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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으로 맞춤형 기사를 전달하자.’ 과연 이 기발한 기획이 실현 가능할까. 인천일보는 이 기획을 결과물로 만들어냈다.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고 ‘판을 흔들고 싶었던’ 지역 언론의 실험을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인천일보의 <독자시점주의-From You>(이하 <From You>)는 독자에게 조금 시간을 내 동네 한 바퀴를 함께 걷자고 제안하는 기획이다.
“불꽃놀이는 여의도에서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동네에도 알게 모르게 볼 것, 느낄 게 많습니다. 번거롭더라도 한 바퀴 걸어요. 대신 독자가 가자는 길로, 걷고 싶은 만큼만 걸을게요.”
기획의 출발점에서 <From You> 팀이 생각한 장면이다. 지역 독자와의 관계 회복을 고민하던 우리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자”라는 재미있는 ‘잡기술’ 하나를 생각해 냈다. 기자가 기사를 쓰고 독자가 소비하는 일방향 구조를 넘어, 독자가 직접 자신의 성향을 기사에 반영할 수 있도록 ‘편집권’을 돌려주는 실험이다. 독자 시선에서 지역을 다시 그려보는 새로운 뉴스 방식이다.
지역 독자와 지역 언론은 지속가능한 관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으면 더 나아지는 걸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팀에겐 이런 절박함이 있었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24시간이지만, 보고 듣고 읽을거리는 끝없이 늘어난다. 언론은 이 속도에 쫓기듯 조바심을 내고 있다.
신문이 세상의 창이던 시절은 컴퓨터가 가로채더니, 이제 스마트폰이 그마저 남은 시간을 점령했다. 사람들은 손안의 화면에서 수없이 쏟아지는 영상을 소비하며, 뉴스의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이 변화의 파도 앞에서 지역 언론은 더욱 버거웠다. 십수 년 넘게 ‘디지털 전환’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시도를 이어왔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속보 경쟁과 클릭 수의 논리에 묻혀, 지역 독자와 거리는 오히려 멀어졌다. 그럴수록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보기로 했다.
“속보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회복해야 할 건 결국 인천과 독자, 그리고 인천일보와의 관계 아닐까.”
뉴스는 넘쳐났지만, 그 안에서 인천 속 ‘나’를 발견할 수 있는 독자는 드물었다. 중앙의 시선 속에 지역 독자는 늘 주변부에 머물렀다. 지역 언론 기자라면 이제 다시, 독자와 지역의 연결점을 묻는 일로 돌아가야 했다.
어떻게 기사를 읽을지 독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
“판을 흔들고 싶었다.”
시점이 바뀐다는 것은 중심의 무게추가 이동한다는 뜻이다. 언론은 늘 기자와 편집국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써왔다. 독자를 위해 취재하고,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존재 가치를 증명해 온 언론이라 하더라도 막상 기사를 쓰는 순간 시점은 언제나 ‘쓰는 사람’에 고정돼 있었다. 기자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이슈, 우선순위, 문단의 배열이 곧 독자가 뉴스를 받아들이는 순서였다.
지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우리 독자’를 생명줄로 삼아온 지역 언론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독자와 가까워지기 위해 시민편집위원회나 독자 참여란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지만, 대부분은 주변의 조언을 듣는 수준에 머물렀다. <From You>는 이 지점에서 판을 흔들고자 했다. 독자에게 편집권을 넘겨, 어떤 순서로 어떤 시선에서 기사를 읽을지 독자 스스로 결정하는 뉴스 시스템을 설계했다. 쉽게 말해, 인천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다루는 기사를 ‘라면 끓이는 법’에 비유할 수 있다.
누군가는 면을 먼저 넣고, 또 누군가는 스프를 먼저 넣는다. 어떤 사람은 꼬들꼬들한 면을, 또 다른 이는 푹 퍼진 면을 좋아한다. 달걀을 반숙으로 익힐지, 완숙으로 익힐지도 모두 다르다. 라면 하나를 끓이는 데도 이렇게 취향이 다양한데, 기사는 언제나 냄비를 쥔 요리사(기자)가 순서를 정해왔다. <From You>는 그 역할을 독자에게 되돌리고자 했다.

“땅콩이나 갑각류 알레르기는 있으신가요?”, “면을 먼저 넣으시겠습니까, 스프를 먼저 넣으시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물으며, 독자가 스스로 조합하고 선택할 수 있는 뉴스 구조를 만들었다. 목표는 단순했다. “독자의 삶과 감각을 중심으로 인천을 몸과 마음에 담을 수 있게 하자.” 기획의 틀은 세 개 질문으로 이뤄진다.
