·특집의 편성 강화, 범죄 불감증의 사회적 만연 같은 여러 요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범죄 보도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적 맥락 요인은 아무래도 범죄와 처분을 규정하는 관련 법 체계와 그 운용이라 할 수 있다. 민주법치사회에서 범죄 혐의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수사와 공소 제기 그리고 법원의 판결에 따른 법적 처분은 법률제도에 기초하며 이를 따라야 한다. 언론 미디어도 이런 맥락에서 이탈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서 범죄 뉴스를 만들고, 이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구현하고자 한다. 문제는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법익과 권리가 범죄 수사와 재판 그리고 이에 관한 취재 보도 과정에서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잦다는 점이다.
한국 언론의 법조 보도는 출입처로서 ‘검찰 보도의 과다와 법원 보도의 과소’라는 양적 불균형이 두드러진다(박성호·윤영민, 2016; 박영흠, 2020). 검찰과 법원으로 법조 출입처가 대별됨에도 관습적인 뉴스 가치 판단과 속보 경쟁 때문에 언론은 혐의 내사 단계부터 범죄 보도로 시선을 돌린다. 기소 전 단계에서 수사기관은 브리핑과 보도자료로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경쟁에 내몰린 대다수 언론은 이를 의심 없이 받아쓰거나 중계하기에 바쁘다. 특종과 단독의 압박 속에서 상당수 출입기자는 사실 확인과 검증에 소홀하고, 접촉한 취재원도 익명 처리가 다반사다. 혐의와 피의사실에 불과함에도 마치 유죄를 예단하는 듯한 부주의한 표현과 근거 부족한 추측을 일삼는 경우도 빈번하다(양재규, 2017). 이를 두고 현직 법조 출입기자들은 한목소리로 과다한 법조 업무량에 비해 부족한 인원과 시간 제약을 호소한다(박영흠, 2020).
그러나 법률적 관점에서, 이 같은 범죄 보도는 형법이 규정한 피의사실공표 금지를 위배하는데 동조한다는 우려를 낳는다. 무엇보다 헌법이 강조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경시하는 태도를 드러낸다는 비판이 심각하다(문재완, 2020). 물론 언론이 직접적인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 불명확한 보호 법익 논란이나 사실상 사문화한 현실 등에 비춰, ‘피의사실공표죄’를 둘러싼 법 해석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려는 언론 자유를 제약하는 방향이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뒤에 숨어 혐의사실을 선정적으로 보도하거나 범죄 자체와 범죄 관련자를 엄격히 구분하지 못하는 보도 태도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피의 사실 공표에 부주의하고 무죄추정원칙을 존중하지 않을 경우, 범죄 보도는 침해 법익의 소지가 상존할 수밖에 없다. 명예, 초상권, 성명권, 사생활 보호 같은 인격권을 침해하거나 형사 절차의 공정성을 훼손할 가능성을 항상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이승선·김연식, 2009).
이른바 ‘전지적 검찰 시점’
그렇다면, 범죄 보도의 기사 내용과 스타일은 어떠한가? 2000년부터 2014년까지 지상파 방송 3사의 법조 뉴스를 체계적으로 내용 분석한 박성호와 윤영민(2016)은 두드러진 패턴을 제시했다. 몇 가지를 요약해보자. 분석 대상 710건 가운데 △분석 중심 기사는 6.8%. 해설과 분석이 실종됐다. △복합적 관점의 기사는 11.7%. 검찰이 기사의 주어이자 관점을 지배한다. △기사당 사운드바이트는 0.82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실종됐다. △주체 불명 술어 표현 기사가 64%. 사실의 엄밀성과 증거·근거가 부실하다. △피의자 무죄추정 기사 톤은 35.5%.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인격권 침해가 우려된다. △기소 후 법원 기사는 10.4%. 보도 시점, 취재원 활용, 기사 톤 모두 검찰 중심으로 흘러 불편부당성도 미흡하다. 경험적인 계량 분석 결과는 방송 법조 기사의 품질이 방송 뉴스 일반의 품질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실정을 뼈아프게 지적한다.
이 같은 보도 현실, 곧 검찰의 일거수일투족을 이벤트 중심으로 보도하는 ‘사건수사의 사건화’(박성호·윤영민, 2016)는 지난해의 ‘조국 사태’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던 것 같다. 한국언론학회와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마련했던 연말 세미나에서 권석천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는 법조 보도가 지닌 문제의 핵심을 ‘전지적 검찰 시점’이라고 꼬집었다(권석천, 2019). 가령, 수사 편의일 뿐인 출국 금지 조치를 대서특필하는 보도는 마치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인상을 던진다. 피의자는 수사 초기부터 범죄자 취급을 받는 불이익에 빠질 수 있다. 보도가 무죄추정 원칙에 충실했는지 의문이 들 법하다. 또 피의자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하나같이 ‘검찰 수사에 차질 예상’이라는 상투적 문구가 뒤따른다고 지적한다. ‘구속을 해야 옳다’는 검찰 주장과 시각을 은연중에 강화하는 관행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검찰 취재가 아니라 검찰 관점만으로 보는 것이 문제’라는 그의 진단은 정확하다. ‘피의사실이 공표돼도 언론이 검증하고 가려내야 한다’는 처방은 효과가 분명할 것이다. 법조 뉴스의 품질을 규정하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권 칼럼니스트의 성찰은 수십 년째 이어진 낡은 인식과 스타일부터 버릴 것을 강조한다. 물론 법원과 공판 중심 보도 같은 제도와 관행 차원의 개선책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제언한 바 있다(박영흠, 2020;박희봉·한동섭, 2020). 공판 과정에 주력하려는 움직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현장에선 편집국의 고루한 의식이나 여의치 않은 취재 여건을 탓하며 관행 개선을 주저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지배적이다.
그래서 권 칼럼니스트는 기사 문투 바꾸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주문한다. 여기 옮겨 본다. △혐의는 검찰의 주장일 뿐이므로 확인하고 검증한다. △진술을 인용 보도하지 않고 직접 당사자를 취재한다. △피의자 입장을 검찰 입장과 최대한 병렬해서 제시한다. △구시대적인 스케치 기사는 쓰지 않는다. △익명 취재원과 ‘정보 불확실’ 술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사실과 의견을 분리한다. △취재 과정을 성실하고 투명하게 설명한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피한다. △재판 단계의 보도 비중을 늘리는 데 유념한다. 사실, 알 만한 언론인은 다 아는 얘기 아닌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