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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의회 선거 다음 날인 지난 6월 10일, 르피가로(Le Figaro)는 1면 헤드라인으로 ‘충격(Le Choc)’이란 단어를 뽑았다. 프랑스 언론은 어지간한 일엔 호들갑 떨지 않는다. 건조한 헤드라인을 뽑는 편인데, ‘충격’이란 단어 하나만 사용한 걸 보면, 프랑스 언론이 선거 결과에 큰 충격을 받은 건 분명해 보인다.
충격의 이유는 극우 세력의 급부상. 프랑스 극우 성향 정당 국민연합(RN)은 이번 선거에서 5년 전보다 10%p 오른 30%를 득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의 정당 르네상스(Renaissance)의 득표율은 15%에 그쳤다. 극우의 압승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선거 참패에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 실시’ 카드로 응수했다. 잃어버린 대통령 업무 동력을 조기 총선으로 되찾겠다는 건데, 대부분의 프랑스 언론은 무모한 도박이란 반응이다. 르몽드(Le Monde)는 사설에서 ‘불장난하는 대통령’이라고 꼬집었고, 리베라시옹(Libération)은 ‘국회 해산, 극단적인 도박(Dissolution, Pari Extreme)’을, 르파리지앵(Le Parisien)은 ‘청천벽력(Le coup de tonnerre)’이라는 1면 기사 제목을 뽑으며 선거 결과와 의회 해산의 충격을 전했다. 특히 르몽드는 “극우가 프랑스 정권 차지를 막을 수 있는 기간은 20일”이라며 극우의 확산을 우려했다.
국가 단위로 정당과 교섭단체 구성하는 유럽연합 의회
한국인의 시선에 유럽연합 의회 선거는 꽤 낯설다. 대통령 중심제인 한국에서는, 정당들이 선거 결과에 따라 서로 뭉쳤다 헤어지며 연합 정권을 수립하는 과정도 익숙하지 않은데(이런 움직임은 보통 권력을 좇는 이합집산으로 치부된다), 세력 규합 과정이 국가들의 연합 차원에서 이뤄지니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유럽연합 의회 선거는 국가별로 실시된다. 국가 인구수를 토대로 유럽연합 의회 의석을 배정하는데, 독일이 가장 많고 프랑스, 이탈리아가 그 뒤를 잇는다. 각국 정당들은 정치적 성향을 토대로 자신들과 비슷한 정체성의 다른 국가 정당들과 의회 교섭단체를 구성한다. 우리로 치면 한국 보수 정당과 일본 보수 정당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식이다.
현재 유럽 의회엔 총 7개 단체가 있다. 이번 선거 결과, 현 집권당인 중도 우파가 가장 많은 의석을 유지했으며, 중도 좌파 그룹도 의석을 3석 잃었지만 2위를 지켜냈다. 반면 3위를 차지한, 마크롱 대통령의 정당이 소속된 중도 자유주의 그룹은 무려 22석의 의석을 잃고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패배 그룹이 됐다. 친환경 진보 그룹 녹색당 역시 20석 가까운 의석을 잃었다.
반대로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승자는 프랑스 국민연합이 소속된 극우 성향 그룹이다. 지난 선거 때 보다 9석을 더 얻었다.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Giorgia Meloni) 총리의 정당이 소속된 강경 우파 그룹 역시 76석을 얻어 4번째로 큰 교섭단체로 올라섰다. 여기에 나치 옹호 망언으로 극우 성향 그룹에서조차 추방당한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독일 올라프 슐츠(Olaf Scholz) 총리의 진보 정당을 제치고 독일의 2당이 됐다. 강경 우파, 극우 세력이 손을 맞잡으면 유럽연합 의회 제2의 정당으로 부상하게 된다.
우익화 불가피한 차기 유럽연합 의회
유럽이 자국 총선도 아닌 유럽연합 의회 선거 결과에 큰 관심을 쏟는 이유는 간단하다.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유럽 국가들이 일부 양도한 주권을 토대로 법률과 정책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법과 정책은 각국 내정에 우선한다.
일례로 최근 유럽연합은 중국산 전기차에 20%가 넘는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전기차 관세 정책은 유럽과 교역하는 모든 국가에 적용되기 때문에, 유럽연합 의회에서 어떤 정책을 내놓는지가 유럽 국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같은 외교 방향도 마찬가지다. 난민 대응 등 유럽의 많은 정책이 의회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유럽연합 의회 선거 결과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유럽연합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집행위원장을 의회에서 결정한다는 점이다. 현 위원장은 중도우파 집권당 출신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이다. 연임 의사를 밝힌 상태지만, 극우 정당의 약진으로 연임이 불확실해졌다. 이 때문에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강경 우파 그룹인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에 협조 요청을 하고 있다. 집권당인 중도우파 그룹은 최근 북아프리카 국가에 대규모 경제 지원을 약속하며 엄격한 이민자 단속을 요청했는데, 이는 기존의 이민 정책과 비교하면 꽤 강경한 태도로 돌아선 것이다. 반이민 기조를 내세운 강경 우파 그룹의 멜로니 총리로선 폰데어라이엔 위원장과 동행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진 셈이다.