“인천 어디에 살고 계신가요?”
“현재 연령대는?”
“요즘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요?”
이 세 가지 질문의 조합을 통해 독자의 삶과 관심사를 반영한 맞춤형 기사 배열이 완성된다. 겉으로 보면 독특한 설문 형식이 <From You>의 핵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통해 독자의 시선이 뉴스의 중심으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이 기획을 위해 취재진은 약 14만 자 분량의 기사 원고를 썼다. 그러나 그 모든 글이 독자에게 ‘전부 읽히기 위한 것’은 아니다. 방대한 텍스트는 독자가 선택할 수 있는 재료, 즉 맞춤형 뉴스의 원천 데이터로 쓰인다. ‘거주지–연령대–관심사’라는 동일한 3단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8개 구마다 전혀 다른 변주를 시도했다. 어떤 구는 감정을 담은 데이터로, 다른 구는 정책 제안이나 다중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했다. 인천 중구 편은 데이터와 취재, 서사를 섞어 단편소설 형태로 풀어냈다.
겉모습만 보면 <From You>는 지역 백서처럼 보인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면 전혀 다른 기사 읽기 경험이 펼쳐진다. 누군가에게는 교육 기사가 먼저 뜨고, 다른 이에게는 부동산이 맨 아래 위치한다. 그 조합은 독자의 성향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이 실험은 결국 지역신문만이 시도할 수 있는 독자 중심 뉴스의 새로운 형태라고 판단한다. 뉴스의 중심이 기자에서 독자로 옮겨지는 순간, 지역은 다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지금이 바로 <From You>할 때
인천은 올해로 광역시 체제 30년을 맞았다. 또 2026년에는 제물포구, 검단구, 영종구라는 새 이름이 탄생한다. 도시를 되짚어 봐야 할 시기에 도시의 이름과 모양새가 변화하는 셈이다. 흔히 지나쳐온 ‘우리 동네’의 이야기들을 다시 정리해 보는 시도는 아카이빙에 그치지 않고 ‘독자 시점’으로 앞으로 어떤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함께 상상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실험에 대한 반응도 있었다. 특히 인천과 인연이 있는 독자들은 체험형 기사라는 흥미에 더해 ‘내 얘기가 담겨 있다’라는 공감을 전했다. 인천일보 시민편집위원회 위원들의 언급만 봐도 이는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지역 주민만이 알 수 있는 시선과 경험을 기사에 녹여낸 점이 인상 깊었다. 독자 참여형 콘텐츠로서의 실험성과 참신한 기획력이 돋보였고, 인천일보가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다.”
“단순히 구를 행정구역으로 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그 속에 녹아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From You> 기획은 지난 6월 ‘2025 지역신문 기획취재 제작 지원 공모’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는 AI 맞춤형 보도 기획으로, 독자 참여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 생산 방식 실험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상금은 전부 인터랙티브 페이지 구축에 투입됐다. 지원이 없었다면 현실화가 어려웠을 만큼 절실한 자금이었다. <From You> 팀은 지금까지의 과정을 ‘시즌1’이라 부른다.
<From You>는 수없이 시도된 인터랙티브 페이지의 한계를 넘어선 확장의 신호다. 기존 콘텐츠가 정해진 틀 안에서 시청각 효과를 ‘보여주는’ 데 그쳤다면, 이번 기획은 독자의 선택에 따라 구조와 내용이 능동적으로 재조합되는 실험이다. 이처럼 <From You> 시즌1이 독자의 시점에서 도시를 다시 그려보는 실험이었다면, 시즌2는 그 도시의 생활 단면으로 들어가는 연구록이다. 제목은 <‘빈’터뷰–인천형 임장, 미지의 아파트 상권에 삶을 입히다>(이하 <‘빈’터뷰>). 인천과 서울에서 지은 지 5년 이내 된 신축 아파트 단지 상가 70여 곳을 직접 찾아가, 그곳에서 주워 담은 이야기를 동네별로 풀어내는 기획이다.

