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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만 있는 기사
기획연재 | 등록일 : 2020-03-02

버려야 할 관행, 지켜야 할 원칙

뉴스 기사는 저널리즘의 현실을 스스로 말한다. 시민의 신뢰가 추락하는데도 기사의 품질이 제자리걸음 하는 이면에는 잘못된 취재 보도 관행이 공고히 자리 잡고 있다. 시급히 바뀌어야 할 대표적 관행을 짚어보고 올바른 보도 원칙을 제시한다. 이 기획은 저널리즘 품질 향상을 고민하는 좋은저널리즘연구회회원들이 돌아가며 집필한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24검찰이 재단의 은행 계좌를 들여다본 것을 확인했다며 불법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관련 계좌추적을 한 사실이 없다법 집행기관에 대한 근거 없는 악의적 허위 주장을 이제는 중단하라고 정면 반박했다.

유 이사장은 이날 오후 유튜브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어느 경로로 확인했는지 지금으로선 일부러 밝히지 않겠지만 노무현재단의 주거래은행 계좌를 검찰이 들여다본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위의 글은 20191224일 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실린 기사다. 얼핏 보면 기사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문제를 폭로한 정보원의 이름과 날짜가 명시돼 있고, ‘유시민의 알릴레오라는 정보의 출처도 분명하다. 외견상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이라는 육하원칙의 기사 조건도 갖췄다. 이해 당사자인 검찰의 반박 주장도 함께 실었으니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이 기사를 끝까지 읽다 보면 의문이 드는 게 한둘이 아니다. 유 이사장이 유튜브 채널에서 이러이러한 주장을 했다는 내용과 맨 끝에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 익명의 검찰 쪽 말이 인용된 것이 전부다. 그의 주장이 정말로 옳은 것인지, 검찰의 반박은 과연 믿을 수 있는 건지, 그런 반박을 하는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누구인지, 어떤 근거를 갖고 그의 주장이 틀렸다는 말인지 알 수 없다. “어느 경로로 확인했는지 지금으로선 밝히지 않겠다”(유시민)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인지, “근거 없는 악의적 허위 주장을 중단하라”(검찰)라는 성명에 가까운 검찰의 반박 근거는 무엇인지 기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한마디로 유시민과 검찰이 이렇게 주장했다는 말을 전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중이 원하는 건 진짜 사실

 

우리가 뉴스 기사에서 알고 싶은 것은 이해 당사자들이 어떤 문제에 대해 내뱉는 일방적 주장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런 주장을 일방적으로 듣기 위해 아까운 시간을 내 뉴스를 읽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런 주장이 근거가 있는 것인지, 근거가 없다면 어떤 이유 때문인지, 양쪽의 주장을 확인해주는 제삼자의 의견은 무엇인지를 통해 진짜 사실(real facts)’을 알고 싶을 뿐이다.

최근 한국 기자들의 보도 관행 가운데 하나가 누군가의 일방적 주장을 아무런 확인 절차 없이 그대로 전달 보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자의 기본 사명은 누군가의 주장을 전달하는 게 아니다. 대신 주장의 사실 여부를 확인해 정확히, 그리고 균형을 갖춰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데 있다. 최근 가짜뉴스 시비가 벌어지는 것도 결국은 기자들이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정보를 마구 쏟아내기 때문이다. 미국 포인터연구소(Poynter Institute) 연구팀은 디지털 시대 언론인을 위한 지도원칙(Guiding Principles for Journalists)’에서 저널리즘의 중요한 핵심 가치 가운데 하나로 투명성을 꼽았다. 이들이 말하는 투명성은 복잡한 게 아니다. 사실을 어떻게 취재했으며, 사람들이 왜 그 사실을 믿어야 하는지, 취재원과 증거는 무엇인지, 그리고 (기자) 자신들이 내린 선택의 타당한 이유를 밝히라고 말한다. 서로 경쟁하는 여러 시각을 발굴해 함께 전달하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들 내용은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게 의무인 기자라면 마땅히 거쳐야 할 기본 원칙들이다.

