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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무책임한 폭로 보도, 이대로 괜찮나]고(故) 이선균 씨 보도에서 나타난 문제적 행태들
커버스토리 : 무책임한 폭로 보도, 이대로 괜찮나 | 등록일 : 2024-02-23

고(故) 이선균 씨 관련 보도로 언론은 거센 비판을 받았다. 수사기관이 원인 제공을 했지만, 여론 재판에 불을 지핀 것은 언론이었다. 이번 사태의 원인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 언론의 나아갈 방향을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고(故)이선균 씨의 죽음. 언론은 이 비극에서 주연급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한 뼈아픈 반성을 넘어 이런 일이 ‘Nie wieder’(‘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라는 독일어, 히틀러 탄생지에 있는 표지판),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실질적인 방안, 혹은 미봉책을 모색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언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일일이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글이 나왔고, 《신문과방송》을 읽는 독자라면 이미 파악했을 것으로 판단해서다.


독자가 어디까지 알고, 봐야 할까? 

 

첫 번째, 언론의 쓰지 않아도 될, 보여주지 않아도 될 권리를 논하고 싶다. 2000년, 연예인 백지영의 성관계 비디오가 과거 연인에 의해 유출된 사건이 있었다. 이후 오현경과 구하라로 이어진 한국 사회의 ‘리벤지 포르노’의 서막을 올린 것이다. 2024년 감수성으로 보면 당시 언론의 보도는 경악할 수준이다. 동영상의 내용뿐만 아니라 이를 보는 이들의 세태, 심지어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까지 자세히 보도했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에서 백지영 비디오가 무료 공급됨에 따라-직원들이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백지영의 노래가 아닌 ‘몸짓’을 감상하고 있어 업무에도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매일경제, 2000.11.28)” “그의 섹스 동영상은 인터넷 사이트에 순식간에 퍼졌고… 중·노년부터 어린 학생까지 다투어 그 사이트에 접속(조선일보, 2000.12.17)”했다고 보도했다(한정원, 2023).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는 이런 수위의 관음적 보도를 더는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표현 방법이 달라졌을 뿐, 선정주의적 보도의 양은 오히려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흔히 선정주의는 두려움과 분노, 흥분과 충격 등을 야기하는 감정적인 보도 양식으로 정의된다(Sloan & Parcell, 2022). 그러나 뉴스에서의 선정주의는 단순한 보도 양태뿐만 아니라 제목과 편집, 사진 등을 포함한 보도를 총괄한다. 다시 말하면 기사 자체의 표현이 선정적이지 않고, 사실관계가 정확했더라도 이선균 씨의 마약 사용 혐의 관련 기사가 하루 평균 150여 건, 두 달간 1만 4,000건에 육박한다면(경향신문, 2023.12.28) 그 상황 자체가 대중의 감정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미국이나 영국도 연예인 사생활 캐기에 능숙하다. 심지어 언론 자유를 보장하는 미 수정헌법 1조를 악용한 가십 전문 매체들은 확인되지 않은 루머까지도 보도하며 성황리에 활동 중이다. 그러나 적어도 권위지가 아닌 주류 매체들-제대로 훈련받은 기자들을 고용하고, 기사와 광고를 맞바꾸지 않으며, 윤리 강령이 있는-은 조회수가 폭발할 것이 확실한 경우라도 관련 기사의 수위와 빈도를 극도로 자제하는 편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54세로 세상을 뜬 유명 시트콤 <프렌즈> 배우 매튜 페리(Matthew Perry) 관련 보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그의 사망 소식이 처음 전해진 지난해 10월 28일, 대중의 관심은 사망 원인에 쏠렸다. 메튜 페리는 할리우드에서 돋보일 만큼 알코올·마약 중독 극복 노력을 공개적으로 알려 온 배우였기 때문이다. 그는 2022년 자서전을 발간하며 마약 중독 시설에 15번 이상 드나들었고, 치료에 900만 달러(약 120억 원)를 들여 1년 반 동안 약물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독자의 궁금증은 자연스레 그의 사인이 마약 사용과 관련이 있는지, 막대한 재산은 누가 받는지로 흘러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미국 언론은 돈과 마약에 집중해 기사 조회수를 올리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프렌즈>(1994~2004)라는 드라마의 문화·사회적 의의와 그 안에서 페리가 연기한 챈들러라는 인물의 역할, 그리고 개인의 약물중독과 정신 건강 문제를 공익 차원으로 승화해 본인의 자산을 쏟아부어 재활 시설을 만든 매튜 페리라는 배우에 대해서였다. 연예 전문매체로 분류되는 <할리우드 리포터(Hollywood Reporter)>는 “그가 연기한 챈들러는 순발력과 본인의 약점을 감추지 않는 솔직함으로 텔레비전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였지만, 그의 이런 유머는 오랜 중독과의 싸움이라는 어두움을 감추는 가면이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배우이자 인간으로서의 매튜 페리를 분석한 뉴욕타임스의 보도와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페리의 마약 사용에 집중해 <매튜 페리의 마약사용 연대기>라는 식으로 선정적으로 보도한 인터넷 타블로이드 매체도 있었다(US Magazine, 2024.10.28). 그러나 이런 낚시성 보도는 소수 마이너 매체에 한정됐다는 점이 한국과 다르다.

