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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시장이 확장되면서 미디어 산업 분야는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가운데 올 한 해 국내 미디어 산업에서는 어떤 현상이 두드러졌을까. 2022년을 결산하고 2023년을 전망해 본다. 편집자 주
2022년은 국내 미디어 산업에서 사업자들 간 시간과 공간의 경쟁이 가속화된 시점이다. 시간적으로는 기존 미디어와 디지털 플랫폼, 공간적으로는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 간에 치열한 경쟁이 전개됐다. 다시 말해, 시간적 차원에서 살펴보면 지상파 방송사나 유료방송 플랫폼, 채널 사업자 등 레거시 미디어들과 국내외 새로운 디지털 및 모바일 플랫폼이 치열하게 경쟁해왔다. 공간적 차원에서는 국내 플랫폼이나 콘텐츠 기업들이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또는 OTT 사업자들과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구조가 가시화됐다. 시간과 공간 차원에서 기술과 시장의 통합과 분절이 계속 이뤄지면서 점차 국내 미디어 산업은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이 같은 트렌드는 새로운 기술과 시장, 이용자 취향을 통합하는 사업자가 미디어와 콘텐츠 시장을 독과점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쉽게 말해 가장 인기 높은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투자·제작할 수 있는 사업자만이 생존하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미디어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콘텐츠 제작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이는 스타급 출연자나 제작진들을 필요로 하는 사업자의 비용 부담과 직접적으로 연계된다. 미디어 시장이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막대한 제작비를 충당하고 버틸 수 있는 사업자는 독과점 사업자가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어려운 구조다.
아직까지는 레거시 미디어 사업자들도 최근 광고 매출 회복이나 사업다각화 등을 통해 나름대로 수익률이나 매출 하락률을 방어하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기술에 의존하는 취향 기반 콘텐츠 산업 중심으로 미디어 시장이 바뀌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용자들은 개인 취향에 의해 형성된 알고리즘에 따라 콘텐츠에 몰입한다. 뉴스를 포함해 다양한 영상 콘텐츠 소비가 이 지점에서 나타난다. 게다가 글로벌 수준에서 인기가 높은 미디어 콘텐츠들의 제작이나 유통은 대체로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이 투자하고 영향력을 미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과거와는 다르게 지형이 바뀐 미디어 시장 환경은 2022년 국내 미디어 시장에도 그대로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국내 미디어 산업에서는 이미 디지털 플랫폼이나 글로벌 플랫폼으로 주도권이 옮겨 가고 있다. 특히 틈새 콘텐츠 시장의 핵심은 유튜브 플랫폼으로, 프리미엄 콘텐츠는 넷플릭스로 이동했다. 반면에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 점차 편입되고 있는 국내 미디어 산업은 새로운 혁신이나 성장보다는 기존 시장을 지키거나 콘텐츠와 플랫폼의 가치를 환원받으려는 노력이 더 우세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2022년 국내 미디어 산업은 국내-글로벌 사업자 간 경쟁 심화, 디지털-기존 플랫폼 간 협력 또는 경쟁의 이중성, 콘텐츠-플랫폼 사업자들 간 갈등이 심화된 한 해로 기록될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이용자 시장이 급격히 늘어나지 않는 제로섬 기반의 국내 미디어 시장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새로운 또는 글로벌 미디어나 콘텐츠 시장을 창출하지 못하고 기존 국내 이용자들을 놓고 신구 사업자와 국내 및 글로벌 사업자, 그리고 콘텐츠와 플랫폼 사업자들이 계속적으로 경쟁해온 결과다. 그 결과, 지배적인 사업자가 시장을 이끌고 나가기보다는 콘텐츠에 대한 권리 대가 산정이나 거래 관련해 사업자 간 갈등이 더 심화됐다. 이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국내 및 글로벌 미디어 사업자 간 경쟁 심화
최근 한국 미디어 산업 지형을 가장 근본적으로 바꾼 요인 중의 하나는 글로벌 OTT 사업자들이다. 구글의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OTT 서비스는 국내 미디어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서비스로 성장했다. 유튜브는 일반 이용자 취향 기반 콘텐츠, 넷플릭스는 영화와 드라마 등 프리미엄 콘텐츠 시장에서 국내 플랫폼과 콘텐츠 시장을 지배하는 단계까지 점유율을 높여왔다. 이들 사업자는 글로벌 사업자라는 점, 그리고 막대한 콘텐츠의 공급 및 유통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 결과 국내 미디어 기업들이 수성해왔던 미디어 생태계 구성에 점차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국내외 OTT 사업자들의 시장 확대 전략은 국내 방송·영상 콘텐츠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다. 국내외 OTT 사업자들은 거세진 플랫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과도할 정도로 콘텐츠 투자를 실행해왔다. 그 결과 플랫폼 사업자들과 콘텐츠 사업자들의 성과는 대조적이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콘텐츠 제작 및 구매 투자로 인해 비용 부담이 높아진 반면 콘텐츠 사업자들은 제작비 조달이나 제작 기회가 많아졌다. 반면 국내 콘텐츠 사업자들은 독자적인 IP를 확보하지 못한 채 글로벌 OTT 사업자들의 제작 하청 의존이 높아지는 추세가 나타나기도 하고 있다.
