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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75세 이상의 노인 절반 이상은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시사기획 창>은 노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집중 조명했다. 감정을 자극하기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논리로, ‘비정한 대한민국’을 드러낸 다큐멘터리 제작기를 따라가 본다. 편집자 주
뉴욕타임스에 실린 ‘jigong geosa’
여름의 습한 공기 속 양주 덕정역. 한낮의 지상 플랫폼이지만 컴컴합니다. 아케이드 지붕이 있고, 철로 쪽으로 스크린 도어가 세워져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빛이 차단된 공간입니다.
벤치에 남자가 앉아 있습니다. 고개는 카메라 반대편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어두워서 윤곽만 보이지만, 무릎 위에 깍지 낀 두 손을 올리고 있는 것은 보이네요. 손목에서 빛나는 금속 시계와 중절모. 잘 보이지 않아도 노인이란 사실은 충분히 알겠어요.
이번엔 창동 역사입니다. 덕정역과 비슷하게 지상이고, 또 어두컴컴합니다. 이 노인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빳빳하게 다린 새하얀 삼베옷을 입었습니다. 눈은 검은 선글라스로 가렸고, 손에는 부채를 들었습니다. 삼베옷에 어울리는 밀짚모자도 썼습니다.
시작은 이런 지하철 역사에서 찍은 노인들의 사진이었습니다. 일부러 역광을 골라, 조리개도 좀 닫고 어둡게 찍은 듯했습니다. 쓸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노년의 한갓진 모습. 이 우수 어린 사진들에 매혹돼 기사를 읽었습니다.
2023년 9월의 뉴욕타임스 기사였습니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에서 ‘Jigong Geosa’라고 검색하면 나옵니다. ‘지공거사’라고 한글로 쓴 기사와 ‘Jigong Geosa’를 묘사하는 외신의 피처 기사를 읽는 느낌은 전혀 달랐습니다. 익숙했던 풍경이 낯설어집니다. 거리감이 생깁니다. 한동안 사진들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이 풍경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훈적 주제 없이 그냥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노인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무료 지하철은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기만 해도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뉴욕타임스의 훌륭한 사진들처럼 말이죠(퓰리처상을 두 번 수상한 이장욱 작가의 사진이었습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최초 가제는 ‘지공거사’였습니다. 다만 언제나 그랬듯 주제는 변했습니다. <시사기획 창>은 시사 보도 다큐멘터리거든요. 단지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지 않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시간도 충분치 않았습니다. 제 한계도 분명했습니다. 영상 문법을 잘 모르는 펜 기자일 뿐이잖아요. 의지만으로 ‘아름다운 풍경 같은 다큐’를 만들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홀로 연천, 또 천안까지 다니면서 염탐하던 어느 여름날, 방향을 틀기로 합니다. 좀 더 사회적인 방식으로 접근해 보기로요.
그림이 아닌 내용 취재를 병행합니다. 노인 지하철 무료 승하차라는 방식의 문제점이나 장점을 묻기도 하고, 지하철 역사별 무료 승하차 노인 데이터도 살펴봅니다. 정리를 하니 이야기가 안 될 것 같진 않습니다.
하지만 뭔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노인 복지가 무료 승하차로 치환될 수 있는 주제인가? 고민도 들었죠. 시야를 좀 넓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때, 서울 열린데이터광장에서 흥미로운 데이터를 보았습니다. 수도권 생활 이동 데이터였습니다. 이동의 시작점과 종점, 시간과 이동 거리·수단은 물론 이동하는 사람의 인구학적 특성(나이, 성별 등)을 알 수 있는 빅데이터였습니다.
‘노인으로 한정하고 전수 분석을 한다면 의미를 길어 올릴 수 있지 않을까?’ KT와 접촉한 뒤 추가적인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생계·의료·주거 급여 등정부 공적부조 제도의 대상은 통신사에서 요금을 30~50% 할인해 준다는 정보였죠. 이를 활용하면 ‘소득 수준’ 에 따른 데이터 분류가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가난한 노인에 대한 다큐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가난한 노인의 낮과 밤, 흔적
그리고 본격적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무엇인가를 비춘다면 그 모습은 구조적이어야 합니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닌데 제 접근법은 그렇게 수렴하는 편입니다. 거시경제 분야에서 주로 취재 해온 이력과 무관치 않습니다. 세상을 장면이 아닌 구조와 전체로 이해하려는 욕심이 있습니다. 앞서 만든 <삼성, 잃어버린 10년>이나 <울산 탈출> 같은 다큐에도 그런 욕심이 투영돼 있습니다. ‘노인’이 주제더라도 그래야 합니다.
이게 어떤 방식인지는 이석재 기자가 만든 <쪽방촌 계급사회(2021년)>와 같은 다큐와의 비교를 통해 잘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하누리 기자의 <길에서 여자가 살았다(2024년)>와 비교해도 좋습니다.

두 작품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비교하는 것이 쑥스럽긴 하지만, 비교는 언제나 무언가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이석재 기자의 작품은 ‘하드보일드’합니다. 서울역 앞 동자동 쪽방촌의 적나라한 현실을 무뚝뚝하게 보여줍니다. 곰팡이 가득하고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어두컴컴한 쪽방과 그곳에서 술에 취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렌즈를 맞춥니다. 적나라하고 그래서 때로는 불편합니다. 하 기자의 작품은 진실합니다. 여성 노숙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들 삶에서 진실을 길어 올리려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모순을 지적할 때는 화도 납니다. 시청자는 가슴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어떤 선명한 장면으로 상황을 드러내는 방식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편입니다. 전체를, 총체적 진실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자나 하 기자가 가진 재능이 제겐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장면이 아닌 전체 이야기로, 감정보다는 논리로 시청자를 납득시키고 싶습니다.
