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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주된 감정은 ‘두려움’이다. 출판되는 책 제목에 끊임없이 AI라는 키워드가 들어가는 것도 이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른바 공포 마케팅이다. 학술 논문도 예외는 아니다. 수많은 AI 관련 논문이 쏟아지고 있다. <생성형 AI 시대의 팩트체크 저널리즘>, <AI 기본법의 저널리즘 영역 적용 가능성>, <AI와 저널리즘,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서 AI 트랜스포메이션으로 중심축이 바뀌는 만큼, AI라는 키워드가 빠진 연구는 관심도가 떨어지기 쉽다는 인식도 존재한다. 이처럼 AI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알고 싶게 만들고,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묘한 매력을 지닌다.
2026년 한국, 미디어의 AI 활용은
AI를 미디어 제작에 활용하는 양상은 복잡다단하다. 100% AI로 생성한 영화와 광고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방송사 출신 한 제작자는 실사 없이 생성형 AI로 제작한 영상만으로 만든 영화 <한복 입은 남자>를 선보였고, 해당 작품은 곧 방송 편성까지 이뤄졌다. 생성형 AI의 영향이 쓰나미처럼 덮치는 광고계는 염려가 적지 않다. AI가 시키는 대로 실시간으로 광고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 ‘아임닭’ 광고는 일종의 메타 광고였다. 젊은 미국인 남성과 한국인 할머니가 영어회화에 관한 팁을 주고받는 ‘야나두’ 광고는 AI와 광고가 얼마나 궁합이 좋은지 보여주는 예다.
MBC의 자회사 도스트일레븐(DOST11)은 선거 개표방송을 위한 AI 영상을 만들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일부 프로그램에서는 AI를 활용한 재연 배우가 부자연스럽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PD수첩>은 계엄 상황을 특수효과 대신 AI 영상으로 구현하기도 했다. EBS는 저작권이 자유로운 고전 작품을 AI를 활용해 새롭게 만들어 선보이는 AI 기반 제작 방식을 적용할 계획이다.
다만, 저널리즘 분야는 AI 도입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편이다. 진실의 엄중성과 공론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 종합편성채널은 미국과 이란 사이의 전쟁을 보도하며 AI로 생성한 유조선 폭파 장면을 그대로 사용했고, 중국 전승절 기념 열병식을 다루며 북·중·러 정상의 만남을 예고하는 과정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박수치는 모습을 AI로 제작해 방송한 공영방송의 사례도 있었다.
물론 시청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쉽게 사용한 생성형 AI 영상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심층적이고 독창적인 기사 작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단순 반복 기사를 쓰는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AI 활용의 원칙일텐데, AI를 제대로 활용한 저널리즘의 징후는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현장 기자가 취재 후 기사를 쓸 때 AI를 활용하고, 데스크 역시 AI를 활용해 모범답안을 만들어놓고 비교한다는 한 기자의 말은 AI와 AI가 경쟁하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너도 쓰고 나도 쓰는 AI, 어떻게 활용하면 저널리즘의 발전에 정말로 이바지할지에 대해서는 정작 체계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디지털 저널리즘 안착에 실패한 한국 언론은 AI라는 새로운 테크놀로지 도입 과정에서도 이른바 ‘AI 포획(AI Capture)’ 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영재 한림대 교수는 AI 포획에 대응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향으로, 언론이 AI 기술에 종속되지 않고 탐사보도·팩트체킹·데이터 분석 등 양질의 저널리즘과 민주적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AI를 규범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AI는 단순한 효율성과 자동화의 수단이 아니라 저널리즘의 공익성·진실성·책임성을 확장하는 기술적 동반자이자 인지적 증강 도구로 재정의돼야 한다는 것이다.1)
