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재난·재해와 참사 등을 다루는 해외 언론의 시각은 우리보다 깊이 있고 분석적이라는 통념이 있다. 과연 그들의 보도는 한국에 비해 우수한 것일까. 서구의 재난·재해 보도 방식과 사례를 살펴보고 우리 언론의 나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해본다. 편집자 주
외국에서 10년 넘게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가르치다 귀국한 나에게 요즘 가장 당혹스러운 질문은 “국내 언론은 왜 서구 외신 같은 우수한 보도를 하지 못했느냐”였다. 좌, 우를 막론하고 상당수의 논객들이 이태원 참사 뒤 영미권 외신의 우수 사례를 언급하며 국내 언론을 비판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한국의 외신 사대주의가 불편한 가장 큰 이유는 그런 시각의 몰역사성 때문이다. BBC 등 영미권 외신의 성장은 100년 넘게 축적된 저널리즘 역사, 문화, 정책, 우편망과 통신망 발달 같은 물적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구 언론 역시 수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발전했고, 이는 한국 언론의 다양한 노력과 시도, 윤리적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적 참사 보도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서구 외신의 사례, 그리고 관련 연구가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실질적인 효용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로 재난·재해 보도 관련 ‘제안’이라기보다는 몇 가지 고민을 공유하며 보도 개선 방향에 대한 글을 시작하고 싶다.
지역별, 매체별 장점을 살린 언론의 역할 분담이 가능할까?
미국의 저널리즘 교육자이자 전직 언론인인 샤리 베일(Shari Veil)1)은 재난 보도에서 언론의 역할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 자원 확보와 배치, 어디서 도움을 얻을 수 있는지 논하는 ‘자원 매니저(resource manager).’ 두 번째, 공공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공공안전 당국자(public safety official).’ 세 번째, 약자와 소수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공익 옹호/변호인(public advocate).’ 네 번째, 공동체 차원의 치유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감정 지원자(emotional support).’ 다섯 번째, 정책 조정과 리더십 등의 변화를 강조하는 정책적 ‘촉매(catalyst)’ 역할. 이 목록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재난·재해 보도의 대표격인 현상 자체에 대한 보도는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는 반면, 오히려 예방과 치유 등 통상 정부와 의료진, 사법시스템의 몫이라고 생각하던 부분마저도 언론의 역할이라고 명시한 것이다.
실제로 외신의 재난 보도는 권역별, 지역별 역할 분담이 일반적이다. 재난에 직접 영향을 받은 지역 언론의 경우 어디서 도움을 얻을 수 있는지 같은 실용적인 정보에서부터 희생자들의 가족 이야기, 친구 이야기 등 공동체 차원의 추모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반면 규모가 큰 주 단위, 혹은 전국 단위의 언론은 ‘왜’에 초점을 맞춘 분석 기사, 기획 기사 등에 강점을 보인다. 물론 이 공식이 엄격히 적용되지는 않는다. 17명이 사망한 플로리다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보도로 2019년 퓰리처상 공익 보도 부문을 수상한 사우스플로리다선센티넬(South Florida Sun-Sentinel)은 ‘왜’에 집요하게 천착해 학교와 지역사회, 공권력이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는 분석, 기획 기사로 기라성 같은 전국지들보다 우월한 보도를 했다는 칭송을 받았다.2)
미국 언론 중에서도 최고의 자원을 보유한 뉴욕타임스는 대형 재난·재해 관련 기사뿐만 아니라 시각물 등을 통한 멀티미디어 보도, 데이터 저널리즘 보도에서도 독보적이다. 10년 전 인터랙티브 데이터 저널리즘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스노우폴(Snowfall)> 역시 눈사태라는 자연재해를 소재로 한 것이었다.3) 오늘날에도 뉴욕타임스는 한파나 태풍 등 날씨에 관심이 집중되는 시기에 특별히 노력을 기울인다. 최고의 자원을 보유하며 보도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기린아’에 걸맞는 혁신이다.
앞서 언급한 재난 보도에서의 언론 역할 목록으로 다시 돌아가 생각해보자. 한국에서는 무엇이 가능할까? 일단 눈에 띄는 것은 지역 언론의 역할이다. 척박한 지역 언론의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지역 언론이 중심이 돼 치유와 재건에 앞서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희망일까. 영리 매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한 지역의 공영 방송사들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을까?
복잡성과 내러티브: 더 나은 스토리텔링이 답일까?