비정한 대한민국, 그림자 속 노인들
노인 빈곤과 관련해 전달하고픈 이야기는 ‘비정한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은 바쁘게 달려 부자가 된 나라입니다. 어떤 척도로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2025년 현재, 평균의 수치로 환산된 밝은 측면일 뿐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돌아보지 않고, 평균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성장에 대한 화려한 이야기가 아니면 내버려두고 모른 체합니다. 취업하지 못하고 취직을 준비하는 청년들, 여전히 유리 천장 아래 갇힌 여성, 점점 소멸하고 있는 수도권 바깥의 지역은 조명되지 않는 어두움입니다. 노인의 삶도 그렇습니다.
OECD 국가 가운데 한국에 사는 노인이 가장 불행합니다. 평균적으로 그렇습니다. 상대 빈곤율이 40%에 육박합니다. 75세 이상 노인은 절반 이상이 빈곤합니다. 개선되지 않습니다. 10년 넘게 50% 넘는 수치를 유지합니다. 젊은 노인(65~75세)은 개선되는데, 이것은 사회가 노력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돈을 많이 벌었고 국민연금도 가입한’ 후기 베이비붐 세대(1968~1974년생)가 나이 들어 점차 노인으로 편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가난했던 노인은 계속 가난합니다. 그들은 생계 수준 이하에서 궁핍하게 남은 삶을 지속합니다. 대한민국 성장기에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복지와 연금의 사각지대에서 조용히 가난하게 살아갑니다. 내 한 몸 건사하고 살아남기에 바쁜 우리는 그들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한국의 가난한 노인들은 도와 달라 아우성치지도 않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스스로 평범하다 생각하고, 또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하루 3,000원을 벌기 위해 폐지를 줍고 한 시간 거리의 고물상에 다닙니다. 고시원에 살면서도 국가가 이만큼이라도 지원해 주니, 더 바랄 것이 없다고 감사해 합니다. 88살에 손수레를 끌고 묵묵히 폐지를 수집합니다.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바뀌지 않습니다. 좁은 방 안에서 우두커니 격투기가 틀어진 TV를 바라보며 홀로 삶의 비애를 삭입니다.

이 모습을 평균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려 했습니다. 점점 더 고립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하루를 보내기 위해 무료 지하철을 타고 종로3가로 모여드는 모습과 그 이유를 담았습니다. 빅데이터를 뼈대로 활용해, 그들이 어떻게 분포하고 또 이동하는지를 비추었습니다. 데이터는 노인 삶의 여러 조각을 하나의 뼈대로 잇게 해주는 축이 되어주었습니다.
선릉역, 그리고 경마장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인력으로 제작하는 다큐였기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데이터를 분석하던 VWL의 김승범 소장이 노련하게 한 대목을 지적하며 가져왔습니다.
“강남 한복판에 가난한 노인의 거점이 있다. 수서 같은 임대 아파트 단지가 있는 지역이 아니고, 그냥 테헤란로 한복판이다. 선릉역이다. 과거 기사를 보니 다단계 이야기가 있기는 하다. 어떤 사회적 현상이 있지 않고서는 이렇게 데이터로 확인되는 지점이 되긴 어렵다.”
급히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노인들은 ‘우리 글로벌한 혁신 회사’라고 믿는, 직장인들과 동네 주민들은 ‘노인들 나쁘게 하는’ 다단계 회사가 밀집해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들의 고객은 대부분 노인이었습니다. 노인들은 식사를 대접하고, 경품권을 쥐어 주고, 떡도 주는 이 회사들을 믿었습니다.
가난한 노인은 이렇게 주중에는 ‘일한다’ 믿으면서 선릉역에 모여듭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경마장에 갑니다. 경마장은 외롭고 가난한 노인의 쉼터입니다. 노인은 입장료가 무료이고, 마권은 100원 단위부터 살 수 있습니다. 할 일이 없으니 경마도 보고 이야기도 하러 가는 곳,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을 보내는 곳입니다. 선릉역과 경마장 이야기가 데이터와 함께 더해지며 이야기는 좀 더 입체적인 모습으로 다듬어졌습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응시하기
취재 과정 전반에 힘이 되어준 김승범 소장은 “다단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 달리는 말들의 경주에 내일의 삶을 맡기지 않아도 될 만큼,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국가가 마련해주는 게 복지겠죠. 소득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적당히 일할 수 있게 건강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그렇고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댓글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화려한 겉모습 속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움이 있는 나라다. 전후 70년 이후 고속 성장만 비추지 그 속에서 죽어가는 어둠은 잘 조명하려 하지 않지. 밥만 먹고 살기만 했으면 하고 바란 세대들이 지금 노인이 되었다. 그들을 조명해야 한다. 이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서 제시한 해법은 단순합니다. 외면하지 않기. 외면은 가난한 노인이 자연히 소멸하기를 기다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가능한 재원과 범위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이념과 정치적 유불리 너머에서 생각하기.
모쪼록 이 단순한 해법이 단순하단 이유로 가볍게 생각되지 않기를, <가난한 노인의 낮과 밤, 흔적>이 ‘성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기여한 노인 집단의 가난한 현실을 응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