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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월드 와이드] 북유럽
미디어월드와이드 | 등록일 : 2021-07-02

지난 6월 18일, ‘공공서비스 미디어 및 공공서비스 인터넷 선언(Public Service Media and Public Service Internet Manifesto)’이란 행사가 온라인으로 열렸다. 오스트리아, 영국, 그리고 핀란드의 미디어학자가 모여 선언을 소개하는 기조 강연과 발표를 진행했다.

 

이 학술 세미나는 미디어의 공공성을 회복하자는 선언(manifesto)식이었다. 참석자는 현재 미디어 환경이 공공성을 잃고 상업화하는 방향으로만 발전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특히 지배적인 상업 인터넷 플랫폼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공서비스로서의 미디어, 언론, 그리고 인터넷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언뜻 보기엔 조촐한 학술 세미나 정도로 보이지만, 이 선언은 영국과 핀란드를 비롯해 여러 국가 미디어 전문가들이 참여한 연구 프로젝트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2019년 첫 회의를 시작으로 2020~2021년 진행된 이 연구 프로젝트 이름은 InnoPSM(Innovation in Public Service Media Policies). 디지털 전환기에 공공서비스 미디어가 직면한 위기를 살펴보고, 혁신적인 정책 방안과 전략을 발전시킬 목적으로 연구자, 미디어계 전문가, EU 미디어 정책 담당자 등이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영국 정부(AHRC)가 연구비를 지원했다. 자문위원회에는 리트바 레이노(Ritva Leino) 핀란드 공영방송 윌레(Yle) 멀티플랫폼 책임자 겸 윌레 연구소장, 그리고 한누 니에미넨(Hannu Nieminen) 헬싱키 대학 사회과학대학장이 참여했다.

 

이들이 연구 네트워크를 만들고 또 공공서비스 미디어를 주제로 연구를 진행한 배경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영국 BBC, 오스트리아 ORF, 핀란드 윌레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공영방송이 겪는 공통적인 위기 때문이다. 단순히 재원 구조 변경의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 미디어 산업 속에서 생존 자체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전환기, 미디어의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을 살펴보며 연구자들은 ‘선언’ 열 가지를 내놓았다.[그림]

 

이 선언은 공공서비스로서 공영 언론의 역할, 또 인터넷 서비스 전반의 지향점을 제시한다. 단지 특정 산업으로서 언론 혹은 미디어가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 유지에 필요한 담론과 시민 참여가 이뤄지는 공간으로서 미디어를 바라보며, 이 공간이 상업주의에 공격받고 있다는 심각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학술 네트워크로 모여 진행한 연구가 끝내 정부와 시민, 또 기업과 정치를 향한 선언으로 이어진 이유다.

 

 

[그림] ‘공공서비스 미디어와 공공서비스 인터넷 선언’의 내용 <출처 - http://bit.ly/psmmanifesto>;

 

 

핀란드 공영방송 견제하는 상업 미디어

 

핀란드 학자 민나 호로비츠(Minna Horowitz)는 세미나에서 최근 심화하고 있는 온갖 형태의 불평등에 ‘디지털 불평등’도 포함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민주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공정하고, 정의롭고, 또 회복력을 갖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공공서비스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언급한다. 호로비츠는 그러면서 핀란드 공영방송 윌레를 향한 상업 미디어의 두 차례 ‘공격’을 소개한다.

 

첫 공격은 이미 2017년에 핀란드 미디어사업자협회(Medialiitto)가 EU 공정거래 담당국에 접수한 민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세금 기반으로 운영하는 윌레가 온라인에 텍스트 뉴스를 게시할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윌레는 웹사이트를 통해서 자체 기사를 내보내고 있고, 각종 기자 칼럼도 게재한다. 일부 주요 기사를 간추려서 쉬운 단어로 바꾼 뒤 청소년이나 핀란드어 학습자가 이해하기에 좋은 텍스트 뉴스로 제공하기도 한다. 그런데 민간 매체가 모인 미디어협회는 이런 윌레 운영 방침이 공정 경쟁을 망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당시 유까 홈베르그(Jukka Holmberg) 미디어협회장은 “공영방송 윌레가 지나치게 방대한 뉴스 기사(journalistic)를 온라인에 제공하고 있어, 시장 공급에 빈틈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1)

 

최근 있었던 두 번째 ‘공격’도 비슷한 성격이었다. 당시 문제 제기에 참여한 미디어 회사 사노마(Sanoma)가 지난 5월 EU에 제기한 민원은 윌레가 너무 많은 문화(entertainment)와 교육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있다는 항의였다. 특히 이 민원은 윌레 웹사이트 서비스 가운데 하나인 윌레아레나(Yle Areena)를 겨냥한 내용이었다.2) 윌레아레나는 무료 다시보기를 제공하는 공영방송 아카이브다. 비교적 최신 국내외 상업 영화, 시리즈, 드라마, 다큐멘터리, 또 어린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라스뗀아레나(Lasten Areena)를 포함하고 있어 연령대 상관없이 핀란드 국민이 가장 사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중적인 서비스다. 이런 대중 서비스가 EU법 내에서 불공정하다는 문제 제기에, 일부 시청자는 민간 사업자의 OTT 서비스 구독을 해지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윌레의 입장은 어땠을까?

