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론은 지금껏 ‘외신 옮겨 적기’ 관행으로 국제뉴스를 보도해왔다. 그렇다면 해외 언론은 국제뉴스를 어떻게 보도할까. 미국의 대표적인 두 신문과 네트워크 방송사의 사례를 통해 우리 국제뉴스 보도의 방향성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지난 2015년 영국 BBC의 메인 뉴스인 <10시 뉴스(News At Ten)>를 한 달 넘게 모니터한 적이 있다. 해외 대상 방송인 BBC월드가 아니라 국내용이었음에도 국제뉴스는 여러 면에서 놀라웠다. 우선 ‘안(국제부)’에서 만드는 국제뉴스가 거의 없었다. 4월 13일부터 5월 12일까지 38건(단신 제외)의 국제뉴스 가운데 국제부에서 맡은 것은 두 개뿐이었다. 특파원 보도는 대부분 상당한 발품을 들였다. 스트레이트성은 적었고, 현장 르포가 70% 이상(28건)이었다. 스케일도 남달랐다. 나이지리아 무장 세력 보코하람(Boko Haram)에 납치된 여학생들의 사례를 취재하는 특파원은 마을 네 곳을 추적해 관련 증언을 담았다. 예맨 내전에 급파된 특파원은 남부의 민병대 진지를 누빈 뒤엔 국경을 넘어 사우디아라비아의 전직 정보기관 수장과 마주 앉았다. 아프리카발 대규모 난민 유입과 네팔 지진 속보처럼 당일 발생 뉴스는 속보를 업데이트하기보다 새로운 현장을 하나라도 더 찾아다녔다. 난민들이 쪼그려 앉아 갈 곳을 기다리는 항구의 하루, 생존자를 찾아 잔해 밑을 뒤지는 구조대의 작업 하나하나가 개별 리포트의 주제였다.
인도에서 진통하던 임산부가 15시간 동안 병원 8곳에서 퇴짜를 맞은 뒤 숨진 사연을 다룬 뉴욕타임스의 국제기사
<출처 –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팩트텔링(fact telling)보다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확실히 우선이었다. 이런 보도에 자료 화면이나 해외 방송사가 제공하는 화면이 등장할 틈은 당연히 없었다. 기자의 입으로 AP나 로이터를 인용할 일도 없었다. 분쟁과 재난이 발생한 시기적 특성, 세계적 공영방송사의 인적·물적 토대를 고려해야겠지만, BBC의 국제뉴스는 현장 우선, 심층 취재, 스토리텔링에 방점을 찍은 국제뉴스의 이념형(ideal type)을 그려보게 했다.
멕시코시티의 청과물 시장을 샅샅이 훑어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국제기사
<출처 -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그러면 일반적으로 해외 언론의 국제뉴스 관행은 어떨까. 본 기사에서는 범위를 미국으로 한정해 국제뉴스를 얼마나 심층적으로 보도하는지, ‘외신 옮겨 적기’ 관행이 있는지 등을 알아봤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업무상 매일 챙기는 두 신문(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과 네트워크 방송사(ABC, CBS, NBC, PBS)의 6월 넷째 주(6월 22~28일) 보도를 살폈다. 기자 연결과 대담 중심인 CNN은 비교가 쉽지 않아 제외했다.
미국 신문의 국제뉴스, 기획기사 비중 높아
미국의 두 유력 일간지를 보면, 고정 면을 포함해 국제뉴스에 적지 않은 지면이 배정된다. 주말을 빼고 평균적으로 뉴욕타임스는 전체 24면 발행 시 5면, 워싱턴포스트는 22면 발행 시 4면 정도 된다. 한국과는 달리 대부분 해외 특파원이 쓴 기사이고 국제부 내근 기자가 작성한 경우는 10% 정도에 그친다.
