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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코로나19가 세계 노동환경의 지형마저 바꾸고 있다. 이제는 흔한 노동환경이 된 재택 및 원격근무는 더욱 확산될 것이고, 단기 계약의 프리랜서 노동 ‘긱워커’ 역시 일반화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이전과는 다른 뉴 노멀의 시대를 맞이한 새로운 노동 지형도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재택근무라고 해도 하루에 5~6개씩 온라인 회의가 있어서 바쁩니다. 그러나 이제는 동료가 보고 싶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페이스북 본사에 다니는 김 모 씨는 2020년 3월 2일부터 재택근무에 돌입, 4월 말 현재까지 한 달 반째 재택근무 중이다. 곧 두 달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실리콘밸리는 “직원의 천국이어서 회사가 재택근무를 자주 하고, 직원들이 재택근무·원격근무에 익숙할 것이다”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개인에 따라 일주일에 하루 이틀 재택근무를 쓰는 것이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전 직원이 두 달째 재택근무를 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재택근무 중입니다’ ©뉴스1
코로나19 이전에도 일의 미래(future of work)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인공지능(AI), 클라우드, 공유경제 등의 영향으로 기존 일자리가 없어지거나 바뀌고 있기 때문에 ‘직장’, ‘일’, ‘일자리’에 대한 정의가 각각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논의였다. 여기에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일’과 ‘일자리’에 대한 변화가 가속화됐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이 이번이 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확산됐던 신종 전염병 사스(SARS)는 소비자와 기업의 행동 변화를 불러 전자상거래를 선택에서 필수로 바꿔 놨다. 코로나19는 '재택근무'를 이벤트에서 근무 옵션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진 후 직원이 일상으로 복귀한다고 해도, 또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재택 및 원격근무가 지속될 수 있게 됐다.
또 미국에서는 실업률이 치솟아 한 달 만에 무려 2,200만 명이 실업수당을 청구했다. 한 달 만에 한국 인구의 절반 정도가 직장을 잃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 이르면서 긱워커(Gig worker)라고 하는 프리랜서 노동도 가속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처럼 ‘재택·원격근무의 정착’ 그리고 ‘긱워커의 일반화’라는 새로운 노동환경이 나타나 삶으로 스며들고 있다. 새로운 표준 즉, ‘뉴 노멀(new normal)’이 된 것이다. 물론 아직 미국에서는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았고 자가 격리가 해제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재택·원격근무 노동환경의 ‘뉴 노멀’이 정착됐다고 선언하기는 섣부르다. 아직 진행형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기업들은 어떻게 적응하고 있고 노동환경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리고 일자리 변화의 모습 등을 기록하는 것은 미래 변화를 예측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다. 뉴 노멀은 이제 시작됐으며 ‘올드노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 뉴 노멀의 시작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자가 격리 명령에 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 회사 내부에서도 빠르게 움직였다. 재택·원격근무 시행 초기,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매뉴얼을 재빠르게 만들었으며 인사(HR) 담당자들은 해마다 하던 직원 평가를 유보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전환했다. 회사 재무 담당자들은 그동안 출장 예산은 적당했는지 사무실 공간이나 건물은 효율적으로 구성됐는지 재검토에 들어갔다. 재택·원격근무는 더 이상 이벤트가 아니라 기업들이 받아들여야 할 기준이 된 것이다.
실리콘밸리 본드캐피털(Bond Capital)의 조사(Our New World)1)에 따르면 지난 한 달 반 정도의 재택근무 결과 다음과 같은 점이 발견됐으며, 이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아직 재택·원격근무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좋다. 생산성은 동일하거나 오히려 더 높다.
-비디오 통화는 제시간(또는 약간 일찍)에 시작, 종료하는 경향이 있더라. 또 과도하게 사용되지 않을 때 효율적이다.
-그동안 본부(HQ) 외부에 있던 직원들이 소외되곤 했는데, 원격근무와 화상회의 트렌드로 소외감이 사라지고 있다.
-재택근무로 인해 일과 생활의 균형(워라밸)이 재조정되기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근무환경 만들기(정기적 모임, 업무 강의, 라이브 스트리밍 운동)도 성공리에 이뤄질 수 있었다.
비즈니스가 흔들리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GM, 포드, 도요타, 혼다 등 미국 내 자동차 회사들은 공장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여행 및 식당, 의류산업은 큰 피해를 겪고 있다. 반면 실리콘밸리 주요 기업들은 코로나19와 싸우기 위해 기부를 하면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꿔놓고 기회를 만들고 있다. 재택·원격근무에 즉각 돌입했지만, 사업도 멈추지 않았다.
실제 페이스북은 전 직원이 재택·원격근무를 하는 동안에도 페이스북의 이용자 환경(UX)을 대대적으로 바꾸는 일을 실행했으며 인도 이동통신사에 57억 달러(약 7조 440억 원)를 투자해, 지오플랫폼스(Jio Platforms)의 지분 9.99%를 인수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애플도 전 직원이 코로나19로 인한 재택·원격근무를 하는 동안 뉴맥북, 뉴아이패드를 출시한 데 이어 새로운 아이폰(아이폰 SE 2020)도 출시했다. 아마존은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 중이며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넷플릭스, 비자 등 주요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코로나19 이후 다우지수와 S&P 500 등 시장이 최대 30%까지 폭락했지만 양호한 실적과 주가를 올리고 있다.