영미권 재난·재해 보도에서 눈에 띄는 것이 스토리텔링의 우수함이다. 내러티브 저널리즘은 역삼각형이나 시간 순서대로 쓰는 기사가 아니라, 플롯이 있고, 주인공과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조된다. 통상 개인의 일화로 시작되는 게 퓰리처상을 타는 기사의 공식이 될 정도로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우수함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가독력과 흡입력 있는 내러티브 저널리즘은 한국에서도 적극적으로 시도되고 있고, 이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
하지만 내러티브 저널리즘이 재난·재해 보도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보다 매력적인 스토리 구성을 위해 플롯을 단순화할 수도 있고, 특정 인물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도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내러티브의 ‘힘’ 자체, 즉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효과가 너무 강력하다 보니, 역설적으로 기사에 보도되지 않은 스토리와 인물들은 더욱더 뒤로 감춰지고, 그 결과 소수 견해나 사건의 복잡성이 억제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언론의 경우 복잡한 사안일수록 내러티브 저널리즘보다는 분석과 토론 기사가 눈에 띈다. 복잡함을 단순화하는 게 아니라, 사안의 다양한 면과 정책상 결함을 면밀히 분석하며, 동시에 토론의 장에 시민사회를 초대하는 식이다.4) 이는 이런 보도를 종종 하는 르몽드(Le Monde) 등의 엘리트 언론 전통과도 연결돼 있어, 한국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형 재난·재해가 불가피하게 복잡함을 수반하고,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전달하는 게 언론의 중요한 과제라면, 이를 쉽게 단순화하지 않는 프랑스의 언론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사진과 이미지: 우리는 폭력과 죽음을 직시할 수 있을까?
이태원 참사 보도에서 국내 언론과 외신의 보도 차이가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 사진과 동영상 등 시각물 관련 보도다. 초기 보도에서 모자이크 처리한 사진을 쓴 언론사조차 많은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이태원 참사 유족 일부가 신상을 공개하며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들고 있는 희생자의 영정사진조차 방송에서 모자이크 처리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기자회견 의도와 정반대의 보도를 한 셈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외신의 경우 모자이크 안 한 시신 사진을 쓴 곳도 있다. 보도가 이렇게 다르게 나온 배경에는 법과 제도상 차이도 크게 작용한다. 한국의 경우 초상권과 관련한 잇따른 소송과 언론중재위원회 결정으로 조금이라도 논란이 될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미국 쪽은 초상권 보호에 훨씬 느슨한 편이기 때문이다.
통상 영미권 언론에서는 통신사 사진 등을 쓸 경우 편집인이나 개별 언론에 재량권이 많이 주어진다. 20세기 후반 영국과 미국의 주요 언론사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해럴드 에반스(Harold Evans)는 폭력이나 죽음 등을 담은 사진을 쓸 때 네 가지 부분을 점검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5) △시각적 충격이 정당화될 사회적, 역사적 의의를 담고 있나? △불편한 시각적 디테일이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가? △피사체가 사진 취재에 동의하는가? △사진에 휴머니티가 담겨있는가?
2009년 탈레반 공격을 받고 전투에서 부상당한 조슈아 베르나르(Joshua Bernard) 일병이 죽어가는 사진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AP통신은 당시 21살의 어린 일병이 목숨을 잃는 사진을 찍은 뒤 장례식 일정 등을 감안해 엠바고를 걸어서 회원사에게 내보냈다. 그러나 일병의 아버지가 아들의 죽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기 싫다고 보도하지 않을 것을 요청했고, 오바마 정부 당시 게이츠 국방장관이 AP통신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철회를 요청했다. 하지만 AP통신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 젊은이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어가는 모습도 역사의 일부이고, 이를 보여줘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6)
미국 브라운대 시각문화학자 아리엘라 아줄라이(Ariella Azoulay)는 사진을 찍는 것을 허용하고 이를 촬영, 배포하는 행위 자체가 피사체와의 사회적 계약이며, 이 계약을 통해 저항하거나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정치적 권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한다.7) 독자, 취재원과 머리를 맞대고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논의하고 성찰하는 이런 기회를 한국 사회는 제대로 갖지 못했다.
감정과 치유, ‘바람이 불 공간’을 인정하는 언론이 될 수 있을까?
언론을 통해 본 한국의 재난 보도는 서구보다 더 감정적이다. 서구 언론의 객관주의 전통에 입각해 본다면 분노나 공포 등의 감정 유발은 자제돼야 하는 게 맞다. 이에 언론인들은 재난·재해 상황에서 자신들의 감정이 아니라 취재원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식으로 감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보도 양식을 종종 선택한다.
하지만 영국 카디프대의 저널리즘 학자 카린 발-조르겐슨(Karin Wahl-Jorgensen)은 저널리즘에서 감정의 역할과 존재를 직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뭇 통념에 반하는 견해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는 이미 언론에서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를 부인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언론 보도는 독자의 공감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이미 중요한 목적이라고 지적한다.8) 애도와 추모의 감정 역시 매우 중요하다. 9·11 테러 이후 시작된 미국 언론의 추모와 애도는 20년이 넘은 오늘날에도 꾸준하고 강력하게 매년 이어지고 있다. 2022년에도 미국의 주요 방송국은 한두 개 아이템이 아닌 심층 특집 기사를 여럿 편성하는 특집을 정규 뉴스 시간에 편성하며 전통을 이어갔다.
