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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미디어 현장]프랑스_기대 이상 성공 거둔 파리 올림픽
글로벌 미디어 현장 | 등록일 : 2024-08-30

올림픽 시작 직전의 프랑스가 얼마나 우울했는지 떠올려 보자. 유럽 의회 총선 결과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이 압승을 거뒀고,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의회 해산 카드를 던졌으며, 그 결과 치러진 국내 총선에서 프랑스 국민은 그 어떤 정당에도 과반을 허락하지 않았다. 

 

과반 정당이 없는 총선 결과는 프랑스 정치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고, 정당 간 합종연횡에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 의회는 총리 선출을 두고 제자리를 맴돌았다. 그 사이 마크롱 대통령은 ‘아무도 승리하지 못했다’라며 가장 많은 득표를 얻은 좌파 연합의 총리 임명을 사실상 거부했다. 그 결과 사의를 표했던 가브리엘 아탈(Gabriel Attal) 총리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총리직을 유지했다. 프랑스는 역사상 유례없는 교착 상태에 빠진 채, 축제를 시작했다.

 

사실 파리 올림픽의 ‘완전히 개방된 대회(Wide Open Games)’ 기획이 도쿄 올림픽 폐막식에서 공개됐을 당시, 전 세계인들은 그 계획에 매료됐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승마를, 그랑 팔레에서 펜싱을, 에펠탑 앞에서 비치발리볼 경기를 한다는 건 얼마나 파격적인 풍경인가. 경기장을 벗어난 경기라는 콘셉트도 인상적이지만, 내세울 명소가 많다는 건 부러운 일이었다. 

 

계획이 발표됐을 때, 정작 불만을 쏟아낸 건 파리지앵이었다. 툭하면 도로가 차단되는데 우회 도로는 알려주지 않는, 대중교통이 출퇴근 시간에 갑자기 끊겨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도시에서 엄청난 인내심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빽빽한 파리 한가운데서 경기를 펼친다는 아이디어는 무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파리에 와보니 파리지앵의 불안이 한층 더 이해됐다. 프랑스엔 사 데팡(Ça dépend, 때에 따라 다르다) 문화,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케바케’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체류증을 신청한 사람에게 오는 체류증 수령 문자가 만약 나에게만 안 왔다면, 그건 사 데팡이다.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사회 행정 시스템의 사소한 오류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셈인데, 이런 실수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주변 사람들 모두 택배를 잘 받았는데 왜 나만 못 받았냐고 따지는 건 사 데팡 문화에선 무의미하다. 실수를 저지르고도 태연하며, 그 실수로 인해 손해 입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파리의 습속은 전부 사 데팡 문화에서 기인한다. 오류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완전히 개방된 대회라니, 모두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 성공 요인은 파리 명물과 어우러진 화려한 풍경

 

올림픽이 끝났다. 늘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프랑스 언론들의 반응은 이례적으로 칭찬 일색이었다. 진보 성향의 리베라시옹(Libération)은 <프랑스 올림픽, 황금의 시간을 기억하라(JO de Paris 2024 : retour sur un moment or du temps)>는 기사에서, “우려됐던 카오스와는 반대로, 15일간의 올림픽은 경기장 안팎에서 성공적이었으며, 궁극적으로 (프랑스인에게) 어려웠던 기간 이후에 매혹적인 쉼표를 선사해, 숨 쉴 틈을 줬다”라고 평가했다. 평소 리베라시옹의 논조를 생각하면 파격적인 칭찬이다. 

 

보수 성향 피가로(Figaro)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파리 올림픽, 마법에 걸린 괄호 속의 시간(JO Paris 2024: la «parenthèse enchantée»)> 기사에서 우범지역인 생드니가 깨끗해지고 치안이 좋아졌다는 점, 대중교통이 원활하며 도시 청소도 자주 이뤄졌다는 점 등을 들며 올림픽을 호평했다.

