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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된 독서, 진실의 재구성
«사실의 수명(원제: The Lifespan of a Fact)»을 처음 펼치면 당황스럽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독서’라는 행위 자체를 뒤흔든다. 책을 펼치면 페이지 중앙에 존 다가타(John D’Agata)의 에세이 원문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양옆과 아래위로는 짐 핑갈(Jim Fingal)의 팩트체크 주석과 반박 논리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독자는 더 이상 문장을 따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한 줄 읽을 때마다 옆으로 시선을 돌려 검증과 논쟁을 확인해야 한다. “사실 충돌”, “논쟁 소지”, “인용문 변경”, “인식론적 문제” 등의 꼬리표가 달린 붉은색 문장들은 사실과 다르다는 경고등이다. “확인 완료”라는 검은색은 사실에 부합한다.
이는 단순한 편집상의 실험이 아니다. 형식 자체에도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는 평소 글을 읽을 때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가?’, ‘작가의 문장이 주는 감동과 설득력에 얼마나 쉽게 매혹되는가?’ 이 책의 독특한 구성은 그런 무의식적 습관에 제동을 건다.
독자는 ‘읽는 사람’에서 ‘검증하는 사람’으로, ‘감상하는 사람’에서 ‘의심하는 사람’으로 역할을 바꿔야만 한다. 마치 눈앞에서 참치 해체 쇼를 보는 듯한 경험은 상당히 낯설고 불편하다.
감동의 순간이 차단되고, 몰입의 흐름이 끊어진다. 그 불편함이 바로 이 책이 의도한 바다. 진실이란 편안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끊임없는 질문과 검증을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만든다.
이야기는 2002년 7월 1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스트래토스피어(Stratosphere) 호텔 전망대에서 시작된다. 16세 소년 레비 프레슬리(Levy Presley)가 투신해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언론 보도는 간결했고, 사건은 사람들 뇌리에서 곧 잊혔다. 에세이스트 존 다가타는 이 사건에서 미국 사회의 단면을 읽어냈다. 인공적 도시 라스베이거스, 그 속에서 절망한 한 소년의 죽음, 그것을 둘러싼 무관심과 소비문화의 폭력성.
다가타는 «What Happens There(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라는 에세이를 통해 이 모든 것을 철학적이고 시적 언어로 재구성했다. 글은 감동적이다. 사회 비판적 시각과 문학적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룬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서사에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함정이 있다. 그는 글의 감정적 효과와 상징적 구조를 위해 수많은 사실을 의도적으로 조작했다.
스트립 클럽의 개수, 사건 발생 시간, 현장의 날씨, 차량의 색깔까지. 다가타에게 이런 정확한 세부 사항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추구한 것은 ‘감정적 진실’이었다. 이를 위해서라면 현실의 디테일은 얼마든지 조율할 수 있는 것. “나는 기자가 아니라 작가”라는 그의 변명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두 개의 진실 사이에서 벌어진 7년 전쟁
반면 팩트체커 짐 핑갈에게는 모든 것이 검증 대상이다. 그는 추리소설 속 명탐정처럼 다가타의 문장 하나하나를 추적했다. ‘숫자는 정확한가?’, ‘인용은 실제 발언인가?’, ‘그 장소에 그런 가게가 정말 있었는가?’ 이런 질문들은 단순한 교정 작업이 아니다. 글의 신뢰성, 나아가 작가와 독자 사이의 약속에 관한 문제였다.
다가타와 핑갈의 논쟁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다. 문학과 저널리즘, 예술과 윤리, 개인적 진실과 공적 책임 사이의 근본적 긴장을 드러낸다. 다가타는 문학적 진실이 사실적 정확함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예술의 본질은 현실을 변형하고 재구성하는 데 있으며, 팩트의 속박은 창작의 생명력을 말라 죽게 만든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감정적 진실이다. 그것은 때로는 현실의 사실을 넘어선다.”
일면 설득력이 있다. ‘문학이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라면, 굳이 예술이 필요한가?’, ‘작가의 상상력과 해석, 재구성이 없다면 문학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반면 핑갈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그는 작가가 ‘에세이’라는 형식을 선택한 순간 더 이상 순수한 창작물이 아니라고 본다. 에세이는 현실과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장르이며, 독자는 그 관계를 신뢰하고 글을 읽는다. 따라서 작가에게는 최소한의 사실적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핑갈의 지적은 정곡을 찌른다.
“당신이 하나의 세부를 바꿀 때, 그 전체 메시지도 흔들린다.”
사실의 조작이 단순히 디테일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텍스트의 신뢰성과 독자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독자가 작가를 신뢰하는 기반이 무너질 때 그 글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마저 의심받게 된다.
