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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방역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지만 프라이버시 보호에 있어서는 의문점을 남겼다.
확진자 동선 공개를 둘러싸고 벌어진 ‘공익’과 ‘사익’ 의 우선순위 논란,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프라이버시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세월호 사건을 담당했던 한 기자는 취재에 대한 소회를 밝히면서 “신속성과 정확성을 둘 다 충족해야 하면서 취재원의 인격권까지 보호할 황금률은 없다”고 말했다. 기자 중 상당수는 프라이버시를 취재의 걸림돌이지만 법률상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이번에 문제된 것은 ‘방역’이다. 막강한 전파력을 지닌 코로나19 앞에서 대다수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려고 동분서주하다 보니 프라이버시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렇다고 해서 팬데믹 상황에서 방역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해온 정부의 성과와 노력을 폄훼하거나 깎아내릴 의도는 조금도 없다. 그저 비상한 상황에서 지나친 푸대접을 받고 있다 생각되는 프라이버시의 처지가 조금은 딱하고 애처로울 뿐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프라이버시를 위한 조촐한 변론서다.
외국에서 수입됐음이 분명한 ‘프라이버시’는 여러 대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개인정보’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지만 일상에서는 ‘인격권’과 유사한 의미로도 쓰인다. 이렇게 보면, 프라이버시 보호와 인격권 보호의 동선이 상당 부분 겹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범죄자의 신상은 기사를 통해 일반에 공개되곤 했다. 요즘처럼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할 것인지 말 것인지 갑론을박하지도 않았다. 그냥 모두 공개했다. 굳이 흉악범이 아니더라도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돼 있던 일반 잡범의 얼굴이며 이름·나이·직업·주소가 언론을 통해 다 공개됐다. 물론, 그 시절 범죄 피해자의 신상정보도 같이 기사에 실렸다. 이랬던 보도 관행이 시간이 흐르면서 피의자에 관해서는 ‘익명보도의 원칙’으로, 피해자에 관해서는 ‘비공개’로 달라졌다.
범죄는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매우 치명적인 요인이다. 그래서 흉악범의 얼굴 공개에 적극적이지 않은 수사당국과 언론에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있다. 범죄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범죄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사회를 보다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이라고 여기는 의견이 존재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범죄자 신상정보 공개가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는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시대적 흐름과 충돌해 자주 불협화음을 연출한다.

[그림 1] 중앙방역대책본부 확진자 동선 공개 관련 지침 발표 전의 상황
프라이버시 보호, 느리지만 꾸준히 전진 중
시간과 장소를 1950년대 미국으로 옮겨보자. 당시 미국 의학계의 암 연구는 살아있는 암세포를 사람 몸에 주입한 후 그 경과를 관찰하는 식이었다. 이들 중 절반가량은 암 환자였고, 심지어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몸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고지 받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간단한 암 검사 정도로만 알았다고 하니 가히 충격적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비윤리적이며 위법해 보이는 연구방식이 공익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옹호됐다는 사실이다. 저명한 암 연구자였던 체스터 사우샘(Chester M. Southam)은 “이것들이 암세포인가 아닌가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험대상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 세포는 이질적인 것으로 곧 면역체계에 의해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 의학적으로 별 상관도 없는데 괜히 감정적인 혼란만 야기할 수 있는 지엽적인 내용을 환자에게 숨기는 것은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진료 현장의 탁월한 전통이라 하겠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했다.1)
비윤리적이거나 위법한 연구라도 얼마든지 공익에 기여할 수 있다. 실험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미미한 위험 혹은 환자 개인의 안전 문제에 가로막혀 수많은 암 환자들을 살릴 수 있는 백신 개발에 차질이 빚어진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양보 내지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프라이버시 이슈는 늘 쉽지 않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왔다.
사례로 든 것은 겨우 두 개지만, 여러 사건과 상황 속에서 무시되거나 소홀히 취급되기 일쑤였던 프라이버시는 느린 속도로나마 보호되는 방향으로 꾸준히 전진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국면에서도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의미 있는 장면이 연출됐다.
2020년 3월 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위원장 명의로 코로나19 확진자 동선 공개에 인권 침해적 소지가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전까지 코로나19 확진자의 상세한 동선이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나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공개되고 있었다.[그림 1] 법률2)에 근거가 있었고, 또 익명 처리된 정보였다. 하지만 동선이 시간대별로 워낙 상세히 공개되다 보니 당사자가 특정될 여지가 없지 않았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이러한 형태의 확진자 동선 공개는 지나친 사생활 침해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비난과 조롱으로 이어져 2차 피해를 발생시키고, 결과적으로 자진 신고나 검사를 기피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그림 2] 중앙방역대책본부 확진자 동선 공개 관련 지침 발표 후의 상황 <출처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누리집(http://ncov.mohw.go.kr/)>
이에 같은 달 14일 중앙방역대책본부가 확진자 정보공개에 관한 지침을 지방자치단체에 배포했다. 지침에 따르면, 개인이 특정될 수 있는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코로나 증상 발생 1일 전부터 격리일까지의 동선만 공개하되, 동선 일체가 아닌 선별적 동선(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감염을 우려할 만큼 확진자와의 접촉이 일어난 장소 및 이동수단만을 공개하는 것)을 공개해야 한다.
