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Q.
경제지 7년 차 기자입니다. 대선, 총선, 계엄 등 많은 정치·사회적 사건 사고를 지켜보면서 제 일의 가치가 무엇일까 고민이 됩니다. 현장을 뛰지 않고, 이런 사안들을 주로 경제적 시각으로만 분석하는 데서 기자로서의 한계를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지의 가치는 무엇이고 경제지 기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무엇일까요?
익명의 경제지 기자
지난해 12월 3일부터 계엄, 정치, 선거 뉴스가 온 방송과 신문, 유튜브를 뒤덮었습니다. 경제지에서 20여 년을 일하면서 경제 이슈 위주로 뉴스를 챙겨보는 것이 습관인 저도 이 기간만큼은 깜짝 놀랄 뉴스가 쏟아지는 정치, 사회 분야 기사들을 따라가느라 손에서 휴대폰을 놓기가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정국 혼란은 국민에게 불행한 일이죠. 그러나 담당 기자들에게는 엉덩이가 들썩들썩할 때입니다. 기자들이란 뉴스가 되는 대형 사건이 나면 피에 이상한 기운이 도는, ‘은은히 미친(?) 존재’들인 점은 부정하기가 힘듭니다.
입사 5~9년이 된 ‘중참’들은 신문사에서 종횡무진 날아다니는 연차라고들 합니다. 어느 정도 경험과 네트워크를 쌓은 데다 체력, 총기와 열정이 가득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잘 벼려진 주머니칼 같다고나 할까요. 정확히 어느 부서에 있는지 모르겠으나, 의기충천한 ‘허리 연차’ 기자가 이런 시기에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정치·사회 뉴스 대신 ‘차가운’ 경제 뉴스를 쓰고 있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우선, 경제지에도 정치·사회 부서가 있으니 그 부서들에서도 꼭 일해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부서를 경험하는 것은 언론인으로서 안목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경제지에서는 대개 정치부와 사회부(사건·사고팀)가 비인기 부서이기에 자원할 경우 부서 이동이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후배님께서 그런 부서에서 일하면서 ‘갈증’을 한번 풀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러나 상담자의 본질적인 고민은 부서 이동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경제 뉴스 보도가 어떤 가치를 가질까, 경제 담당 기자인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나, 만약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엄청나게 거대하고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나름대로의 보람과 재미를 느끼면서 주로 경제부서에서 기자 활동을 해온 입장에서 제 생각을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크고 작은 경제주체들에게 도움을
첫째, 좋은 경제 뉴스는 독자들이 더 나은 경제적 판단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여기서 독자란 회사 임원, 정책 결정권을 가진 정치인·고위 공무원뿐만 아니라 자영업자, 회사원, 취준생, 개인 투자자 등 경제활동을 하는 모두를 말합니다. 일생일대의 결정인 취직, 내 집 마련, 주식 투자 시 독자들은 경제 뉴스를 찾아봅니다. 불충분하거나 심지어 틀린 기사도 있을 수 있지만, 이는 개별 기사의 ‘질’ 문제이지 경제 기사의 본질적인 중요도를 떨어뜨리는 일은 아닙니다. 크고 작은 경제주체들의 결정 과정에 내 기사가 일말의 도움이라도 된다는 사실은 제가 일하는 데 큰 보람이었습니다.