저널리즘에서 가장 위대한 가치는 진실이다(McBride & Rosenstiel, 2014). 진실이 빠진 저널리즘은 존재 가치가 없다. 진실은 기사의 투명성에서 나온다. 투명성은 기사가 누구로부터 어떻게 취재됐고, 사실의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투명하지 않은 기사는 진실한 기사가 아니다. “유시민 이사장이 이런 말을 했다”, “검찰이 이렇게 반박했다는 식으로는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저널리즘의 궁극적 가치인 진실에 도달할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 매체 비평가인 빌 코바치(Bill Kovach)와 톰 로젠스틸(Tom Rosenstiel)이 기자들에게 확인하라(verify), 또 확인하라(reverify)”고 주문한 것도 사실 확인 과정이 곧 투명성이고, 진실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검증과 확인이 빠진 사실(?)은 뉴스(news)가 아니다. 그것은 그냥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정보(information)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언론학자들이 최근 펴낸 현장기자를 위한 체크리스트(2019)라는 책에서도 사실의 검증진실의 삼각측정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한다. 이는 한국 기자들이 사실 검증 과정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뉴스는 연설문이 아니다

 

요즘 한국 기자들이 자주 다루는 정보원 가운데 하나가 바로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에 올라오는 의견과 주장들이다. <유시민의 알릴레오>, <홍준표의 홍카콜라>, <김어준의 뉴스공장>, <강용석의 가로세로연구소>, <조국의 페이스북> 등 이른바 숱한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의견과 주장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주요 뉴스로 다뤄진다. 그들이 아무리 의견이고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적 관심 사항이고, 중요한 내용이라면 보도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문제는 기자들이 페이스북, 트위터, 그리고 유튜브에서 늘어놓는 누군가의 주장을 확인과 검증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그냥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시민은 이런 주장을 했다”, “홍준표는 이런 말을 했다”, “김어준은 이런 사실을 밝혔다는 식이다. 기사 속에 의견이나 주장은 넘쳐도, 그 의견이나 주장이 얼마나 옳은지를 확인할 수 있는 단서나 내용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페이스북에서, 트위터에서, 유튜브에서 어떤 주장을 했다면 적어도 당사자에게라도 그런 주장을 하는 이유와 근거 정도는 확인해야 옳다.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세간에 떠도는 소문이나 풍문을 그대로 옮겨다 전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것은 교양 있는 시민이 소비해야 할 뉴스가 아니다.



진실이 빠진 저널리즘은 존재 가치가 없다. 진실은 기사의 투명성에서 나온다. 투명성은 기사가 누구로부터 어떻게 취재됐고, 사실의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투명하지 않은 기사는 진실한 기사가 아니다.”

 

 

요즘에는 누구나 인터넷 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만의 주장이나 의견을 밝힐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시민들을 위한 뉴스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실의 확인과 검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자가 사회에 내놓는 뉴스에서는 누구도 자신만의 일방적 주장을 담아서는 안 된다(Shirky, 2014). 일방적 의견이나 주장은 정치적 성명서는 될지 몰라도 사회적 공공재로서의 뉴스는 아니다.

뉴스의 존재 가치는 시민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데 있다. 궁금증이 생겨나는 기사는 좋은 기사가 아니다. 기사를 읽고 궁금증이 생겨나는 것은 전달하려는 사실이 제대로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기자들은 궁금증을 더해주는 나쁜 뉴스를 생산하는 데 진을 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마감 시간이 짧아진 데다 디지털 속보 경쟁까지 벌어지는 상황에서 누구의 주장을 일일이 확인하는 여유를 갖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기자들이 사실 확인을 하고 싶어도 취재 현실이 녹록지 않을 수도 있다. 기자들이 사실 확인이 안 된 뉴스를 내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적 고민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누군가의 일방적 의견이나 주장을 속기사처럼 옮겨 전달해도 무방하다는 뜻은 아니다. 뉴스는 어떤 경우에도 정치인이 선거 유세장에서 자기의 생각을 무책임하게 피력하는 연설문이 될 수는 없다. 뉴스는 정확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진실을 드러낼 때 가치를 인정받는다. 시간이 걸려도 더 엄격하고, 더 철저하게 확인을 거친 사실을 공표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국 기자들이 사회적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이해 당사자의 주장을 서로 직접 확인하고, 제삼자를 통해 재차 확인하는 이른바 삼각확인(triangulation)’이 필수적이다. 만약 그것이 어떤 사회적 시빗거리나 쟁점 사항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삼각확인을 통해 사실 검증을 받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기사로 내보내지 않는다는 단순한 저널리즘의 원칙을 늦었지만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의견은 자유이지만, 사실은 신성하다(the comment is free, but facts are sacred)”는 영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출신인 찰스 프레스트위치 스콧(Charles Prestwich Scott)의 언급이야 말로 오늘날 한국 기자들에게 더 없이 필요한 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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