그 결과는 이중적이다. OTT 플랫폼에서 높은 제작 수준으로 만들어진 K-콘텐츠가 계속 출시되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확보한 성과 대부분은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이 독점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글로벌 OTT 플랫폼들이 플랫폼을 차별화하기 위해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콘텐츠 사업자에게는 긍정적이다. 채널이나 콘텐츠 사업자들에게는 제작비를 늘리고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는 시장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반면에 특정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다면 그 추가 수익의 대부분은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이 차지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국내 콘텐츠 사업자들은 콘텐츠 제작 능력에 비해 추가적인 IP 수익을 늘리는 데 한계를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 플랫폼과 기존 플랫폼 간 경쟁과 협력의 이중 구조
두 번째 특징은 온라인 기반 디지털 플랫폼과 기존 미디어 플랫폼 간 경쟁이 더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플랫폼은 광고비 효율성 측면에서 이점이 있다. 이용자 정보 식별이 가능하고 타깃 마케팅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 레거시 미디어에 비해 투입 광고비 대비 효율성이 높다. 게다가 이용자들 대다수가 모바일이나 OTT 등으로 핵심 플랫폼을 바꾼 것도 기존 플랫폼과 새로운 플랫폼 간 경쟁을 가속하는 요인이다. 연령별 차이는 있지만 뉴스나 정보 이용, 그리고 영상 콘텐츠 등 대부분의 콘텐츠 이용 플랫폼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중심축이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미디어 광고비 대부분이 지상파 방송이나 유료방송 채널에서 디지털 플랫폼으로 이동하게 됐다.
다만 특이한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플랫폼으로 대거 이동했던 미디어 광고비가 최근 다시 지상파 방송이나 유료방송 채널 사업자 등으로 일부 되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플랫폼이 완벽하게 기존의 레거시 미디어들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2022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지상파 방송이나 유료방송 플랫폼을 통한 채널 사업자들의 광고 매출이 소폭 회복되거나 유지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일시적이기는 하겠지만 기존 미디어 플랫폼과 온라인 기반 디지털 플랫폼 간의 극심한 대립이 나름대로 공존의 단계로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치열하게 경쟁했던 이들 디지털과 레거시 플랫폼 간의 경쟁은 서로 분쟁과 협력이 공존하는 공간에 포함돼 있다. 가령, 지상파 방송 등의 재송신료와 같이 지상파 방송 저작권 가격에 대해 유료방송 플랫폼 사이에 대가 분쟁이 촉발되기도 했지만 OTT 시장에서는 경쟁 기업들 간에 콘텐츠와 플랫폼을 서로 연계하는 전략적 협력이 나타나기도 했다. 게다가 네이버·카카오와 같은 국내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다른 엔터테인먼트 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새로운 콘텐츠 시장을 창출하고 해외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콘텐츠와 플랫폼 사업자 간 갈등의 심화
시공간적으로 사업자들의 사업 영역이 확대되고 경쟁 정도가 높아지면서 사업자들 간 갈등이나 대립 역시 심화되는 특성이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서로 다른 미디어 플랫폼들 간에 매출 의존이 심화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필자는 한 세미나에서 국내 미디어 산업의 구조를 ‘꼬인 실타래 산업’으로 규정한 적이 있다. 그만큼 서로 다른 사업자들이 상호간 매출이나 수익을 의존하는 정도가 심화되고 있다. 타 사업자 매출 의존 현상은 사업자 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신규 시장을 만드는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미디어 산업 분야는 사업자 간 갈등보다는 협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시장 개척과 혁신 도입을 병행해야 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
콘텐츠와 플랫폼 사업자들 간에는 다양한 갈등이 존재하며 2022년에 이 같은 갈등들이 공개적이고 강력한 방식으로 표출됐다. 우선,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간 대가 산정에 대한 갈등이 있다. 콘텐츠의 가격이나 대가는 시장 협상 가격으로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국내 미디어 시장 규제나 경쟁 구조를 감안해본다면 플랫폼이 콘텐츠 사업자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채널이나 콘텐츠 가격을 플랫폼 사업자들과 협상할 때 협상력이 낮은 사업자들은 특히나 충분하게 대가 산정을 받기 어려운 구조다. 이는 이용자 요금 인상이나 협상의 방식 등을 근본적으로 변경하는 등의 선행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상파 방송 콘텐츠 재송신 요금의 경우는 이와는 다른 사례다. 채널이나 콘텐츠 사업자들이 자신들의 콘텐츠 대가를 높이는 일이 쉽지 않게 되면서 오히려 이들 사업자는 세제 혜택 등과 같은 정부 지원 인센티브 제도를 개선하는 방향에 더 집중하고 있다.
