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정보와 가짜뉴스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요즘, 이를 처벌하기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를 두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언론 자유를 침해한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관련해 그간 제기된 찬반양론을 짚어 본다. 편집자 주
제21대 국회 회기 시작 직후인 6월 9일,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94)이 발의됐다. 언론사가 ‘악의적’으로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토록 하는 내용이다. ‘악의적’은 “허위사실을 인지하고 피해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왜곡보도를 하는 것”으로 정의됐다. 이 글은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1)(이하 ‘징벌적 손배제’) 도입과 관련해 그간 제기된 찬반양론을 비교해보는 것을 목적으로 작성됐다.
언론의 자유와 인격권 보호 사이
징벌적 손배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보는 측은 인격권 침해 폐해가 매우 심각한 반면, 실효성 있는 구제 제도는 확립돼 있지 못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개정안 대표 발의자인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손해배상을) 3배가 아니라 30배, 300배를 때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그간 언론의 집중포화 혹은 철저한 검증의 대상이 돼 온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도 징벌적 손배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다수의 국민은 이러한 정서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5월 말에 이뤄진 미디어오늘-리서치뷰 정기 여론조사에서 ‘허위·조작 가짜뉴스’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징벌적 손배제 도입을 찬성한다는 응답이 81%(매우 찬성 63%, 다소 찬성 18%)로 나타났다.2)
반대 측 견해는 언론 유관 단체들이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한 공동의견서에서 잘 드러난다. 정청래 의원의 개정안이 “언론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훼손해 언론 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고, 언론 보도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같이 지우는 우리나라 법률체계에 부합하지 않으며, ‘악의적’ 보도에 대한 객관적 기준의 부재로 사법부의 이념 및 성향에 따라 자의적인 판단을 할 우려가 크고, 국가기관이 비판·의혹보도 봉쇄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있으며, 이미 2004년과 2012년 두 차례 입법이 추진됐으나 무산된 바 있는 과잉규제·과잉입법이라는 것”이다.3)
언론 보도의 자유와 보도 대상이 된 개인의 인격권 보호가 상호제약적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양측의 입장 차이는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헌법 제21조조차, 언론·출판의 자유 보장이라는 대원칙(제1항)으로 시작하지만,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가 피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제4항)고 맺는다. 따라서 상충하는 가치 각각의 중요성을 논하기보다는, 징벌적 손배제 도입이 작금의 문제를 개선하는 방안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여부를 양측의 입장에서 따져 본다.
징벌적 손배제, 언론의 사회적 책임 강화 방안일까
찬성 측은 징벌적 손배제 도입을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본다. 언론시장 진입장벽이 현저히 낮아졌고,4) 기사 조회수 경쟁으로 매체 환경이 혼탁해졌으며, 정파적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허위·왜곡 보도를 일삼는 언론사들이 존재하는 현 상황을 고려할 때 징벌적 손배제를 통해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5) 또한, 악의적 보도를 통해 특정 집단의 지지를 얻거나 매체 영향력을 강화하는 등의 이익을 향유하고 있는 언론사에 대해서는 불법성 정도에 상응해 3배 배상이라는 가중된 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6)
반대 입장은 개정안이 언론 자정 효과 유도 및 사회적 책임 강화라는 긍정적 결과를 낳기 보다는 권력에 의한 협박·봉쇄 소송의 맞춤형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다. 무엇보다, 현재 마련돼 있는 개인의 인격권 보호를 위한 다양한 법적 장치들7)을 고려할 때 징벌적 손배제까지 도입하는 것은 언론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는 것이다. 징벌적 손배제 운용의 대표 사례로 미국이 언급되지만, 미국은 저널리즘 관행과 상식을 벗어나는 아주 나쁜 보도에 대해 민사상 책임을 묻는 나라이고,8) 한국은 형법, 민법, 언론중재법 등 다양한 장치를 통해 좋은 저널리즘이 아닌 경우에 다양한 제재를 해 온 나라다. 이런 차이를 논하지 않고 징벌적 손배제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9) 따라서, 우리나라 명예훼손법제 전반에 대한 재검토,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특히 사실적시명예훼손죄)의 폐지, 부당소송 금지법 도입 등이 징벌적 손배제 도입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10)
