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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포럼] 기자가 본 드라마 속 언론인
미디어포럼 | 등록일 : 2021-04-08

드라마에는 많은 직업이 등장한다. 과연 그 직업은 얼마나 현실적으로 그려질까. 최근 언론인이 등장해 깊은 인상을 남겼던 드라마 두 편을 현직 기자가 시청했다. 일반 시청자는 알 수 없었던 그만이 보고 느낀 점은 무엇일까. 편집자 주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의 한 장면 ⒸSBS

 

 

“솔직히 확실한 한 방이 없네요. 안타까운 건 알겠는데. 공고 이야기 써봐야 누가 볼까 싶기도 하고.”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SBS) 속 박삼수 기자(정우성 분)가 도와달란 취재원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기사 소재론 별로니 안 쓰고 싶단 얘기다. 그를 바라보던 취재원은 특성화고 학생이었다. 취업 나갔다가 최저임금도 못 받고 손가락이 잘렸다. 학교는 취업률을 높이려(정부 지원금 받겠다고) 학생들을 무턱대고 일터에 몰아넣었다.

 

“세상이 관심 없는데 어쩌라는 거냐”는 박 기자에게 학생은 일갈했다. “당신들이 관심 없으니까 세상도 관심 없는 거야. 우린 떨어져 죽고, 기계에 몸 빨려 들어가야 당신들의 거룩한 눈길 한 번 받아볼 수 있어. 맞지? 죽은 노동자 가방에서 먹지 못한 컵라면 하나 나오면 그림 좋다고 막 찍잖아.”

 

울부짖는 학생의 비판에 폐부를 찔린 듯 아팠다. 눈물도 조금 고였다. 내가 저 현장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서. 여러 회사에서 기자로 살며 겪어왔던 여러 기억이 겹쳤다. 그게 기사가 되겠냐던 말, 넌 왜 그런 거에만 관심 있냐던 말, 팔리는 기사를 쓰라던 말. 내 인사 평가를 쥐고 있던 상사의 말에 들이받았다가 불이익을 당한 뒤 결국엔 “네, 알겠습니다”를 더 많이 외칠 수밖에 없었던 날들. 그러니 박 기자의 말도, 학생의 말도 맞는 말이라 여겨졌다.

 

 

<날아라 개천용>에는 특성화고 학생이 취업을 나갔다가 손가락을 잘린 사건이 등장한다. 세상의 관심이 덜한 이야기다. 그래서 잘 보게끔 쓰기가 쉽지 않다. ⒸSBS

 


의미 있는 기사라고 봐주진 않아서

 

다시 드라마로 돌아와 볼까 싶다. 특성화고 학생이 취업을 나갔다가 손가락을 잘린 사건 말이다. 그게 세상의 관심이 덜한 이야기인 건 맞다. 잘 보게끔 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무언가를 건져내야 한다. 여러 입장 이야기를 듣고, 취재하는 데 시간도 많이 들여야 한다. 제목도 엄청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도 바꾸고, 저렇게도 바꿔보고.

 

발품을 팔고, 소스가 쌓이고, 고민은 많고, 시간이 흐른다. 밥벌이 기자라 기사 하나를 못 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목이 졸린다(누가 뭐라 안 해도). 그러나 기사는 쉬이 나아갈 수 없다. 기사만 믿고 기다리고 있는 취재원의 간절한 눈빛이, 목소리가, 노트북을 치는 손가락을 둔하게 만든다. 기사를 많이 안 본다고 비슷한 걸 또 쓸 수도 없다. 총알은 단 한 방이다. 걱정이다. 기사가 나가는 날은 또 어떤 기사들이 산더미처럼 쏟아질까 싶어서.