한편,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와 국내 ISP 사업자들 간에도 망 이용에 따른 대가 산정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 국내 ISP 사업자들과 해외 글로벌 OTT 사업자들 간에 국내 사업자가 운영하는 망 이용 대가에 대한 논의가 쟁점화됐다. 구체적으로는 글로벌 사업자들이 국내 시장에 진입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면서 트래픽 발생이 많아지고 이에 따른 비용 분담이나 국내 사업자와의 형평성 원칙이 구체화된 것이다.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와 ISP 사업자들 간 갈등은 온라인 여론전으로도 확대되고 있으며 법원에서도 계속적으로 대가 산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사업 다각화와 콘텐츠 투자 증가 추세
그동안 국내 미디어 기업들은 혁신이나 신규 서비스 개발보다는 기존 자산이나 IP 가치를 높이는 부분에만 집중하는 수세적 전략을 많이 써왔다. 이 같은 전략은 미디어 기업들 간 갈등을 높이고 비용을 유발하기만 할 뿐 국내 미디어 시장을 성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새로운 판을 짜려는 노력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2022년에는 새로운 미디어 시장의 성장을 위한 미디어 기업들의 노력이 적지 않았다.
특히 최근 여러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빅데이터와 AI, 메타버스 등과 같이 새로운 테크놀로지 기반의 플랫폼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미래 미디어와 콘텐츠 시장을 이끌어갈 수 있는 동력을 기술로부터 모색한 것이다. 아쉽지만 아직까지 기술 부분 투자나 노력의 성과는 크지 않아 보인다. 이들 기술이 일상화돼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기술 투자는 미디어 기업들에게 중요한 차별적 자산이 될 것이다.
반면에 새로운 시장의 수요는 기술 중심보다는 콘텐츠 투자로부터 나타나고 있다. 우선,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미국 웹툰 플랫폼 타파스미디어(Tapas Media) 등을 합병했다. 네이버 역시 왓패드(Wattpad) 등 국내외 웹툰 및 웹소설 기업들을 인수해 글로벌 콘텐츠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CJ ENM은 글로벌 스튜디오 사업자인 피프스시즌(Fifth Season)을 인수했다. 국내 통신사와 OTT 기업들도 콘텐츠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다. KT스튜디오지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메가 성공 사례를 기록했다. 이 같은 성과는 다른 통신사들로 하여금 다시 한번 콘텐츠 투자를 활성화하는 기반이 됐다. 국내 OTT 플랫폼들도 글로벌 OTT와 경쟁하기 위해 콘텐츠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다. 그러나 콘텐츠 제작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국내 시장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의 시장 진입으로 인해 점차 수익성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미디어 플랫폼 기업 간에 서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차 기업 결합이 늘어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미 KT가 운영했던 OTT 서비스 플랫폼 시즌(seezn)은 CJ 계열 티빙으로 합병됐다. 그럼에도 티빙이나 웨이브와 같이 국내 OTT 플랫폼들은 지속 가능한 방식의 프리미엄 콘텐츠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로벌 OTT 플랫폼 기업들과 직접 경쟁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국내 인터넷 기업들의 글로벌 웹툰이나 웹소설 콘텐츠 투자는 새로운 IP 확장 서비스 모델로 시장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게다가 통신사들 역시 기존 미디어 기업들과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콘텐츠 투자에 집중하면서 앞으로의 미디어 시장은 다양한 콘텐츠를 누가 완성도 있게 공급하는가에 따라 그 중심 구조가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