적절한 손해배상액은 얼마인가
찬성 측은 손해배상 액수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간 피해자가 언론을 상대로 승소해도 적정 수준의 위자료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한 원고들의 절반은 500만 원 이하의 배상액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11) 인격권 침해 소송에서 대부분 500만 원에서 1,000만 원 수준으로 손해배상액이 결정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배상액 3배 증액을 통해 손해회복을 현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12) 정 의원의 개정안과 같은 입법적 움직임 없이 위자료를 상향 조정할 경우 법관의 재량이 너무 커질 우려가 있으므로,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을 없애고 이번 개정안을 한시적 대안으로 삼아 손해배상 액수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13)
반대 측은 평균적으로 손해배상액이 낮은 것은 맞지만, 위자료 산정은 판사의 주관에 따르거나 판례에 의해 결정되므로 오히려 판사들의 인식 변화, 법원의 위자료 산정 방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14) 검사가 원고였던 명예훼손 소송에서 1억을 배상하라고 한 판결 등을 고려할 때, 적정 위자료 산정 기준에 대한 논의와 고려 없이 개정안처럼 위자료를 3배 늘리는 것은 특정 사건에 있어서는 과도한 위자료 지급이라는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15) 개정안에서 요구하는 ‘악의’적 언론 보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엄격해지면 오히려 피해 구제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16)
징벌적 손배제는 약자를 위한 제도인데…
개정안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제기한 다른 논지들을 간략히 요약하면 이러하다. 개정안에서 정의하고 있는 ‘악의적’ 보도를 판단하는 법적 기준이 모호해 차별적이고 자의적인 방식으로 집행될 위험이 있다는 우려,17) 판례법 국가에서 발전해 온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는 것이 우리 법체계와 맞지 않으며,18) 해외 운용 사례를 봐도 여러 문제점이 제기 된다는 지적,19) 징벌적 손배제는 사회적 강자에 의해 다수의 사회적 약자가 소액의 피해를 입은 경우를 시정하는 데 적합한 제도인데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는 정치인, 고위 관료 등 공인의 명예와 관련된 형태가 대부분이므로 징벌적 손배제를 언론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20) 개정안이 소송비용을 증가시켜 소 제기 자체가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21) 등이다.
무책임한 언론 보도 이어지면 징벌적 손배제 논의도 계속될 것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리 실현을 위해 언론 보도의 자유를 두텁게 보호해야 할 필요가 높다고 해서 언론사가 징벌적 손배제 도입에서 반드시 예외가 돼야 하는 건 아니다.22) 하지만 우리 법이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고 인격권을 보호하는 장치들을 이미 다수 보유하고 있다 보니, 징벌적 손배제 추가 도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징벌적 손배제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독소조항이 될지, 아니면 언론 의 사회적 책임을 끌어내고 인격권 침해 피해 구제에 도움이 될지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무책임한 언론 보도로 인한 개인의 인격권 침해 폐해가 심각할수록, 법적 책임을 강화해 언론의 책임성을 강제해 내려는 입법적 시도와 사회적 압력은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라는 점이다.23) 징벌적 손배제 도입을 추진하는 측에서는 명예훼손죄를 비롯해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위축시키는 각종 법적 장치들에 대한 전반적이고 종합적인 검토와 개선을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이다. 반대 측에서는 언론의 자유 행사를 ‘방종’으로 보고 있는 여론을 엄중히 인식하고, 자유와 영향력에 상응하는 책임 있는 언론을 어떻게 구현해 나갈 것인지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1) 우리나라는 2011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한 이래, 현재 총 19개 법률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했다. 일례로,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개인정보를 분실·도난·유출·위조·변조 또는 훼손한 자에 대해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토록 규정하고 있다.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한 법률들이 손해배상 최고액을 손해액의 3배로 잡고 있다 보니,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아니라 ‘3배 배상제도’로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4)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신문 등 정기간행물은 현재 2만 2,225종이고, 이 중 인터넷신문은 9,110종이라고 한다.
5) 김준현, <징벌적 손배해상 들여다보기>, 미디어스, 2020.7.9, http://www.mediaus. 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7591 6) 김준현, 위의 글.