이들의 논쟁은 자그마치 7년간 지속됐다. 처음에는 단순한 편집 과정으로 시작된 일이 점차 철학적 대결로 변모했다. 다가타는 핑갈을 향해 “멍청하다”라고 비난했다. 핑갈은 묵묵히 검증을 이어가며 “작가의 최소한의 책임”을 요구했다. 편집자까지 개입했지만 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언어의 정치학이다. 누가 진실을 정의할 권한을 가지는가? 작가인가, 편집자인가, 팩트체커인가, 아니면 독자인가? 다가타는 예술가의 권위로, 핑갈은 검증의 논리로 각자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진실 자체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분열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이들의 논쟁이 단순히 텍스트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메일 교환, 전화 통화, 편집 회의까지 모든 소통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독자는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이들의 갈등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게 된다. 논쟁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다. 2018년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으로 공연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탈진실 시대, 팩트 체킹의 부활
2012년 «사실의 수명»이 출간된 지 십여 년이 흐른 지금 세상은 크게 달라졌다. 소셜미디어의 확산, 허위 정보(가짜뉴스)의 범람, 탈진실(posttruth)담론의 등장. 이런 변화 속에서 핑갈이 보여준 집요한 검증은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매일 수천수만 개의 뉴스, 칼럼, 게시물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그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제대로 검증됐을까? 속보 경쟁 속에서 언론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먼저 내보내고 나중에 정정하는 일이 반복된다. 진실성보다 클릭 수와 조회수가 우선시되는 구조 속에서 정확성은 사치품처럼 됐다.
핑갈의 방식은 이런 현실에 강력한 반성을 요구한다. 사건 당시의 기온은 물론이고, 투신 과정에 걸린 시간, 스트립 클럽의 개수, 심지어 태권도의 기원까지 모든 것을 확인했다. 때론 강박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그 집요함이 진실의 기반을 만든다.
한국 언론의 현실에 비춰볼 때 이 책의 메시지는 더욱 절실하다. 익명의 관계자 인용, 출처 불분명한 보도, 정정 없는 오보의 반복. 이런 숱한 관행들이 언론에 대한 신뢰를 바닥까지 끌어내리고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과 활발한 SNS 활동을 자랑하지만, 동시에 극단적 정보 편향을 보이는 사회로 평가된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같은 사건을 정반대로 해석하는 일 또한 다반사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독자의 기호에 맞는 정보만을 제공하는 ‘반향실(echo chamber)’ 역할을 한다.
핑갈식 팩트체킹은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하는 작업이다.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인 사실만큼은 공유해야 소통과 토론이 가능하다. 스트립 클럽이 34개인지 31개인지가 중요한 이유는 그 숫자 자체가 아니다.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가 있어야 좀 더 의미 있는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5년에 이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우리는 트럼프 시대를 거치며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라는 기괴한 개념을 목격했고,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정보의 정확성이 생명과 직결되는 경험을 했다. 여기에 가짜뉴스와 딥페이크, AI가 생성한 텍스트까지 등장하면서 진실의 개념은 더욱 복잡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핑갈식 팩트체킹의 가치는 더욱 부각된다. 그의 방법론은 단순명쾌하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확인하고, 의심스러운 것은 의심하고, 틀린 것은 바로잡는다.
이런 원칙들이 디지털 시대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더 정교한 검증이 필요할 뿐이다. 특히 AI가 생성한 텍스트가 넘쳐나는 시대에 인간의 검증 능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기계는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 문장의 진위를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핑갈이 보여준 집요한 추적과 검증 정신은 이런 맥락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진실은 완제품이 아니다
책은 독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강한 울림을 전한다. 진실은 작가나 편집자, 언론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독특한 구성은 독자를 수동적 수용자에서 능동적 판단자로 바꿔놓는다. 다가타의 감동적인 문장과 핑갈의 날카로운 반박 사이에서 독자는 끊임없이 선택해야 한다. 어느 쪽이 옳은가? 감정적 진실과 사실적 정확함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예술적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정답은 없다. 질문 자체가 중요하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정보를 접하면서도 진위를 따져 묻는 일에는 게으르다. 책의 메시지는 그런 게으름에 경종을 울린다. 진실이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하는 것이다.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이 독자에게 있음을 일깨운다.
또 다른 쟁점은 장르의 경계에 관한 것이다. 문학과 저널리즘은 정말 구분될 수 있는가? 에세이는 어느 쪽에 속하는가? 창작 논픽션(creative nonfiction)이라는 새로운 장르는 어떤 윤리적 기준을 가져야 하는가?
다가타의 에세이는 전형적인 창작 논픽션 사례다.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되, 작가의 해석과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글쓰기는 현대 문학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다. 문제는 독자의 기대와 작가의 의도 사이에 발생하는 간극이다. 독자는 ‘실화’라는 전제 아래 글을 읽지만, 작가는 예술적 자유를 행사한다. 간극이 커지면 신뢰의 위기가 발생한다.
핑갈의 팩트체킹은 이런 위기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자 해법을 제시한다. 완전한 사실도, 완전한 허구도 아닌 그 중간 지대에서 최소한의 신뢰 기반을 마련하려는 시도다. 비록 모든 것을 검증할 수는 없지만, 검증 가능한 것들은 정확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빠른 정보가 아니라 정확한 정보다. 늦더라도 제대로 확인된 정보가 결국 더 큰 가치를 지님을 일깨운다. 무한 속보 경쟁과 단독 경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우리 언론 현실에 적잖은 경종을 울린다.
다가타는 감동적 에세이를 썼지만, 그 감동은 사실의 토대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핑갈은 지나치게 세세한 것까지 따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집요함이 없었다면 에세이는 신뢰를 잃었을 것이다. 결국 둘 다 필요하다. 감동을 주는 서사도, 그 서사를 뒷받침하는 팩트도.
이 책은 우리에게 진실이 ‘완제품’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운다. 지속적 질문과 검증, 토론과 수정을 통해 진실이 유지될 수 있다. 눈을 뜨고 질문하라. 의심하고 확인하라. 감동도 좋지만 근거도 따져보라. «사실의 수명»이 언론과 독자들에게 남기는 유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