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빅테크 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커지면서 세계 각국은 이들을 규제하기 위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미국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 6월에는 하원에서 빅테크 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 규제의 함의와 향후 전망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연일 미국의 빅테크 기업 규제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GAFA(Google, Apple, Facebook, Amazon)로 불리는 글로벌 기술 기업과 유럽연합의 갈등은 몇 년째 진행 중이다. 빅테크 기업을 향한 유럽에서의 규제 논의는 자국 플랫폼을 보유하지 못한 설움에서 시작된 것으로 해석되곤 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 의회의 움직임은 사안을 한 발 더 다가가 들여다보게 만든다. 디지털 경제를 좌우하는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 논의의 배경을 살펴보고 향후 디지털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전망해 보자.
2021년 6월 11일, 미국 하원에서 빅테크 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다섯 개 법안이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 공동으로 발의됐다. 구체적으로는 △플랫폼 독점 종식법 △진입 방해 인수합병 금지법 △자사 제품 특혜 제공 금지법 △소셜미디어 이동 제한 금지법 △합병 신청 수수료 인상법이다. 이 법안들은 하원 사법위원회 산하 ‘반독점, 상업 및 행정법 소위원회’가 빅테크 기업의 시장 지배력과 사업 관행이 경제 및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발표한 보고서의 후속 조치로 마련된 것이다. 규제 대상인 플랫폼 사업자는 이용자 수,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GAFA 기업을 조준한 법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6월 24일, 반독점 규제 법안들이 미국 하원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빅테크 기업을 손보기 위한 움직임은 미 의회와 행정부 모두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미 하원은 빅테크 기업의 독과점 상황을 조사한 후, 해당 기업들이 불공정행위를 통해 기업가 정신을 훼손하고 소비자 권익, 언론 자유,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는 하원의 조사 결과와 자체 수사 결과에 기초해 주·지방 검찰과 공동으로 구글, 페이스북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구글이 자사 검색엔진을 선탑재하도록 제조사와 통신사에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고 경쟁사의 검색 시장 진입을 막았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은 신생 경쟁기업을 인수하면서 SNS 시장을 독점화한 혐의를 받고 있다. 뉴욕, 캘리포니아주 법무부에서는 온라인 시장 독과점 이슈로 아마존을 조사하고 있다. 행정부 차원에서도 정치 편향, 혐오 표현, 가짜뉴스 유통 등의 이유로 빅테크 기업 견제가 한창이다.
미 의회는 규제 기관의 대응 부족으로 빅테크 기업의 지배력 강화, 소비자 선택권 감소, 혁신 및 기업가 정신 약화,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폐해가 심각함을 지적하면서 구조적 분할 등 민주당이 지지하는 반독점 보고서의 주요 권고사항을 늦어도 2022년까지 법제화할 예정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독과점 관행을 단속하기 위한 칼자루를 행정부에 쥐여 줬다. 2021년 7월 9일, 기술, 의약품, 농업 분야를 중심으로 10여 개 부처와 기관이 반경쟁 관행을 개선하도록 하는 72개 계획이 담겨있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시장 경쟁을 촉진하고 기업의 지배력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이며, 소규모 기업에 불리한 합병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이미 완료된 합병 건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IT 플랫폼에서 이뤄지는 불공정한 데이터 수집, 감시 관행을 규제할 규정을 수립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으며 망 사업자에게 요금 정보를 보고받고, 망 중립성을 복원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빅테크 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인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망 중립성 개념의 창시자이자 글로벌 기술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론자인 팀 우(Tim Wu) 컬럼비아대 교수를 국가경제위원회 대통령 특별보좌관에 임명한 데 이어 아마존 저격수로 불리는 리나 칸(Lina Khan) 컬럼비아대 교수를 FTC 위원장에 임명했다. 칸 교수는 평소 반독점과 소비자보호법의 강력한 집행을 주장해 왔다. 최근에는 조너선 캔터(Jonathan S. Kanter) 변호사를 법무부 반독점 국장에 지명했다. 캔터 변호사는 글로벌 IT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구글에 맞서는 회사들을 오랫동안 변호해온 이력이 있다.
공정성 확보를 통한 세계 질서 확립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주요 빅테크 기업의 매출액은 2010년대 들어 연평균 19% 성장하고, 2020년 매출액이 2010년 대비 다섯 배 이상 확대됐다. 특히 이들의 연 매출을 더하면 어지간한 국가들의 GDP를 넘어선다. [그림]

미국의 기조 변화는 그동안 소비자 후생에 초점을 맞추면서 놓쳤던 ‘생태계’ 전반에 관심을 갖게 한다. 디지털 경제에서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의존도 심화로 수반되는 다양한 갈등과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부각됐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규제를 통한 ‘세수 확보’의 니즈(needs)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공정성 확보를 통해 디지털 시장에서의 세계 질서를 확립하고 미국의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빅테크 규제가 글로벌 컨센서스로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 공간에 대한 국가 차원의 통제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그동안 나타난 다양한 갈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속내도 있을 것이다.
