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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제작기] 인천일보 <식판경제학> 취재기
취재기 제작기 | 등록일 : 2026-04-24

인천 국가산업단지는 오랫동안 ‘생산의 공간’으로만 정의돼 왔다. 그러나 그 안에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노동자들의 사연이 겹겹이 쌓여 있다. 거창한 지표 대신 식판 위에서 오가는 언어를 통해 산업단지의 실상을 드러낸 인천일보의 취재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lt;식판경제학&gt; 프롤로그. 숫자가 아닌 ‘사람의 문장’으로 산단을 다시 읽어내려 한 기획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취재팀은 사람을 통하지 않은 통계는 쓰지 않기로 했다. ⓒ인천일보


13년 전, 인천일보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마주한 ‘산업단지 구조 고도화’는 이미 피로감에 찌든 단어였습니다. 인천 3개 국가산업단지(남동·주안·부평)가 낡은 시설을 벗고 국가 경제의 심장으로 재도약해야 한다는 간절함은 그 옛날부터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쏟아낸 지원책은 매년 이름표만 바꿔 달고 등장했고 정작 현장 핵심부에는 닿지도 못한 채 사그라지기 일쑤였습니다.


그 사이 인천 산업은 ‘바이오’라는 화려한 훈장을 달고 고도화에 성공했습니다. 이 성과는 철저히 송도국제도시라는 특정 공간에 집중된 몫이었습니다. 갯벌을 매립한 땅에 아파트를 올리고, 남은 산업 용지를 기업에 저렴하게 내주는 ‘부동산 서사’가 낳은 결과물입니다.


인천 산업 고도화는 원도심과 신도시의 격차를 벌려온 부동산 개발 방식과 궤를 같이합니다. 기존 터전을 일구기보다 새로운 땅을 찾아 확장하는 손쉬운 방식이 부동산에서 한 번, 산업에서 또 한 번 반복된 셈입니다. 그 틈바구니에서 원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기계를 돌려온 원도심 노동자들은 번번이 후순위로 밀려났습니다. 같은 오류가 영역을 바꿔 되풀이되는 이 견고한 구조가 불편했습니다.


그 불편함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지표 대신 ‘식판’부터 들었습니다. 산단 경쟁력이라는 거창한 지표 뒤에 가려진, 그 안에서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의 문법으로 산업단지를 다시 써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lt;식판경제학&gt;이 &lt;한끼줍쇼&gt;와 다른 점


기획을 준비하며 점심과 저녁, 즉 ‘밥 먹는 시간’에 집중한 이유는 명료했습니다. 공장에서 하루를 온전히 보내는 노동자나 매일 마감에 쫓기는 기자나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팀은 별도의 기획 취재팀이 아닙니다. 매일 지면과 온라인 기사를 책임져야 하는 일상의 업무 속에서 기획 취재는 늘 부수적인 과제였습니다. 따로 시간을 할애한 심층 취재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사치였습니다.


결국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을 취재 시간으로 전환하기로 했습니다. 산단 식당으로 들어가 노동자들과 같은 식판을 들고 합석했습니다.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밀도 높은 이야기가 오가는 순간이 바로 그때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계획을 들은 한 동료는 “그거 &lt;한끼줍쇼&gt; 아니냐”라는 말을 툭 던졌습니다. 솔직히 기분이 상했습니다. 밥 한 끼 얻어먹으며 나누는 가벼운 담소처럼 비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중적인 예능 포맷을 따라 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갈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답은 의외로 눈앞에 있었습니다. 산단 식당 어디에나 놓여 있는 ‘식판’ 그 자체가 상징이었습니다. 식판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대화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경제 담론이었습니다. 임금 등락, 물량 확보, 발주처 동향, 인력 부족과 퇴직, 이직 고민까지. 식판 위의 반찬 가짓수만큼이나 다양한 경제의 단면들이 수저 끝에서 오갔습니다. 그 순간, 파편화된 현장의 목소리인 ‘식판’과 거시적인 구조인 ‘경제’를 묶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이번 기획의 이름을 단순한 르포가 아닌 &lt;식판경제학&gt;이라 명명한 이유입니다.


식판 위 말이 말로 그치지 않기 위해


문제는 식판 식당에서 취재 기자는 철저하게 이방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장부로 적는 결제 시스템은 외부인을 기가 막히게 걸러냈습니다. 미국 서부 개척기 영화에서 낯선 총잡이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설 때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보면 됩니다. 테이블마다 대화는 끊기고 시선이 모였다가 흩어집니다. 우리의 등장으로 식당에 흐르는 어색한 공기가 못내 미안했습니다.


