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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5일, 경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는 유력한 두 대선 후보의 경제 정책 심층 인터뷰를 공개했다. 그 파급력은 대단했고, 또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뉴미디어의 영향력이 한층 확대되는 가운데 이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편집자 주
“팟캐스트는 여전히 여당(더불어민주당)이 우위거든요? 근데 왜 유튜브는 어르신들이 많이 보고 우파 지향적이냐면, 유튜브는 그걸 보면서 다른 걸 할 수 없어요. 시간이 많아야 돼. 그런데 30~40대 이른바 젊은 사람들은 한창 일할 때이기 때문에 들으면서 일할 수 있지만 보면서는 일할 수 없어요.”
지난 2019년 1월 tvN 시사 예능 <상암타임즈>1회에 패널로 출연한 정영진 시사평론가는 당시 홍준표 의원의 ‘홍카콜라’ 채널을 비롯한 보수 성향 콘텐츠가 당대의 뉴미디어인 유튜브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꽤 타당한 그의 추론은 재밌게도 약 3년이 지난 2021년 겨울 그 자신이 속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반박된다.
짧지만 강력했던 삼프로TV 영향력
지난해 12월 25일, 정영진과 이진우 경제 전문기자, 김동환 주식 전문가가 진행하는 경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는 유력한 두 대선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각각 진행한 경제 정책 심층 인터뷰를 공개했다. 단순히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답변의 논리적 허점이나 설명이 부족한 부분을 재차 지적하고 질문하는 압박 인터뷰를 통해 대선 후보들의 경제관과 역량을 구체적으로 살폈다.
두 인터뷰는 3일 만에 각각 274만(이재명), 175만(윤석열)의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단순히 조회수만 높게 나온 건 아니었다. 당시 윤석열 후보의 인터뷰 내용은 이재명 후보 측과의 상대평가에서도, 한 명의 대선후보로서의 절대평가에서도 상당히 낮은 평가를 받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경제 정책에 동의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를 떠나 그 정책과 관점이 너무나 저해상도라는 게 문제였다. 방송 이후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이 유의미하게 하락할 정도로 <삼프로TV> 대선주자 특집의 파괴력은 굉장했고, 구독자들은 “<삼프로TV>가 나라를 구했다”고 추켜세웠다. 신문과 지상파 방송에서 할 수 없던 걸 유튜브 채널이 해냈다는 반응도 많았다. 정영진 본인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1시간 30분짜리 긴 영상을 만들었는데, 그걸 보는 20~40대 구독자들이 주축이 돼 비판적 여론을 형성했고, 이는 보수파 후보에 타격을 입혔고, 여당 후보의 지지세에 도움을 줬다. 그렇다면 3년 전 정영진의 분석은 틀린 걸까.
아마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라는 것이 답에 가까울 것이다. 즉 시차를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번 글의 중요한 접근 방식이기도 하다. 나는 지난 1월 14일, 뉴미디어의 레거시 미디어 대체 현상에 대해 ‘삼프로TV 현상이 말하는 것’이란 주제로 이 지면 원고를 청탁받았고 흔쾌히 승낙했다. 윤석열 후보 측의 지지율이 다시 회복 중이었지만 어떤 의미로든 <삼프로TV>의 효과와 순기능은 명백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고 작성일 기준으로 한 달여가 지났다(당연히 게재일은 더 늦을 것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젠 누구도 <삼프로TV> 대선 특집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윤석열 후보는 1월 초부터 본인 페이스북을 통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단 일곱 글자를 올리며 페미니즘에 반감을 지닌 20~30대 남성 유권자들에게 적극적인 구애 제스처를 보였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SNS에 올린 ‘멸공’ 타령에 기대 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사며 ‘멸콩’을 연상시키는 퍼포먼스를 했다. 여성혐오 담론과 철 지난 반공주의 담론을 끌어오는 것에 대한 도덕적 비판이, 내적 정합성을 지닌 정치적 담론 대신 일곱 글자 단문 메시지와 멸치와 콩을 이용한 언어유희나 내놓는 무책임함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논란 자체가 <삼프로TV>에서 보여준 이미지를 덮었고 윤석열 후보는 지지율을 상당히 회복했다. 그리고 1월 16일, 윤석열 후보의 아내 김건희 씨와 서울의 소리 기자 통화 녹음 내용을 담은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가 방영됐다. MBC에서 어떤 반응을 기대했는지는 모르지만, 윤석열 후보 측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특별히 강화되기보다는 오히려 김건희 씨의 화법이 시원스럽다며 추켜세우는 이들과 생각만큼 강한 타격을 주지 못했다며 실망한 여당 지지자들의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 더 나아가 실은 윤석열 후보가 문재인 정권에 충성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아전인수적인 해석까지 나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삼프로TV>의 성취는 놀라울 정도로 잊혔다.