길고 긴 진흙탕 싸움
빅테크 기업들의 반발도 거세다. 아마존을 비롯해 페이스북은 ‘공정성’ 문제가 있으니 리나 칸 FTC 위원장을 반독점 조사에서 배제해달라며 기피(직무집행 배제) 신청을 했다. <아마존 반독점의 역설(Amazon’s Antitrust Paradox)>이라는 논문을 통해 기존의 독점금지법으로는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경쟁 방해 행위를 견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 칸 위원장이 열린 마음으로 사건을 바라볼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그동안의 이력을 토대로 이미 빅테크 기업에 대한 사실적, 법적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공정성 이슈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계없이 칸 위원장은 자신의 스타일대로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오바마 대통령 당시 제정된 위원회의 독점 금지 소송 제기와 불공정 행위 권한 집행에 제한을 둔 2015년 정책(2015 statement)을 폐기한 것이다. 소비자 이익을 우선시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FTC의 칼을 무디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던 이 정책 폐지를 통해 빅테크 규제 영역에서 좀 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한편 반독점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빅테크 기업을 향한 규제 움직임이 실제 효과를 발휘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020년 10월, 구글이 검색엔진 시장 지배력을 이용한 선탑재를 통해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했다고 제소된 바 있는데, 재판 기일이 2023년으로 정해져 결론이 단기간에 나기 어려워졌다.
강력한 규제가 유효 경쟁으로 연결되지 않아
빅테크 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업계에서는 부정적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동일한 사안에 대한 입장 번복은 시장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의 반독점 규제가 적극적으로 합병을 용인했던 오바마 전 행정부 시절과 상반된다는 지적과 함께 빅테크 기업의 독점적 지위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특히 현재 빅테크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이나 지위가 정당한 경쟁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이라면 오히려 이러한 규제 논의나 제도들이 기업의 혁신 인센티브를 억제하고 소비자 후생을 저해할 위험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 다수의 벤처캐피털(VC, Venture Capital)은 빅테크 기업을 향한 미국의 규제 움직임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빅테크 기업들의 스타트업 인수가 어려워지면 VC 역시 스타트업 투자를 망설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스타트업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기업공개(IPO, Initial Public Offering)보다는 빅테크 기업과의 M&A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빅테크 기업이 지역에 자리를 잡을 경우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시장에 기여하고 있는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용자 규모가 커질수록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소비자 후생이 올라갈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규모의 경제를 구축하는 것을 무조건 비판하기는 어렵다.
소비자뿐 아니라 노동자,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특정 기업의 비대화를 막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기업 분할과 같은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발간된 논문에서는 기업 분할이 지배력 남용의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Gilbert, 2021). 수직적으로 통합된 디지털 플랫폼이 자사의 상품을 우대하거나 경쟁사를 모방하려는 동인이 있으나, 구조 분리(structural separation)나 기능 분리(functional separation)가 해법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분리가 관리 측면에서의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고, 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규제 처방을 고려하고 복합적 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결과는 다른 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국제기구, 금융기관 등의 수석경제학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반독점 규제가 디지털 경제 내 시장 지배력 남용을 해결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응답한 전문가는 24명 중 두 명에 불과하다(이규환, 곽윤영, 2021).
글로벌 규제 정책의 무분별한 수입은 지양해야
미국과 결은 다르지만, IT 영역에서 글로벌 기업을 다수 보유한 중국 역시 최근 자국 기술 기업 옥죄기를 시작했다. 2021년 4월, 바이두, 징둥, 바이트댄스 등을 포함한 12개 IT 기업을 소환, ‘규정에 맞게 경영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았고, 알리바바에는 3조 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회원 100만 명 이상 인터넷 기업의 해외 상장에는 허가제를 도입했으며 플랫폼 기업에 경쟁 제한적 M&A 규정 적용을 확대하고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를 국가와 공유하도록 요구하는 등의 압박을 하고 있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 각지에서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 경쟁이 진행 중이다. 흥미롭게도 각국의 플랫폼 보유 현황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미국은 지배적 플랫폼(dominance platform)을 보유하고 있고 중국에서는 자급자족 플랫폼(a self-sufficient platform) 운영이 가능하며, 유럽연합에는 플랫폼 공백(platform gap)이 있다(Hermes, et al., 2020).
중요한 것은 국가마다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고 각 환경과 맥락에 맞는 규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미국에서 이런 논의가 있고, 유럽에서 이런 논의가 있으니 우리도 플랫폼 규제를 위해 이러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접근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한국적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로컬에서 잘하고 있는 플랫폼을 보유한 곳은 우리가 유일하다.
미국도 빅테크 기업의 규모가 크다고 무조건 규제하는 것이 아니다. 반독점적 행위가 시장의 공정한 경쟁 환경을 해쳤다는 판단이 있었다. 더불어 미국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 중 하나는 부처 간 업무 분장과 조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복규제와 기술적 전문성 부재에 대한 지적이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연합 모두 P2B(Platform to Business), P2C(Platform to Consumer) 규제를 한 부처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점, 해당 부처는 기존에 플랫폼에 대한 기술적, 전문적 규제를 담당해 온 곳이라는 점(김현수, 강인규, 2021) 등은 주목할 만하다.
규제기구의 경쟁 상대는 해외의 규제기구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해외의 규제 논의를 발 빠르게 수입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관련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속도보다는 방향과 철학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