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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중앙그룹 사태가 드러낸 K-미디어 산업의 역설
669 | 등록일 : 2026-08-28
지난 6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드라마들을 제작·편성해 온 한 국내 미디어 기업이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K-콘텐츠의 인기와 국내 콘텐츠 기업의 위기가 동시에 벌어지는 역설. 중앙그룹 사태가 드러낸 한국 미디어 산업 균열의 원인과 재설계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숨을 쉬기도 어려울 만큼 더웠던 올여름에도 넷플릭스 ‘글로벌 톱10’엔 어김없이 한국 드라마가 올랐다. 그러나 그 사이, 그 드라마들을 만들어 온 한 미디어 기업은 법원으로 향했다. 지난 6월 12일 JTBC는 206억 원의 채무를 막지 못했고, 15일 중앙홀딩스와 콘텐트리중앙, 메가박스중앙 등 중앙그룹 5개 계열사가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잘나가는 콘텐츠와 쓰러지는 회사. 어울리지 않는 두 장면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사태의 전개와 재무 구조는 이번 커버스토리의 다른 글들이 다루고 있으니, 이 글은 다른 질문에서 시작하려 한다. 왜 하필 JTBC였을까? 

돌아보면 JTBC는 게으른 사업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스타 PD를 영입하고, 지상파가 머뭇거리던 소재에 돈을 걸고, 과 <부부의 세계>, <재벌집 막내아들> 등을 만들었다. 콘텐츠에 투자해야 영향력을 얻고, 영향력이 있어야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교과서를 철석같이 믿었던 사업자였다. 그 사업자가 가장 먼저 법원의 관리 아래 들어갔다. 교과서가 틀렸다는 이야기다. 

중앙그룹 사태를 개별 기업의 무리한 확장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석하면 편리하긴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이 사태는 한국 방송·콘텐츠 산업이 딛고 서 있던 모델의 가장 약한 지점부터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다. 

비용은 글로벌 가격, 회수는 국내 가격 

첫 번째 균열은 비용과 회수의 불일치다. 글로벌 OTT가 들어온 뒤 드라마 제작비는 글로벌 가격이 됐다. 회당 수억 원이면 미니시리즈를 만들던 시장이 이제 회당 수십억 원을 요구한다. 배우출연료, 작가 고료, 스태프 인건비, 후반 작업까지 모든 항목의 비용이 넷플릭스가 끌어올린 눈높이에 맞춰 증가했다. 

한 번 올라간 가격은 내려오지 않는다. 글로벌 플랫폼과 경쟁하려면 그들의 물량과 완성도를 따라가야 하고, 따라가려면 그들의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SLL중앙에서 대부분의 콘텐츠를 구매해야 했던 JTBC는 시장 가격에 맞게 비싼 방영권을 지불했다. 문제는 버는 쪽이다. 제작비는 글로벌 기준인데 회수는 여전히 국내 광고와 국내 유통에 기대고 있었다. 전체 제작 콘텐츠 10분의 1 남짓이 글로벌 OTT를 통해 그나마 글로벌 가격을 받았을 뿐, 대부분의 콘텐츠는 국내 유통에서 수익을 확보해야 했다. 

그런데 그 국내 시장마저 축소되고 있다. 한때 4조 원을 바라보던 방송광고 시장은 지난해 2조 100억 원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전년보다 12% 넘게 빠진 수치로, 2조 원 선의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다.1)

방송 산업 매출 전체가 3년 연속 뒷걸음질 쳤고, 지상파는 3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모바일로 옮겨 간 광고주의 예산이 방송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쓰는 돈은 넷플릭스 기준인데 버는 돈은 레거시 미디어 기준이다. 중앙그룹 사태는 이 간극을 개별 기업의 경영 효율만으로 메울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투자하지 않으면 존재감을 잃고, 투자하면 적자가 쌓인다. 

그 와중에도 글로벌, 특히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 콘텐츠의 위상은 높아져만 갔다. 그럴수록 콘텐츠 제작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긴 힘들었다. 조금만 더 오르면 정상이 보이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성공할수록 깊어지는 종속 

두 번째 균열은 회수 구조의 종속성이다. 국내 회수만으로 제작비를 감당할 수 없다면 남는 길은 글로벌 판매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한국의 방송사와 제작사들은 글로벌 OTT 판매로 적자를 메워 왔다. 그런데 이 문을 여는 순간 거래의 성격이 바뀐다. 제작비를 보전받는 대가로 IP와 유통권을 넘겨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러한 구조가 일반화되면서 성공한 작품일수록 ‘한국 방송사의 콘텐츠’가 아니라 ‘글로벌 플랫폼의 오리지널’로 남았다. 이 질서를 ‘팍스 넷플리카’라 부른 적이 있다. 제국의 평화 아래에서 제작 물량은 유지되지만, 무엇을 만들지 정하고 값을 매기는 주권은 제국의 몫이다. 

서두의 어울리지 않는 두 장면이 겹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K-콘텐츠는 글로벌 시장에서 어느 때보다 잘나가는데, 그 콘텐츠를 만들어 온 국내 미디어 자본은 쓰러지고 있다. K-콘텐츠의 성공과 K미디어의 위기가 같은 시간에 진행되는 것이다. 콘텐츠의 성과가 건강한 산업 기반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중앙그룹 사태가 드러낸, 우리 모두가 알지만 말하지 않은 두 번째 균열이다. 