 

의미 있는 기사가 될 게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니. 필요한 글을 쓰는 것이니. 그러나 조회수를 담보할 순 없다. 오늘 나간 기사도 그랬다. 아동학대 기사였다. 아이를 어딘가에 가두고, 때리고, 기어코 죽이고 말았던 그런 사건 기사는 아녔다. ‘사랑의 매’를 뒷받침했던 민법 제915조가 사라졌으니 더 알리고 싶었다. 아직도 체벌과 훈육을 구분하지 못하는 부모들을 위해. 정책과 연계된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아동학대는 먼 이야기처럼 생각하는 이들을 바꾸고 싶어서.

 

하루 내내 고민해서 썼던, 기사 성적표가 나왔다. 오전에 나간 기사의 성패는 금세 결정이 된다. 조회수가 한 포털사이트에서 3만 건. 이날 회사 기사 중 1위는 청년들의 대시를 받는 50대 여성의 얘기가 담긴 국제 기사로 조회수가 100만 건이 넘었다. 제목을 이리 바꾸고, 저리 바꿔봐도 소용이 없었다. 기사가 실제 소비되는 현실이란 대부분 이렇다. 쉽지 않은 거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독자님들께 이렇게 말했었다. “좋은 기사가 많이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어떤 기사를 보고 있는지 한 번만 생각해 봐주세요.” 그러니 관심이 없을 만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꽤 고군분투하고 있는 거다. 조회수를 잘 낼 가능성이 적은 걸 앎에도 취재를 하는 것이니.

 

‘밥벌이 기자’로 산다는 건

 

언론이 처한 현실이 그렇다. 그래서 예비 언론인들이 가끔 찾아오면 말문이 막힌다. 한 중학생이 만남을 청해 응했더니, 좋은 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왜 그런 꿈이 생겼냐 물으니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펄펄 끓는 용암처럼 뜨거운 눈빛이 날 부끄럽게 했다. 차마 날 것 그대로의 얘길 다 할 수 없었다.

 

수습기자 때 열망이 펄펄 끓었다가, 실제 현실과 맞닥뜨린 뒤 실망한 날이 많았었다. 왜 출입 기자들에게 나눠주는 쇼핑백에 상품권이 들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왜 팩트가 틀린 게 없는 내 기사가 지워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었다. 연차가 거듭될수록, 기사 하나를 쓸 때 감안하고 고려해야 하는 게 많아졌달까. 펄펄 끓던 물은 10년 차가 넘은 지금은 얼마나 많이 식어버린 것일지 가끔 생각한다.

 

JTBC 드라마 <허쉬>에 나오는 한준혁 기자(황정민 분)는 이미 식어버린 물이었다. 유배지라 불리는 디지털뉴스부 소속이며, 자칭 ‘기레기(기자+쓰레기)’라 하고, “한땐 나도 생각이란 걸 하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 멈추게 됐다”고 고백한다. <허쉬>에서 언론사는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곳이라기보단 회사다. 기자는 월급쟁이이고, 안 잘리고 버티는 게 성공이다. 유배지에서 낚시질하고 욕을 먹더라도 말이다. 이지수 인턴 기자(임윤아 분)가 했던 말도 그랬다. “밥은 펜보다 강하다”고.

 

 

JTBC 드라마 <허쉬>의 주인공은 유배지라 불리는 디지털뉴스부 소속 기자다. ⒸJTBC

 

 

예비 언론인들 카페에 가보면 들어가고 싶은 회사 연봉을 궁금해하고, 연말쯤엔 어느 언론사가 성과급을 얼마 준다더라 하는 찌라시가 돌고, 어디는 취재비를 얼마 올렸다더라 하는 것에 실제 민감하며, 내 회사의 처우나 복지에 실망한 이들이 실제 이직을 빈번하게 하기도 한다. 정의감에 불타는 것만으론 먹고 살 수 없으니, 데스크가 쓰라는 기사가 좀 아닌 것 같아도 일단 쓰고 보는 기자가 더 많을 거다. “저는 제 소신에 어긋나는 기사라 도저히 못 쓰겠습니다” 이런 기자가 얼마나 될까나.