두 신문의 국제뉴스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특징은 기획기사의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살펴본 일주일치만 보더라도, 뉴욕타임스는 57건 중 30건, 워싱턴포스트는 36건 중 19건으로 절반 이상이 기획기사였다. 국제뉴스 기획은 1면에 자주 배치되는데, 통면으로 이어지는 점프 기사 형태로 롱 저널리즘(long journalism)의 전형을 보여준다. 6월 22일 자 1면을 보면, 뉴욕타임스는 인도에서 임산부가 새벽에 진통이 심해 병원을 찾았지만, 15시간 동안 병원 8곳에서 퇴짜를 맞아 숨졌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실었다.1) 기자는 임산부의 동선을 되짚어 병원을 일일이 찾아갔고, 코로나19로 수용 능력이 마비된 인도의 의료 실태를 파헤쳤다. 같은 날 워싱턴포스트의 <바이러스가 멕시코 시장을 가로지르다>는 멕시코시티의 청과물 시장을 샅샅이 훑었다.2) 토마토 판매상부터 시장 관리인까지 19명의 실명 취재원이 기사에 등장한다. 현장 인터뷰만으로 코로나19 감염 실태와 빈곤층의 취약한 환경, 정부의 무능을 여실히 드러낸다. 당국의 집계 자료나 현지 언론 보도는 사용되지 않았다. 기획기사는 복수의 기자가 협업한 산물이기도 하다. 코로나19가 세계의 다양한 영역에 미친 영향을 종합한 <바이러스가 전 세계의 문을 닫았다>3) 에는 로마, 싱가포르, 카라카스, 도쿄, 베이징, 마닐라 등의 특파원 여섯 명에 외부 기고가 두 명, 대표 집필자 등 총 아홉 명이 참여했다. 남미나 아시아 등 대륙별 상황을 종합하는 기사에는 현지 특파원 대여섯 명 외에 자료조사원의 이름도 붙었다.
두 신문의 국제뉴스에서 또 눈에 띄는 것은 시의적인 기획물이다. 한국 신문에서 자주 접하는 기사는 아니다. 얼핏 보면 한 템포 늦은 내용이라 전형적인 스트레이트 기사도 아니고, 시의성과 동떨어진 피처 스토리도 아니다. 사나흘 혹은 일주일 전 뉴스를 모티브 삼아 후속 취재로 내용을 보강하고 사안의 의미를 확장한다. 6월 26일 뉴욕타임스 14면 <중국, 이웃에 무력시위, 신호는 미국에>4)가 좋은 예다. 군인 600여 명이 난투극을 벌여 수십 명이 사망한 중국과 인도의 국경 충돌을 다뤘다. 열흘 지난 이 내용은 도입부에 실마리로만 제시된다. 기사의 대부분은 중국, 미국, 호주 등의 전문가 다섯 명의 인터뷰로 상황을 해설하고, 미 의회 보고서에서 관련된 내용을 제시하며, 인도 현지 언론의 시각까지 곁들인다. 같은 날 실린 프랑스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한 항의 기사는 발생한 지 사흘 지났고, 러시아의 이상 고온 현상 기사는 일주일 전 뉴스를 발전시킨 내용이다. 이런 기사들의 관심은 속도가 아니라 분석이다. 사안을 평면에서 입체로 바꿔 제시함으로써 사건보다 맥락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철인3종 경기 고 최숙현 선수의 자살을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5)도 그런 예다. 사건 발생 2주 뒤에 실린 이 기사에는 타 언론과 차별화할 뾰족한 ‘뉴 팩트(new fact)’는 없다. 하지만 최 선수의 일기장, 녹취록, 고소장 등 한국 언론에 이미 다 나온 내용을 직접 검토해 되짚는다. 아울러 어린 선수들의 합숙 훈련에서 생기는 폐쇄적 문화를 조명하고, 비슷한 사례로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의 피해를 소개해 사안의 전모를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고 최숙현 선수의 자살을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 <출처 –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외신을 인용하는 방식
스트레이트 기사를 살펴보면, 한국 신문의 특파원 보도 관행과 그다지 다를 바는 없다. 당국의 발표와 보도자료, 현지 언론의 보도 내용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뉴욕타임스의 <글래스고 경찰, 용의자 살해>는 경찰의 브리핑과 소셜미디어에 공유된 영상, 현지 신문과 방송의 보도를 인용한다.6) 워싱턴포스트의 <러시아 내 미국인 피고인, 항소하지 않기로>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과 주러 미국 대사관의 공식 발표가 기사의 뼈대였다.7) 해외 특파원이 당일 발생한 사안을 시차도 다른 곳에서 취재하기엔 시간적 제약이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과 구별되는 특징도 있다. 첫째, 미국 신문에서 외신을 주어로 삼은 문장을 찾기는 어렵다. 외신의 단독 보도를 인용할 때만 예외다. 국내에선 “뉴욕타임스는 ~라고 보도했다”의 주술 구조가 일상적이고 “이 신문은 ~라고 덧붙였다”는 식으로 반복 인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외신을 베껴 쓴다는 비난이 집중되는 대목이다. 미국 신문도 외신을 활용하지만 “목격자는 AP에 ~라고 설명했다”, “내부고발자는 스카이뉴스에 ~라고 폭로했다”처럼, 직접 확보하지 못한 인터뷰를 가져다 쓸 때 출처로서 명기하는 경우가 많다.