 

 

해외 언론은 약물중독과 마약 관련한 보도 준칙을 마련해 놓고 있다. 캐나다 언론인을 위한 보도 준칙 <출처 – https://www.camh.ca/-/media/files/5217-opdsaddic_primer-pdf.pdf>;

 

 

연예인의 범죄 의혹이나 이혼, 저명인사의 사망 관련 보도 대열에 합류하는 한국 언론은 ‘독자의 알 권리 충족’을 이유로 든다. 귄위지를 표방하는 소위 1등 신문도, 국민의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도 보도하는 마당에 ‘우리만 보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른바 ‘떼거리 저널리즘(pack journalism)’에 입각한 변명이다. 하지만 독자가 어디까지 알고, 봐야 할까? 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시청자들은 건물 사이에 낀 참혹한 피해자들의 모습, 갓 구조돼 동의조차 얻을 수 없었던 생존자들의 모습을 날것으로 봤다. 오늘날도 러시아 등 상당수 국가에서는 살해된 이들의 주검이 민간 텔레비전 방송에 그대로 나온다.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시청률 때문이라는 러시아 언론 전공자의 전언이 있었다.

 

고로 선정주의, 즉 어디까지 보도해야 하고, 어떤 경우 보도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뉴스룸 언론 준칙 확립이 절실한 상황이다(새로운 법적 규제를 만들어 처벌하겠다는 발상은 건설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론인들이 고민할 기회를 앗아가고, ‘모든 사람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식으로 또 다른 폭력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영미권을 넘나들며 주요 매체의 편집장을 역임한 거물 언론인 헤럴드 에반스(Harold Evans)는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시각물을 접한 언론인들이 고려해야 할 지점을 요약한 내규를 제시했다. 이는 시시각각 게재 결정을 내려야 하는 한국의 뉴스룸 사진부 벽에 인쇄해 붙여놓고 쓸 수 있을 만큼 실용적이고, 명확하다. 이 원칙은 네 가지 질문으로 요약된다. △선정적이거나 충격적인 보도를 정당화할 만한 사회적, 역사적 의의가 있는가? △불쾌하거나 충격적인 디테일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인가? △취재 대상의 동의나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인가? △문제가 되는 디테일을 보여줌으로 단순한 선정성이 아닌 인간애(humanity)를 보여주는가?(Evans, 1978)

 

 

 

 

물론 시각물의 경우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하지만, 글 기사에서 어떤 부분이 ‘꼭 필요한 디테일’인지에 대한 논의는 어려울 수 있다. 좋은 기사에는 좋은 디테일이 많아야 하고, 호흡이 긴 기사, 깊이 있는 기사일수록 더욱 그렇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경우 포털 뉴스라는 왜곡된 환경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안 읽으려고 해도 ‘제일 많이 읽은 기사’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사실상 클릭을 강요하는 포털에서 대부분의 소비자가 뉴스를 얻는다는 한국 고유의 상황이 있다. 최근에는 이런 경향이 기술의 힘에 의해 더욱 강해졌다. 인터넷 뉴스룸들이 실시간으로 ‘어떤 제목이 클릭률이 높은지’, ‘어떤 소재가 트렌디한지’ 모니터하며 관련 맞춤 기사를 생성하는 관행이 일반화됐고, 이 유혹을 억누르며 ‘정도’를 걷는 언론사는 손에 꼽힐 정도다. 이를 개인이 거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례로, 연예 기사를 전혀 보지 않는 필자도 오늘 아침 포털뉴스를 여는 순간 한 연예인 부부의 갈등을 상세히 보도한 기사를 클릭해 버렸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포털뉴스의 ‘바닥을 향한 경쟁(race to the bottom)’에서 알고리즘이 또 이겼다.