삼프로TV 현상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다. ‘<삼프로TV>가 어떻게 성공적일 수 있었느냐’ 하는 고정된 시점(時點)을 상정한 질문은, 이제 ‘각 시점마다 <삼프로TV>는 어떤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느냐’로 전환돼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벌어진 사건과 여론의 변화를 보지 못하고 한 달 전에 <삼프로TV>를 상찬하는 원고를 썼다면 한 달 만에 틀렸다고 판명됐을 것이다. 그에 비해 정영진은 3년이나 걸렸으니 ‘거의’ 옳았던 셈이다. 결국 틀렸지만. 그렇기에 시차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언젠가는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겠지만, 적어도 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는지 변화의 맥락을 되짚는 과정에서 좀 더 통합적 진실이 재구성될 수 있도록.
‘강한 저널리즘’에 대한 향수 또는 공적 담론
<삼프로TV>가 영상을 공개한 직후 반응이 뜨거웠던 시점에선 인기 경제 유튜브 채널의 영향력과 기존 TV 토론 형식에선 기대할 수 없는 심층적 검증이 뉴미디어 형식 안에서 구현될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삼프로TV>를 통해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뉴미디어로의 완벽한 시대적 전환을, 누군가는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준비된 우월함을, 누군가는 여전히 유효한 전통 저널리즘의 힘을 읽어냈지만 세 가지 해석 모두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기각당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삼프로TV>가 나라를 구했다’는 구호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의 헤게모니를 강화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 측면이 있다. 만약 그것이 심층적 차원에서 인물에 대한 평가를 바꿨다면 위에서 인용한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도 <삼프로TV>의 기억은 여전히 비가역적인 위력을 발휘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삼프로TV 현상은 차라리 정세를 뒤바꿀 수도 있는 강한 저널리즘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잠시나마’ 가능했는가.
앞서도 인용한 김건희 씨에 대한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의 보도엔 그런 야심과 향수가 있어 보였다. 인터넷 매체인 서울의소리 이 모 기자와 김건희 씨의 통화 녹음 내용을 공개한 해당 방송에선 김건희 씨가 미투 운동을 폄하하고 대화 중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발언을 한 것, 농담이든 진담이든 해당 기자를 남편 대선 캠프로 회유하려 한 것들이 육성으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본방사수’까지 외치던 여당 측 기대만큼의 효과가 없기도 했지만, 해당 보도는 인터넷 대안 매체에서 얻은 취재 소스를 그대로 가져다 틀고 시청자가 알아서 판단하길 요청할 뿐, 그 말들이 실천적 맥락에서 어떤 공적 불의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실질적 취재나 비판적 관점을 제공하진 않았다. 해당 보도에서의 김건희 씨 발언들이 문제적이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중요한 건 그것이 시청자의 정파적 입장이나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공적 이슈라는 공통의 지평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그러한 공적 담론을 구성하는 데 실패했다.