 

허쉬에 나오는 편집국장만 정말 ‘악역’이었을까

 

그러니 언론도 회사인 게 맞다. 돈을 벌어야 기자들 월급을 줄 게 아닌가. 좋은 기사를 많이 썼다고 “오, A 언론사는 올해 참 좋은 기사를 많이 썼네요. 정부 보조금 100억 원을 드리겠습니다” 한다거나, 기업에서 “우리의 비리를 잘 파헤쳐주는 기사를 써줬으니 5억 원짜리 광고를 할게요”라고 하진 않으니 말이다.

 

드라마 <허쉬>에선 편집국장이 정말 나쁜X으로 나왔다. 회사 이익을 위해 민감한 기사는 영 못 쓰게 막고, 인턴 기자가 숨져도 입을 다물라고만 하고. 물론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 목소릴 크게 내는 역할을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건 있다. 언론도 결국 돈을 벌어야 하는 회사라는 것, 권력과 자본에서 완전히 독립적으로 동떨어져서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되냐는 거다.

 

 

드라마 <허쉬>에서 언론사는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곳이라기보단 회사고, 기자는 월급쟁이다. ⒸJTBC

 

 

그러면 거시적으로 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언론사 수익은 주로 광고와 각종 행사가 많이 책임지고 있다(정부 보조금이 나오는 통신사도 있지만). 그 광고 단가는 전통적인 종이신문에선 부수에 따라 결정됐지만, 다들 잘 알다시피 종이신문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대다수 온라인에서 기사를 소비한다. 그러니 디지털 환경에 적응한다며 언론사마다 트래픽에 목을 맨다. 과거 부수 늘리기 경쟁에 혈안이었던 것처럼. 이젠 조회수가 많은 게 광고 단가를 결정한다.

 

좋은 기사를 쓰는 만큼 독자들에게 돈을 받는다고 치자. 그게 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실제 그런 실험을 하는 언론사도 있었다). 독자들이 원하는 것처럼 현장을 발로 뛰고, 깊이 있게 문제를 다루고, 몇 번이고 끝까지 파헤쳐 탐사 보도를 하고, 그러면 독자들이 “이건 정말 좋은 기사”라며 언론사가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후원을 하는 구조 말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 포털사이트에서 기사를 무료로 본다. 이에 동의하지 못한다며 기사를 공급하지 않겠다고 해도 별수 없다. 다른 매체들은 얼마든 많으니까.

 

그리 생각하면 과연 <허쉬>에서 편집국장만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밥벌이 측면에서 본다면 그 역시 열악한 언론 환경에서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씁쓸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속상한 단면이었다. 이지수 인턴 기자의 울먹임 섞인 대사가 목구멍에 영 걸려서 빠지질 않는다.

 

“나 진짜 기자 만들어줘요. 언제, 어디서,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진짜 기자로 만들어주면, 뜨겁고 거창하게 한 번 끓어올라 볼 테니까 곰탕처럼.”

 

정의가 돈 버는 세상을 보여주자고, ‘실화’라 좋았다

 

세상엔 다행히 이런 고민만 부여잡고 앉아 소위 말해 ‘기레기’로 살며 하루하루 핑계만 대는 이들만 있는 건 아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멋지게 실천하는 이들 말이다.

 

다시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 얘기다. 통상 말하는 것과는 좀 다른 S대를 나온 박삼수 기자가 “기레기가 무슨 자존심이냐, 기레기는 이제 떠난다”며 회사를 때려치우고 시작되는 진짜 기자가 되기 위한 고군분투기 말이다. 박 기자와 박태용 변호사(권상우 분)와 마주 앉아 “정의가 돈이 되는 세상을 보여주자! 정의로 돈을 벌자!” 할 땐 기자 생활 10년 동안 묵은 까먹은 희열이 용솟음쳐 대리 만족을 제대로 했다.

