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1991~1995년 인천은 한 해 출생아 수 4만 명 이상이라는 이후 없을 기록을 세웠다. 청년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그들은 ‘이주민의 도시’라는 인천의 꼬리표를 떼줄 주인공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서울로 향하고 있다. 인천일보가 추적한 ‘인천형 청년 베이비부머’의 행보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2020년 3월 14일.
“띠~” 전기 음이 5평짜리 원룸에선 천둥 같아서 온종일 부여잡고 있던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머리 위 낡은 전등 소린지, 새로 산 소형 전기밥솥에서 나는 소린지 감도 안 잡히는 이 사소한 소음에 이민정(만 27세) 씨는 주저앉아 울었다. ‘5평 원룸’과 적막 속 ‘전기 음’은 평생 아빠와 엄마, 남동생과 함께 살던 집에선 모르던 것들이다. “취직한 서울 회사가 아침저녁으로 너무 멀어 자취하겠다”고 떼쓴 건 민정 씨였다. 그가 나고 자란 인천 남동구에서 직장이 있는 서울 서초구까지 대중교통으로 어림잡아 왕복 세 시간 이상이다. 조금 전 문 앞에서 자질구레한 가재도구가 든 봉투를 양손 가득 쥐여 주며 “주말마다 와”라고 당부하고 간 엄마 뒷모습에 죄책감을 느끼던 참인데 “띠~” 전기 음이 느닷없이 방 전체를 흔들고는 민정 씨 가슴팍에 꽂혔다. 짐 내려주려고 온 아빠가 밥상도 없이 방바닥에서 먹고 간 치킨 상자도 눈에 밟혔다.
1986년 3월 xx일.
기차가 역에서 출발했다. 새하얗게 눈 덮인 플랫폼에 서 있던 어머니는 점처럼 작아졌다.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이정수(만 56세) 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향을 떠나며 새긴 마지막 장면이다. 당시 정수 씨가 보기에 탄광 말고는 강원도 산골에선 변변한 일자리가 없었다. 졸업 후 겉돌 것을 염려한 가족들 성화로 큰 매형이 나섰다. “기술이라도 배우러 오라”며 매형이 소개해 준 자리는 인천 부평 공업단지 금형 일이었다. 회사에서 제공한 방 두 개 빌라에서 동년배 청년들이 6~7명씩 머물렀다. “잘살아 보겠다”는 각오로 상경(上京) 대신 상인(上仁)을 선택한 전국 팔도 20대 초반 남성들이다. 정수 씨는 이후 몇 년을 회사 숙소에서 머물다가 중매로 만난 여성과 결혼해 딸과 아들을 낳았다. 그중 장녀가 앞에 소개한 민정 씨다. 정수 씨는 요즘 사람 만날 때마다 “인천이 여느 시골처럼 한적한 동네도 아니고 일자리 문제 때문에 애지중지 키운 딸 상경시키고 따로 살 줄은 몰랐다”고 역정을 내고 있다.
상경과는 조금 다른 문제
인천일보 탐사보도부가 지난 3월 연재한 <인천형 청년 베이비부머 연구록> 기획은 이정수 씨 부녀 얘기로 운을 뗍니다. 그 시절이 요구하던 일자리가 없는 고향을 떠나 인천으로 온 정수 씨와 다르게, 인천에서 태어난 딸은 일자리를 찾겠다며 서울로 가버렸습니다.
정수 씨는 이제 먹고살 만해졌겠다, 앞으로 가족들을 살뜰하게 챙길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학 졸업한 큰딸이 취직했다며 갑자기 서울에서 자취하겠다고 해 요새 상심이 큽니다. 딸 역시 살점 같았던 가족 품에서 벗어나 홀로 단칸방에서 지내려니 살면서 몰랐던 외로움에 시달립니다.
정수 씨네 사연은 흔히 말하는 상경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부분입니다. 수도권 외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서울로 모여드는 상경은 전통적으로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의 원인으로 풀이합니다. 반면, 최근 들어 인천 청년들이 대학 졸업 즈음해 서울과 경기 경제권에 기대는 문제는 일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수도권 내 패권 다툼에서 인천이 수세에 몰리고 있다는 접근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산업도시 인천의 영광이 과거에 묶여 있어, 새로이 창출되는 인천지역 인력은 고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서울과 무게감 급상승 중인 경기지역에서 경제 기반을 갖춥니다. 그러다 보니 취업과 혼인, 출산도 서울이나 서울과 가까운 경기지역에서 이어가려고 노력합니다.
인천은 수도권 범주에 속하면서 실속은 없고 속 빈 유명세만 챙긴 셈입니다. 수도권의 일원인 인천지역 청년들의 어려움이 ‘상경’에 비해 국토 균형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조명받지 못하는 이유일 겁니다.