반면 <삼프로TV>는 자본주의 하에서의 주식 시장, 부동산 시장, 코인이라는 현재 가장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진 자산 이슈로 일종의 공통 지평을 형성한 뒤 그 지평 안에서의 유능과 무능에 대한 심층 면접을 제공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유권자들이 원하는 건 실용주의라는 것이 아니다. 오직 자산 시장에 대한 유불리만이 실용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자산을 얼마나 잘 굴리는지가 유능이자 덕성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맥락 위에서만 <삼프로TV>가 유권자 전반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공통으로 공유하는 맥락이란 이미 공기 같은 것이기에, 대중 상당수는 <삼프로TV>의 철저히 자산 중심적 세계관으로부터 보편적 수준의 타당성과 합리성을 읽어낸 것에 가깝다. 혹은 포장한 것에 가깝다. 결국 <삼프로TV> 현상은 형식상의 치열함과 내용의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이고 규범적인 수준에서 대선 후보에 대한 담론을 구성했다기보다는 결국 시청자 개개인의 유불리에 대한 감각을 좀 더 섬세하게 일깨운 것에 가깝다. 그것이 잘못도 아니며, 성취가 아닌 것도 아니지만 그것은 또 다른 유불리에 대한 감각을 통해 잊히거나 대체되기 마련이다. 겨우 한 달 동안 벌어진 대선 주자들을 둘러싼 여론 지형의 변화가 그러하듯 말이다.
삼프로TV 현상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
글 서두에 인용한 정영진의 코멘트는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 한번 되짚어 볼 만하다. 그의 분석은 적어도 당시에는 실증적으로도 옳은 듯했고, 논리적으로도 정합적이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나며 시간 여유가 부족한 30~40대를 포함해 거의 모든 세대가 유튜브를 시청하며 여당 지지층에서도 보수 채널 못지않게 선정적이고 과격한 콘텐츠를 운영하고 있다. 레거시 미디어의 시대가 가고 뉴미디어가 헤게모니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뒤엉킨 헤게모니들이 그때그때 손에 쥐기 좋은 도구(현재는 유튜브)를 사용해 불연속적으로 득세하거나 대립하는 시대, 혹은 대립을 통해서만 득세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레거시 미디어인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방송을 앞두고 방송 가처분 금지 신청을 하던 야당도, ‘본방 사수’ 운운하던 여당도, 뭔가를 기대하며 방송을 본 상당수 대중도 실은 그러한 관점에서 미디어를 대했다. 사회적으로 공유한다고 믿었던 저널리즘의 가치는 이제 어디서 그 신뢰의 자원을 끌어올 수 있을까.
여기서 다시 시차적 관점이 필요하다. 한 달 전 삼프로TV 현상에 대한 나의 희망적 사고는 상당 부분 무너졌지만, 또한 그만큼 현재의 우울한 결론도 확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미래의 어떤 시점에 다시 이 시기를 바라보며 긍정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은 없을까. 그건 결국 이 현상으로부터 무엇을 배워 미래를 능동적으로 만들어내느냐에 달린 문제다. 삼프로TV 현상은 적어도 두 가지 긍정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첫째, 충분히 공유된 공통의 맥락을 지니고 있을 때 콘텐츠의 폭발력과 확장성은 정파적 갈등을 뛰어넘을 수 있다. 둘째, 그것이 비록 착시였다 해도 불편부당한 관점으로 권력을 검증하는 강한 저널리즘에 대한 향수나 낭만이 여전히 존재한다. 즉 당위에 대한 순진한 믿음에 기댄 보도가 아닌, 그 당위 판단을 위한 화용론적 맥락을 새롭게 구성하는 저널리즘, 그렇게 구성한 맥락 위에서 전문적 권위를 확보해 디테일하게 사회를 해부할 수 있는 저널리즘을 구상해볼 수 있다. 신뢰의 자원은 도래할 미래의 이상적 상으로부터도 끌어올 수 있다.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 중 누가 헤게모니를 쥘 것이냐가 아닌, 현재적 평가와 미래에 대한 유보 사이에서 새 시대 저널리즘의 헤게모니를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짧았던 삼프로TV 현상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닐까.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 중 누가 먼저 그 길을 우리 앞에 펼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