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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리뷰] 북리뷰 《슈퍼팬의 시대》
미디어 리뷰 | 등록일 : 2025-09-26

 

《슈퍼팬의 시대》(저자: 한정훈) ⓒ페가수스

 

 

2023년 11월, K-POP 산업의 두 거장인 박진영 JYP CCO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K-POP의 현재를 진단하고 산업의 위기와 미래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방시혁 의장은 슈퍼팬에 집중돼 K-POP의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고 언급하며, 강렬한 팬덤(fandom) 소비에 라이트(light) 팬덤이 더해져야 시장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일견 팬덤 구조를 정확하게 진단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상황은 예기치 못하게 흘러갔다. K-POP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부정적 반응이 터져 나왔다. 콘서트 티켓 가격 자체가 비싸 라이트 팬이 접근하기엔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슈퍼팬이 K-POP 산업을 일군 핵심 동력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기술과 플랫폼 위에서 뛰노는 슈퍼팬


팬덤(fandom)은 특정 미디어 텍스트나 스타에 대한 애착과 충성심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 팬(fan)에 집단을 의미하는 접미사 덤(dom)이 더해진 말로, 인류 역사와 함께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포츠 선수에 대한 열광, 정치인에 대한 환호 등 애착과 충성심을 갖게 되는 대상이 비단 연예인만은 아니다.

 

최근 ‘팬’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소비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특히 K-POP 산업을 이끈 슈퍼팬은 아티스트와 콘텐츠를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새로운 집단이다. 가격보다 가치를 우선시하는 이들은 새롭게 이해해야 할 대상이다. 《슈퍼팬의 시대》의 저자 한정훈은 슈퍼팬을 팬덤의 핵심 집단으로 정의하고 앨범 구매, 굿즈 수집, 콘서트 관람, 소셜미디어 소통, 뉴스레터 구독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비에 참여하는 이들에 주목한다.

 

이들은 공동체 내에서 자발적으로 소비에 참여하며 창작, 전파 활동을 주도하는 핵심 팬덤 집단으로, 자발적인 지지자이자 후원자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이들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요약했다. △다채로운 채널과 포맷으로 ‘다층 소비’를 즐긴다는 점, △높은 감정적 몰입과 충성도를 보인다는 점, △커뮤니티를 통해 ‘함께 즐기는 경험’을 중시한다는 점, △자발적인 2차, 3차 창작 활동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점, △시간과 금전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특징을 이해한다면 슈퍼팬 생태계 구축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다.

 

《슈퍼팬의 시대》의 핵심 키워드는 슈퍼 팬덤이지만, 책의 모든 챕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기술’과 ‘플랫폼’이다. 기술과 플랫폼이 있기에 일반 소비자가 슈퍼팬으로 진화할 수 있다. 특히 엔터테크(entertainment+technology)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 AI를 비롯한 실감형 기술이 더해지면서 소비자들의 소비 경험과 맥락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팬덤을 발현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어야 슈퍼 팬덤이 완성될 수 있다. 결국, 기술과 플랫폼은 슈퍼팬을 위한 전제 요소인 셈이다.

 

엔터테크 산업에 관심을 두고 꾸준히 살펴온 저자의 성실함이 엿보이는 장면들도 많다. 디즈니, 소니, 메타, 알파벳, MS와 같은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미호요(miHoYo), DeNA, 라쿠텐(Rakuten), 사눅(Sanuk Games) 등 아시아 주요 기업의 기술과 콘텐츠 융합 시도도 소개하며 다양한 사례를 살펴볼 수 있게 도와준다. 특히 일반 팬을 슈퍼팬으로 만들기 위한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다양한 기술 투자와 플랫폼 구축 사례를 소개하며 슈퍼 팬덤을 구현할 수 있는 요소들이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음을 강조한다.