하지만 현재의 모습은 희망적이지 않다. 많은 언론사가 AI를 ‘효율성 향상 도구’로 활용 중이지만, ‘저널리즘 핵심 가치와 조직의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부지런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독자 역시 내가 원하는 기사를 제시해달라고 했을 때 AI가 여러 정보를 조합해 만들어 낸 결과물을 기존 뉴스를 대체하는 새로운 저널리즘 양식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AI는 어디를 향해 가나
AI가 우리 사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급속한 기술의 변화 속도를 대중의 인지가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는, 일종의 문화 지체 현상으로서의 브레인 포그가 아닐까. AI는 안개처럼 우리를 포위하고 우리에게 스며들었지만(어느 부분은 짙게, 또 어느 부분은 옅게), AI에 대한 우리의 인지는 뿌옇다. 그렇다면 AI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최근 개강과 더불어 교내외로 맡은 일이 많아지며 편두통과 머리가 뿌연 느낌을 받았다. 수면의 질도 떨어지고 코막힘도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 비염으로 인해 코가 막히고 산소 공급이 부족해지며 뇌의 움직임이 현저히 느려진 것 같았다. 식염수를 코에 넣는 처치를 통해 막힌 코가 비로소 뚫리자, 그제야 비안개가 걷히듯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AI 포그(fog)’ 역시 AI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AI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첫걸음은 막혀 있던 인식의 흐름을 트이게 하는 일과도 같다.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것이 신간 《AI와 미디어》다. 이 책은 한국언론학회 최우수 연구회(2024, 2025)로 선정된 ‘방송과 뉴미디어 연구회’가 기획했다. 이 책의 미덕 중 한 가지는 미디어 현장 종사자, 전업 연구자, 그리고 법제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조화롭게 융합됐다는 점이다.
먼저 콘텐츠 제작 전문가인 유진희, 최민근, 김현지는 각각 영상 방송 저널리즘 영역에 종사하며 최신 AI 활용의 현주소를 누구보다 정교하게 보여줬다. 이들의 분석은 2026년 한국 미디어 산업에서 AI 적용의 굴곡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그로 인해 “AI가 제작한 게임, 웹툰, 영상, 애니메이션 등에서 이용자의 몰입을 유도하기 위한 스토리, 즉 인간의 상상력이 결여된 콘텐츠는 곧바로 사라진다”라는 현실적인 진단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AI 시대에는 스토리를 끌고 가면서 몰입을 유도하고 향유자의 니즈를 반영하는 통찰력이 더욱 중요하므로, 결국 AI 시대에도 중요한 것은 여전히 ‘인간’이지만, 새로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역량 개발은 꼭 수반돼야 한다”라는 현실적인 주장(유진희)도 눈여겨볼 만하다. 세계 최초의 AI 연출자 ‘엠파고’를 개발한 최민근 MBC PD는 AI의 등장으로 인해 PD의 정체성이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시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AI가 생산한 결과물을 해석하고 감정 흐름을 설계하는 감정 큐레이터, 미학적 조율자로 변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김현지 기자의 글은 레거시 미디어인 신문사들이 AI 도입을 비용 절감 차원에만 집중하고, 산업의 구조변동이나 새로운 상품·서비스 개발에는 소극적인 현실에 대한 답답함을 보여준다. 뉴스 제작 과정에서의 소극적인 AI 도입과 성급한 외부 협업 방식은, 한국 저널리즘의 AI 활용 수준이 여전히 과도기에 머물러 있음을 방증한다. 그는 이제 언론의 존재 이유와 존립 방식을 다시 물어야 할 시기이며, AI 시대에도 언론의 가장 큰 무기는 신뢰와 검증이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무엇보다 독자의 관여(engagement)를 높이는 데 힘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AI의 질주를 막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이 책의 두 번째 특징은 다양한 법·제도 및 정책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일종의 ‘부감력(俯瞰力)’이 돋보이는 글들이다. 최근 《부감력》을 저술한 히가시 히데키(東秀樹)는 시야를 높여 새처럼 조망하는 눈, 디테일에 숨은 본질을 꿰뚫는 곤충의 눈, 변화의 흐름을 읽고 미래를 예측하는 물고기의 눈, 복잡한 상황을 정리하고 최적을 도출하는 시스템 사고, 그리고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객관적으로 포착하는 메타 인지를 제시한 바 있다.