하지만 멜로니 총리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건 폰데어라이엔 위원장만이 아니다. 프랑스 극우 정당의 실질적 리더이자, 유럽연합에서 극우 그룹을 이끄는 마린 르펜(Marine Le Pen) 의원은 지난달 26일 이탈리아 코리에레델라세라(Corriere della Sera)와의 인터뷰에서 “유럽 의회에서 두 번째로 큰 정치 그룹이 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공식적으로 멜로니 총리에 연대를 제안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을 만들 세 명의 여성’이라며 선거 이후 세 사람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합종연횡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차기 유럽연합이 훨씬 더 오른쪽을 향하게 되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
국민연합 돌풍에 충격받은 파리 시민들
파리에선 선거 결과가 발표된 직후 크고 작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극우 국민연합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파리 시위의 중심, 헤퍼블릭(Republic)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국민연합은 인종주의 집단이라며, 어떻게든 극우의 재집권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의 4개 좌파 정당은 선거 연합을 선언하며 반극우 ‘대중전선’을 결성했다. 하지만 집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반응은 분노보다는 충격과 허탈에 더 가까웠다.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이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현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였다.
파리 시민들이 국민연합의 돌풍에 충격을 받은 건 정당의 뿌리 때문이다. 1970년 이전, 극단적 인종주의 성향의 프랑스 극우 운동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정치적 의견을 표출했다. 그리고 1972년, 다양한 형태의 극우 운동이 하나로 합쳐지며 국민연합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국민전선(FN)이 창당됐다. 정당의 리더로 등장한 인물은 마린 르펜 위원의 부친인 장 마리 르펜(Jean-Marie Le Pen). 나치 산하 단체 혹은 나치에 부역한 비시(Vichy) 정권과 관련된 그룹도 국민전선에 포함됐다. 그들이 첫 선거에서 받은 득표율은 0.52%. 하지만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인종주의 색채를 줄여가며 지지율을 높이기 시작했고, 지난 대선에서 마린 르펜 대통령 후보가 40%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국민연합은 주류 정당으로 도약했다.

불안과 분노 성공적으로 파고든 국민연합
국민연합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유럽 경제가 안 좋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직격탄으로 에너지 가격이 올라, 시민들의 삶이 어려워졌다. 경제 사정은 좋지 않은데, 유럽으로 넘어오는 이민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각국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지는 이유다.
극우는 확산되는 불안과 분노를 성공적으로 파고들었다. 국민연합의 새 얼굴, 29세의 젊은 정치인 조르당 바르델라(Jordan Bardella) 대표의 역할도 극우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이다.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 출신인 그는 생드니(St. Denis)의 공동 주택 단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6세에 마린 르펜의 토론을 보고 감화돼 국민연합에 가입, 2년 전부터 마린 르펜의 후임자로 국민연합을 이끌고 있다. 그는 유럽연합 차원의 친환경 규제들로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을 보호하고, 불법 이민을 막아 이민자 수를 줄이겠다는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특이한 건 전통적으로 국민연합 지지 세력이 아니었던 젊은 층이 대거 극우 정당을 지지했다는 점이다. 젊은 정치인답게 바르델라 대표는 틱톡 등 소셜미디어를 선거에 활용했다. 바르델라의 틱톡 팔로워 수는 무려 140만 명. 프랑스의 경제 성장 둔화로 기성세대에 반감을 갖게 된 청년 유권자들은 바르델라의 소셜미디어 선거 유세에 큰 호응을 보였다. 국민연합은 18~34세 유권자에서 32%,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국민연합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등 프랑스 대통령을 배출한 전통의 정당, 공화당과 연대를 발표하며 지지층 확대를 꾀하고 있다.
2016년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총리는 유권자들이 유럽연합 잔류를 선택할 것이란 판단 아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를 시행했다. 전 세계가 도박이라는 우려를 쏟아냈고, 우린 투표 결과가 어땠는지 이미 알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르펜을 저지하기 위한 마크롱의 도박이 오히려 (르펜을) 권력으로 이끄는 위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지금 마크롱이 던진 주사위 앞에서 많은 프랑스인은 2016년의 영국의 브렉시트(Brexit)를 떠올리고 있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 국민연합의 지지율은 36%로, 18%를 기록한 마크롱 정당보다 두 배나 높게 나타났다. 국내 총선은 유럽 의회 선거와 다른 양상을 보일 거란 마크롱 대통령의 계산이 지금까진 완전히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