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Q.
선배들은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기자로서 현장이 중요한 것은 당연히 잘 알고 있지만, 요즘은 정부 시스템이나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온라인으로도 정보를 빠르게 얻는 시대가 됐습니다. 취재 주제나 대상에 따라 취재 방법도 어느 정도 바뀌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꼭 현장을 가야만 하는 걸까요.
“발로 뛰면 뭐가 달라도 다르다. 현장에 가봐라”라는 얘길 참 많이 들으셨지요. 저 역시 선배들에게 수도 없이 배웠던 말이고요. 언론사 준비 시절 수강했던 수업에서, 한 PD님께서 이리 말씀하셨던 기억도 납니다. 입사 면접 때 가기 힘든 현장에 갑자기 다녀올 수 있냐고 물은 뒤, 면접자 중 유일하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이를 합격시켰다고요. 바로 뛰어갈 준비가 됐는지 보고 싶으셨단 거지요.
통상 ‘현장’이란 말이, 언론인들에게는 ‘직접 가서 보고 만나고 취재하는 것’으로 통용되는 거라 이해하고 있습니다. 요즘엔 정보를 얻거나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하고, 취재 방식 역시 꼭 대면이 아니어도 가능한데 꼭 기존과 같은 의미의 현장을 그리 고집해야 하는가, 보다 효율적으로 기사를 쓸 방법도 많지 않을까. 혹은 온라인에서만 할 수 있는 취재 영역도 있지 않을까. 아마도 그런 물음이실 거라 짐작하고 공감합니다.
‘바로 그곳’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들
이럴 땐 꼭 현장에 가야 합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참 명쾌한 해답이 되겠지만요. 간단히 결론 내릴 순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이리 말씀드릴 순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현장에 가야 할지 말지에 대한 감(感)은, 어쨌거나 현장에 많이 가봐야 생기는 것 같기는 하다고요. 아, 내가 이 얘길 들으려고 몇 시간에 걸쳐 여기까지 온 걸까, 이럴 거면 전화로도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과정이 필요하단 거지요. ‘매일 마감’이란 숙명이 있었기에 저 역시 이 주제를 놓고 마음 속 갈등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현장에 가길 잘했구나, 싶었던 취재를 우선 말씀드리면 이런 거였어요.
현장 자체를 잘 보는 게 중요해서, ‘해상도’를 충분히 높여 기록해야 하는 경우가 일단 그랬습니다. 지난해 가을에 취재한 얘길 해볼까요. ‘미용 실습용’으로 공급되던 강아지 60여 마리를 구조하러 가는 취재였습니다. 반려견 털을 깎아주는 분들 있잖아요. 그들이 다니는 미용 학원에서, 깎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산 강아지를 데리고 연습하는 건데요. 여기에 반복적으로 쓰이던 강아지들이 있단 거였지요. 번식장에서 새끼를 빼고 또 빼다, 쓸모없어지자 끝까지 이리 쓰이는 거였습니다.
‘서툰 가위질을 반복적으로 당해 다들 상처가 많겠다’ 정도는 상상할 수 있거든요. 이러이러한 내용이 있겠구나, 짐작하며 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상해도 현장에서 더 자세히 보이는 것들은 늘 있더라고요. 예컨대, 거기서 봤던 가장 슬픈 장면은, 상처가 난 귀를 살펴보려 잡을 때도, 하나밖에 안 남은 이빨을 보려 입술을 들어 올릴 때도, 도무지 저항하는 법을 모르더라는 거였어요.
그 문장 하나를 길어내는 게 대수냐 할 수도 있겠으나, 단지 그 하나를 위해 먼 거리를 가는 게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한 문장이 대변하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늘도 비슷한 상처를 입을 수많은 미용 실습견일테니까요. 또 다른 장면도 있었는데요. 혀를 내미는 건 보통 귀여운 모습이라 생각하는데, 거기 있던 혀 내민 수많은 강아지들은 이빨이 다 빠져 그렇게 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런 돌봄을 받지 못한 거예요.
만약에 거기에 직접 가서 보지 않았다면, 다녀온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를 전화로 인터뷰해 얘길 대신 들었다면, 그리 자세한 장면 하나하나를 다 들을 수 있었을까요. 파리가 들끓어 내 몸에 쉴 새 없이 붙고, 그런 환경에서 매일 살아가는 기분을 기록할 수 있었을까요. 품에 안았을 때 심장이 두근거리던 살아 있는 존재의 귀함을 자세히 느낄 수 있었을까요. 그런 경험 때문에 대개 현장에 가보는 편입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요.
혼란 속 진실을 밝혀내는 현장의 힘
사실관계가 혼탁해 가늠이 어려울 때도, 현장은 돋보기가 되어주곤 합니다. 꽤 오래된 취재임에도 여전히 선명한 기억을 꺼내 볼게요.