또한, 좋은 경제 저널리즘은 더 건강한 경제 체제에 기여합니다. 제가 기자 초년병이었던 시절, 선배들의 가슴에는 항상 커다란 부채 의식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에 대해 제대로 된 경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당시는 기업들이 문어발 확장을 위해 외화 차입을 마구잡이로 늘리는 반면, 정부는 외환 보유고 관리를 제대로 못해 경제 구조가 상당히 취약한 상태였습니다. 이를 언론에서, 특히 경제 담당 기자들이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경제·금융 위기의 책임이 오롯이 언론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사가 위기를 막는 데 얼마나 기여해야 하는가는 언론학계에서도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려운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1990년대 한국의 경제 저널리즘이 재벌들의 방만 경영과 이를 초래한 정경유착에 대한 ‘감시견(watchdog)’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Democracy Dies in Darkness)”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저널리즘의 핵심적인 역할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경제 저널리즘은 건전한 시장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좋은 경제 기사를 많이 쓰는 기자들이 많을수록 사회의 공동선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경제지 기자들이 가져야 할 사명의식이자 자부심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경제 기자만이 할 수 있는 보도들
그런데 훌륭한 경제 기자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저는 ‘현장 취재’를 꼽고 싶습니다. 현장과 정책, 이론을 모두 연결해 스토리를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경제 기자밖에 없다고 감히 단언합니다. 기자는 경제학 박사님, 수십 년을 일한 공무원, 애널리스트에 비해 지식의 양이나 깊이는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실물 경제·금융 시장, 치열한 산업 현장을 매일 들여다보고 그 현장의 주체들과 소통하며 정보를 전달하고 현상을 분석하는 역할은 경제 담당 기자의 전매특허입니다. 취재 활동을 통해 정책 결정이 바닥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고, 이는 다시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그 일례로 제 경험 중 한 토막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날 금융위원회에서 서민들의 부동산 대출을 지원하기 위한 대규모 금융 프로그램을 발표했습니다. 장관의 발표 이후 대부분의 기사는 얼마나 싼 금리로 부동산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는가에 쏠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갑자기 이렇게 대규모 대출 지원을 해주면 부작용은 없을까’라는 생각에 채권시장 관계자들을 인터뷰했습니다. 이들은 정부보증 채권을 대규모로 단시간에 시장에 쏟아내면, 이는 전체 채권시장에 큰 부담 요인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다시 시중의 이자를 끌어올리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현장의 반응을 담아 서민 주택 대출을 돕는 ‘선의의 정책’이 초래할 부작용을 분석하는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이를 본 기획재정부에서는 결국 국고채 발행 일정을 조정하며 채권시장의 우려 잠재우기에 나섰습니다. 정부 발표만 듣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쓰기 힘든 기사였을 것입니다. 대단한 단독기사는 아니었지만, 경제지 기자만이 할 수 있는 보도였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던 기사 중 하나입니다.
좋은 경제 기사는 현장에 있다
꽤나 오랜 시간 경제 기사의 공급자이자 독자인 제 견해로는, 좋은 경제 기사는 현장과 괴리되지 않습니다. 비록 이 현장은 탄핵 선고 현장과 같이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터지는 ‘핫’한 현장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 경제주체와 맞닿아 있는 실물 경제와 금융 시장 곳곳이 모두 경제지 기자가 관심 가질 만한 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를 다룬 <빅쇼트>라는 영화에서 경제 기자로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이 있습니다. 주인공 마크 바움이 스트립클럽 댄서로부터 ‘집값의 5%만 있으면 집을 쉽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주택 거래 실태를 확인하러 전국 곳곳을 다닙니다.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만들어낸 파생금융상품이 어떻게 미국 전역의 주택 시장에 거품을 만들어냈는지까지 조사를 마친 후 그는 거대한 ‘숏베팅’에 나섭니다. 그가 현장 취재를 통해 경제 위기의 거대한 진실에 다가가는 모습을 보며 ‘야, 저거 어마어마한 기삿거리인데!’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형 경제 사건들의 현장은 국내에서도 꾸준히 있었습니다. IMF 외환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키코 사태, 라임펀드 사태, 레고랜드 사태 등 경제적으로 큰 사건들은 개인과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한발 먼저 보도하거나, 그 파장을 깊이 있게 보도할 수 있는 것은 경제지 기자만이 가진 기회가 아닐까요.
대형 정치 게이트만이 정치 기자의 존재 이유가 아니듯, 경제 기자 역시 위기만이 존재 이유는 아닙니다. 본인이 맡은 분야에서 조금 더 깊이 있고, 조금 더 차별화된 기사를 쓸 수 있다면 이미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자께서 경제적 시각에서만 분석하는 데서 한계를 느낀다고 하셨는데, 어떤 이슈를 경제적 시각에서 제대로 분석만 해도 충분히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경제 기사는 대중성이 떨어집니다. 클릭 수나 댓글만 봐도 알 수 있죠. 직관적인 정치 기사나 사회 기사에 비해 맥락도 복잡하고, 선악이나 옳고 그름의 잣대로 구분 짓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취재하기도 어렵고 쉽게 쓰기는 더 어렵습니다. 전문성과 경험, 감각 모두를 갖추고 있어야 제대로 쓸 수 있습니다. 마크 바움이 월스트리트와 집값 급등의 관계를 꿰뚫어 본 것은 그가 금융전문가였기에 가능했을 일입니다. 공부도 많이 하고, 현장도 잘 알아야 좋은 경제 기자가 될 수 있습니다. 후배님은 더 멋지게 그 역할을 해나갈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