한 끼 식사 시간은 15분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낯선 기자에게 말을 건넬 여유 따위는 없었습니다. 합석을 요구하고 질문을 던져도 하루에 단 한 명과 대화를 이어가기조차 버거웠습니다. 그래서 인천일보 로고를 새긴 작업복을 3만 원에 맞췄습니다. 그걸 입고 산단을 돌아다니며 우리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신문도 종이에 기사를 찍어내는 제조업입니다. 공정이 다를 뿐 매일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노동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어설픈 요령이었지만 효과는 있었습니다. ‘외부인’이라는 벽이 낮아지자 비로소 인천 산업의 현재를 관통하는 정확한 문장들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남동국가산업단지에서 30년 가까이 공장을 지켜온 노동자가 뱉은 ‘이제는 젊은 사람이 들어오질 않는다’는 탄식부터, 암으로 기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수억 원 빚을 걱정하던 어느 대표의 목소리까지. 거창한 통계보다 더 정확한 문장들이 식판 위로 쏟아졌습니다.


우리는 건져 올린 문장들을 단순히 활자로 옮기는 데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lt;식판경제학&gt;의 진짜 승부수는 현장의 말을 ‘데이터’로 조립하고, 이를 지면 ‘그래픽’으로 시각화하는 편집 공정에 공을 들였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그래픽이 단순히 기사의 이해를 돕는 삽화 수준이 아니길 원했습니다. 텍스트가 설명하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을 한 장의 그래픽에 응축해 독자의 눈을 붙잡기로 했습니다. 남동공단 노후화를 다룰 때는 수치만 적기보다, 공장 가동률과 노동자 연령대 추이를 입체적으로 교차한 인포그래픽을 전면에 배치했습니다. 젊은 인력이 빠져나간 자리를 고령 노동자들이 아슬아슬하게 지탱하고 있는 산단의 실존적 위기를 시각적으로 실체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인터뷰로 완성된 텍스트가 더욱 단단한 힘을 얻길 바랐습니다.


주안과 부평의 구인난을 설명할 때는 막연한 추측을 걷어냈습니다. 산단 내부의 보육 시설, 주차 공간, 생활 인프라의 밀집도를 전수조사해 이를 이른바 ‘정주 여건 점수’로 데이터화했습니다. 왜 청년들에게 ‘머물 수 없는 공간’이 됐는지를 여러 지표로 펼쳐 보였습니다. 독자들은 기사를 읽기 전 지면에 펼쳐진 그래픽만으로도 산단이 처한 결핍의 온도를 즉각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취재가 거듭될수록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 문제가 특정 집단의 고단함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노동자든 대표든 식판 앞에서는 같은 본질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이 목소리들이 담을 넘을 수 있도록 국내외 전문가들의 분석을 함께 엮었습니다. 식판 위에서 오간 날것의 대화들을 전문가의 언어와 정교한 통계 그래프를 거쳐 ‘구조적 결핍’이라는 공적인 의제로 설정해 보려고 했습니다.


결국 &lt;식판경제학&gt;이 편집을 거쳐 보여주고자 한 것은 산업단지의 숫자가 아니라 그 안에서 버티는 인천 사람들의 삶이었습니다. 데이터는 이야기를 이끄는 주인공이 아니라, 이미 드러난 현장의 진실을 뒷받침하는 단단한 뼈대가 됐습니다. 현장의 문장은 데이터로 정리되고, 데이터는 다시 지면을 장악하는 그래픽이라는 시각적 언어를 거쳐 정책의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산업단지는 ‘일하는 공간’에만 머물러 있고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그 자명한 사실을 데이터로 조립해 증명해 내려 한 과정이었습니다.


표가 안 된다? 정치적 언어로 치환한 ‘식판’


그러다 기획 마무리엔 ‘누가,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왔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목격한 산단의 결핍은 명확하고 절박했지만, 이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과 행정의 시계는 늘 멈춰 있었습니다. 이유는 냉혹할 만큼 단순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지역 정치권은 ‘산단 정책은 표가 안 된다’는 정설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 문법으로 볼 때 산단은 ‘떠 있는 섬’이었습니다. 수만 명 노동자가 매일 이곳으로 출근하지만, 퇴근과 동시에 각자의 주소지로 흩어지는 그들은 정치인들에게 ‘집중해야 할 유권자’가 아닌 ‘잠시 머무는 유동 인구’에 불과했습니다. 산단 인프라를 개선하기보다아파트 단지에 도서관 하나를 더 짓는 것이 당선에 유리하다는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수십 년간 산단의 노후화를 방치해 왔습니다.