 

“윌레 온라인 서비스를 약화하는 방안은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핀란드 미디어 사용자뿐만 아니라 국내 문화 콘텐츠 업계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아레나 서비스 축소는) 미디어 기업의 국내 운영을 강화하기도 하지만, 거대 글로벌 플랫폼의 시장 장악을 늘린다. 윌레아레나 운영을 (편성표대로 방송하는) 선형 방송 송출에만 국한하는 건 장기적으로 전체 공공서비스의 쇠퇴를 의미한다.”

 

메르야 윌라-안띨라(Merja Yl-Anttila) 윌레 CEO가 언론 인터뷰에 전한 입장이다.

 

앞의 공공미디어 서비스 선언과 공영방송·상업 미디어 영역 경쟁과 연결해 살펴볼 만한 개념은 이른바 ‘북유럽 모델(혹은 노르딕 모델)’을 토대로 노르웨이 미디어학자들이 제시한 ‘북유럽미디어복지국가(Nordic Media Welfare State)’다. 2014년 이 개념은 공공성을 중시하는 북유럽 국가의 사회·경제적 구조가 미디어에도 반영된다는 시각으로 ‘미디어 복지 국가’의 네 가지 축을 정리한다(Syvertsen et al., 2014).3)


1. 공공재로서의 특성을 강조하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조직으로, 포괄적 교차보조금(cross-subsidies)과 보편성에 대한 의무 제공

2. 일상 업무에서 편집 간섭과 자치로부터 자유를 제도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다양한 조치

3. 다양성과 품질 확보를 목표로 하는 콘텐츠 의무(content obligations)와 지원 제도의 형태로 미디어까지 포함하는 문화 정책

4. 국가(state), 미디어 및 통신 산업, 대중(public)과 같은 주요 이해 관계자 간 협력을 포함한 유연성 있고 합의된 솔루션에 대한 선호

 

쉬베르센(Syvertsen) 등 미디어 복지 국가(The Media Welfare State) 연구자들은 디지털 시대에 노르딕 미디어는 다른 영역처럼 공공성을 강하게 띠는 공공재라고 기술한다. 이런 시각은 앞서 공영 언론이 제공하는 다양한 콘텐츠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또 세금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재원 구조를 마련하는 북유럽 공영 언론의 움직임과도 연결돼 있다. 한쪽에서는 신뢰도 높은 저널리즘으로 언론 자유를 지키면서, 다른 한쪽에선 대중에게 필요한 정보, 문화, 취미, 교육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는 북유럽 공영 언론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다.

 

 

핀란드 윌레아레나 웹사이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도 상영한다. <출처 – 윌레아레나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미디어 생태계 적응 급하지만, ‘공공성’ 논의 충분할까

 

최근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상업 디지털 플랫폼을 비롯해 OTT 시장 확대는 국내 언론 구조 및 미디어 생태계에도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을 만들어 디지털 미디어 전반의 규제와 정책을 아우르겠다는 정부 계획도 있지만, 이런 논의 대부분이 산업(그리고 규제) 영역으로 미디어를 보는 시각에서 진행되고 있진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수신료 인상 논의 또한 공영방송의 경영 개선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공공서비스로서 다양성과 품질을 개선할 수 있는 재원 구조 마련 측면도 함께 살펴보길 기대한다. 적어도 아직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제대로 된 ‘공공미디어’를 경험해본 경험이 없다.

 

 

<미디어 복지 국가> 표지

 

 

 

 

 

 

 

1) <Medialiitto valittaa Ylen verkon uutisteksteistä EU-komissiolle – Yle ei näe tarvetta rajoituksille>, Maaseudun Tulevaisuus, 2017.6.21, https://www.maaseuduntulevaisuus.fi/politiikka/medialiitto-valittaa-ylen-verkon-uutisteksteist%C3%A4-eu-komissiolle-yle-ei-n%C3%A4e-tarvetta-rajoituksille-1.195055 

2) <Sanoma asks EU to limit Yle Areena content>, yle, 2021.5.28, https://yle.fi/uutiset/osasto/news/sanoma_asks_eu_to_limit_yle_areena_content/11952421 

3) Syvertsen, T., Mjøs, O., Moe H., & Enli, G., <The media welfare state: Nordic media in the digital era>,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014. https://www.jstor.org/stable/pdf/j.ctv65swsg.4.pdf?refreqid=excelsior%3A0ca76c1cea6f128e7af82dc6a5531d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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