7) 우리 법의 언론피해구제 장치들을 짚어보면, 우선 형법상 명예훼손죄 규정에 따라 언론은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경우는 물론이고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징역(금고) 혹은 벌금형으로 처벌 받을 수 있다. 표현 방식이 지나친 경우에는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지 않더라도 모욕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다음으로, 민법은 고의 또는 과실로 발생한 불법행위(명예훼손, 사생활 침해, 초상권 침해 등)로 인해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청구를 허용한다. 명예훼손의 경우에는 손해배상뿐만 아니라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대법원은 방해배제청구권에 근거해 인격권 침해 기사에 대한 기사삭제청구권을 인정한 바 있다. 특별법인 언론중재법은 언론사의 고의나 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반론보도와 정정보도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언론중재법에 근거한 손해배상청구 및 추후보도청구 역시 가능하다. 정보통신망법은 비방목적을 추가 구성요건으로 해 사이버 공간에서의 명예훼손을 징역(금고) 또는 벌금으로 벌하고 있다. 아울러, 이용자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인격권 침해 사실을 소명해 삭제 혹은 임시조치 등 필요한 조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있다. 물론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한 모든 유형의 언론 보도가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위법성 조각사유를 충족하는 경우에는 개인이 피해를 입었더라도 언론은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행해진 진실한 보도는 명예를 훼손했어도 위법성은 부정된다. 진실성과 공공의 이익은 형법 제310조에 규정된 위법성 조각사유지만, 판례는 민사상 명예훼손에도 형법 제310조를 근거로 해 위법성을 부정하는 경우를 인정하고 있다. 명예훼손 실무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위법성 조각사유는 ‘상당성’이다. 법적 책임을 피하려면 언론사는 보도내용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적절하고 충분한 조사를 거쳤다는 점, 그러한 조사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자료나 근거에 따라 뒷받침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8) 미국에서 명예훼손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사소송을 통해 규율된다. ‘진실한 사실의 적시’는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고, ‘모욕적 언사(name-calling)’ 역시 위법으로 보지 않는다. 무엇보다 미국은 원고의 입증책임을 높게 설정하고 있다. 공직자(public officials)와 공적인물(public figure)이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하려면 피고 측의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입증해야 하며, 사인(private individuals)인 경우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현실적 악의를 입증토록 하는 주(states)가 다수이다. 1964년 미 연방대법원이 설리반 판결에서 현실적 악의를 “보도 내용이 허위임을 알았거나 보도의 진실성을 무분별하게 무시하는 것(knowledge of falsity or reckless disregard for the truth)”으로 개념정의한 이래 축적돼 온 판례상의 기준을 보면, 원고가 현실적 악의를 입증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9) 필자의 견해를 더했다.
10) 심석태 교수 발언, 관련 보도(정철운, <언론사 징벌적 손배 해외 사례 봤더니 ‘극과극’>, 미디어오늘, 2020.6.17,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 html?idxno=207648); 김종철 정의당 선임대변인 발언, 관련 보도(하준호, <“생각 같아선 손해배상 300배” 수퍼여당의 언론 입막기>, 중앙일보, 2020.6.11, https://news. joins.com/article/23798869); 허윤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 발언, 관련 보도(정철운, <“언론은 징벌적 규범 요구하는 국민 여론 인식해야”>, 2020.7.17,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8212) 등 12) 김준현, 위의 글
17) 자세한 논의는 위의 글 <‘악의’를 감별하라?> 참조
18) 손해배상은 전보적 손해배상(compensatory damages)과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으로 나뉜다. 전보적 손해배상은 피해자가 입은 손해 자체에 대한 위자료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가해자가 행한 행위의 부당성에 근거해 그 행위를 벌하고(징벌 기능) 해당 행위의 재발 방지(억지 기능)를 주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징벌적 손해배상은 형사적(quasi-criminal) 제도로 여겨진다(참고: 김정환, «징벌적 손해배상의 적정한 운영방안에 관한 연구», 사법정책연구원, 2019, 9-14쪽).
22) 대법원이 2003년 ‘전라북도 도지사 사건’과 2004년 ‘문화방송 한심한 검찰 보도 사건’ 판결을 통해, 공직자의 도덕성 청렴성이나 그 업무 처리가 정당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여부에 관한 의혹 제기나 감시와 비판은 ‘그것이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쉽게 제한돼서는 아니 된다’고 판시한 것을 봐도,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까지 법적으로 보호받지는 않는다. 무엇이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인지에 대한 판단기준은 확립돼 있지 않다.
23) 언론의 책임성을 법으로 강제해 내는 것과 관련해서는 영국과 미국의 상반된 접근법도 흥미롭다. 영국은 책임 있는 언론 보도를 강조하는 명예훼손 법리를 보유하고 있다. 원고가 승소하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쉬워, 한때 런던은 ‘명예훼손 소송의 메카’로 불렸다. 반면, 미연방 대법원은 신문사에 반론권(right to reply)을 보장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하면서, “책임 있는 언론은 의심할 여지없이 바람직한 목표(a responsible press is an undoubtedly desirable goal)”이지만 “다른 많은 미덕과 마찬가지로 입법화될 수 없다(like many other virtues, it cannot be legislated)”고 설시했다(Miami Herald Pub. Co. v. Tornillo, 418 U.S. 241, 256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