출장을 안 가도 화상회의나 가상 콘퍼런스로 대체될 수 있고 비즈니스에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판단되면, 이 트렌드가 정착해 관련 산업도 탄생할 것이다. 실제 코로나19 시대의 아이콘이 된 ‘줌(Zoom)’은 3개월 만에 가입자 수 1,000만 명에서 2억 명으로 그 수가 크게 늘었다. 이것은 기술 역사상 가장 가파른 가입자 상승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슬랙(Slack)은 지난 1분기 유료 가입자가 2배 이상 늘었고 하루 평균 메시지 수도 20% 늘었다고 발표했다.
재택·원격근무 한계도 극복될 것
그러나 재택근무는 창의성을 떨어트린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사람을 만나야 더 잘 나오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미안, 재택근무는 과대포장 됐다>라는 기사에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재택근무(원격근무)는 창의성 및 혁신적인 사고와 같이 측정하기 어려운 이점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재택근무자보다 문제를 더 빨리 해결하는 경향이 있다. 팀 결속력도 원격 근무환경에서는 어려움을 겪는다"라고 보도했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 전 애플 CEO는 '안티 재택근무'로 유명했다. 그는 "직원의 창의성은 집에서 이메일을 받을 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직원들 간의 우연한 만남과 자발적인 미팅에서 나온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기술 이슈가 아니라 신뢰 부족, 외로움 등 '감정적'인 것이다. 상사는 직원이 집에서 열심히 일하지 않으리라 의심하고, 재택근무 초보자는 정보 부족에 시달린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는 간단히 얻었던 답변도 집에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외로움도 증가한다. 재택근무 시행 두 달째가 되자 오히려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흐름도 있다. 사무실에서 출근하는 것에 대한 가치, 학교에서 같이 만나 강의를 듣고 아이디어를 나누고 잡담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다시 생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표 1] 미국 산업별, 직종별 해고 및 고용 현황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자리의 최대 이동
코로나19로 인해 ‘일’의 모습이 바뀌고 있는 것과 함께 ‘일자리’도 이동하고 있다. 미국에서 한 달 만에 2,200만 명이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거리로 내몰리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는 곳도 많다. 아마존, 월마트, CVS헬스 등 리테일은 50만 명의 새로운 직원을 고용했다. 때문에 코로나19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일자리 이동을 촉발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실제 링크드인(LinkedIn)에 2020년 3월 15일부터 21일까지 올라온 잡포스팅 분석에 따르면 현재 매장 직원, 시스템운영자, 공인회계사(CPA), 건강관리 전문가, 건설노동자, 창고관리자, 심리학자, 차량정비공, 학술 고문, 배달 기사 등이 지금 가장 많이 고용을 창출하는 직종이다. 회사별로는 세븐일레븐(7-Eleven, 유통), 주방위군(Army National Guard), KPMG(회계법인), 아마존(유통), 제넨텍(Genentech, 바이오), 로우스(Lowe’s, 가전 판매 유통업체), HCA헬스케어, 인튜이트(Intuit, 회계 SW), 네프리스(Nepris, 온라인 교육), 홀푸드(Whole food, 유통)가 최근 들어 가장 고용을 많이 하는 회사로 나타났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연봉 협상자료 스타트업 칸더(Candor)의 자료를 보면 산업별, 직종별로 해고, 고용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267개 회사가 고용을 중단했고, 44개 회사가 해고를 단행했으며, 36개 회사는 채용을 중단했다.
반면 111개 회사는 고용을 늘렸다. 화상회의로 뜨고 있는 줌(Zoom)이 새로 고용에 나섰다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또 트위치(Twitch), 트위터(Twitter), 트윌리오(Twilio), 틱톡(TikTok), 퀄컴(Qualcomm), 펍지(PUBG), 페이팔(PayPal), 팔란티어(Palantir), 엔비디아(NVIDIA),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 이베이(eBay), 도어대시(DoorDash), 도큐사인(DocuSign) 등 여러 기업도 고용을 늘리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 관련 일자리도 타격이 덜하다. 오히려 환자치료, 신약개발, 바이러스 확산 방지 등의 작업에 AI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표 2] 미국 분야별 채용공고 점유율
어떤 분야에서 일자리를 줄이고 늘렸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2020.1.1과 2020.3.15. 기준)
시장조사 전문기관 국제데이터회사(International Data Corp)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IT 지출 전망을 5%에서 4.3%로, 연평균 성장률을 1%로 낮출 수 있다고 발표했다. IT 지출은 낮아지지만 AI 지출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고객서비스 상담원, 학습소프트웨어, 진단치료시스템 및 제약 연구의 발견에 AI가 급속도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AI 지출은 2019년 대비 25% 증가한 480억 달러(약 59조 880억 원)에서 585억 달러(약 72조 135억 원)로 32%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 바 있는데, 이대로 유지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다른 산업처럼 급격히 떨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차량호출(우버, 리프트)과 숙박(에어비앤비) 서비스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문량이 80% 가까이 떨어진 상태다. 그 때문에 플랫폼 노동(주문형 노동, 긱워커)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단편만 본 것이다. 식료품과 음식을 제공하는 인스타카트(Instacart), 도어대시(DoorDash), 우버이츠(Uber Eats) 등은 급격한 수요 증가를 경험, 새로운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주문형) 노동은 코로나19 이후 뉴 노멀의 형태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의 이점이 분명한 데다, 미국에서는 유연한 근무 형태를 제공하고 노동자 입장에서도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이 변하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은 경제적으로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플랫폼 노동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다. 플랫폼 노동이 뉴 노멀 시대의 노동 형태로 정착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