<From You>에 이어 <‘빈’터뷰>로 이어지는 인터랙티브 기사
<‘빈’터뷰>는 발품과 관찰로 부동산을 읽어낸다. 인천과 서울의 70여 개 아파트 상가를 직접 임장하며 도시의 숨은 결을 찾아내는 형식이다. 부동산 기사는 그동안 가격의 상승과 하락,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각종 데이터에 기대 성장해 왔다. 기자들 역시 공공 통계와 민간 리서치 자료를 분석하며 지역별·연도별 가격과 물량을 다뤘다. 그렇게 쌓인 데이터가 굳어지면서 부동산 보도의 중심은 ‘돈’이 됐다. 돈을 설명하는 숫자는 넘쳤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어 있었다.
인천 사람들의 체취가 묻어날 부동산 영역을 찾고자 했다. 선택한 대상은 아파트 상가였다. 아파트 단지 내 상가는 주민의 일상과 가장 맞닿은 생활공간이지만, 언론과 데이터에서 제대로 조명된 적이 드물었다. 공공·민간 통계가 이를 ‘복합상가’ 범주로 묶어 다루다 보니 단지 속 상권은 별도 영역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친숙해서 잘 몰랐을 뿐, 아파트 상가는 주민의 삶이 경제로 이어지는 출발점이자 아직 탐구되지 않은 공간이다. 특히 신축 단지의 상가 공실은 ‘당연한 일’로 여겨졌지만, 인천에서는 미분양만큼 위험한 신호임을 확인했다.
<‘빈’터뷰>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인천의 신축 단지 상가 분포와 특징을 <From You>의 메커니즘에 결합한 시각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독자가 자신의 관심 지역을 선택하면 해당 단지의 추정 공실률과 업종, 상권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구조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임장 기록이 단순히 신문 지면이나 온라인 기사 형태로만 공개된다면 기존처럼 하나의 부동산 기사에 그칠 수 있다. 그러나 <From You>의 서사 안에서는 이 기획이 단순한 ‘부동산 기사’가 아니라, 실험 정신을 생활의 현장으로 옮긴 두 번째 이야기로 확장된다.
<‘빈’터뷰>는 지난 10월 말 시작해 연말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스포’를 하자면 올해 상반기 준공된 인천 아파트 가운데 완판된 단지는 없었다. 준공 2~3년 차 단지들조차 1~2곳 이상의 공실을 안고 있었다. 신축 상가에서 공실은 업계가 말하는 ‘필수 과정’일지 모르지만, 인천의 경우 이는 지역 생활의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5년 전 지어진 인천의 아파트 상가 27%가 여전히 비어 있었다는 지점은 곱씹어볼 대목이다. 서울의 2025년 준공 단지들이 절반 이상 입점률로 출발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 차이는 결국 인천 시민들의 일상과 상권 체감에 영향을 미친다. 그 구체적 양상은 이어지는 기획에서 다룰 예정이다.
<From You> 시즌3이 가능하다면, 독자 경험이 곧 뉴스가 되는 방향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댓글을 남기는 수준을 넘어, 기사 말미의 “이 주제 더 알고 싶어요”, “현장 같이 가보실래요?” 같은 버튼을 통해 독자의 참여가 곧 데이터로 축적되고 후속 취재의 우선순위로 반영되는 순환형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다.
자화자찬을 늘어놓다가 고충을 조금 말하자면, “판을 흔들고 싶다. 근데 이제 요즘 기술을 곁들인…”이라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늘 비용의 벽이 있었다. 지면과 온라인 홈페이지를 벗어나는 기획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돈’ 문제를 피해 가기 어렵다. 디지털 실험을 꾸준히 이어가기에는 기자 개인의 역량만으로 한계가 있었고, 외부 인력의 도움을 받기엔 재정이 빠듯했다. <From You>의 인터랙티브 페이지 구축에서 기술적인 부분은 외부 전문가의 손을 빌렸다. 개발을 맡은 이우진 씨는 최소 예산으로 효율적인 시스템을 완성했다. 팀 입장에선 그 비용조차 이곳저곳에서 어렵게 마련한 돈이었다.
‘완성’ 이후의 시즌2와 3 역시 결국 자금의 문제로 귀결된다. 더 많은 데이터, 더 넓은 독자 참여, 더 정교한 시각화를 실현하려면 예산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광고를 덕지덕지 붙이기도 어렵다. 기획의 진심과 실험의 취지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의 고민은 하나다. ‘지속가능한 실험’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시즌2 <‘빈’터뷰>는 그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의 실험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닿길 바란다. 이렇게 긴 취재기를 남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From You>의 실험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도의 동기가 되길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