선정적 콘텐츠, 독자의 보지 않을 권리 고려돼야

 

뉴스 소비자가 획일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를 보지 않을 권리 역시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관련 규제나 법규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뉴스 콘텐츠에는 각종 규제와 정책이 촘촘히 얽혀있다. 허용되는 것이 나열되고, 그 외의 것은 모두 안 되는 ‘포지티브 규제’보다 명시된 것 외에는 다 가능한 ‘네거티브 규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전자에 입각해 발전해 온 한국의 언론 시스템의 역사성을 존중한다고 했을 때, ‘획일적인 뉴스를 보지 않을 뉴스 소비자의 권리’에 입각한 새로운 뉴스 정책 역시 생각해 봄 직하다.

 

이를테면 주식시장이 과열돼 파괴적인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서킷브레이커와 유사한 ‘미디어/뉴스 서킷브레이커’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일정 시간 관련 뉴스를 한 시간에 몇 개 이상 쓸 수 없도록 한다던지, 최소한 메인화면 노출을 자제할 수 있도록 하는 매커니즘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태풍이나 지진 같은 천재지변이나 국민의 안전·안보 관련 기사는 제외하는 원칙을 정교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미 이런 미디어 서킷브레이커는 소셜미디어에서 루머나 가짜뉴스 캠페인 등이 만연할 경우 사회적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제안된 바 있다(Ohana, 2020). 여기서 규제의 이행 책임은 뉴스 소비자가 아닌 포털이나 SNS를 운영하는 빅테크 회사인 점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가 자리잡으려면 언론인들의 감수성에 못지않게 독자의 현명함도 요구된다. ‘남들이 보는 것을 다 봐야 한다’, ‘트렌드에서 낙오되면 안 된다’는 경향이 강한 한국에서는 이런 이유로 포털 뉴스 이용이 높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이 중독을 독자 혼자 끊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선균 씨의 사망으로 우리는 그의 마약 사용 의혹에 대한 전후 상황, 즉 그의 사용 여부뿐만 아니라 관련 의혹이 제기된 경위, 무리한 수사가 진행됐고 누가 설익고 부적절한 정보를 언론에 흘렸는지 진실을 파헤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그의 죽음으로 우리 사회는 더 사려깊게 약물중독 문제를 접근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중독자’ 아닌 ‘사용자’로

언론의 새로운 접근 움직임

 

무엇보다 이 문제를 먼저 겪은 서구 사회의 교훈과 축적된 연구 결과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마약 사용에 대한 언론의 접근법에 대해 논하고 싶다. 최근의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중독 관련 행위를 지배하는 생물학적 요인이 적지 않기에, 태어날 때부터 중독에 취약한 사람들이 있다는 연구가 많다. 장애나 만성 질환을 갖고 태어나듯 중독 역시 선천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National Academy of Sciences, 

Engineering, and Medicine, 2016). 이런 데이터에 입각해 영미권에서는 마약을 죄악시하는 것보다 치료가 필요한 중독이라는 정신질환으로 접근하는 프레임, 즉 도덕적 판단을 최대한 배제하고 정신 건강과 보건 차원에서 접근하는 공감대가 사회 전반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에 입각해 유수 언론사들은 관련 보도 시 ‘중독자(addict)’가 아닌 ‘사용자(user)’를 쓰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모범 답안 격인 캐나다의 ‘언론인들의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보도 준칙(Stigma Primer for Journalists)’을 살펴보자. 이는 보건학자뿐만 아니라 미디어·경제학자 등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것이다. 내용의 핵심은 △언론이 중독의 문제를 범죄가 아닌 보건·건강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중독의 배경에는 생물학적·사회적·문화적 다양한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있기에 보도 시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않아야 하며 △마약 관련 보도 시 사회가 인정한 합법 중독물질인 알코올로 사망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는 지점을 상기하고 △편견을 강화할 수 있는 식상한 이미지나 자료사진 등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이선균 보도를 둘러싼 사태의 본질은 일종의 소수자에 대한 편견으로 볼 수 있다. 장애인, 난민, 성적 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보도는 점차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보건·건강의 문제로 볼 수 있는 약물 남용 환자에 대한 보도는 아직까지 과거의 관점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 클릭수에 목마른 언론사들은 검증된 공식-두려움과 공포를 자아내는 선정적인 보도-에 의존하고, 이들을 먹잇감으로 만들어 무차별적으로 이용한다. 

 

배우 이선균 씨를 추모하며 주위 사람들이 공유하던 대사가 있다.

 

“쪽팔린 거? 인생 망가졌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거? 다 아무것도 아니야. 행복할 수 있어. 나 안 망가져. 행복할 거야. 행복할게.” 

(드라마 <나의 아저씨> 15화 중).  

 

그의 죽음에 대한 언론의 반성이 더 많은 이들의 회복과 행복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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