글래스고 경찰의 용의자 살해에 대해 보도한 뉴욕타임스 기사 <출처 –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둘째, 기사에서 전후 맥락을 상당 부분 설명한다. 드라마에 비유하면, 전편의 내용을 환기하는 ‘지난 이야기(previous story)’로 기사의 절반을 채운 사례가 많다. 6월 23일 자의 <청와대의 볼턴 회고록 반박>8), <북한의 대남 전단 맞불>9) 기사에서 절반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앞의 기사는 싱가포르·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전개 과정을 열거했고, 뒤의 기사는 탈북자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행태와 6·25 이후 남북의 ‘삐라’ 활용까지 과거사를 두루 포함했다. 역피라미드 구조에서는 후반부에 한두 문장 덧붙였을 법할 내용, 여러 차례 기사화했다는 이유로 버려질 법한 내용도 사안에 생소한 독자를 겨냥해 자세히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스트레이트 기사지만 단순 전달에 머물지 않게 된다.
미국 방송의 국제뉴스, 적은 리포트·빈약한 내용
미국 네트워크 방송사의 저녁 메인뉴스에서 국제뉴스를 접하기는 쉽지 않다. 아예 없거나 있어도 한 건 정도에 그친다. ABC의 간판뉴스는 <월드 뉴스 투나잇(World News Tonight)>이라는 프 로그램명에 걸맞지 않게 국제뉴스 리포트가 일주일에 3~4건에 불과하다. 저녁 뉴스 자체가 20분 안팎으로 짧고 리포트가 평균 7개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국제뉴스가 들어갈 공간이 별로 없다. 그러니 해외 특파원의 등장도 잦지 않다. 특파원 수가 적어서인지 <코로나19로 인한 파리의 에펠탑 입장 금지>(CBS, 6월 28일), <러시아 푸틴의 집권 연장 >(NBC, 6월 26일)을 현장에 가지 않은 런던 특파원이 전한다. 기획뉴스도 간혹 있지만, 발품을 많이 들이지 않은 단순한 리포트가 많다. 국제뉴스의 길이가 대체로 짧게는 1분, 길어야 1분 45초를 넘지 않는 탓이다. 사운드바이트10)가 고작 1개인 경우도 허다해 리포트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제시되지도 않는다. 미국에서 1년 반 동안 저녁 뉴스를 시청한 경험으로는, 전반적으로 네트워크 방송사들은 국제뉴스 전달 기능을 상당 부분 글로벌 뉴스 매체에 넘긴 게 아닌가 싶은 인상을 받았다. CNN의 국제뉴스가 그 기능을 얼마나 수행하는지는 별도의 분석을 필요로 한다. 다만 한국에서 시청하는 것과 달리 북미 대륙에 송출되는 CNN에서는 평상시엔 미국 국내 뉴스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이 글 도입부에 소개했던 현장감 있고 심층적인 BBC의 국제뉴스에 견줄만한 보도는 그나마 공영방송 PBS에서 발견된다. 내전으로 피폐해진 예멘이 코로나19로 이중고를 겪는다는 리포트(6월 23일)11)는 주민과 의사, NGO 관계자, 복지부 대변인 등 일곱 명의 인터뷰와 여러 현장을 통해 인도주의적 위기를 보여준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은 한반도의 상황을 진단한 기획물(6월 25일)12)은 탈북자, 대통령 외교안보 특보, 주한 미국 대사, 예비역 군인을 인터뷰해 다양한 관점으로 사안의 복잡성을 드러낸다.