기사 전면에 내세운 ‘1991~1995년생’
인천 사람들이 서울 경제에 기대는 풍경에 1991~1995년생이라는 액자 하나를 걸었습니다. 지난 2020년은 인구 300만 도시 인천에서 처음으로 인구 하락세가 확인된 해입니다. 청년 인구가 생각보다 가파르게 줄면서 전체 인구 증가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요즘 인천 청년들은, 특히 인천에서 태어난 1991년생(4만 772명), 1992년생(4만 2,840명), 1993년생(4만 1,731명), 1994년생(4만 1,680명), 1995년생(4만 1,246명)들은 한 해 출생아 수 4만 명을 유일하게 넘기며 지역 역사에서 다시 기대할 수 없는 베이비부머로 기록됐습니다. ‘이주민의 도시’라는 꼬리표를 뗄 주인공인 셈이죠. 동시에 이들 생애주기가 대학 진학과 취업 사이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서울 경제에 기대다 보니, 존재감 상실로 진입하는 찰나입니다.
1991~1995년생이라는 액자를 거는 것만으로도 ‘일자리 미스매치’라는 고질적인 고유명사에 새롭게 도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오랜 기간 인천 경제를 괴롭히는 묵은 변 같은 존재에 1991~1995년생이라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조망력을 높이는 접근입니다. 그래서 이 기획은 결과적으로 수작(手作)입니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기분으로 적은 기사입니다.
‘인천 사람들이 서울 경제에 기대는 풍경에 1991~1995년생이라는 액자 하나를 거는 일’은 삶의 공간으로서 지역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 기획 구성입니다. 수도권으로 묶여 인구 수혜 지역으로 평가되는 인천을 제대로 진단하기 위해 내세운 장치입니다. 지역신문에서만 할 수 있고 또 제일 잘하는 일이자 지역신문 존재 가치에 다가가고자 했다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천 존재감이 가장 적었을 때 ‘실제로’ 벌어지는 일
미국-멕시코 국경 문제에서 핵심은 상황이 한쪽으로 치우친다는 점입니다. 합법이냐 불법이냐 굳이 따지지 않아도 세계에서 ‘넘나듦’이 가장 많은 이 국경에선 ‘미국행’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경을 경계로 한 극명한 경제 수준 차이는 멕시코인들의 이주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인천에 있는 부평역, 부평구청역, 계양역에서도 아침저녁 원사이드 게임이 존재합니다. 서울 권역 지하철과 연결하는 이 환승역들의 플랫폼은 아침이면 ‘서울행’에만, 저녁이면 ‘인천행’에만 승객들로 가득 찹니다. 미국-멕시코 국경 문제처럼 인천과 서울 사이 ‘거리적인 가까움과 지역 경계로 극명한 경제 수준 차이’는 인천 사람들이 서울까지 가 일자리를 잡아 통근하거나, 아예 이주를 선택하는 주요 이유입니다.
기획 프롤로그에서 인천에서 태어난 우연하지만 필연적인 구조와 이들이 지금 인천에서 버티지 못하는 우연하지만 필연적인 속사정을 수면 위로 올렸다면, 기획 1편부터는 인천 1991~1995년생들이 서울과 경기로 이동하는 데이터를 추적하는 데 더해 지역 인력 공급과 수요 구조를 파헤치고 당사자 청년들 30~40여 명을 심층 취재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지난해 말 기획 구상부터 기사 작성까지 넉 달 정도를 들였습니다.
기획 핵심 내용은 3편에 담겼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에 응해준 이들이 요즘 주변에서 어떤 변화를 감지 중인지 설명해준 말들로 채웠습니다. 인천 10개 군·구와 각자 인연이 있는 인천형 청년 베이비부머(1991~1995년 출생)를 만나 ‘요즘’에 대해 물어보는 형식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에 뛰어든 ‘요즘’에 인천의 의미는 조금씩 수정되는 중이었습니다. 1991년, 1994년 각각 인천에서 태어난 김신영, 이아진 인천일보 기자가 최근 서울과 경기에서 자취를 시작한 실제 친구들 집을 찾아 적은 글을 머리기사로 내세워 기획 친근감을 높였습니다. 단순히 생동감 있게 멘트를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데서 나아가 이를 통해 의미 있는 결과도 이끌었습니다.
우선 같은 인천이라도 사는 동네에 따른 다른 분위기를 감지해 낼 수 있었습니다. 인천에서 서울이나 경기로 출퇴근하는 경우나, 인천에서 살다가 아예 서울로 간 경우, 인천 출신으로 서울에서 일하다 인천으로 다시 온 사례까지 다양하게 모은 뒤 인천지역 10개 군·구별로 유형을 나눠 인천지역 내 분석까지 시도했습니다. 같은 인천이라도 서울과 가까우냐 아니냐를 놓고 동네 분위기가 갈린다는 것을 규명하고 싶었습니다(이는 2020년 들어 심각해지는 인천지역 집값 문제와 연관이 깊은 내용이기도 합니다).