“절대 잊지 않겠다(Never forget)”는 슬픔의 힘을 변화로 바꾸겠다는 9·11 테러 보도의 구호가 됐다.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가 있고, 침묵하고 보도하지 않는 것이 옳을 때가 있다. 페르시아 시인 루미(Jall ad-Dn Muhammad Rm)는 “타인과 함께 있을 때도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를 수 있는 공간”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참사 현장에 취재를 간 기자, 충격에 인터뷰할 준비가 되지 않은 목격자와 슬픔에 압도된 유족을 취재해야 하는 기자가 해야 하는 일은 질문이 아니라 ‘바람이 불 공간’을 확보해 주며 치유를 돕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컬럼비아 저널리즘 스쿨에서는 “유족이 인터뷰 장소와 시간 등을 정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라”고 가르친다.9) 어디에 앉는지 정하는 것 하나가 다시 인생을 부여잡고 치유하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반성을 넘어 한국형 재난 보도로
21세기 들어 미국 언론의 최악 재난 보도 사례로 2005년 미국 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Hurricane Katrina)가 꼽힌다. 기록적인 폭우로 뉴올리언스의 물난리가 이어졌고 정부의 재난 관리 시스템 붕괴로 총 2,000여 명이 사망했는데, 이중 다수가 홍수에 취약한 저지대에 사는 가난한 유색인종이었다.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언론의 보도는 선정적이었고 무책임했다. “사망자 수가 1만여 명에 육박할 수 있다”는 뉴올리언스 시장의 무책임한 발언을 날것 그대로 보도했다. 인터넷과 휴대폰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보가 난무했다. 물에 잠긴 뉴올리언스 도심은 범죄자들이 활보하는 무법지대로 묘사되고, 평범한 흑인의 사진은 ‘폭도’로 윤색됐다.10)
이후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결과 변화가 감지됐다. 2017년 허리케인 하비(Harvey) 등 유사한 재난 보도에서 언론은 사망자 수 보도에 훨씬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유수 매체들을 중심으로 재해의 원인 분석과 과학적 설명, 정책 관련 보도 등을 강화했다. ‘오늘 현장에 기자를 열 명 보내는 것보다 내후년까지 취재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까닭이다.
이 글을 쓰기 전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취재한 언론인 10여 명을 만났다. 어린 사회부 기자들이 난이도 높은 참사 취재를 해야 하는 인력 구조를 반성하는 데스크도 있었고, 유가족의 트라우마를 최소화하기 위해 본인이 공들여 한 인터뷰 내용을 경쟁자인 타사 기자들과 자발적으로 공유한 사건 기자도 있었다. 현장의 사진을 참혹하다는 이유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사진기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도 있었다.
한국 현실에 단단히 연결된 이들의 고민은 서구의 저널리즘 윤리 교과서 못지않은 깊이가 있었고, 실제로 관련 책을 집필해 기자 교육용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엄혹한 상황에도 노력을 거듭하는 우리 언론인들의 직업적 양심과 자부심을 보았기에, 한국의 재난 재해 보도는 이 순간에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1) Veil, S. R., <Clearing the Air: Journalists and Emergency Managers Discuss Disaster Response>, Journal of Applied Communication Research, vol.40, pp.289-306, 2012, https://www.tandfonline.com/doi/abs/10.1080/00909882.2012.679672
2) https://www.pulitzer.org/winners/south-florida-sun-sentinel
3) Branch, J., <Snow Fall>, The New York Times, 2012, https://www.nytimes.com/projects/2012/snow-fall/index.html
4) Benson, R., 《Shaping Immigration News: A French-American Comparis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3.
5) Taylor, E., & Evans, H., 《Pictures on a Page: Photojournalism, Graphics and Picture Editing》, Heinemann, 1987.
6) James, F., <Photo Of Marine's Fatal Wounding Sparks Debate>, NPR, 2009.9.4, https://www.npr.org/sections/thetwo-way/2009/09/photo_of_marines_fatal_woundin.html
7) Azoulay, A., 《The Civil Contract of Photography》, Zone Books, 2012.
8) Wahl-Jorgensen, K.,《《Emotion, Media and Politics》, Wiley, 2018.
9) Lyall, K., <Interviewing in the aftermath of trauma>, Columbia Journalism School, 2022.3.8, https://dartcenter.org/resources/interviewing-aftermath-trauma
10) Kramer, M., <When Hurricane Katrina hit, reporters made serious mistakes. Here’s what to avoid this time around>, Poynter, 2017.8.30, https://www.poynter.org/reporting-editing/2017/when-hurricane-katrina-hit-reporters-made-serious-mistakes-heres-what-to-avoid-this-time-arou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