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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라고? 왜 가짜뉴스를 만들지?”
책 표지를 보던 아이가 지나가면서 대뜸 한 소리 한다. 아이 눈에는 가짜뉴스라는 말 자체가 새롭고도 모순적인 듯했다. 어른들 시선은 다르다. 우리 사회에서 가짜뉴스는 식상한 용어다. 2016년 미국 대선을 계기로 급속히 확산한 가짜뉴스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글로벌 화두가 됐다.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팩트체크나 리터러시와 같은 대안들이 모색됐다. 책도 쏟아졌다. 가짜뉴스를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번역서와 국내 작가의 책까지 차고 넘친다. 그런데 또 책이 나왔다.
《CIA 분석가가 알려주는 가짜뉴스의 모든 것》이다. 사실 첫 페이지를 펼치기도 전에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모든 것’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조심해야 할 것이 단정적 표현이다. ‘모든 것’을 담았다는 설명은 그래서 위험하다. 알고 보니 책의 저자 신디 L. 오티스(Cindy L. Otis)도 같은 생각이다. 의견이 아닌 사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니나 다를까. 원제를 찾아보니 다른 제목이었다. 《진실 또는 거짓: 가짜뉴스 식별을 위한 CIA 분석가의 가이드(True or False: A CIA Analyst's Guide to Spotting Fake News)》다. 정직한 표현이다.
CIA 본부가 버지니아주에 있는 이유
제목에 대한 개인적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친절한 안내서다. 1부에서는 가짜뉴스의 역사를, 2부에서는 가짜뉴스와 싸우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CIA 정보분석가 출신의 저자는 매일 수많은 출처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와 첩보를 걸러내야만 했다. 일부는 외국에 있는 ‘인력 자산’에서 나왔고, 위성 사진이나 감청한 이메일, 전화 통화에서 나오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저자가 밝힌 가장 큰 정보 출처는 의외다. 온라인에서 누구든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미 널려 있는 수많은 정보 가운데 쓸모 있는 것과 정보 쓰레기(가짜뉴스)를 잘 가려내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저자는 또 각자의 의견, 정치적 시각, 개인적 편견이 그 분석에 영향을 끼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CIA 본부가 워싱턴 D.C.가 아니라 강 건너 버지니아주 숲에 자리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짜뉴스의 역사를 다루는 책의 1부는 크게 3단락으로 나뉜다. 1막 가짜뉴스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있었다, 2막 황색 언론과 선전과 역정보, 3막 가짜뉴스 홍수의 시대다.
책에는 다양한 사례가 등장한다. 첫 사례로 1888년 영국 런던 화이트채플 지구에서 벌어진 악명 높은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를 소환했다. 이 사건은 신체를 훼손하는 잔혹한 범죄 수법과 언론에 편지를 보내 범행을 예고하는 기행 등으로 순식간에 전 세계로 전해졌다. 경찰은 단서를 찾지 못했고, 시민들은 공포에 질렸다. 언론도 편승했다. 반유대주의에 기댄 추측과 헛소문을 그대로 소개했다. 반유대주의 시위와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폭력이 벌어졌다.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도 경찰과 언론사에는 그 후 10년 동안 잭 더 리퍼가 보냈다고 하는 편지가 1,000통 넘게 날아들었다. 그때마다 관련 기사는 신문 1면을 장식했고, 대중의 추측이 시작됐다. 편지 대부분은 가짜였고, 일부는 언론인이 작성한 것도 있었다.
저자는 이렇듯 역사 속 가짜뉴스의 흔적을 찾아 소개한다. 고대 이집트 람세스 2세의 허풍이나, 프랑스의 왕 루이 13세와 그 어머니 마리 드 메디시스(Marie de M dicis) 왕비의 권력 암투 등이 등장한다. ‘어머니와 아들의 전쟁’으로 불리는 루이13세와 마리의 막장 드라마는 소책자(팸플릿)를 통한 여론전으로 진행됐다. 마리는 아들의 잔인함에 자신이 희생됐다고 주장하며, 소책자를 통해 사랑하는 나라를 사악한 세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주장했다. 루이는 마리보다 두 배나 많은 소책자를 통해 어머니 마리를 비합리적이고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여성이라고 지칭하며, 그런 정신적 나약함을 이용하는 이기적인 조언자들에게 휘둘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인구 대부분이 문맹이던 시대에 암투를 위해 무려 3,300종의 소책자가 인쇄됐다는 점은 놀라운 대목이다.
