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2003년 3월 6일.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 침공의 이유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보다 앞선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가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를 공격했고, 이라크가 알카에다에 협력했다는 명분이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이 열리는 52분 동안 알카에다 혹은 9·11 테러를 무려 14번 언급했다. 이미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이라크-알카에다 협력’에 의문을 제기한 상태였고 이라크가 9·11 테러 공격에 연관됐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도 없었지만, 회견장의 기자 중 누구도 “이라크가 알카에다와 협력했다는 증거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Cunningham, 2003). 언론은 부시 전 대통령의 발언을 정확하게 보도하는 데만 집중했을 뿐 발언 내용에 대해 질문하거나 검증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은 이라크-알카에다 커넥션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 전쟁의 또 다른 명분이었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여부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미국인은 알카에다 혹은 이라크 전쟁에 대해 잘못 알고 있으며 그 이유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 탓이 크다(Gains et al., 2007; Newport, 2013). 언론이 대통령의 발언을 ‘정확하게’ 보도한 것이 미국인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진실이라 믿게 만들었고 이후 미국이 전쟁에 군사비 수백조 원을 지출한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언론이 대통령이나 정치인과 같은 유력 인사의 발언 혹은 보도자료 등을 아무런 비판이나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 적는 ‘받아쓰기 저널리즘’이 언론의 사명인 진실 추구와 정반대의 결과로 이어진 사례는 수없이 많다. 1971년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펜타곤 보고서’ 특종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국 정부 행태도 한 사례다. 1963년 미국 베트남 전쟁 당시 린든 존슨 대통령의 지시로 베트남을 찾았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 국방부 장관은 귀국길에 기자회견을 열고 전쟁 상황이 미국에 유리하다고 말했지만, 그로부터 8년 뒤 워싱턴포스트가 단독 보도한 펜타곤 문서에는 이와는 정반대로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나쁘게 변해가고 있다”고 적혀있었다(코바치·로젠스틸, 2021, p.65). 1963년 미국 국방부 장관은 전쟁이 미국에 불리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기자회견에서 공공연히 거짓을 말한 것이다. 당시 베트남 현장을 취재했던 몇몇 기자가 미국 정부 발표와는 다른 기사를 게재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훗날 워싱턴포스트의 벤 브래들리(Benjamin C. Bradlee) 편집국장은 자문한다. “맥나마라가 베트남에서 겪은 ‘진실’이 1971년이 아닌 1963년에 알려졌더라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정치인 발언 의존도 높은 한국 언론
한국 언론도 정치인이나 유력 인사의 발언을 그대로 보도하는 받아쓰기 저널리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내 연구 자료들은 한국의 주요 언론마저도 받아쓰기 저널리즘의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대통령이나 정치인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치부 기사의 받아쓰기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해 왔다. 특히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정치인들의 소셜미디어 이용이 많아지면서, 정치인의 발언뿐 아니라 소셜미디어에 작성한 내용까지 확인 없이 보도하며 받아쓰기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가 2019년 9월부터 1년 동안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한국의 주요 일간지 여섯 곳의 정치 기사를 비교 분석한 결과는 한국 받아쓰기 저널리즘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우선, 기사 내용 중 정치인 발언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았다. 취재원의 발언을 직간접적으로 인용한 내용이 기사의 70% 이상인 기사가 한국은 12%(117건), 뉴욕타임스는 2.7%(3건)이었다. 한국은 정치 기사 100건 중 12건이 발언만으로 작성됐지만, 뉴욕타임스는 100건 중 3건 미만이었다. 대통령 관련 기사에선 단순히 대통령이 어디를 방문했다는 일정을 밝힌 동정 기사가 21.7%에 이르렀다. 대통령 관련 기사 중 정책 기사가 33%인 것과 비교하면 과도하다.
특히 이러한 대통령 동정 기사는 대부분 대통령의 발언만으로 구성된다. 이러다 보니 정치 기사는 단순 전달형의 기사가 대부분이고, 평가를 곁들인 기사의 비중은 매우 낮았다. 국내 기사 중 평가 관련 내용을 담고 있는 기사는 21.9%에 불과했으나 뉴욕타임스는 65.5%였다.[표] 또한 뉴욕타임스에는 인터뷰 기사가 없었던 반면, 국내 신문사에는 19건(2%)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정치인의 소셜미디어 게시물 내용만으로 작성한 기사가 없었지만, 한국 언론에선 이런 기사도 자주 눈에 띄었다.