&lt;식판경제학&gt;은 바로 이 견고하고 오래된 계산법과 손잡아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이 기획을 지방선거 식판에 살짝 올려봤습니다. 선거 때마다 중심에 서지 못했던 산단 이슈를 ‘경제 통계’가 아닌, 노동자의 일상이 담긴 ‘식판’이라는 정치적 언어로 치환했습니다.


우리는 시장과 구청장 후보들에게 식판 위에서 길어 올린 날것의 목소리를 들이밀었습니다. 아이 맡길 곳이 없어 출근길에 가슴을 졸이는 부모의 마음이, 주차할 곳이 없어 아침마다 차 안에서 쪽잠을 자야 하는 노동자의 피로가 어떻게 표심과 연결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표가 안 된다며 산단을 외면해 온 그들의 계산법이 사실은 얼마나 현장과 동떨어진 낡은 데이터인지를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인천시장과 기초지자체장 후보들의 답변은 예상보다 구체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입을 모아 산단에 사람이 살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공장을 짓고 기업을 유치하는 수준을 넘어 보육과 문화, 주거가 어우러진 ‘사람 중심의 산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산단을 단순히 기계가 돌아가는 생산 기지가 아니라, 사람이 머물고 삶을 일궈가는 도시의 필수 공간으로 재정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단순히 현장의 고단함을 나열하는 르포에 그치지 않기 위해 취재팀은 노동자의 연령대 추이와 산단 정주 여건 등을 전수조사해 지면에 담았다. ⓒ인천일보


실제로 후보 16명이 보내온 답변서는 그 자체로 기성 정치에서 묶어본 적 없던 ‘산단 정책 부록집’이자, 책 한 권 분량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됐습니다. 그동안 선거판에서 늘 변두리에 머물렀던 산단 이슈가 이번 기획을 통해 한데 묶였다고 자찬합니다.


16명 후보가 식판 앞에서 버티는 삶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내놓은 이 약속들이 앞으로 산단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 나갈 소중한 이정표가 되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답변을 끌어낸 동력이 기자들의 펜이 아니라, 3만 원짜리 작업복을 입고 식판 앞에 앉아 묵묵히 하루를 일궈온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됩니다.



&lt;식판경제학&gt; 마지막 지면인 에필로그의 식판은 그 목소리에 응답하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진단과 16명 후보자의 정책적 약속으로 마무리했다. ⓒ인천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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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온도’가 경제의 가치가 되길


취재는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약 4개월간 진행했습니다. 경제부 김원진·정혜리·홍준기 기자가 각자 산업단지를 돌며 최소 30명 이상에게 접촉을 시도했고, 이 가운데 실제로 의미 있는 대화를 이어간 대상은 1인당 10여 명 수준입니다. 지면 편집과 그래픽은 편집부 김혜정·이연선 기자가 힘을 보탰습니다.


초기에는 식판을 들고 무작정 합석을 시도했지만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대화가 쉽게 이어지지 않았고, 하루 종일 단 한 명과도 말을 트지 못한 날도 적지 않았습니다. 취재기자 모두 비흡연자임에도 흡연 구역까지 찾아가 노동자 동선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리 가라”는 노골적인 거부를 받거나 질문 자체를 차단당하는 민망함도 반복됐습니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식판 앞에서 오가는 일상의 언어를 보다 자연스럽게 포착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제 와서 속마음을 터놓자면, 우리가 ‘경제학’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식판 뒤에 붙였을 때, 이 기획이 한 권의 경제서만큼 정교한 이론적 가치를 가질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하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경제 전문가도 아닌 우리가 감히 학문적 권위를 빌려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움도 늘 한편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차가운 지표와 수식만큼 현장의 온기가 권위를 갖길 원했습니다. 진짜 산업단지 경제는 거시적인 성장률 지표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식판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사람들의 살냄새 나는 대화와 땀방울 속에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도가 독자들에게 단순한 르포를 넘어, 사람의 온기가 담긴 새로운 경제적 가치로 읽히기를 바랐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두 기획에 녹이려고 한 것도 이런 배경에 있습니다. 작업복을 입고 현장 깊숙이 파고들었고, 채집한 언어들을 데이터로 재가공해 지면을 서정적이고 날카로운 그래픽으로 풀어내려고 시도했습니다. 국내외 전문가들을 찾아가 우리 산단의 결핍이 구조적인 문제임을 확인했고, 그 결과물을 지방선거라는 정치의 장으로 끌어올려 실질적인 정책 아이디어까지 이끌어 냈습니다.


이 모든 과정 끝에, 산업단지가 낡은 공장 굴뚝으로 대변되는 지금에서 나아가 사람의 온기로 표현되는 순간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산단이 그 온기로 다시 숨 쉬는 공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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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김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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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 : 202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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