김대규 박사는 미국, 중국, 유럽의 AI 정책을 한국의 정책과 비교 분석했다. 그는 AI가 가져올 미래 예상도인 ‘AI 2027’이 보여준 질주(race)와 감속(slowdown) 시나리오를 언급하며, AI 개발 경쟁이 격화되면 AI가 사회의 권력 중심을 차지하고 인간은 종속의 위험을 마주하게 된다는 경고를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두 가지 선택지에 직면한 한국의 경우, 우선 글로벌 AI 패권 전쟁에서 뒤처지지 않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국가적 자원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초고속 열차에 몸을 실었더라도 기차가 탈선하는 상태를 막기 위해서는 안전 정책을 과감하게 채택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종관 박사는 미디어 AI의 사회적 역작용을 분석했다. AI가 창작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새로운 형태의 창의성을 촉진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미디어는 인간의 지식과 감성, 트렌드와 사회·정치·문화·경제적 맥락이 총체적으로 반영된 생산물이자 표현물이다. 따라서 AI의 확산은 공동체의 지식 기반을 약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생성형 AI와 인간의 창작 활동, 지식정보의 생산과 축적은 상호 순환 관계에 있어야 하나, 새로운 인적 창작이나 공동체 지식의 축적이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공유지의 비극처럼 그 원천이 바닥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경고도 눈여겨볼 만하다. 물론 데이터의 특성상 사용한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오염된’ 데이터가 입력된다면 AI의 산출물 역시 오염을 피할 수 없다. 아울러 개인정보의 오용, 데이터 독점 문제, 필터버블에 따른 다양성 훼손 등도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그 외에도 AI 시대 미디어 리터리시의 방향성(여현철), 딥페이크 영상에 관한 헌법적 소고(홍순건), 미디어와 AI 학습 데이터(김현경), AI를 이용한 미디어 이용자의 개인정보 보호 방안(장준영·이지은), AI 미디어를 알면 보이는 새로운 기회들(이승현) 등 다양한 제도·정책·교육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풍성하다.
AI의 미래는 현재 우리 선택의 결과
초지능이나 범용 AI의 발전, 에이전트(Agent) 1, 2, 3, 4의 단계별 등장은 AI가 인간 관리·감독의 한계를 넘어 주체적 존재로 거듭날 가능성을 시사한다. 급격한 기술 발전 속도에 대한 탐닉은 이러한 가능성에 무게를 더하기도 한다. 하지만 AI가 인간의 신체를 확장한, 발신자와 수신자를 연결하는 하나의 미디어라는 관점을 취한다면, AI를 미디어 발전 역사의 탄도 안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창의성이라는 무저갱에 비하면, AI가 수집하는 데이터는 오히려 한계가 있으며 의도적으로 오염되거나 고갈될 수 있다. 따라서 AI의 질주를 합리적으로 완화할 개인정보 보호법의 개정이나, AI 리터러시를 강화할 교육 대안이 존재한다는 것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AI에 대해 과도한 낙관론이나 비관론, 혹은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미래는 현재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미디어의 미래 역시 현재 AI에 대한 우리의 견해와 판단에 좌우된다(이종관)는 주장이 기술 질주 시대의 엘레지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AI와 미디어 둘 중 하나라도 관심 있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AI와 관련된 미디어와 소통의 변화를 다면적이고 다층적으로 접근해 입체적으로 살폈다”(정성은 한국언론학회장)라는 평가를 확인해 보시라.
1) 최영재(2025), <AI 시대 한국 언론의 ‘AI 포획’ 가능성에 대한 탐색적 연구>, 미디어와 인격권, 11(3), pp.139 - 1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