기자가 추구하는 것은 객관성 아닌 진실
국내 언론사들이 받아쓰기 저널리즘을 지속하는 데에 이유는 있다. 첫째, 기자의 관점에서 대통령 혹은 유력 정치인은 영향력과 뉴스 가치가 높은 취재원이므로 이들의 발언은 보도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기자는 ‘시대의 역사가’로서 유력 인물의 발언 내용을 기록하고 이를 시민에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 미디어 환경과 달리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는 언론이 보도하지 않아도 이들의 발언은 시민들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될 수 있다. 따라서 취재원의 발언을 그대로 전달하는 기사의 중요성은 크게 퇴색했다(물론 수많은 발언 중에서 뉴스 가치가 높은 발언만을 선택하는 것도 기자의 중요한 역량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더구나 발언의 내용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전달하는 것은 기사 작성 목적을 의심하게 한다. 기자도 모르거나 혹은 추정해야 하는 단어를 기사에 포함한다면 뉴스 이용자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나 정치인의 발언 중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기자는 그 의미를 직접 묻고 확인해야 한다. 가령 지난 8·15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언급한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이 누구인지를 직접 물어봤다면, 기자가 추론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주요 언론들은 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이들’이 누구인지는 지칭하지 않았지만 야당 내 운동권 출신 정치인 등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거나 “윤 대통령의 ‘공산 전체주의 맹종 세력’ 겨냥 발언은 (…) 정부를 비판하는 민주노총 인사 등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 등을 염두에 두고 야권 일부 인사들과 무관치 않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등으로 보도했다. 만일 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지 않았거나 답변을 회피했다면, 대통령실도 언론을 자신들의 정견을 전달하는 나팔수 정도로 여기는 왜곡된 언론관을 지녔다는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기자들은 취재원의 발언을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원칙인 ‘객관주의’를 실천하는 방식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항변할 수 있다. 즉, 취재원이 특정 발언을 한 것은 ‘팩트(Fact·사실)’고 시민에게 팩트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므로 취재원 발언의 진위(진실을 속이는 것) 여부는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기자 역할에 대한 본말(本末)이 전도된 것임을 되새겨야 한다.
기자는 왜 객관적이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기자의 객관성이 담보될 때, 어떠한 선입견이나 가치나 주의(정파)로부터 독립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할 때, 진실을 전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자가 추구하는 것은 객관성이 아니라 진실이다. 즉, 진실과 무관한 ‘객관적 보도’는 객관주의라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방법이 아닌 명예훼손이나 비난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적 의례(Tuchman, 1972)’에 불과하다. 특히, 커닝햄(2003)의 주장처럼 여론을 조작하려는 정치인이 넘치는 현실에서 우리가 객관주의를 내세우며 유력인의 발언을 받아쓰기하는 데 그친다면, 저널리즘의 객관주의 원칙은 거짓을 전파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 미국에서 정치 분야의 팩트체크 저널리즘은 정치인의 발언을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진실 추구라는 언론의 사명에 어긋나고 오히려 거짓을 전파한다는 자성(自省)에서 등장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검증 과정 없는 소셜미디어 내용 보도
최근 정치인들이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면서 그들의 소셜미디어에서의 발언을 그대로 보도하는 행태도 늘고 있다. 앞서 인용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 언론은 미국의 뉴욕타임스에 비해 정치인의 소셜미디어를 취재원으로 자주 활용할 뿐 아니라 정치인의 소셜미디어 내용만으로 기사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 뉴욕타임스에서는 한 건도 찾아볼 수 없는 기사 유형이었다. 정치인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한 것처럼, 국내에서 정치인의 소셜미디어 발언 내용을 인용해 작성한 기사 중 그 내용을 검증한 기사는 찾기 어려웠다. 특히 정치인의 소셜미디어 게시물은 스스로 확인하지 않은 사실을 적거나(본인의 추정), 혹은 특정인에 대해 편향되거나 부정적인 의견이나 평가를 담고 있음에도 자주 인용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국내외에서 소셜미디어를 취재원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이처럼 사실 확인의 의무가 문제로 지적되며, 주로 타블로이드와 같은 선정적인 언론, 그리고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분야 등의 기사에서 소셜미디어를 활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Lecheler & Kruikemeier, 2016).
코바치와 로젠스틸(Kovach·Rosenstiel, 2021)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기자뿐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정보를 제공하지만, 기자와 이들을 구분하는 기준은 ‘사실 확인의 규율’이라고 강조했다. 기자 혹은 저널리즘과 여타 정보 제공자를 구분하는 잣대는 정보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는 역할, 바로 사실 확인의 규율이며 따라서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기자의 최우선적 임무는 여전히 ‘진실확인자(Authenticator)’라는 것이다. 이러한 임무는 정치 분야라고 해서 다를 수 없다.
얼마 전 한국일보에 게재된 한 정치학자의 글을 읽으면서 언론계 외부의 판단도 내부의 문제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일보에 칼럼을 게재하느라 정치 기사를 꼼꼼하게 검토했다며 국내 정치인들의 몰염치뿐 아니라 언론에도 크게 실망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치의 몰염치>의 일부를 옮겨본다.
“두 번째 감상은 다름 아닌 언론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는 사안과 언행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언론의 모습에 씁쓸함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기계적 균형이라는 외형 뒤에 숨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비판적 사고와 질문은 포기하고 받아쓰기에만 열중하는 언론을 보면서 과연 한국 정치의 퇴행이 정치만의 책임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 몰염치한 언론이 몰염치한 정치를 부추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염치는 정치인이 타고나는 도덕성이 아니라 감시와 비판, 그리고 처벌을 통해 정치인에게 강제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장승진, <한국 정치의 몰염치>, 한국일보, 2023.9.1).
대통령이나 정치인의 발언을 사실 검증하지 않고 발언 내용의 의미를 묻지 않는 언론은 뉴스의 생산자가 아니라 뉴스를 이용하려는 세력의 수동적인 수용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