인천 청년 베이비붐 세대는 서울에서도 관악구로 가장 많이 가고 있다는 현상도 꼬집어 이주 문제에 주택 질 문제까지 포함했습니다. 인천 출신 20~30대들은 지역 고용과 소비, 출산 등 도시 유지를 위한 핵심 항목들을 관통하는 세대로 자리 잡아야 하지만, 대학 졸업과 취업 경계에서 인천 내 마땅한 터전을 찾지 못하고 긴 통근 시간이나 단칸방 신세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기획 말미에 접어드는 기획 6편에선 수도권 밖에서 살다가 최근 인천으로 온 청년들에게 시선을 건넸습니다. 수도권 안에서도 심각한 노동 시장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전국 1991~1995년생들은 어떤 기대를 안고 인천에 청춘을 걸었는지 얘기 나눈 겁니다. 고향 일자리가 성에 안 차 인천 토박이 청년들은 서울이나 경기로 떠나고 있는데, 오히려 외지에서 인천으로 온 청년들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다룬, 지역 언론계에선 보기 드문 접근 방식입니다. 인천 생존을 위해선 떠나는 토박이들과 인천을 찾는 청년들을 동시에 지켜야 한다는 숙제도 던졌습니다.
다양한 데이터를 무조건 ‘인천 여건’에 맞추기
이런 인터뷰가 분위기를 조성했다면 신빙성은 데이터에 기댔습니다. 1편 중추 데이터는 한국고용정보원 대졸자직업이동경로조사(GOMS) 2017년분 로데이터 1만 8,000여 건입니다.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과 경기로 첫 직장을 잡는 구체적 숫자를 인천지역 신문 최초로 세부 분석했습니다. 인천이 고향인 20대 중반~30대 초반들은 오히려 부산, 대구, 대전, 울산, 광주 출신 또래 청년들보다 낮은 비율로 첫 직장을 고향 밖에서 잡고 있었습니다. 인천 청년 유출의 심각성이 수도권 외 주요 도시보다 절대 여유롭지 않다는 걸 도출한 분석이었다고 자체 평가합니다.
기획 2편에선 산업도시 인천이 대졸자 토박이들 일자리를 충족시키지 못해 벌어지는 ‘미스매치’ 문제를 들여다 봤습니다. 구인과 구직 미스매치는 인천 청년들이 인천을 벗어나 수도권에 기대는 결정적 요인입니다. 심층 인터뷰 내용에 더해 한국고용정보원이 운영하는 워크넷의 통계연보를 분석해 청년들이 서울로 가는 근본 원인을 구체화했습니다.
청년과 지역 산업이 서로 손을 잡지 않으면서 청년들은 외부 기업 일자리를 쫓고, 기업들은 중·노년, 외국인 노동자들로 빈자리를 채우는 현상을 시각화했습니다. 청년들은 사무직을 중심으로 한 전공 활용 일자리를 원하는데 산업도시 인천은 단순 생산직에 기반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청년-지역기업 사이 거리감만 바라볼 게 아니라 인천 대학이 지역 경제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도 따졌습니다. 대학들은 수준 높은 인재를 양성하는 와중에 지역 일자리는 이들을 담을 만한 다양한 직업군과 뒤따르는 처우를 마련하지 못하면서 생긴 괴리감입니다. 전국 청년들이 인천지역 대학과 연이 닿아 오게 돼도 인천이 제2의 고향은 되지 못하는 결정적 배경입니다. 반대로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인기가 하락 중인 특성화고에선 지역 산업과 친밀도가 높은 부분도 언급해 특성화고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부분까지 다뤘습니다.
고리타분한 해결책 말고 요즘 유행하는 ‘컬래버레이션’
일자리 미스매치가 고질적 문제로 썩게 된 것은 기존 접근 방법으로는 풀기 힘든 사안이라 그럴 겁니다.
인터뷰 대담을 조금 재밌게 풀어봤습니다. 인천 청년 사회와 경제계에 각각 이해도가 높은 두 인물의 대담을 채록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청년 사회와 경제계는 인천을 바라보는 경험과 시선이 달라 그동안 한 테이블에 앉는 일이 의외로 많지 않았습니다. 청년유니온과 인천상공회의소는 일자리 미스매치에 가장 연관한 단체, 기관이지만 실제 얼굴을 맞대고 관련 사안으로 얘기를 나누는 건 이번 인터뷰가 처음이었습니다.
“이런 청년 기획 구성은 처음이다. 우리도 생각 못 한 전개다.”
김민규 인천청년유니온 위원장은 기획을 보고 이렇게 피드백했습니다. 일단 지역 사정을 잘 분석했고, 나아가 스토리 전개도 흥미롭다고 전했습니다. 시나 구 지자체 관계자 만나는 일 자체도 어려워 자신들 상황 전달도 어려운 시국에 힘이 되는 기사라는 평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