미국 건국자들의 가짜뉴스 전쟁
언론 자유를 수정헌법 제1조에 담고 있는 미국은 사정이 다를까. 더구나 미국 건국자들은 언론 자유에 대한 남다른 견해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책을 보면 현실은 이런 기대와 거리가 멀다. 책에는 미국 헌법의 뼈대를 만들고 독립선언문 기초를 작성한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을 비롯한 건국 영웅들이 등장한다. 특히 프랭클린은 영국과의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 대사로 임명된 뒤 프랑스의 원조를 얻어내기 위해 가짜뉴스를 직접 생산했다. 건국 초기 대통령과 부통령을 지낸 존 애덤스(John Adams)와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대선에서 맞붙게 되자 가짜뉴스를 활용해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을 일삼았다. 이 과정에 언론이 기여한 것은 물론이다.
옐로 저널리즘으로 불리는 황색 언론은 1880~1890년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의 뉴욕저널(New York Journal)과 조셉 퓰리처(Joseph Pulitzer)의 뉴욕월드(New York World)가 주도했다. 무한 경쟁 과정에서 사실관계는 뒷전이었다. 스페인과 쿠바의 전쟁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두 매체는 팩트체크는 고사하고 윤색과 날조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1898년 2월 쿠바 아바나 해안에서 미국해군 전함 메인호가 폭발했을 때 두 신문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스페인 소행으로 몰아갔고, 이를 근거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려던 쿠바에 미국이 개입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여론이 들끓자 미국은 개입했고, 미국과 스페인 간 전쟁은 10주 만에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허스트와 퓰리처가 미국의 참전을 결정지은 것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여론이 움직이는 것을 도운 것은 확실하다.
황색 언론은 반작용도 가져왔다. 선정적 보도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언론이 자성을 시작했다.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 몇몇 미디어들은 언론 보도 기준을 마련했다. 뉴스를 의견과 분리하고, 기자가 확증할 수 있는 정보만 게재하는 원칙을 세웠다. 퓰리처의 뉴욕월드 역시 1913년 정확성 및 공정성 담당국을 설치했다. 또 세인트폴글로브(The St. Paul Globe)는 1898년 5월 한 달 동안 1면 맨 위에 ‘글로브의 신조: 생생한 뉴스, 최신의 뉴스, 신뢰할만한 뉴스. 가짜 전쟁 뉴스는 없음.’이라고 적었다. 1920년대에는 기사 내용의 정확성과 사실성을 살펴보는 사실 확인 담당자, 이른바 ‘팩트체커’를 고용하기도 했다.
가짜뉴스의 역풍: 불신의 악순환
저자는 히틀러의 나치당이 어떻게 언론을 장악하고 가짜뉴스를 통해 반유대주의를 확산했는지도 설명하고 있다. 나치는 사람들이 지닌 편견과 당시의 인종차별주의를 교묘히 활용했다. 또 비판적인 해외 신문이나 기자를 향해 ‘뤼겐프레세’ 즉 ‘거짓말하는 언론’으로 낙인찍어 공격했다. 나중에는 나치 정부와 히틀러에게 찬동하지 않거나 비판하는 모든 언론과 언론인이 ‘뤼겐프레세’가 됐다. 독일만 가짜뉴스를 이용한 것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도 가짜뉴스를 이용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해 가상의 부대인 제1집단군을 창설했고 이를 독일이 믿도록 철저히 속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 중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독일군에 대한 잔인무도한 헛소문을 활용했다. 중국은 경악했고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1925년 영국 첩보 당국 수장은 정부가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기사를 꾸며냈다고 시인했다.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실제로 나치 독일의 만행이 저질러졌지만 많은 사람이 영국의 선전이라며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짜뉴스의 역풍이다.
저자는 “가짜뉴스를 정부가 사용할 경우에는 커다란 역풍의 위험이 있는데 자칫 불신의 악순환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나 미디어처럼 기존에 진실을 말한다고 간주하던 사회 요소들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가짜뉴스의 입장권, 소셜미디어
2010년 말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번졌던 ‘아랍의 봄’ 당시의 일이다. 시리아계 미국인 동성애자임을 밝힌 아미나 아라프(Amina Arraf)의 블로그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시위대 행진을 기록했고,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글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의 투옥 소식은 전 세계의 높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뒤늦게 사실이 드러났다.