 

엔터테크는 콘텐츠의 제작·유통·소비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기술 전반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AI를 비롯해 VR·AR, VFX, 게임 엔진, 스트리밍, 메타버스, 블록체인 등을 포괄하는데, 각 기술은 콘텐츠의 몰입도, 접근성, 상호작용성을 높이며 팬과 창작자 간의 새로운 관계 형성을 가능하게 한다. 지난 9월, 서울특별시는 ‘엔터테크, 서울 2025’를 개최하고 서울이 글로벌 엔터테크 시장의 심장이 되겠다며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갤럭시코퍼레이션을 비롯해 스튜디오리얼라이브(Studio Realive)와 비마이프렌즈(bemyfriends), 덱스터스튜디오(Dexter studios), 팜피(Famppy), 기어이(GiiÖii) 등 엔터테크 기업들도 대거 참여해 사업 현황을 소개하고 비전을 공유했다. 어떻게 기술과 플랫폼을 통해 창작자와 슈퍼팬이 만날 수 있는지, 그 생태계를 이해할 수 있는 자리였다.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에서 출발하는 슈퍼 팬덤

 

《슈퍼팬의 시대》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을 꼽으라면 <오징어 게임>을 글로벌 슈퍼팬 문화와 연결해 해석한 대목이다. <오징어 게임>이 만든 여러 변화를 슈퍼팬 문화로 설명하며 미래형 엔터테인먼트 생태계 모델이라고 강조한다. ‘몰입’, ‘크리에이터’, ‘소비’, ‘교육’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는 이 문화는 우리 콘텐츠와 엔터테인먼트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이정표다. 저자는 이를 체험형 슈퍼 팬덤, 창작형 슈퍼 팬덤, 라이프스타일 슈퍼 팬덤, 학습형 슈퍼 팬덤으로 구분해 설명하고 있다.

 

콘텐츠를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기본적으로 무형의 상품을 판매한다. 이 상품은 문화적 정체성을 지닌 가치재이기도 하다. 동시에 경험재이기 때문에 특정 지역, 특정 소비자의 생애주기와 연동돼 그 가치가 증폭되기도 한다. 결국, 소비자들이 오랜 시간 문화 상품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소비자본을 축적한다면 충성도 높은 팬덤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슈퍼 팬덤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 설계다. 슈퍼팬의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한 다양한 가치 제공은 필수적이다. 슈퍼팬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정훈 대표의 책에는 숫자가 많아서 좋다. 콘텐츠의 효과와 산업의 크기를 다양한 지표를 통해 해석하고 설명한다.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보고서의 수치를 인용하며 트렌드를 한발 앞서 전하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같은 숫자를 다르게 해석하기도 하고, 때로는 숫자의 이면에 있는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 그 역시 이 업(業)의 슈퍼팬이라 생각하는 이유다.

 

책을 관통하는 여러 키워드는 미디어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9월 진행된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글로벌 미디어 컨퍼런스의 여러 세션 가운데 박장희 중앙일보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신문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 혁신 그리고 미래’ 세션에서는 저널리즘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브랜드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얼 윌킨슨(Earl Wilkinson) INMA CEO와 후안 세뇨르(Juan Señor) 이노베이션 미디어 컨설팅 대표가 대담자로 나섰다. 두 패널이 그동안 강조해 온 키워드로 저널리즘과 브랜드를 꼽았고, 각각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저널리즘의 가치 실현이나 방법은 차치하고, 두 대담자는 미디어 기업 역시 브랜드 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사의 브랜드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독자와 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상적인 점은 “독자가 브랜드를 정의한다”라고 언급한 대목이다. 독자를 이해하기 위한 회사의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궁극적으로 이들이 자사의 슈퍼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기업이 슈퍼 팬덤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브랜드 구축과 신뢰 확보가 필수적이다. 미디어 기업의 슈퍼팬은 아티스트보다는 브랜드와 채널 정체성에 더 몰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랜딩 관점에서 자사의 역량을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으며, 고객에 대한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미디어 기업은 생산자 중심의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미디어 사업 환경이 더욱 열악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자들은, 자사의 고객과 팬, 그리고 이들이 슈퍼팬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대로 구축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할 시점이다. 이때 앞서 언급한 슈퍼팬 생태계 구축 점검표가 필요하다. 소비자로부터 ‘얼마나 사랑받느냐’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미디어 기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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