 

광화문 광장을 걸으며 “사대문 안에서 즐거웠다”고, “사대문 안에 없는, 있어도 잘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찾아 밖으로 나가겠다”며 당당히 속으로 외치던 박 기자의 모습은 한 번쯤 꿈꿔봤던 것이기도 하다. 이슈의 변두리에서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말을 하는 이들을 기꺼이 찾아가 좋은 기사를 당당히 쓰는 기자, 그것이 진정한 펜의 힘이라 믿어 왔기에. 독자들이 부여한 기자의 시선과 글의 힘은 그런 곳에 쓰는 거란 신념은 변함없기에 말이다. 사실 가장 걱정되는 건 하나였다. 그래도 밥벌이는 잘 돼야 할 텐데 싶어서.

 

그게 좋았던 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얘기여서다. 그 드라마를 쓴 박상규 작가는 독립 언론인 셜록의 기자이니까.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법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꺼이 찾아가 들었고, 그걸 파급력 있는 좋은 글로 썼으며, 결국 다시 재판을 받게 하는 변화를 이끌었다. 그걸로도 너무 좋은데 독자들은 이 좋은 글에 반응했다. 스토리를 가지고 크라우드 펀딩을 했는데 목표 금액 100%를 달성했다. 기자의 이상을 실천하고 사명감을 지키면서도 돈을 모을 수 있다, 생각만 했던 그 일을 실제로 해낸 이가 있어 좋았다.

 

현실 기자들 마음을 대변하자면

 

현실에서 자주 보는 많은 기자는 한준혁 기자(<허쉬>)처럼 회사 비리를 폭로하며 기자 회견을 할 만큼 용기가 많지도, 박삼수 기자(<날아라 개천용>)처럼 회사를 때려치우고 이상을 실천할 만큼 배포가 넓지도 않다. 출입처를 출입하든 내근을 하든, 매일 아침 발제를 뭘 할지 고민하고 마감하느라 분주하다. 현재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고민할 정도로 여유가 많이 주어지는 편도 아니다. 출입처에선 일정 챙기랴, 브리핑서 속보 쓰고 상보 쓰고 종합하랴, 보도자료 쓰랴, 발제 기사 마감하랴, 물 먹은 기사 없나 살피랴 바쁘다.

 

기레기란 말에 꽤 익숙해졌음에도 때때로 동료들과 자조한다. 뭐가 문제인지는 알면서도 그러나 뾰족한 대안이 없음에 또 몸을 일으켜 출근해서 기사를 쓴다. 기자들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에도 사랑하는 아내가, 아이가 환히 웃는 가족사진이 주를 이룬다. 그들도 다르지 않다. 정치 기사를 쓰면 무조건 절반은 욕을 먹고, 무슨 의도냐 묻지만, 딱히 의도는 없다. 그날 기사를 쓴 것뿐이다. 밥벌이는 밥벌이일 뿐이다.

 

방법은 있을 거라 믿는다. 좋은 기사를 쓰면서도 조회수를 낼 수 있다. 발품을 팔고 시간을 많이 써야 했던 <남기자의 체헐리즘> 기획 연재로 가능성을 봤다. 조회수가 많이 나올 땐 100만 건도 넘게 나왔었다. 포털사이트와 유료 구독 모델을 만드는 실험도 할 거다. 구독료를 필요한 곳에 기부해 실제 도움까지 이끌어 내보려 한다. 밥벌이를 해야 해서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그 안에서 발을 땅에 붙이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 보여줄 생각이다. 어떤 기사가 정말 통하고 필요한 것인지를.

 

신문방송학을 전공한다던 대학생이 내게 질문한 적이 있다. “체헐리즘을 하며 기성 언론이 바뀔 수 있다는 것에 일말의 희망을 봤나요?” 그래서 이렇게 답했었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이렇게 가야 한다고, 계속해서 자극을 줄 생각입니다.”

 

기자가 되고 싶었던 첫 마음을 잊지 않고, 답을 함께 찾으려는 이들이 있는 한 어떻게든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고 약속했었다. 쉽진 않다. 그러나 지키기 위해 노력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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