숫자도 이 엇갈림을 보여준다. 방송 산업 매출이 3년째 줄어드는 동안 콘텐츠 제작 부문의 매출은 오히려 큰 폭으로 늘었다. 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방송사를 거치지 않고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제작은 국내 기업이 하고 기획과 회수는 국경 밖에서 이뤄지는 분업이 굳어지면, 한국 콘텐츠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하청 기지가 될 수도 있다. 하청 기지란 어감이 좋지는 않지만 하청 구조에서 수익을 만들고 그 수익이 지속 가능하다면 괜찮은 선택일 수 있다. 문제는 지속적으로 생존 가능한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하청이라는 데 있다. 

발주 능력의 소멸은 이미 수치로 확인된다. 국내 드라마 제작 편수는 2022년 141편에서 2024년 100편 안팎까지 줄었다. 여기에 연간 10여 편을 편성해 온 JTBC가 흔들리면서 감소 폭은 더 커질 것이다. 편성이 줄어드는 만큼 편성 결정권은 국경 밖으로 넘어간다. 어떤 작품이 만들어지고 누가 출연할지를 국내 사업자가 결정하는 비중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그만큼 그들의 힘은 더 강해진다. 

규제는 레거시 미디어 기준, 경쟁은 글로벌 기준 

세 번째 균열은 법제에 있다. 한국의 방송 규제는 지상파가 시장을 지배하던 시절에 설계됐다. 소유·겸영 제한, 광고 품목과 시간에 대한 규제, 편성 규제, 재승인 제도까지, 방송법은 방송사가 ‘힘이 세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반면 안방의 시청 시간을 실제로 가져간 글로벌 OTT는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돼 이 규제 체계의 바깥에 있다.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데 한쪽만 규제받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지 오래다. 

규제 완화의 속도도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지상파 중간광고 하나를 허용하는 데 10년 넘는 논쟁이 필요했다. 그 사이 광고주는 아무 규제도 받지 않는 모바일 플랫폼으로 떠났다. 

규제 당국은 공정성과 공익성 논의만 하다 시장이 무너지는 걸 방치했다. 수없이 많은 지적도 주류 방송사업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으로만 여겼다. 

방송에 공적 책무를 지우는 규제 자체가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책무를 감당할 수 있는 수익 기반이 무너졌는데 책무의 무게는 그대로라는 것이 문제다. 평시에는 이 비대칭이 불공정 문제 정도에 그쳤겠지만, 위기 국면에서는 생존의 문제다. 규제에 묶인 사업자는 위기가 와도 움직일 수 있는 폭이 좁다. 자본을 조달하는 일도, 사업을 합치고 정리하는 일도, 새로운 수익원을 찾는 일도 인허가의 벽을 넘어야 한다. 시장은 글로벌 기준으로 무너지는데 대응은 레거시 미디어 기준의 절차를 밟아야 하는 셈이다. 통합 미디어 법제 논의가 나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고, 시장이 무너지는 속도는 입법의 속도를 한참 앞질렀다. 

균열 이후, 무엇을 다시 설계해야 하나 

그렇다면 이 사태는 예외적 사건인가, 예고편인가. 유감스럽게도 후자에 가깝다. ‘고비용 제작–광고·유통 회수’ 모델 위에 서 있는 사업자는 JTBC만이 아니다. 지상파와 다른 종편 사업자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같은 균열 위에 서 있다. 지상파 방송사는 이미 3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지난해 적자 폭은 1,200억 원 가까이로 오히려 커졌다. 균열 위에서 버티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가 다를 뿐이다. 그러니 모두가 몸을 사리고 콘텐츠 투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총체적 난국인 셈이다.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로 도약해야 할 시장이 오히려 국내로 축소될 위기에 닥친 것이다. 

일단은 기업이 생존할 수 있어야 한다. 개별 기업의 구조조정을 넘어선 시장 재설계와 광고·편성 규제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미 사라진 시장 지배력을 전제로 한 규제를 걷어내고, 국내외 사업자가 같은 규칙에 따라 경쟁하도록 운동장을 고르는 일이 첫 번째다. 광고 비율을 조금 상향하는 차원으로는 갈증만 더 키운다. 운동장을 고른다는 말을 글로벌 OTT에 같은 규제를 씌우자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방향은 반대다. 레거시 미디어를 옭아매는 낡은 규제를 덜어내, 경쟁이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쪽이다. 

물론 사업자도 시즌제를 도입하거나 소수의 대형 작품에 집중하는 등 편성 전략의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콘텐츠 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과 정책 금융이 회수의 공백을 일부 메워야 한다. 

실패를 정리할 수 있는 제도도 필요하다. 사업자가 위기에 몰렸을 때 인수합병과 사업 재편으로 출구를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인허가 체계는 진입만큼이나 퇴로도 좁다. 질서 있는 퇴장이 불가능한 시장에서는 위기가 곧 파국이 된다. 

다만 회수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국내 사업자가 IP를 가지고 글로벌 시장에서 회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제작비를 아무리 줄여도 같은 균열은 다시 벌어진다. 콘텐츠 산업은 후방 산업 파급 효과가 크므로 정부가 직접 투자하는 방안도 심도 있게 고민해 보자. 필자의 계산으로는 10년간, 4,000~5,000억 원을 투입하면 매년 10~15편의 작품에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중앙그룹 사태는 한국 미디어 산업이 지난 10여년 간 미뤄 온 질문을 한꺼번에 꺼내 놓았다. 콘텐츠는 세계 기준으로 만들면서, 산업의 제도와 회수 구조는 언제까지 국내 기준에 머물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또 다른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번 사태가 미뤄 온 숙제를 꺼내 드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1)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2025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집>, 2026.6.15, https://www.kmcc.go.kr/wasimages/viewer/skin/doc.html?fn=file3928680592175692004.pdf&rs=/wasimages/viewer/result/20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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