 

 

3년 넘는 공사 끝에 올림픽 펜싱 경기를 위해 부분 개장한 그랑 팔레 ⓒ조영중

 

 

 

프랑스 언론의 호들갑스러운 호평은 바꿔 말하면, 올림픽 시작 전, 프랑스 사회가 성공 가능성을 매우 낮게 봤음을 의미한다. 불안의 정점은 개막 당일 발생한 고속철 선로 연쇄 방화 사건이었다. 아직 정확한 배후가 드러나지 않은 대규모 사보타주 공격으로, 프랑스 전역의 열차 운행이 취소되거나 지연됐다. 올림픽 동안 발생이 우려됐던 테러 공포가 현실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례적인 폭우 속에 진행된 개막식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물론 프랑스 국민의 86%가 개막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난해했다는 비판과 함께 종교 모독에 대한 논란까지 불러왔다. 특히 한국을 북한으로 소개하고, 거꾸로 걸린 오륜기를 태연하게 게양하는 모습을 보며 프랑스 사회의 내재화된 오류가 결국 세계인의 축제를 망칠 거란 불안이 엄습했다. 그런데도 축제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반전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개막 전 예상하지 못한 몇 가지 변수 때문이다.

 

첫 번째 변수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완전히 개방된 대회가 만들어낸 화려한 이미지였다. 대회 시작 전엔 경기장들이 그저 도로를 가로막은 흉측한 임시 공사 시설처럼 보였다. 하지만 올림픽 한 달 전, 에펠탑 스타디움의 비치발리볼 경기장을 사전 방문했을 때, 오류투성이 프랑스의 믿는 구석을 어렴풋이 확인했다. 실제 경기가 진행 중인 에펠탑 경기장의 모습은 기대 이상이었다. 가까이서 본 에펠탑은 더 웅장했고, 파란 하늘과 하얀 모래 코트의 대비는 포카리스웨트 광고처럼 상큼했다. 함성을 지르는 관중들이 채운 관중석은 더 이상 공사 현장의 임시 건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랑 팔레의 펜싱 경기장이나 베르사유 궁전의 근대5종 경기장도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텅 빈 곳에 세워진 대형 관중석은 프랑스의 일명 ‘아시바’ 활용 기술, 공사장 비계 활용 능력의 탁월성을 제대로 보여줬다. 

 

파리 도심 한가운데서 열린 경기장 풍경에 매혹된 건 프랑스 언론만이 아니었다. 영국 언론 텔레그래프(Telegraph)는 이를 두고 “고집스럽게도 파리지앵적이었던 올림픽”이었다며, “럭셔리, 매혹적이며, 스캔들로 몰든 올림픽 경기는 끝까지 파리지앵적이었으며, 자유분방했다”라고 호평했다. 다음 올림픽을 개최하게 될 미국의 로스앤젤레스타임스(Los Angeles Times)는 “기존 장소에 경기장 무대를 세우고, 모두에게 대중교통을 사용할 것을 장려한 결정은 21세기 경기 주최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라고 극찬했다. 이번 대회 성적이 좋지 않았던 독일의 디벨트(Die Welt)는 “파리의 독일 대표단이 그다지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주최자들 덕분에 우리의 아쉬움을 잊을 수 있었다”라며 파리 명소에서 열린 경기가 만들어낸 스펙터클한 이미지에 찬사를 보냈다.


파리지앵의 친절한 변신도 성공에 한몫

 

하지만 전혀 예측하지 못한 두 번째 변수가 이번 올림픽 성공의 더 큰 비결이다. 바로 친절한 파리지앵. 친절한 파리지앵이라니. 불친절하고 차갑기로 유명한 파리 시민들이 달라진 것이다. 일단 자원봉사자 수가 많았다. 사실 카타르 월드컵 혹은 예전 베이징 올림픽처럼, 국가의 군중 동원력이 강한 나라에서나 대규모 자원봉사자 모집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주말이면 스트레스 해소하듯 시위에 참여하고 정부에 늘 불만을 쏟아내는 파리에서 많은 자원봉사자가 대규모 국가 행사를 위해 힘을 보탤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봉사자 수만 많은 것도 아니었다. 행동도 잽싸고 야무졌다. 마트에서 손님 줄이 길어지건 말건, 상품 계산하며 옆 점원과 수다 떨며 일하는 파리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경찰마저 친절했다. 혹자는 프랑스 전역에서 경찰이 동원돼, 친절한 시골 경찰의 비중이 높아진 게 경찰 친절의 이유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길거리에 경찰이 늘어나니, 자연스레 소매치기나 잡상인은 줄어들었다.