글쓴이는 톰 맥마스터(Tom MacMaster)라는 40세 미국인 이성애자였고, 대학원에 재학하는 동안 이 모든 일을 꾸며냈다. 자전적인 글을 몇 편 썼지만 번번이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자 ‘아랍의 봄’ 상황을 이용한 가상의 인물을 창조한 것이다.
선거철이 되면 유력 정치인이나 후보자의 공식 사이트를 사칭하는 사이트가 골칫거리로 등장하기도 한다. 1999년에는 조지 W. 부시 유세 웹사이트를 자처한 것이 두 개 등장했는데 둘 다 공식 사이트와 무관했다. 이들 사이트는 진짜 유세 사이트가 아니라 패러디 사이트라고 밝히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사이트가 만들어진 첫 달 가짜 사이트의 조회수가 650만 회에 가까웠던 반면, 부시의 공식 웹사이트 조회수는 3만 회에 불과했다. 디지털 시대의 역설이다.
소셜미디어의 등장은 이런 역설에 더욱 속도를 붙였다. 2018년 멕시코에서 퍼진 아동 밀매 가짜뉴스는 왓츠앱을 통해 사람들에게 공포를 안겨줬다. 결국 한 마을을 방문한 낯선 사람을 주민들이 폭행하고 산 채로 불태우는 끔찍한 재앙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것도 경찰서 바로 앞에서 말이다. 저자는 “인터넷의 탄생 덕분에 가짜뉴스 유포자들은 굳이 전통적인 미디어를 이용할 필요도 없이 내용물을 게시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소셜미디어야말로 온 세상 앞에 자신들의 웹사이트와 기사를 내놓을 수 있는 입장권이나 다름 없었다”고 분석한다.
“스스로 편향을 인정하고 극복해야”
책의 2부는 가짜뉴스와 싸우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각각의 장마다 독자들이 직접 해볼 수 있는 연습문제를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도록 한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가장 먼저 사실과 의견에 대한 구분법을 알려준다. 사실은 입증될 수 있는 진술을 말한다. 입증은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 가능하다. 반면 의견이란 여러 사람이 믿거나,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의견은 입증할 수 없으며, 누군가는 여러 사람의 의견과 정반대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저자는 “사실과 의견의 차이를 구분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야말로 가짜뉴스를 감지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에서 정말로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저자는 편향에 대해 지적한다. 어느 누구도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편향 때문에 중요한 정보를 무시하는가 하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확증한다는 이유로 다른 정보를 자동적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또 편향은 각자의 의견을 재확인해주는 정보를 찾아 나서게 만드는 동시에 각자의 의견과 상충하는 정보는 외면하게 만든다. 이른바 인지적 부조화, 부정편향, 확증편향 등이다. 따라서 편향에 맞서 싸우기 위한 첫걸음은 우리 모두가 편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시인하는 것이다.
편향은 뉴스 보도에도 나타날 수 있다. 다만 미디어의 편향은 뉴스 소비자를 속이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에서 가짜뉴스와는 다르다는 점을 유념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언론인과 뉴스 평론가가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들의 뉴스 보도 방식에 각자의 개인적 편견을 개입시키는 경우도 있다. 만약 기자들이 자기 작업에 편향이 스며드는 일을 방지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경우 뉴스 기사의 내용과 방식
모두가 기자의 편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저자는 미디어 편향을 알아채는 방법, 가짜뉴스 판별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또 긴급 속보에 현혹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속보 경쟁, 단독 경쟁이 치열한 국내 언론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결론에서 저자는 우리보다 먼저 살았던 모든 세대의 사람들도 똑같은 가짜뉴스 문제를 겪었으며, 그 과정에서 뭔가를 배웠다고 설명한다. 가짜뉴스의 역사를 배우는 것은 가짜뉴스와 싸우기 위한 지도를 얻은 셈이 된다는 것이다. 흔히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이 손쉬운 해결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포기하는 것은 가장 손쉬운 출구인 동시에 가장 위험한 출구다. 가짜뉴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저자는 “CIA에서 나는 진실을 발견하기가 항상 쉽지는 않다는 것을, 그러나 그럴 만한 가치는 항상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업의 본령인 언론에 던지는 정보분석가의 충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