유출 자체만으로도 문제
지침 발표 이후, 공개되는 확진자 관련 이동 경로 정보가 매우 간소해졌다.[그림 2] 그러자 이번에는 간략해진 동선 공개로는 효과적인 방역이 어렵다는 의견과 여전히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동시에 제기됐다.
확진자 동선 공개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번 논란은 방역의 필요성이라는 ‘공익’과 확진자의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사익’의 충돌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법의 영역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던 공익과 사익의 충돌 상황을 해결하며 쌓아온 확고한 기준이 있다. ‘과잉금지의 원칙’이라 불리는 이 기준은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라는 네 가지 하위 차원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번 확진자 동선 공개 이슈에 적용해보면 다음과 같이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 목적의 정당성: 확진자 동선 공개가 방역을 위한 것인가?
● 수단의 적합성: 확진자 동선 공개가 방역에 적합한가?
● 침해의 최소성: 확진자 동선 공개가 최소 범위에서 이뤄지는가?
● 법익의 균형성: 확진자 동선 공개가 지나치게 방역을 위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지는 않은가?
일반인의 시각으로 보면, 과잉금지의 원칙이 내포하고 있는 네 가지 차원의 기준이란 다분히 추상적이어서 그 의미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과잉금지의 원칙은 공익이라는, 거역하기 힘든 대의명분 앞에서 작고 미미한 사익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줄곧 해왔다. 결국 확진자 동선 공개를 둘러싸고 벌어진 최근의 논란을 통해 우리는 공익과 사익에 관한 오래된 질문들을 마주하게 된다.
먼저 공익은 무엇이며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공익이라면 감히 묻지도, 따질 수도 없는 시절이 있었다. 절박하고 곤궁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공익은 극단적인 국가 중심, 공동체 중심의 관념으로 간주됐다. 공익은 다른 어떤 사익보다 우월했고, 국가와 사회 전반에 걸친 정당화의 근거이자 강력한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공익 개념도 달라졌다. 확진자 동선 공개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공익을 위한 공개라고 해서 두루뭉술하게 용납되는 것이 아니라, 과잉금지의 원칙에 비추어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 논증이 이뤄져야 한다. 관건은 아무래도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이 지켜졌는지가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방역 전문가들의 의견이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고 본다. 확진자에 대한 사회적 비난 여론이 뜨거운 상황에서 자칫 정치적 논리나 계산으로 동선 공개가 이뤄지는 것은 ‘공익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법적 책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공개의 주체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라고 해서 무조건 면책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감염병관리법상 보건복지부 장관이 동선 공개의 주체로 명시돼 있다는 점에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과도한 동선 공개는 재고될 필요성이 다분하다.
다음으로 프라이버시의 의미는 무엇이며, 왜 보호돼야 하는가. 주지하다시피 코로나19 상황에서 확진자 동선 공개를 포함한 정부의 방역 정책은 매우 훌륭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적 이후 신속하게 지침을 만들어 대처한 점도 칭찬받을 만하다. 문제는 결과론적으로 모든 문제를 바라본 나머지, 프라이버시쯤 가볍게 취급하거나 무시해도 좋다는 식의 분위기가 형성돼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프라이버시는 “우리가 우리 존재의 주인이라는 점을 인정받고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구성하고 동시에 보호”한다.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개인 영역에 대한 존중을 요청하는 것을 이기심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프라이버시는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일종의 인격적 토대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존중, 배려, 경청, 강압하지 않기, 억누르지 않기 등이 포함된다. 과거에는 개인의 인격에 대한 존중이 윤리나 에티켓의 문제였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임금 문제가 주요 이슈였던 노동법 영역에서도 ‘인격권’의 문제가 논의되고 있고, 종전까지 재산권 위주였던 민법 영역에서도 '인격권' 이슈가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더 이상 인격에 대한 존중이 윤리나 에티켓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인 문제라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언론 보도 관련 분쟁에서 주로 다뤄지는 법익은 재산권이 아닌, 명예, 사생활, 초상권, 음성권, 성명권 등과 같은 인격권이다.
한편,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프라이버시 침해와 관련한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정확한 확진자 동선 파악을 위해 각종 금융정보, 위치정보 등이 수집·이용됐다. 또 확진자 이외에 의심자, 접촉자 관련 정보까지도 광범위하게 수집된 후 제삼자에 제공되기도 했으나, 제대로 폐기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지금 당장 이러한 정보의 수집과 이용으로 인해 물질적인 피해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설령 물질적인 피해가 없다 하더라도 개인정보의 유출 그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된 권리가 바로 ‘프라이버시’이기 때문이다.
1) 레베카 스클루트,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문학동네, 2012에서 인용·재정리
2)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34조의2(감염병위기 시 정보공개) ①보건복지부장관은 국민의 건강에 위해가 되는 감염병 확산으로 인하여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8조제2항에 따른 주의 이상의 위기경보가 발령되면 감염병 환자의 이동경로, 이동수단, 진료의료기관 및 접촉자 현황 등 국민들이 감염병 예방을 위하여 알아야 하는 정보를 정보통신망 게재 또는 보도자료 배포 등의 방법으로 신속히 공개하여야 한다.
3) 이진우, ≪프라이버시의 철학≫, 돌베개, 54쪽, 2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