서구 언론 국제뉴스 제작 관행의 구조적 배경은
해외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는가를 뉴스 내용만 분석해선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서구 언론의 국제뉴스 제작 시스템을 직접 관찰할 기회는 없었지만, 이를 엿볼 수 있는 진단이 있다. 해밀턴과 제너(2004)는 국제뉴스 인력을 ‘전통적 해외 특파원’, ‘임시 특파원(parachute journalists)’, ‘외국인 해외 특파원(foreign foreign correspondent)’, ‘외국인 현지 통신원(foreign local correspondent)’, ‘내근 국제부 기자’ 등 여덟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13) 이들은 사안이 발생했을 때 급파하는 ‘임시 특파원’의 활용이 늘면서 국제뉴스가 풍성해졌다고 봤다. 뉴욕타임스나 BBC가 아프리카의 니제르, 아르메니아 내륙, 우크라이나의 동부 시골 등 세계 각지의 다양한 현장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그런 운용 방식이 있기에 가능하다. ‘외국인 해외 특파원’은 처음엔 비용 절감 차원에서 현지 국적의 기자를 채용하면서 도입했지만, 이제는 해당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임기에 구애받지 않는 이점 때문에 그들의 전문성에 상당히 의존한다. 서울지국에서 미국 매체의 특파원으로 일하는 한국인 기자들이 그런 예다. ‘외국인 현지 통신원’은 독자적으로 미국 신문에 기고하기도 하고, 임시 특파원이 파견되면 협업도 한다.
미국 방송에서 국제뉴스가 빈약해진 것은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된 문제다. 1989년 3,351분이었던 NBC의 국제뉴스는 1996년 1,175분으로 3분의 1로 축소됐고 같은 기간 ABC뉴스의 국제뉴스는 3,733분에서 1,838분으로 절반 줄었다. 두 방송사에서 기자로 일했던 개릭 어틀리(1997)는 이런 측정 결과를 제시하면서 재정적 부담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14) 쉽게 말해 ‘가성비’ 떨어지는 해외 특파원 제도를 방송사들이 유지하기 힘들어졌다는 것인데, 당시 CNN의 급부상과도 관련 있을 것이다.
NBC 출신의 원로 저널리스트 개릭 어틀리(Garrick Utley, 1939~2014).
그는 50여 년간 PBS와 ABC, CNN 등 주요 방송사를 두루 거치며 현장을 취재했다. ⓒ연합뉴스
그는 그렇지 않아도 ‘멸종 위기’에 몰린 해외 특파원들에게 인터넷의 발달이라는 또 다른 위기가 겹쳤다고 봤다. 누구나 온라인으로 해외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으니, 특파원은 그가 가진 지식의 질과 깊이로 더더욱 평가받게 됐다며 생존 대책을 이렇게 제시했다.
“카메라 앞에서든 온라인에서든 해당 국가와 지역, 이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질문에 답하고 논평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정보화 기술을 잘 갖춰 대중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벌써 23년 전에 나온 얘기다.
1) Jeffrey Gettleman & Suhasini Raj, <8 Hospitals in 15 Hours: A Pregnant Woman’s Crisis in the Pandemic>, The New York Times, 2020.6.21.
2) Mary Beth Sheridan, , The Washington Post, 2020.6.21.
3) Anthony Faiola, , The Washington Post, 2020.6.26.
4) Steven Lee Myers, , The New York Times, 2020.6.26.
5) Choe Sang-Hun, , The New York Times, 2020.7.9.
6) Elian Peltier, , The New York Times, 2020.6.26.
7) Isabelle Khurshudyan, , The Washington Post, 2020.6.23. 8) Min Joo Kim & John Hudson, , The Washington Post, 2020.6.22.
9) Choe Sang-Hun, , The New York Times, 2020.6.22.
10) TV 뉴스에서 인터뷰이의 음성 중 중요한 부분만 짧게 따서 쓰는 것. 편집자 주
11) Jane Ferguson, , PBS NewsHour, 2020.6.23.
12) Bruce Harrison, <70 years after start of Korean War, peace on Korean Peninsula remains elusive>, PBS NewsHour, 2020.6.25.
13) Hamilton, J. H., & Jenner, E., , 《Journalism》, 5(3), pp.301-321, 2004.
14) Utley, G., , 《Foreign Affairs》, 76(2),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