 

 

이번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끈 데는 자원봉사자의 힘도 컸다. ⓒ조영중

 

 

리베라시옹도 이번 올림픽 성공의 가장 큰 비결로 프랑스의 공권력을 꼽으며, 이렇게 설명했다. “악의적이고 패배주의적인 사람들이 프랑스(우리나라)가 이런 규모의 행사를 개최할 수 없다는 것에 베팅하고 있었지만, 큰 놀라움 없이, 프랑스인들은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 이들 중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들, 공공서비스를 수행하는 이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헌신의 금메달을 받을 자격이 있다.” 

 

올해 초 파리 시청 앞에 경찰들이 모여 올림픽 동안의 합리적인 근무 계획을 발표하라고 아우성칠 때만 해도, 지금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 흥미로운 분석은 피가로에서 나왔다. 피가로지는 “가장 눈여겨볼 만한 것은 ‘프랑스식 효율성’-평소에는 무언가 엉성한(messy) 분위기가 있다면, 이번 올림픽에서는 효율성, 노하우,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국제적인) 감탄을 자아냈다”라고 평가했다. 프랑스 언론도 평소에 자주 발생하는 사소한 오류들이 줄었다는 점에 감탄한 것이다.

 

사실 파리의 완전히 개방된 대회 계획이 발표됐을 때 불평을 쏟아내던 사람들 사이에서 나름 차분한 모습을 유지하던 파리 시민이 있었으니, 장기 바캉스를 계획한 사람들이었다. 여름이면 파리를 떠날 그들에게 파리가 카오스로 변하건 말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빈집을 숙박으로 내놓을 수도 있으니 나쁠 게 없었다. 올림픽에 무관심한 파리 시민은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마치 전 세계에서 올 관광객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듯, 파리지앵은 도시를 빠져나갔고, 하루아침에 운임이 2배나 오른 지하철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올림픽 전용 차선을 운영하면 도로가 마비될 거란 예상도 빗나갔다.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올림픽 기간 활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앱을 배포했는데, 평소의 프랑스답지 않게 아주 스마트했다. 대중교통 혼란을 피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비결이다. 

 

 

비치발리볼 경기가 열린 에펠탑 스타디움 ⓒ조영중

 

 

축제가 끝난 뒤…두려운 올림픽 후유증

 

올림픽 기간 중 알마 다리(Pont d’ Alma) 앞에 배치된 두세 명의 교통경찰이 일부 도로가 차단됐음에도 불구하고 교통량을 원활하게 조절하는 걸 보며, 올림픽 직전 혼돈의 알마 다리를 떠올렸다. 당시 차량은 서로 뒤엉켜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지만, 교통경찰은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파리지앵은 친절할 수 있었고, 경찰들은 도로를 순조롭게 조절할 수 있었으며,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단 사실이 이번 올림픽을 통해 확인됐다. 

 

두려운 건 프랑스인들의 올림픽 후유증. 평소에 차갑고 불친절하게 대하던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친절하기 위해 노력했으니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겠는가. 여름휴가와 패럴림픽이 끝나는 9월 초, 파리는 다시 혼돈의 유니버스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이유다.

 

이제 축제는 끝났다. 프랑스 정치권은 올림픽이 준 짧은 휴전을 끝내고 다시 총리 선임을 두고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한다. 스페인 언론 엘파이스(El Pais)는 “꿈이 아니었다. 정말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올림픽에 대한 희열과, 스스로로부터(그러니까 프랑스의 원래 상태로부터) 몇 주간의 바캉스를 보낸 이후 다시 아침을 맞이하는 프랑스는 잔인한 현실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올림픽 기간 평소보다 한산했던 샹젤리제 거리 ⓒ조영중

 

 

실제로 마크롱 대통령과 프랑스 정치권은 올림픽 전 풀지 못한 ‘총리 찾기’ 미션을 성공해 내야 한다.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양보할 의사도 없는 프랑스 정당들의 태도는 올림픽 이후라고 달라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프랑스 정당들은 서로 반대만 하는 무한 도돌이표의 늪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가. 올림픽이 선사한 낙관의 기대가 현실의 프랑스병을 치유할 수 있을까. 이제 프랑스는 다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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