한 지역 신문에 <학생에 막말하는 교사 물러나라!>란 제목의 기사가 난 적이 있습니다. 거기 실린 사진이 참 묘하더라고요. 학부모회라는 단체 회원 20여 명이 교문 앞에서 시위하고 있었습니다. 수업을 소홀히 하고 폭언을 일삼는 A 선생님을 당장 해고하란 내용이었어요.
언뜻 이해가 안 돼 보도 사진을 계속 바라보았습니다. 이유는 이랬습니다. 학부모회가 해고하라고 피켓을 들고 있는데, 그 앞에 학생들이 몰려가 항의하는 모습이었거든요. 그게 좀 이상하더라고요. 정말 폭언을 일삼고 수업을 엉망으로 하는 선생님이라면, 왜 저 학생들은 선생님 편을 들고 있을까. 이면에 다른 얘기가 더 있진 않을까, 그게 궁금했던 거지요.
학생들을 만나 얘길 들어보았습니다. 생각지 못한 많은 이야기가 나왔어요. 너무 열심히 하시는 분이라고, 한 명이라도 수업을 듣는다면 진행하시는 분이라고, 인기도 많은 선생님이라고요. 한 학생은 이리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퇴까지 생각할 만큼 힘들 때, 잘할 거라고 믿어준 분이 A 선생님입니다.” 현장에서 들은 충분한 얘기가 기사에 실렸고, 그 힘으로 A 선생님은 이후 은퇴할 때까지 학생들을 무사히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언제 현장에 뛰어가야 할까요?
정리해 말씀드리면, 취재의 효율성을 불가피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있거든요. 시의성과 속도가 더 중요한 상황이라거나, 출입처에서 발생한 일이지만 자세히 볼 필요까진 없다거나, 보도 가치에서 우선순위를 따졌을 때 상대적으로 품을 팔 만큼 중요하진 않다고 여겨진다거나, 마감이 급한데 필요한 기사를 채워야 한다거나. 그런 다양한 상황이 있잖아요. 그럴 땐 현장을 꼭 고집하기보단 적절히 유연성을 발휘할 수밖에 없고요.
온라인 공간은 주로 ‘관찰’과 ‘발견’을 위해서 씁니다. 저는 주로 그렇게 활용하고 있어요. ‘내가 모르는 것조차 모르는 영역’을 바라보고 싶을 때, 이만큼 효율적인 방식이 없거든요.
예컨대, 우연히 SNS에서 이런 사진을 봤어요. 코엑스 박람회장 한편에 관람객들이 패딩을 잔뜩 벗어놓은 모습이었습니다. 이건 제가 상상하지 못했던 건데, 온라인에서 부단히 돌아다닌 덕분에 바라보게 된 거거든요. 거기서 문제점이 보이는 거지요. ‘이걸 다 벗어두고 다니게 할 만큼 실내를 덥게 만드는 게 맞나.’ 그 한 장의 사진 덕분에, 겨울철 실내 공간을 반소매 티셔츠만 입고 돌아다니는 기획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실내 온도를 재어보니 최대 28도까지 높여놓은 곳들이 있더라고요. 함께 생각해 보자는 거지요. 기후 위기가 심각하니까요.
그래서 SNS나 커뮤니티 등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이건 추후 더 살펴봐야겠다 싶은 것들은, 잊지 않게 저장해 둡니다. 그대로 써버리면 온라인 기사 중 하나가 되지만, 그걸 시작으로 살을 붙이고 잘 취재하면 더없이 좋은 기획 기사가 돼요. 특정 영역에 갇혀 살펴보고 싶지 않아서, SNS에서 팔로잉하는 이들의 숫자도 7,500명을 꽉 채웠습니다. 정말 다양한 연령대, 다채로운 영역의 삶을 바라보는 게 좋아요. 더없이 좋은 영감이 됩니다.
현장 보도를 지혜롭게, 또 오래도록 잘하기 위해선 호흡 조절이 중요한 것 같아요. 모든 취재를 다 자세히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건상 그게 가능한 이들은 거의 없거든요. 출입처 일정에 쫓기고, 매일의 발제 고민에 적당히 타협할 때가 있더라도, 한 달에 한 건 정도는 괜찮은 걸 쓰겠단 마음가짐 정도로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얘기만큼은 내가 자세히 들여다보고, 현장을 살피고, 이야길 직접 들어서 완성하겠다고. 그런 걸 따로 빼두는 거지요.
AI가 고도화되고 있단 요즘은 그런 고민도 많이 합니다. 챗GPT가 도저히 취재하지 못하는 게 뭘까. 아무리 발전해도 기록할 수 없는 영역 말이지요. 그런 생각을 하면 또 이리 말하게 됩니다.
“내일 아침 8시까지 취재하러 가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섬세히 잘 담아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